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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떨어진 별과의 이야기를 끝낸 라트는 별 탈 없이 암살자 무리와 합류해서 시니아 성으로 복귀했다.
라트가 상처 하나 없이 합류 지점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기에 몇 명이 놀란 듯 했으나, 단주가 별 말을 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에게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시니아 성으로 돌아오자, 단주는 염탐으로 얻어온 정보를 트렌세르노에게 말하기 위해 급히 자리를 떠났다.
남은 암살자들 중 지부장급 암살자들 몇 명은 단주를 따라갔고, 몇 명은 암살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자리에 남았다.
‘적어도 지부장급은 되야 단주의 눈을 속일 수 있어.’
라트는 신입 암살자들 사이에 껴서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며 천막 밖에 있는 암살자들을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지부장급 암살자 정도는 되야, 첩자짓을 하더라도 단주를 속일 수 있다. 상급 암살자라고 해도 그 정도 수준은 되지 못한다.
‘지부장급 암살자는 총 10명.’
그 중 겔로그는 첩자가 아니고 이 자리에도 없다. 그렇다면 첩자로 의심되는 지부장급 암살자는 총 9명이 남는다. 그리고 이들 모두 독에 중독된 상태.
단도직입적으로 이 중 첩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건 라트의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암살자와 관련된 기능이 없기에, 관찰력과 직감 기능이 있으니 심증은 잡아낼 수 있어도 물증을 잡아낼 방법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7일 안에 첩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가 도와준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 라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주는 이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어. 그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다고 첩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쿤네로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니, 혹시나 만약에 그가 첩자일 경우 그의 손에서 놀아나게 될 수도 있다.
‘위험은 최소한으로 해야지.’
그렇다면 현재 누가 라트를 도와줄 수 있을까? 첩자를 밝혀내지 않고 일을 벌인다면, 그 첩자가 셀룬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을 벌이기 전에 반드시 첩자를 찾아야하는 상황. 그러나 도와줄 암살자가 없기에 첩자의 정체를 밝혀낼 수 없어 초조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라트의 얼굴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어이, 시간 차 폭발은 어떻게 일으킨거야?”
“그게 말이지…….”
일단은 동료 암살자라고 할 수 있는 이의 질문에 간단하고 원시적인 장치로 시간 차 폭발을 일으켰다고 능숙하게 거짓말을 할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단검과 나무조각을 꺼내들더니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장치를 대충 만들어서 보여준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과연 이런 장치면 가능하겠는데. 이런 걸 만들 시간이 있었어?”
“혹시 몰라서 여러 개 만들어놨지.”
“와우, 준비성이 철저하구만.”
거짓말이었지만, 이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라트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이런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상처 없이 합류 지점에 미리 도착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리 생각하면서 라트는 남몰래 천막 밖을 살폈다. 혹시나 자신을 바라보는 이가 있을까 싶어서다.
‘있네.’
적지에서 아무런 상처 없이 돌아왔다. 그것도 그 정도의 소란을 일으키고. 아무리 시간 차 폭발이 일어나게 미리 준비하고 도망쳤다지만, 같은 동료라면 모를까 첩자라면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수상하다고 바라보면, 바로 그 자가 첩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예상대로 라트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암살자가 있기는 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나.
‘이름이, 바스테드랑 헤르노던가?’
두 명 모두 지부장급 암살자로 단주를 따라가지 않고 남은 암살자들을 통솔하기 위해 자리에 남은 이들이었다.
‘흐음.’
첩자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른 길드라면 모를까, 이곳은 암살자 길드다. 첩자의 수가 많으면, 꼬리가 밟히기 마련이고 암살자들은 그 꼬리를 밟는데 프로였다.
‘아니면 둘 다 첩자가 아닐 수도 있고.’
신입이 실력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상하게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저쪽에서는 이쪽을 첩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머리 아파.’
입으로는 동료 암살자들과 떠들고 있지만, 머리는 복잡하다. 그럼에도 라트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동료 암살자들과 떠드는 사이 트렌세르노에게 셀룬의 정보를 전부 넘겼는지 단주가 돌아왔다.
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라트는 누구도 보지 못하게 쪽지를 적더니 단주의 옆에 누구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그를 스치고 걸어가면서 쪽지를 넘겨주었다.
워낙 자연스러웠기도 했고, 지부장급 암살자들이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지부장급 암살자들이 보고 있었다고 해도 단주의 실력이 있는지라 라트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그가 커버해주었을 거다.
“자, 이걸로 포석은 깔아놨고.”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람을 만끽하던 라트는 조용히 성벽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1일째,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2일째, 트렌세르노가 셀룬의 전력을 알았기에 방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떨어진 별의 존재 때문에 함부로 암살자들을 이용하지는 않는 중이다.
지나가는 말을 들어보니, 트렌세르노는 전쟁 중에 상대방의 주요 전력을 암살하기 위해 암살자의 전력을 아끼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첩자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단주는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았다.
3일째, 경화수월과 염동력을 이용해서 단주의 아들이 갇혀있는 탑을 살펴보았다. 생각과는 달리 단주의 아들은 탑은 갇혀있었고 상태가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식사는 제 때 지급해주고 있지만, 부모님이 걱정되기 때문인지 그는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단주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그는 입술이 피가 날 정도로 씹었다. 그럼에도 그는 당장 아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6일째 밤. 이제는 진짜 시간이 없음에도 라트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웠다.
