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91화 (191/229)
  • 0191 / 0229 ----------------------------------------------

    1부

    ‘맨 아래 쪽으로 내려가서.’

    탑 바깥 쪽, 특히나 성에서 탑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은 경비가 삼엄했다. 특히나 오늘은 더 그래.

    ‘트렌세르노가 무언가 낌새를 느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경비 병력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납득이 됐다. 그렇지만 저들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내부로 침입할 수 있는 이가 있음을 생각지 않았다는 거.

    “따라와라.”

    계단을 타고 탑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유심히 출구 쪽을 살핀다.

    ‘출구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면 굉장히 당혹스러웠겠지만, 누구도 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니 감사할 따름이지.

    “어디까지 내려가시는 거에요?”

    “맨 아래까지.”

    출구가 있는 쪽을 넘어, 더 깊은 곳까지. 탑의 맨 아래층까지 내려왔다.

    “여기서는 나갈 곳이 없는데요?”

    “당연히 나갈 곳이 없는 곳에서 나가야지. 떡하니 출구가 있는 곳에서 나가면 들킬 거 아니야.”

    “그, 그럼 몰래 빠져나가는 건가요?”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주의 아들은 약간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탈출시켜주겠다는데 왜 이런 표정이야.

    “제가 여기서 몰래 나가면 사람들이 위험해져요.”

    “독 때문에? 그건 괜찮아. 내가 해독제를 만들었으니까.”

    “독 때문이 아니에요! 저는 물론이고, 아저씨도 위험해진다고요!”

    독 때문이 아니라고? 그리고 자기는 물론이오, 라트조차 위험해진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아저씨라고 것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보다 이쪽이 중요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러니까.”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당황해서인지 몸을 떠는 소년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준다. 그러자 조금 진정이 됐는지, 소년은 떨리는 몸을 끌어안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 아래 괴물들이 있어요.”

    “괴물?”

    “네.”

    라트는 슬며시 아래를 바라보았다. 탑 최하층에는 당연히 석재 바닥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아래는 성일거고.

    어디를 봐도 괴물이 있을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단주의 아들은 확신에 찬 말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며칠 전 두 남자가 제가 이곳에 잘 있는지, 확인을 하고 방에서 나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어요.”

    “두 남자? 혹시…….”

    라트가 트렌세르노와 크룩스의 생김새를 설명해주자, 단주의 아들은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렇게 생겼어요!”

    트렌세르노가 이곳에 온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괴물이라고 말하기에 혹시나 싶어서 크룩스의 생김새를 말했더니 역시나.

    ‘또 몬스터냐.’

    지난 전쟁에서 그 빌어먹을 고양이 수인이 괴물을 이용해 저지른 짓거리를 떠오르자, 라트의 얼굴이 벌레 먹은 것 마냥 구겨졌다.

    “어떤 괴물인지 들었어?”

    “모조리 전부 삼킬 수 있는 괴물이라고만 들었어요.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단주의 아들이 살짝 상의를 걷자, 그의 복부에 새겨진 복잡한 술식이 깃들어있는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술식을 새길 때 탑은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상관없지만, 탑에서 나가면 이 술식이 발동한다고 말했어요.”

    “술식이 발동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주든?”

    “아래에 있는 괴물들이 날뛸 거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한 마리는 저를 삼킬 거라고도.”

    ‘아래에 있는 괴물들이라……. 설마!’

    라트는 어젯밤 느꼈던 여진을 떠올렸다.

    사실 여진은 이곳에 있는 동안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그 때마다 그냥 지진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했었는데, 사실 그게 지진이 아니라 거대한 몬스터 움직여서 느껴지는 진동이었다면?

    ‘괴물들이 이 아래 있을 가능성은 적어.’

    흔들림을 생각해보자면, 땅 밑을 기어 다닐 수 있는 대형 몬스터가 아무리 적어도 50마리는 있었다는 소리다.

