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97화 (197/229)
  • 0197 / 0229 ----------------------------------------------

    1부

    “부탁이 있네.”

    피츠로이 백작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대화는 이 부탁을 하기 위한 포석이었으리라.

    ‘들어는 봐야겠지.’

    거절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그리고 백작이 무리한 부탁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말씀하세요.”

    “이번 기동전에서 내 아들을 미르차르드 후작님의 군단에 넣어주게나.”

    “예?”

    아들이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를 바라여 이런 부탁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공을 세우기를 바란다면 어느 부대에 부 지휘관으로 넣어달라고 말했겠지. 그냥 넣어 달라고는 하지 않을 터.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프레만이 오러 마스터 옆에서 조금 보고 배웠으면 하네.”

    그래서 미르차르드 후작의 부대에 넣어달라는 건가. 브로켄 후작도 오러 마스터이기는 하지만,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것은 분명 미르차르드의 부대다.

    그러니까 이 부탁은 타당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지.

    “프레만이 백작님의 부대가 아닌 미르차르드 후작님의 부대에 속하게 되면 아무런 권한도 가질 수 없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프레만이 그 나이치고는 유능하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그 나이 또래일 뿐이다.

    미르차르드가 프레만에게 군을 이끌 권한을 줄 리는 만무해. 그저 귀족의 자식이라는 신분으로 전투에 참가할 수 있을 거다.

    “상관없네.”

    라트의 말에 피츠로이 백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라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날 셀룬에서 대포를 실은 배 열 척을 보냈다는 연락이 왔다. 그 정도 대포가 준비된 것으로 보아 케이네가 굉장히 힘을 써준 것 같다고 생각한 라트는 속히 군단을 나눴다.

    미르차르드 후작, 루아타 공작, 브로켄 후작, 세르먼트 후작 그리고 피츠로이 백작과 라트 자신까지 합쳐 군단을 총 여섯 부대로 나누고 각자 어디를 담당해야하는지 까지 지시를 내린 후, 단주의 아들을 파르스로 보냈다.

    “저희 부대는 중앙 쪽에서 대기하면서 위급한 부대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통신구로 명령 및 전황을 보고받고 알려드릴 테니 지휘관 분들은 통신구를 항상 휴대하시길 바랍니다.”

    설명이 끝나고 각 부대가 흩어지자 라트의 앞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플레이어가 대규모 군대를 지휘합니다. 시점을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로 바꾸시겠습니까?]

    ‘어? 바꿀 수 있어? 바꿀 수 있으면 바꿔야지.’

    묘하게 현실성이 뛰어나면서 여기서는 게임답네. 설마 RTS 시점을 지원할 줄은 몰랐기에 라트의 입에 미소가 드리웠다.

    시점을 바꾸자 한 군단 당 한 화면, 총 6개의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RTS 시점으로 돌입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는 RTS로 시점을 변경할 일이 거의 없다. 고위 귀족의 자식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어느 누가 군대의 지휘권을 넘겨주겠는가.

    RTS 시점으로 게임을 하는 경우는 최소한 2차 메인 퀘스트가 끝나고 플레이어가 한 나라의 고위 귀족이 되던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나라를 세운 후 전쟁에 들어갔을 때다.

    ‘전쟁에서는 지휘에 관련된 기능이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런 전술에서는 이 시점이 편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판세를 바로바로 알 수 있고, 그에 맞춰서 다른 쪽에 즉각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이건 플레이어로써의 이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셀룬의 군단이 찢겨져 각자 맡은 바 성에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이주 정도였다. 그 사이에 함대 역시 미스트의 해안 근처에 도착했다.

    “미르차르드 후작님. 지금부터 전투 지휘에 들어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시점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아무리 멀리 떨어진 군대라고 해도 직접 지휘할 수 있다는 거다.

    라트의 명령에 맞춰 함선들이 해안가에 정렬되기 시작했고, 성벽 바깥에 있는 병사들 역시 전열을 갖춘다.

    [미스트 : 100%]

    [셀룬 군단 : 100%]

    동시에 상대방과 아군의 전력을 퍼센트로 표시한 창이 나타났다 미스트 쪽의 전력을 0%로 만들면 아군의 승리다. 모두를 전멸시킬 필요는 없고, 사기가 꺾여 도망치게끔 만들어도 된다.

