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96화 (19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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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포환 한두 개를 막을 수는 있었겠지만, 검을 사용하는 오러 마스터가 무수한 포환을 전부 막지는 못했을 거다.

    “그러나.”

    “그러나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핏빛 그림자 쪽 암살자들은 전부 죽었습니까?”

    라트의 물음에 세르먼트 후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답지 않게 너무 앞에 있었네. 거기에 강철갑옷을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 뒤의 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벌어진 참극에 침묵을 지킨다.

    “우선 단주의 아들을 파르스로 보내야겠습니다. 여기 남아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거 같으니까요.”

    라트의 말대로 단주의 아들이 여기 남아 있어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이틀 전에 파르스에 자네의 손님이 도착했다고 들었네. 그 쪽으로 보내주면 되나?”

    단주의 부인과 겔로그는 벌써 도착한 건가.

    “예.”

    그렇다면 다행이다. 현재 소년의 심리 상태는 엉망진창이니 어머니 곁에서 치유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손님들은 이 일을 알고 계십니까?”

    “알리라고 말해놨네.”

    문제는 단주의 부인인 레나 역시 이 소식을 들으면 충격을 받을 거라는 점인가.

    그렇지만 아들을 위해서 자신을 추스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니는 강하니까.

    “돈은 제가 부담할 테니 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챙겨주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하지.”

    공작의 긍정을 끝으로 대화 주제가 마무리 되자 세르먼트 후작이 전장의 지도 쪽으로 다가갔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전쟁을 해나갈지 다 같이 고민해봅시다.”

    세르먼트 후작이 본군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라트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트렌세르노의 지략은 상상 이상.’

    지휘관 관련 기능에 모든 걸 투자한 NPC의 위력을 깨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거기까지 계산을 내릴 줄이야.

    ‘우선 한 전장에서 싸우는 건 피해야해.’

    지휘관 기능 중 카리스마는 물론이오, 휘하의 병사에게 버프를 줄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면 이쪽이 불리해.

    ‘흔들어볼까.’

    전투가 한 곳에서 이뤄지는 것을 피하려면 군단을 쪼개고 쪼개서 기동전을 펼쳐 트렌세르노를 흔들 수밖에 없다.

    ‘흔들어서 셀룬군이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게 베스트.’

    그렇지만 트렌세르노가 과연 흔들기에 당해줄까. 그 정도 지략이라면 기동전도 충분히 무마할 수 있을 터다.

    ‘변수가 필요해.’

    정예병을 상당 수 잃은 셀룬군이 트렌세르노군을 이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변수였다.

    사실 기동전을 무마하는 건 이론 상 정말 간단하다. 기동전은 어느 한 쪽을 유린하고 다른 곳으로 재빨리 이동해 적을 당황케 만드는 거다.

    다시 말해 어느 한 곳도 뚫리지 않는다면 기동전은 설립되지 않아.

    “프로타 평야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르차르드 후작의 의견에 몇몇 귀족들이 괜찮은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히 미르차르드의 의견도 이론 상 괜찮았다. 프로타 평야, 옛 차리친의 영토 중 가장 큰 평야로 차리친에서 생산하는 식량의 약 40%가 이곳에서 나온다.

    ‘프로타 평야를 점령하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 수 있다면 확실히 편하기는 하겠지만.’

    식량 생산지는 점령할 수 있다면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었을 때 유리해진다. 그렇지만 현재 프로타 평야에서 정면 승부를 벌인다면 완벽히 패배한다.

    “그건 안 됩니다.”

    그래서 미르차르드의 의견에 반대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엔스리드 백작?”

    어째서 반대를 하는지, 그 이유를 물은 것은 피츠로이 백작이었다.

    “현재 정예군을 대부분 잃은 저희가 트렌세르노 군과 맞붙어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쪽에는 공작님은 물론이고 오러 마스터도 두 분이나 있는데도 이길 수 없다고?”

    “상대도 오러 마스터는 두 명이 있습니다.”

    우선 오러 마스터의 수는 동일하다. 일대일로 붙었을 경우 오러 마스터끼리의 승부는 한끝 차이다. 어느 쪽이 이길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오러 마스터는 전력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 맞다.