    크룩스가 뛰어난 몬스터 테이머라고 해도 그 정도 숫자를 테이밍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한정적인 조건을 이용해 때를 맞춰 몬스터를 폭주시키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그 한정적인 조건이 소년의 배에 새겨진 술식이라면?

    ‘그러고 보니 어젯밤 이상할 정도로 지진이 길었어.’

    집이 무너질 정도로 떨어질 정도로 큰 지진은 아니었지만, 지속적으로 땅이 흔들리기는 했었다.

    그게 괴물들이 움직이는 여파였다면 괴물들이 셀룬의 군단이 있는 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컸다.

    “지랄났네.”

    단주의 아들이 탑에서 벗어난다면 셀룬의 군단의 땅 아래 있을 괴물들이 폭주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방비를 해놨을 줄이야.’

    누구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임에도 훌륭하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단주의 아들은 셀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구해야할 존재다. 아들을 구하지 못하면 핏빛 그림자의 단주가 셀룬에 협력할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아들을 구하면 셀룬 쪽이 피해를 입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이지선다이지 않은가.

    ‘게다가 저 아이를 삼킬 몬스터는 따로 준비를 해놓으셨다?’

    정말이지, 골치 아픈 상황이다.

    “예?”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잠깐만, 생각 좀 할게. 담배 좀 피울 테니까, 저기로 가있어.”

    담뱃대에 불을 붙인 라트는 한껏 담배를 머금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심지어 괴물들이 폭주하기 시작한다면 트렌세르노는 단주의 아들이 탑에서 빠져나갔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염탐을 핑계 삼아 셀룬 쪽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암살자들의 발목도 묶이게 된다.

    ‘머리 좋네.’

    두 가지 카드를 손에 쥔 덕분에 거의 다 이겼다고 생각한 머리싸움에서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잘 이용했어.’

    해독제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변장을 통해 숨는 것까지 성공했음에도 인질이라는 카드 때문에 막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 되면.’

    라트는 슬며시 자신의 말에 따라 구석으로 가있는 소년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최고의 방법은 저 소년을 버리는 거다.

    그렇게 하면 당장 셀룬의 군단으로 가서 시니아 성을 공격하면 상대 쪽은 몬스터를 써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저 소년은 필시 죽고 말겠지.

    아들이 죽은 여파로 단주는 셀룬에 협력하는 걸 거부할 테고 말이야.

    단주가 셀룬에 협력하는 걸 거부하는 건 딱히 문제없는 일이다. 트렌세르노에게 협력하게 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어느 쪽에도 협력하지 않으면 이쪽이 더 유리하니까.

    ‘그렇지만.’

    전부 지킬 수는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신이 아닌 이상, 영웅이라고 할지라도 모두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입술을 씹는다. 전부 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소년을 버리자니 입 안이 비릿해지는 걸 지울 수가 없다.

    ‘물러졌어.’

    전부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라트는 노예상에게서 사람들을 구했다. 본인은 쓰레기를 처리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명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리오스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리오스를 보호할 수 있게 됨으로 엘리와 케이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단주의 아들을 포기한다면? 당장은 이득이겠지. 전쟁은 몰라도, 당장 전투에서는 이길 자신이 있어.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가. 그럴 자신이 있나? 적어도 엘리와 케이네 앞에서 나는 잘했다고,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순간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네와 엘리가 떠오르자 짜증이 일었다.

    ‘젠장.’

    누구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단지, 그 방법을 실행하는 건 굉장히 힘들 뿐이다.

    힘들다고? 언제 그런 걸 신경 쓴 적이 있던가?

    처음 이런 트롤 캐릭을 만들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음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진 엔딩을 보려고 하는 순간부터 고생은 정해져 있었다고.

    “올라가서 쉬고 있어.”

    “네!”

