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94화 (19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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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만연하라.”

하이데른이 접근하기도 전, 재빨리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여 무너지고 있는 천장을 이용해 거대한 벽을 만들고, 생명의 연금술로 미스릴을 덧씌운다.

평범한 인간만으로 이뤄져있다면 군대가 오더라도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벽. 그러나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는 아주 잠깐 밖에 버티지 못할 벽이다.

그 잠깐이면 충분했지만.

“백작님!”

문을 열고 들어서,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트를 바라본다.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라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

“으악!”

“꽉 안아.”

그러나 지금 당장 그 의문을 풀어줄 시간은 없다. 아주 잠깐, 그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서 벗어난다.

“만연하라.”

“감히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색의 연금술로 벽을 여는 순간 하이데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벽을 벌써 베었다고?’

정말이지 징그러울 정도로 강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승부는 이쪽의 승리야.

“다음에 보자고.”

“어딜!”

이쪽으로 달려드는 하이데른을 염동력으로 막아 세우고 소년을 굳게 안아든 채 재빨리 벽으로 달려간다.

“아, 맞다. 발밑을 조심하라고.”

탑 밖으로 벗어나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시원한 공기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느껴지는 건 거대한 울림.

-콰아아아아아!

부지불식간에 거대한 웜이 아가리를 벌린 채 탑을 통째로 삼키며 지상으로 기어 올라와 격변을 이뤘다.

밖으로 나오자 펼쳐진 광경에 살며시 입을 벌렸다. 수많은 병사들이 충돌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마법이나 포탄에 의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은 원초적인 전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돌린다. 거대한 웜의 출현으로 붕괴되어가고 있는 성을 바라본다. 저 정도 크기의 웜을 준비해놨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지만.’

하이데른은 분명 죽지 않았겠지. 아마 조금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웜의 배를 가르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전투를 이쪽이 유리하게끔 만들어야한다.

‘트렌세르노는.’

적군을 통솔하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는 트렌세르노가 아니었다. 분명 모든 병사를 지휘해야할 자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기사단도 보이지 않아.’

트렌세르노군의 핵심 병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조차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백작님!”

그 외침에 소년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년이 가리킨 곳은 적의 최후방.

그곳에는 휘황찬란한 은색 갑주를 입고, 거대한 대검을 뽑아든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기사들을 미리 후방으로 빼놨다고?’

이미 낌새를 느꼈다 이 말인가. 셀룬 쪽의 병사들을 바라본다. 지금은 비등비등, 아니 오히려 셀룬 쪽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문도 거의 다 파괴되었고, 성벽 위로 올라온 병사들도 많다.

그러나 저들이 성벽을 넘어선 순간에 기사들의 돌격을 감행한다면.

“후우.”

담배를 태우며, 순식간에 상황을 계산한다.

전방에 선 병사들이 전멸한다. 이것이 계산의 결과였다.

‘어떻게 한다.’

슬며시 셀룬의 군단을 둘러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루아타 공작과, 미르차르드 그리고 브로켄 후작이다.

세 명의 활약 덕분에 트렌세르노군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다.

트렌세르노군 쪽의 마법사들이 적의 마법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기는 하나, 루아타 공작이 홀로 적의 마법을 모조리 디스펠 해버린다.

두 명의 오러 마스터는 적의 반항을 압살해버린다.

‘그렇지만.’

문제는 저쪽도 오러 마스터가 두 명이라는 거지. 그리고 트렌세르노의 지휘에 의해 기사들의 스탯과 사기에 보너스가 붙을 거다.

‘물러설 수는 없어.’

조금 전까지 셀룬의 진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수많은 웜들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양새가 펼쳐지자 라트는 눈을 일그러트렸다.

“네 이 노오오오옴!!”

하이데른이 그레이트 웜의 배를 가르고 나오면서 내지르는 고함이 전장에 울려 퍼지자, 마치 사자 앞에 선 온순한 초식 동물마냥, 그 누구도 움직이지 한 채.

그렇게 일순간 시간이 멈췄다.

“어딜 도망가느냐! 당장 이리 오지 못할까!”

광란으로 점철된 포효과 귀를 찌르고 뇌리에 박힌다. 소년의 몸이 격렬하게 떨려온다. 무서운 건가, 라트는 소년을 꽉 안아주었다.

“내려간다.”

이대로 공중에 떠있다가는 검기에 노려질 수도 있고, 슬슬 염동력 사용을 아껴야한다는 생각에 라트는 그대로 지상으로 착지했다.

