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95화 (19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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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뭐?’

뜬금없는 명령에 모든 적군이 복종하여 재빠르게 후방으로 물러났고 더 이상 트렌세르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아.”

뒤이어 조금 전부터 등을 오싹하게 만들던 살기까지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성벽 쪽을 바라본다.

모든 적이 후퇴 중이기에 셀룬군이 자연스럽게 성벽을 점령해 나가는 중이다.

‘갑자기 성벽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별 피해는 없겠지.’

성벽이 무너질 일은 없다. 혹시나 트렌세르노가 투석기로 성벽을 노린다고 해도 루아타 공작이 해결해줄 수 있을 테니까.

아쉬운 점은 단 하나. 적의 주력 병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이 빠져있었다는 점뿐이다.

‘전력은 확실히 살려놓겠다는 건가.’

빈틈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수상하다고 여겼을까.

“백작님. 이제 저 좀 내려놓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불편했나보구나.”

생각이 끊겼으나,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소년을 땅에 내려주고는 걸어가려는 그 찰나의 순간.

「터트려라.」

분명 끊겼을 트렌세르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터트려? 뭘?’

무엇을 터트린다는 뜻인가. 연금술사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저 성벽을 폭파시킬 수 있는 양의 폭약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고민은 길었으나 짧았다. 혹시나 모를 폭발에 소년을 품에 안고 주택가로 몸을 숨겼다.

귓가에 무언가 터진 소리가 들려오자, 라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져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올 법도 했지만, 병사들의 고통 어린 신음 소리만이 귀를 훑고 지나간다.

“섬광, 탄?”

밝은 대낮임에도 눈이 마비될 정도로 강렬한 빛이 벽 사이로 스며들자 라트의 눈가에 잔잔한 떨림이 일었다.

섬광탄, 단순히 상대의 눈을 멀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폭탄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상력은 없어.

문제는 최후방에 있는 몬스터들이다. 주로 땅속에서 생활하는 몬스터들은 빛에 환장한다. 빛을 보는 순간 모든 주의가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최후방에 있는 몬스터들은 그레이트 웜으로 이루어져 있다.

“젠장. 눈 감아!”

재빠르게 소년을 껴안고 로브로 눈을 가리고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런트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후방은 굉장히 중요하다.

전투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전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 의무병부터 식량과 장비까지 전부 후방에 있으니까.

“무슨 빛이야. 으 눈 아파.”

“우리가 쫓아오지 못하게 던졌나보지. 어? 지진인가?”

“아까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었어? 또 이러네.”

“저, 저기 뭔가 온다!”

태연하던 병사들 중에 성벽 위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흙먼지를 본 병사가 큰소리로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후방으로 쏠린다.

“모, 몬스터다! 그레이트 웜이야!”

빛에 어그로가 끌려 성벽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고 있는 그레이트 웜 무리. 그것은 일반 병사들에게 있어 공포 그 자체였다.

“빨리, 빨리 내려가!”

“이 새끼야 그렇게 굼뜨게 갈 거면 비켜!”

‘늦어.’

현재 속도로는 그레이트 웜이 후방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쪽에 도착할 수 없다.

이대로 놔둔다면 그레이트 웜이 후방을 유린하게 되리라. 그러나 저 하늘 위에 그것을 거부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전율하라, 대기여. 그래비티 필드.”

허공에 떠올라, 막대한 마력을 내뿜으며 창극을 널리 알리는 자의 이름은 루아타 공작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이 막대한 압력 아래 찌부러진다. 나무도, 바위도, 흙도. 그리고 셀룬군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던 몬스터마저도.

“살았다!”

“전원 빨리 성벽 쪽으로 대피한다.”

공작의 마법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후방에 있던 병사들이 열린 성문을 통해 성 안으로 피신한다.

‘안 돼.’

병사들이 성벽 쪽으로 몰리는 모습을 보고 라트는 침을 삼키고 뒤를 바라보았다.