    그에 비해 확실히 루아타 공작은 이 전쟁에서 변수를 불러올 수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공작님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들겠지.’

    시간이 충분하다면 트렌세르노는 루아타 공작의 마법이 자신의 병사들에게 떨어지지 않을 지략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아크 메이지. 확실히 엄청난 실력을 가진 마법사다. 마법 몇 번에 전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법사의 힘으로 전쟁을 이길 수 있다면 어째서 병사가 필요하겠는가.

    당연하게도 마법사의 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오늘처럼 몬스터들이 아군을 휘저으려고 하면 루아타 공작님은 또 그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 오늘처럼 몬스터를 이용해 마법사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법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럼에도 전쟁터에서 마법사가 무시무시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단 몇 번의 마법으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요점은 이쪽에도 루아타 공작이라는 변수가 있는 것처럼, 적측에도 크룩스 프라시던스, 몬스터 테이머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다들 보셨다시피 트렌세르노의 전술, 전략적 능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트렌세르노를 언급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오늘 보여준 그의 능력은 정말이지, 적임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

    어디서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귀신 같이 아군의 주력 부대를 후방으로 빼두고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으니까.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장내의 침묵을 깨고 루아타 공작이 라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동전을 펼치는 게 가장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동전을?”

    “예. 병력을 쪼개서 사방에서 몰아쳐서 트렌세르노를 흔들면서 동시에 적의 전력을 깎아먹는 겁니다.”

    “트렌세르노가 기동전에 대처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병력을 쪼갠다고 치고, 두 곳 이상 전멸하면 이번 전쟁은 더 이상 가망이 없네.”

    브로켄 후작의 말대로 트렌세르노가 기동전에 휘말리지 않고 완벽히 대처한다면.

    더 앞서 기동전에 반격을 한다면 이쪽이 위험하기는 하다.

    “우선 한 곳을 뚫고 적의 전방 뒤쪽을 교란해서 보급을 차단하면 됩니다.”

    물론 거기까지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안조차도.

    “한 곳을 어떻게 뚫겠다는 소린가. 전군이 한 번에 움직이면 트렌세르노 군도 분명 움직일 걸세. 한 곳을 뚫는다고 해도 그 때 병력을 분산시키면 차례대로 잡아먹힐 수도 있어.”

    “옳으신 말씀입니다, 세르먼트 후작님. 전군을 이용해서 한 곳을 뚫은 후에 기동전을 펼치려고 하면 위험하겠죠.”

    “방법이 있다는 건가?”

    “기동전을 펼침과 동시에 저희는 미스트를 뚫을 겁니다.”

    미스트, 차리친의 전방에 있는 군사 항구 도시다.

    “미스트를?”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자네 지금 켈랑의 자랑거리였던 이루크 성의 성문을 혼자서 열었다고 기고만장 하나?!”

    병력을 나누면 조그마한 성을 뚫는 것도 힘든데 그 상태에서 군사 항구 도시인 미스트를 뚫겠다니,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기는 하다.

    그들의 전술 지식으로는 말이야.

    “자네가 직접 미스트로 가려는 건가?”

    “아니요. 만약 이 작전이 채택된다면 미스트로 가는 건 미르차르드 후작님이 될 것입니다. 저는 작전 지시를 위해 중앙을 맡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미스트를 어떻게 뚫겠다는 거지?”

    “대포를 이용하면 됩니다.”

    라트의 대답에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포가 기동전에 어울리지 않음을 자네가 가장 알고 있을 텐데?”

    빠른 속도를 중요시 여기는 기동전에서 이동 속도가 느린 대포나 투석기는 가장 경시되는 무기다. 투석기야 전장에서 재료를 조달하여 조립할 수 있다지만, 대포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들 기동전을 펼치면서 미스트를 뚫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거겠지.’

    루아타 공작의 말대로 그 사실은 라트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병사들이 대포를 끌고 갈 때의 이야기고.

    “병사들이 대포를 끌고 갈 필요가 있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배에 대포를 실어서 미스트의 해안가에서 포격을 하면 됩니다.”

    “아!”

    라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몇몇 귀족들이 감탄을 내뱉으며 라트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 방법이면 되겠군요.”

    대포는 무겁다. 그러니 병사들이 가지고 다닐 수가 없어. 그렇지만 배는 아니야.