    ‘전쟁은 아군의 멘탈을 얼마나 잘 보존하면서 적의 멘탈을 얼마나 갈아버리는지 싸움이나 다름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시야를 함선 쪽으로 옮겼다.

    ‘시야가 안 나와.’

    해안가에 있다고 하지만, 함선 쪽에서는 군대의 앞을 막고 있는 성벽은 보이지 않는다. 표적이 보이지 않으면 대포를 제대로 사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성벽 쪽에 불화살을 쏴서 연기를 일으키세요.”

    「예.」

    명령에 따라 시위에 불화살이 걸렸고 수백의 불화살이 성벽 쪽으로 날아간다. 적군의 아군의 사격에 대응해 화살을 쏘았으나.

    “방패병 벽을 세우고 앞으로. 미르차르드 후작님도 앞으로 가서 화살을 막아주세요.”

    「명을 따릅니다.」

    방패로 만들어진 벽과 미르차르드가 전면에 나서 화살을 막았기에 아군의 피해는 전무. 적군 역시 성벽에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실망할 이유가 없다. 피해를 바라고 불화살을 날린 게 아니니까.

    “전 함대, 지금 연기가 보이는 쪽으로 발포 계시.”

    불화살을 날린 이유는 연기가 나게끔 하기 위해서다. 연기를 이용해서 표적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으니까.

    “지상군은 신속히 적의 화살 범위 밖으로 물러난다.”

    표적의 위치를 알았으니 더 이상 지상군이 적군의 사정거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지. 지상군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시야를 돌리자 두 척의 배가 아군의 전함 쪽으로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방에 적함 발견. 맨 우측의 두 함대는 적함을 노린다.”

    이제 와서 아군의 함대를 견제하기 위해 배를 보내봐야 때는 늦었다.

    기껏 해봐야 배를 불태우기 위해 불화살을 날리는 게 고작인 배가 어떻게 대포를 장착한 함선을 이길 수 있겠는가.

    애당초 적과 아군의 함선은 사정거리부터가 다르다.

    포신에서 불이 뿜어진다. 쇠로 만들어진 포환이 성이 난 듯, 적의 함대와 성벽을 부수기 위해 내달린다.

    잠시 후 적의 함선과 성벽에 정확히 명중한 몇몇 포환이 폭발을 일으켰다.

    적의 함선이 불타 바다로 가라앉고 있는데 반해, 아직 성벽은 아군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부서지지 않았다.

    “재장전.”

    함선 측에 재장전 명령을 내린 라트는 시야를 바꿔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대포에 의해 폭발이 일어난 성벽 쪽에는 수많은 적군의 병사가 시체로 변모해있었다.

    [미스트 : 95%]

    [셀룬 군단 : 99%]

    ‘피해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성벽에 명중한 포탄이 몇 개 없어서일까. 확실히 대포는 아직 실험 중인 무기에 불과한지라 명중률이 엉망이었다. 그 극악의 명중률을 뚫고, 성벽에 명중한 포환이 몇 개 있다는 걸 대단하다고 생각해야지.

    「재장전 완료!」

    “함대를 두 개로 나눈다. 우측에 있는 다섯 함선은 적의 항구를 노려서 적함이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게 해라. 좌측에 있는 다섯 함선은 아까같이 성벽 쪽을 향해 발포한다.”

    명령에 따라 우측에 있는 함선이 적의 항구를 노리기 위해 방향을 꺾었고 좌측의 함대는 다시 한 번 성벽을 향해 대포를 쏘아붙였다.

    “명중.”

    [미스트 : 90%]

    쏘아진 20발의 포환 중 10개 정도가 성벽에 맞았고 순식간에 미스트의 전력이 5%나 줄었다.

    ‘성벽이 뚫리긴 했는데.’

    성벽 위에 있어도 안전을 챙길 수 없어, 오히려 위험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적들은 성벽 아래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대로 지상군에 돌격 명령을 내린다면 피해는 막심해지겠지.

    ‘조금 더 함포 사격으로 적 전력을 깎아 먹는 게 좋겠어.’

    판단이 끝나자, 라트는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성벽 위에 적 병사가 아직 많다. 지상군은 아직 돌격하지 말라. 전 함대, 우선 적 항구를 정리하고 그게 끝나는 대로 계속해서 성벽을 집중 포화하라.”