전군이 후퇴하고는 있지만, 아직 투석기 부대는 뒤로 돌아서지 않았어.

그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투석기에 포환이 올라간다. 병사들이 혼비백산 성벽에 몰려있는 틈을 타서 저것을 쏘려는 생각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를 막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만연하라.”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인 루아타 공작은 그레이트 웜을 처리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내가 해야 된다.

뿌리를 감싸고 기어올라 대지가 휘몰아쳐 거대한 벽을 만들어 성벽에 포환이 닿지 않게 막아 세웠다.

이 정도면 적어도 포환이 성벽에 적중돼 성벽이 무너지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발사.」

다시는 들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청각을 간질인다. 눈앞에 벽이 생겼음에도 트렌세르노는 거침없이 발사 명령을 내렸다.

‘노리고 있던 건 성벽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트렌세르노는 어디를 노리는 건가. 의문은 빨랐지만, 그 의문에 답을 내리는 것보다 상황이 더욱 빨리 일어났다.

“어?”

무색의 연금술로 만든 벽을 넘어 성벽 바로 아래에 포환이 내리꽂혔다.

당연하지만, 라트가 만든 벽 때문에 포환은 성벽에는 절대로 닿지 못한다.

이럴 거라면 어째서 발사 명령을 내린 거지? 그냥 이미 장전했으니 발사하라고 한 건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 찰나의 순간, 성벽 바로 아래로 떨어진 포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조그마한 폭발, 성벽을 무너트리기는커녕 집 한 채 무너트릴 수 있을까 싶은 조그마한 폭발.

그리고 폭발이 일어난 포환에서부터 수많은 쇠구슬이 튀어나와 주변을 범했고 수많은 병사들이 쇠구슬의 폭풍에 휩쓸려 고깃덩어리로 변모하는 모습에.

‘이게 노림수였나.’

라트는 입술을 악물었다.

순식간에 셀룬군의 전방에 있던 주력 병사들의 수가 반이나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별 피해가 없었는데 이 한 방으로 이야기가 달라졌다.

‘크레모아.’

어떤 자가 저런 포환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것은 분명 지구의 크레모아와 매우 흡사한 병기다.

‘처음부터 성벽을 무너트릴 생각은 없었던 거냐.’

성벽을 무너트리지 않고, 성벽 아래에 있는 셀룬군의 선봉에 서있는 병사들을 처리하는 게 트렌세르노의 생각이었다.

루아타 공작의 손이 비어있었다면 저 포환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참상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아타 공작이 그레이트 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걸 노린 건가?’

성은 점령했지만 트렌세르노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리 주력 부대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을 빼놓았으니까.

라트는 저도 모르게 적에게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변수를 생각하고 작전을 실행했다면 어찌 경이롭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비겼어.”

인질을 빼돌려 암살자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성을 점령했다. 유리한 카드를 이쪽에서 모두 가져왔으니 필시 이쪽의 승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무승부. 유리한 카드를 전부 가져왔음에도 군단의 피해를 보자면 무승부라고 봐야한다.

‘빌어먹을.’

“전군, 빨리 부상자를 구한다! 의무병 어서 움직여라!”

명령 아래 모든 병사가 일사분란하게 부상자를 찾아 움직이지만, 즐비해있는 것은 오로지 시체 뿐. 살아있는 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참상이 벌어진 곳으로 걸어가자, 라트의 옆에 있던 소년의 목걸이에 차츰 빛이 생겨난다.

“미치겠군.”

그것을 본 라트는 입술을 깨물며 앞을 바라보았다. 쇠구슬로 인해 얼굴이 엉망이 되어 누군지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암살자들이 입는 로브를 입고 있는 시체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조그마한 단검 하나가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 아니야. 아닐 거야.”

소년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부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암살자가 어째서 전방에 있었는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기에 라트는 지그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들을 빨리 보기 위해서 후방에 있지 않고 암살자들을 이끌고 나선 것이겠지.