「저 자를 잡겠습니다. 현재 후방에 있는 병사들은 전원 태세를 갖추세요. 제가 직접 지휘합니다.」

명령에 의해 시간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진형을 갖춘다.

이 목소리는 이건 하이데른의 목소리가 아니야. 그렇다면 누구의 목소리일까.

‘어디 있는 거지?’

분명 트렌세르노의 목소리였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기에 이렇게도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걸까.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마법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러세요, 백작님?”

라트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소년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조금 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마냥.

“방금 그 목소리를 못 들었니?”

라트의 물음에 소년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다시금 몸을 떤다.

“천둥 같았던 그 고함 말씀이세요?”

“아니, 그 다음에 들린 목소리.”

“함성 소리를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요?”

‘나만 들렸다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트렌세르노의 명령에 의해 적들이 진형을 갖추기 시작하지 않았나.

「제 1 백인장, 오른쪽으로. 이어서 제 2 백인장, 우측의 잡화점으로 가세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철두철미한 지휘 아래, 수많은 병사들이 라트와 소년을 에워싸기 시작하자 라트는 잠시 이마를 짚었다.

‘지휘 관련 스킬 같은데.’

지휘관 스킬 중 아군에게 명령을 하달할 수 있는 스킬은 몇 가지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어째서 라트에게까지 명령이 들리느냐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가능성이 있지.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과시하기 위해서, 혹은 라트와 체스를 두듯, 수 싸움을 해보려고 하는 걸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렇게 유쾌한 상황은 아니라는 거지.

“얕보이고 있다는 건가.”

“네?”

“그냥 혼잣말이야.”

어처구니없는 경우지만, 얕보이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신의 지휘가 들리게 할 리가 없다.

“좋아, 해보자고.”

혼자라면 이 정도 포위 따위 그냥 지나갈 수 있겠지만, 이쪽도 소년 한 명을 안전히 데려가야 하는 패널티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공평한 승부가 아닌가.

「제 15, 16 백인장, 빈민가를 통해 뒤로 돌아갑니다.」

‘지금!’

병사를 뒤로 돌린다. 상대를 옭아매기에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돌파해야 하는 경우라면 또 다른 이야기다.

병력을 분산하면 그만큼 틈이 많아지니까.

“안 떨어지게 꽉 붙잡고 있어.”

소년을 한쪽 팔로 껴안는다. 소년 역시 라트의 로브를 꽉 붙잡는다.

“만연하라.”

달려가면서 무색의 연금술로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낸다. 발판을 밟고 뛰어올라, 지붕 위로 안착한다.

그러자 라트를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후우.”

담배 연기로 폭발을 일으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다. 미처 처내지 못한 화살은 인벤토리에 있는 대검을 꺼내서 처리한다.

「어린 아이는 노리지 말고 엔스리드 백작만 노리세요.」

“하하.”

들려오는 명령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전쟁터에 어린애를 노리지 말라는 명령이라니.

그것이 민간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현재 라트가 안고 있는 소년은 방금 전까지 저들이 인질로 잡고 있던 인물이다.

이제 와서 어린 아이를 보호하려는 척 해봐야 위선일 뿐이야. 역겨울 뿐이다.

‘그리고. 어린애를 노리지 말라고 해도, 그게 쉽나.’

숙련된 궁수라고 해도 라트가 움직이고 있는 이상 소년을 제외하고 라트만 노리는 게 어려운데 병사들이 과연 그리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그러니까 그냥 해본 말이겠지. 본심은 화살에 의해 소년이 죽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게 분명하다.

“젠장.”

혼자였다면, 화살에 의해 발목이 잡힐 이유도 없다. 이딴 화살이 미스릴 갑옷을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이 소년은 다르다. 천옷만 입고 있는 이 아이는 화살 한 방만 적중 당해도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을 피하기 위해서 지붕 위로 올라왔음에도 생각보다 돌파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5, 6 투석기 부대. 투석기로 동쪽 대장간을 노립니다.」

성벽 밖에 있는 셀룬의 병사들을 노리고 있던 투석기 부대가 트렌세르노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대장간과 그 주변 건물들이 주저앉는다.

「15, 16 백인장. 현재 위치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전진하세요. 계속해서 나머지 부대는 엔스리드 백작의 우측만 집중 사격하세요.」

소년을 왼쪽에 껴안고 있으니, 오른쪽만 집중 사격하라는 건가.

‘쓸데없는 배려.’

왼쪽만 사격한다고 한들 소년이 화살에 맞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장에서 이런 배려는 아무런 쓸모도 없어.