    화물의 무게에 의해 속도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사람보다는 적다.

    “그래서 미스트로군.”

    “그렇습니다.”

    바다에 근접한 도시여야 함포 지원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미스트를 뚫어 후방을 교란해 전방의 보급을 끊을 생각이었다.

    ‘보급을 끊는다고 해도 당분간은 포탈을 이용해 보급을 받겠지만.’

    포탈을 이용해 수많은 물건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포탈을 관리하는 마법사의 마력이 빠져나간다.

    마법사의 마력은 무한한 게 아니야. 그렇기에 포탈을 이용해 보급을 받는 건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엔스리드 백작의 의견에 찬성하다. 그대들은 어떤가.”

    “찬성합니다.”

    “정말이지 기똥찬 작전입니다.”

    모두가 놀라움과 감탄의 시선을 보내며 작전에 찬성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함포 지원은 아직 대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이 시대에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전술이니까.

    ‘최소 몇 십 년을 앞서간 전술이야.’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라트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은 먹힌다.

    이번 작전조차 먹히지 않는다면 트렌세르노는 시대를 앞서간, 수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럼 기동전 동안에는 엔스리드 백작이 임시로 군단의 지휘를 맡기로 한다.”

    “본국에 연락을 해둬야겠군요.”

    “수고해주게 피츠로이 백작.”

    피츠로이 백작이 본군에 대포를 실은 배를 미스트로 보내달라고 전하기 위해 천막 밖으로 나갔다.

    ‘기동전으로 트렌세르노 군의 전력을 갉아먹어야 돼.’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아군의 보급이 끊겨 서서히 갉아 먹히는 꼴을 트렌세르노가 과연 두고 볼까?

    ‘구석에 물린 쥐가 가장 무서운 법이지.’

    다음 수에 다음 수까지 생각해놔야 한다.

    최소한 몇 수 이상을 생각해야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세부 사항을 짜기 위한 작전회의가 시작되기 전, 아직 피츠로이 백작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모두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라트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떨어진 별.”

    “예.”

    그리고 이곳에 남아있는 유일한 암살자를 불렀다.

    적의 암살자들은 더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으니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인벤토리에서 장신구를 꺼내든 라트는 떨어진 별에게 무어라 지시를 내렸고.

    “그렇게 하죠. 다른 명령은 있으십니까?”

    “일이 끝나는 대로 이쪽으로 돌아와. 기동전이 성공하면 적을 염탐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떨어진 별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라트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엔스리드 백작.”

    연락을 끝내고 온 것인지 마침 천막 쪽으로 온 피츠로이 백작이 라트에게 말을 걸어왔기에 걸음을 멈췄다.

    “훌륭한 작전이네. 만약 성공한다면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거야.”

    “별 거 아닙니다.”

    별 게 맞기는 하지만, 그냥 겸양을 떨었다.

    “겸손하기까지 하군.”

    “저에게 할 말이 있으십니까?”

    피츠로이 백작과 라트는 그다지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피츠로이 백작의 아들인 프레만이 라트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라트도 잘 알고 있다.

    프레만은 엘리를 짝사랑했다. 그리고 젊은이들 중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엘리의 연인이며 젊은 나이에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라트에게 질투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대화를 길게 해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흠흠. 아들놈의 무례는 내 대신 사과하도록 하겠네.”

    피츠로이 백작도 프레만이 라트를 적대시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도 곤욕을 치를 뻔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백작이 사과한다고 해도 프레만의 태도가 바뀔 리가 없다.

    최근 라트가 백작 작위를 가지면서 대놓고 적의를 보내지는 않게 됐지만, 그래도 은연 중 살기를 보이는 일이 자주 보였지.

    그렇지만 굳이 사과를 하고 있는 피츠로이 백작까지 꺼려할 이유는 없다.

    “백작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어린놈들의 치기어린 싸움이니까요. 그래도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조금 분위기가 풀어지자 피츠로이 백작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라트가 이제 천막으로 들어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 작품 후기 ============================

    연재 주기가 엉망이 되어 죄송합니다. 심지어 196화는 예전 내용을 복붙해놨었네요. 유산 분배 및 아버지의 빚 문제로 정신이 없는 몇 주 였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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