그리고 이 꼴이다.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던 부자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으아아아아! 아버지, 아버지!”

“후우.”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암살자에게 다가가 주저앉아 슬픔에 겨워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리자 라트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빌어먹을.”

‘얌전히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

입맛이 쓰다. 암살자 길드 하나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용하지 못하게 돼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자신이 주도했던 부자 상봉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에 입맛이 썼다.

「배신자에게 죽음을.」

조용히,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아주 조용히 귓가에 들려온다.

‘배신자?’

누가 배신자인가. 인질을 잡고, 독을 먹여 이용하려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닌 너였다. 부탁이 아닌 협박으로 암살자를 이용한 것은 다름 아닌 트렌세르노였다.

대가를 치루지 않고 남을 이용하려고 한 주제에 누가 배신자인가. 누구를 배신자라고 칭하는가.

울부짖는 소년을 바라보던 라트는 담배를 입에서 떨어트리고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에! 당신이 나를 구하는 바람에!”

투지도 살기도 없는 순수한 원망이 오롯이 라트에게로 쏘아진다. 그 원망을 정면으로 받는다.

“날 구하지 않았으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뒀으면, 아버지는!”

주저앉아 소년의 머리를 매만진다.

“그래 나 때문일지도 모르지.”

독에 중독당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트렌세르노의 말을 따랐다면 암살자들은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목숨은 연명했을지도 몰라.

“그래 당신, 당신 때문이라고!”

소년이 라트의 손길을 쳐냈다. 그 얼굴에는 원망과 슬픔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래 나 때문이다.”

소년도 알고 있다. 이들의 죽음이 라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이런 반응을 하는 까닭은 그 분노가, 슬픔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신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반드시 복수해주마.”

그렇기에 맹세했다. 복수해주겠노라고. 그 말을 들은 소년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니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확고한 목소리,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하자 소년은 떨리는 입술을 악물며 입을 열었다.

“피에는 피를.”

“복수에는 복수를.”

암살자 고유의 맹세에 소년이 더욱 거세게 눈물을 흘렸다.

***

상황이 정리되자 빠르게 군사 회의가 열렸다. 모든 귀족들이 라트의 귀환을 축하해주었으나, 그 이후는 참담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본군의 피해는 어떻게 됩니까.”

“선두에 있던 병사 2천 명 중 살아남은 이는 800명. 그 중 중상자는 600명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죽은 건가.’

피해가 생각보다 녹녹치 않았다. 선두에 선 병사들은 대부분 정예병이다. 그만큼 좋은 장비를 입고 있었고, 실력도 뛰어난 베테랑들이었다.

그런 병사들을 잃었으니 작금 이 분위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시니아 성을 점령했고 트렌세르노 군에 약간 피해를 입혔지만, 적의 주력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시니아 성과 병력 일부를 주고, 셀룬군의 정예 부대에 피해를 입혔다.

결과적으로 보면 무승부라고 봐야겠지만, 향후 전쟁이 어떻게 될 지까지 고려한다면 확실히 이쪽의 패배다.

“내 실수로군. 나서지 말아야했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루아타 공작이 통한의 침음을 삼켰다. 확실히 그의 말도 옳았다.

만약 공작이 후방의 그레이트 웜을 맞지 않았더라면 전방에 쏘아졌던 포환을 막을 수 있었겠지.

그러나 이 중 그 누구도 루아타 공작의 말에 찬성하는 이는 없다.

그레이트 웜이 후방에서 난동을 부렸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거다.

“공작님보단 저희의 실수가 더욱 큽니다. 전방을 보고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브로켄 후작과 미르차르드 후작의 표정 역시 참담했다. 더욱이 이 둘은 전방에 있었으니 더욱 죄책감이 크겠지.

“활을 사용하는 오러 마스터라면 모를까, 두 후작님이 어떻게 하실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라트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죄책감을 지울 요량으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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