    라트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지, 소년은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계단을 오른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 염동력을 사용해 바깥으로 빠져나온 후 급히 암살자들이 머물고 있는 천막 쪽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파우논이 천막 안에 있었기 때문에 눈으로는 단주의 아들에 행방을 묻고 있었지만, 말로는 라트의 정체를 모르는 척 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일단 죽어.’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봐야하는 파우논의 얼굴을 보자 짜증이 치밀어 올라,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그의 목을 찍어버렸다.

    “컥.”

    신입 암살자가 자신을 기습할 것이라고 예상도 하지 못한 첩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렇게 절명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잘 들으세요.”

    파우논의 시체를 처리하지도 않고 라트가 짤막하게 현재 소년의 사정을 설명하자, 파우논이 살해당했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잘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암살자들이 당황하고 만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셀룬 쪽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세요.”

    “저희가 돌아오지 않으면 분명 트렌세르노가 의심을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제 아들의 안전은…….”

    단주가 뒷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 뒷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잘 알고 있다, 라트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제가 탑으로 가서 아드님을 지킬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셀룬의 군단으로 가서 진격을 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백작님의 안위가.”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나를 걱정할 시간에 본인들의 도련님부터 걱정해라.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탑 쪽으로 대포를 쏴주라고 말해주세요.”

    “탑 쪽으로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납득시킬 시간이 부족하다. 당장 원래대로라면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성문을 열 생각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라트가 성문을 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원칙대로 공성전이 일어나겠지. 공성전이 일어나는 타이밍에 맞춰, 대포가 탑을 흔든다면 그 때 소년을 데리고 탑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아래 있는 괴물, 아마도 그레이트 웜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입을 벌리고 소년을 삼키려고 들겠지만.

    ‘그건 내가 있으니까 상관없고.’

    만약 암살자들이 단주의 아들을 빼내려고 했다면 출입구 쪽에 있는 감시 병력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소란이 일어날 거고, 암살자들은 분명 급히 단주의 아들을 빼내려고 했을 거다. 단주의 아들이 그걸 거부하면서 자신의 사정을 말하면, 단체로 패닉 상태에 빠졌겠지.

    배신을 했다는 사실은 알려졌는데, 단주의 아들을 빼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단주의 아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그게 아마 트렌세르노가 노렸던 거겠지.

    ‘운이 좋았어.’

    그 노림수가 라트라는 변수가 끼어서, 박살이 났다. 그러나 라트 역시 단주의 아들을 빼돌릴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

    서로가 서로의 노림수를 파훼했다고 해도 좋은 상황이었다.

    “빨리 가세요. 전 탑 쪽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럼 저도 남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단주님이 성에서 나가야, 트렌세르노가 당분간은 의심을 안 할 겁니다. 고집 부리지 마시고 가십시오.”

    단주가 이곳에 남겠다고 하자, 라트는 표정을 구겼다. 아들을 지키려는 부성애는 좋다. 그러나 그 고집이 아들을 영영 죽게할 수도 있다는 걸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지만.”

    “하지만은 없습니다. 여기선 저를 믿으시고 제 말대로 해주십시오. 그게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돌아왔던 제 노고에 답해주는 겁니다.”

    라트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단주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다.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이 이 자리에 남는다면 어떤 파급이 나올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들을 홀로 남기고 도망쳐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슬프고, 우스워서 그래서 남으려고 했을 뿐이다.

    “부디, 제 아들을 부탁드립니다.”

    부탁하지 않아도 구해줄 생각이었다. 전부 구할 수 없지만, 떳떳해지기 위해서 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구하리라고 그렇게 마음 먹었으니까.

    라트가 굳은 표정으로 어서 가라고 재촉하자, 자리에 있던 단주를 포함한 지부장급 암살자들 모두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확인한 라트는 재빨리 탑으로 다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가야합니다. 토 일 월 화 수 감기 때문에 끙끙거리다가 오늘 병원가서 주사 한 방 맞고 약 먹었더니 몸이 좋아지고 있습니다....감기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미련하게 집에서 버티고 있던 어제의 제가 바보처럼 느껴집니다아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