우측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좌측으로 방향을 꺾어 달리기를 잠시, 라트는 당황하여 걸음을 멈췄다.

‘배려가 아니라, 몰이사냥 중이었나.’

대장간을 비롯한 앞의 모든 건물이 무너져있는 바람에 더 이상 지붕에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미리 자신의 퇴로를 차단해놓은 건가.

그리고.

‘병사를 뒤로 뺄 때는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에 빈민가로 빠졌던 병사들이 라트의 뒤를 노리고 있다.

‘그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병사를 뒤로 돌린 이유는 뒤를 노리려고 했던 게 아니라 라트를 포위할 생각이었던 거다.

‘포위야 별 거 아니긴 한데.’

시간만 있다면 이 정도 포위 단주의 아들이라는 짐이 있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을 지체하면 하이데른이 온다.

「포위망 구축 완료.」

“하아.”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주변을 살핀다. 모두가 이쪽을 향해 활시위를 걸고 있는 상황.

솔직히 말하자면 우습다. 이 정도로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 시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뚫고 지나갈 수 있다.

트렌세르노도 이 정도 병사들로 라트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눈앞의 병사들은 그저 시간벌이용이다.

하이데른이 여기에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 속셈.

훌륭하다, 어찌 부정할 수 있으리. 아군의 전력을 파악하고 최대한 시간을 벌 수 있게, 순식간에 포위망을 만들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이 포위망을 최적의 방법은 뭘까.

‘일단 인형은 무리고.’

왼쪽 팔이 자유롭지 않으니 인형을 사용할 수는 없다.

폭탄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다가 근방이 불에 타기 시작하면 아이를 안전하게 데려가는 게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역시.

라트는 차갑게 미소하며 대검을 지붕에 박아두고 인벤토리에서 주먹 크기의 구슬 꺼냈다.

“최대한 시선을 분산시켜.”

명령을 내리고 구슬을 바닥에 던지자 삽시간에 주변의 지형지물이 구슬에 뭉쳐, 거대한 골렘이 지상에 강림했다.

‘아깝긴 하지만.’

이 코어형 골렘은 아마도 포기해야겠지.

케이네와 함께 만든 코어형 골렘을 벌써부터 소비품 취급하는 건 아깝긴 했지만.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살기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니 어쩔 수 없다.

“고, 골렘?”

“미친 이런 게 갑자기 어디서!”

「전군 침착하게 골렘의 중앙에 있는 구슬에 화살을 쏘세요. 투석기 부대는 신속히 골렘을 노립니다.」

확실히 지휘관과 관련된 기능이 있어서 일까.

평상시라면 갑작스러운 골렘의 출현에 혼비백산 했을 병사들이 트렌세르노의 지휘에 절도 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래서야 골렘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지만 당초의 목적은 이미 완수됐어.

대검을 뽑아들고 지상으로 내려와 달린다. 골렘은 처음부터 시선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던진 미끼에 불과했다.

“적이 도망치려고 한다, 막아라!”

“누가 누구를 막겠다고?”

자신을 가로막은 병사를 향해 대검을 휘두른다.

한손으로 대검을 쥐고 있음에도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 있는 공격에 진로를 가로막은 병사를 갑옷 째로 양단돼, 비명조차 없이 허무하게 피보라가 일어났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달린다.

“너 이 자식!”

눈앞에서 부하가 죽은 장면을 보자 병사들에 비해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이가 라트의 앞을 막아섰다.

‘백인장인가?’

감상평은 그것뿐이었다.

오러 익스퍼드라고 해도 라트와 검을 마주하는 것이 고작인데, 일국의 백인장이 어떻게 라트를 막을 수 있을까.

대검이 묵색의 선을 그려 내리자, 그것을 받아낸 백인장은 상당한 거리까지 밀려나갔다.

“무, 무슨 힘이…….”

단 일격을 받아냈을 뿐인데 백인장은 자신의 팔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것을 깨닫고 입을 벌렸다.

“자, 잠깐.”

백인장은 자신의 눈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자 고개를 들어 떨리는 입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부정하려고 했으나.

“전쟁에 잠깐이 어디 있냐.”

전쟁에는 잠깐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리가 없지. 그대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백인장의 목을 친 라트는 순식간에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이대로 따돌린다.’

이대로 따돌리기만 하면 셀룬군에 합류할 수 있다. 적이 계속해서 자신을 추적하겠지만, 하이데른이 여기까지 오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군 성벽을 버리고 후방으로 후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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