    명령을 끝내고 성벽 쪽을 주시한다. 포환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성벽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가 필시 있을 터.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저건가.’

    마법사로 보이는 무리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걸 발견하자, 라트는 눈을 빛냈다.

    화살이 먹히지 않으니 마법으로 아군에게 피해를 줄 생각인가. 그게 아니라면 대포를 막기 위해 방어 마법을 사용할 생각인가.

    “아군 마법사 부대 디스펠 마법 준비.”

    「디스펠 마법 준비!」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마법을 사용하려는 생각은 좋았으나, 안타깝게도 마법사의 숫자는 그쪽보다 이쪽이 더 많다.

    트렌세르노 군이 아닌 차리친 왕국이 그대로 전력을 보존했다고 해도 셀룬 쪽의 마법사가 훨씬 많은데 하물며 지금에 와서는 말이 필요 없다.

    「화염구 네 개가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보고 있다고.’

    시간이 지나 적의 마법이 쏘아졌다.

    디스펠 마법을 사용하면 간단히 무효화할 수 있겠지만, 라트는 고개를 저으며 적군의 마법사 무리를 바라보았다.

    꽤 오랜 시간동안 마법을 준비했는데 고작 파이어볼을 쓴다고?

    ‘저건 미끼야.’

    이쪽에서 디스펠 마법을 준비하는 걸 보고, 일부러 디스펠 마법을 낭비시키려고 간단한 마법을 사용한거다. 아마 진짜는 이 다음일 터.

    “미르차르드 님. 화염구를 베어주십시오.”

    「충.」

    라트의 명령에 미르차르드는 전방으로 달려가, 오러 블레이드가 깃든 칼로 날아오는 네 개의 화염구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찢어발겼다.

    「땅이 흔들립니다!」

    아군 부대 쪽을 확인하자 땅이 조금씩 흔들리고, 쪼개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스 퀘이크.’

    토속성 마법 중에서도 상당한 상급 마법이다. 노리고 있던 게 이거였나.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디스펠 마법을 사용해라.”

    노리고 있던 수는 실패다.

    디스펠 마법이 사용되자마자 땅의 울림이 곧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수의 포환이 성벽 위로 쏟아져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적 마법사 무리가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에 아군 전함이 적의 항구를 정리한 후 성벽에 화력을 집중한 결과였다.

    ‘성벽은 이걸로 확실하게 뚫었고.’

    포환 세례에 무너진 성벽 아래에 그 몸뚱이를 눕혔는지, 조금 전까지 위풍당당하게 서있던 마법사 무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스트 : 83%]

    마법사는 전장에서 귀중한 전력 중 하나다. 그 전력이 사라졌기에 미스트의 전력 퍼센티이지가 확 깎여나가고 말았다.

    “아직 돌격하지마라. 이대로 한 차례 더 함포 지원이다.”

    한 차례 더 함포가 포화된다면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정리가 될 거다.

    문제는 아직 시야가 보이지 않는 성벽 안이다.

    트렌세르노 군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이 혹시나 미스트에 있다면 꽤나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기사단이 있다면 브로큰 애로우를 쓸 각오도 해야 될 거 같은데.’

    브로큰 애로우,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현 지형에 무차별 폭격을 해야 할 때 쓰이는 용어다.

    좋아하지 않는 전법이기는 하지만, 적은 희생으로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임에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전군 돌격. 성벽 안으로 들어간다.”

    다음 한 차례 포격이 일어나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이 대부분 내려가거나, 폭발에 의해 죽었음을 확인하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맞춰 미르차르드를 필두로 아군 군대가 미스트의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동시에 가려졌던 전장의 시야가 밝아졌다.

    ‘기사단이 없어?’

    밝아진 전장을 살펴보았으나 기사단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스트로 기사단을 보내지는 않은 건가.

    ‘하긴 기동전을 사용하고 첫 번째 공략 대상이 될 곳이 미스트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함포로 성벽을 뚫고 들어간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됐어.’

    이걸로 미스트는 뚫렸다고 봐야한다.

    “지휘권을 넘기겠습니다, 미르차르드 후작님. 신속하게 미스트르 점령해주세요.”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성벽 안쪽에 적의 주력 군단이 없는 것을 확인한 라트는 미르차르드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다른 전장을 살펴보았으나, 딱히 문제가 있는 곳은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