“찾았습니다.”
귓가에 지금까지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리자, 라트는 여유롭던 표정을 버리고 눈을 날카롭게 만들며 담뱃대를 바닥에 버렸다.
“수고했어.”
“당연히 수고했죠. 5일 동안 정말 모든 기력을 다썼습니다. 돌아가면 3일은 쉬어야 할 겁니다. 정말이지, 이런 막무가내 부탁을 하실 줄이야. 이 정도면 거의 계약 위반 수준 노동이라고요.”
떨어진 별의 불평 아닌 불평에 라트는 쓰게 웃었다. 라트가 며칠 전 떨어진 별과 만났을 때 그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내 실력으로는 첩자를 찾을 수 없으니 네가 좀 찾아줘.’
첩자를 찾아달라는 거였다.
떨어진 별의 실력이라면 제한 시간 안에 첩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트렌세르노가 암살자를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계산 아래에 이런 방법을 쓸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거다. 아니 떨어진 별이었기에 부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죽은 브라일이 아닌 이상, 제아무리 단주급 암살자라고 해도 오러 마스터의 기척 감지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떨어진 별이 이 날까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첩자를 찾아 돌아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떨어진 별의 기척 감지 범위는 타에 추종을 불허하지.’
암살자 중에서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은 떨어진 별이 가장 월등하다. 아니 암살자가 아닌, 인간형 생명체 중에서 가장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생명체는 물론이오, 사물의 기척까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니까. 숨겨진 보물도 간단히 찾아내고 훔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뛰어난 기척 감지 능력으로 오러 마스터의 기척 감지 범위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벗어나는 것이 이번 임무의 핵심.
단주에게는 미리 떨어진 별이 이쪽으로 올 테니까, 기척이 느껴져도 티내지 말라고 쪽지로 전해두었다.
“그래서 첩자가 누구야?”
“파우논입니다. 혹시 짐작하셨습니까?”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지부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신경 쓰고 있지도 않았다.
역시 약은 약사에게 정보를 캐는 건 암살자에게 맞기라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증거는?”
“그가 트렌세르노에게 몰래 넘기기 위해 작성 중이던 보고서입니다. 최근 아슬렌의 동향이 모두 적혀있더군요.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한 증거다.
“첩자도 알아냈으면 이제 슬슬 내 정체를 밝혀도 되겠네. 수고했어, 돌아가서 쉬어.”
“돌입은 전에 말씀하셨대로 8일째 아침에 시작하면 됩니까?”
“그래. 아, 그리고 아슬렌의 부인이 곧 셀룬에 도착할 거야. 내 신분패를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대접에 소홀히 하지 않도록 연락해달라고 해줘.”
“그러지요.”
떨어진 별이 사라지자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급히 단주가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넌 그 신입이잖아? 무슨 일이냐.”
단주와 지부장급 암살자 몇 명이 회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라트의 난입에 모두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입 암살자가 회의 도중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 다만 유일하게 라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단주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마침 파우논은 없군.’
파우논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없는 지부장급 암살자는 3명이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단주님 파우논을 제외한 모든 지부장급 암살자를 모아주십시오.”
“파우논? 이게 지금 하극상을!”
신입 암살자 주제에 지부장급 암살자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는 그 행동에 쿤네로가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 단검을 뽑아들었지만.
“그만.”
그 행동은 단주의 말에 막혔다.
“모두 인사드려라. 이분은 전에 뵈었던 엔스리드 백작님이시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엔스리드 백작은 그 때 떠난 것이…….”
“엔스리드 백작님은 우리 중 첩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첩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신분을 숨기셨지.”
단주가 모든 사정을 설명하자, 지부장급 암살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자신이 첩자로 의심을 받았다는 건 억울했지만, 단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 이해는 한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독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트렌세르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개 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깨달은 암살자들의 얼굴에 환희가 맺혔다.
“파우논이 첩자였군요. 의심은 했었지만, 사실일 줄이야.”
그래도 단주는 단주인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첩자가 누구인지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던 건가.
“증거는 있으십니까?”
“파우논이 넘기려고 했던 보고서라고 합니다.”
떨어진 별이 줬던 종이를 넘기자, 단주는 물론이오, 지부장급 암살자들 역시 단주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기 위해 우루루 몰려갔다.
“확실히 파우논의 필적이군요.”
“그 새끼가 우리를 팔아먹을 줄이야.”
“지금 당장!”
흥분에 겨워 당장이라도 파우논을 죽이려고 드는 지부장도 있었지만, 라트는 그들을 만류했다.
“빨리 파우논을 제외한 다른 지부장급 암살자들을 불러와주십시오. 모레 아침, 셀룬이 공격을 시작할 겁니다. 저희는 그 때까지 어떻게 단주님의 아들을 구하고 탈출할지, 구상해야합니다.”
라트 혼자라면 여기서 도망치는 건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순간이동의 거리가 짧다지만, 성벽 정도는 넘을 수 있으니까. 단주 역시 성벽을 넘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러나 다른 암살자들을 아니었다. 데려가야할 암살자들 중에는 신입 암살자들도 있어. 게다가 단주의 아들은 암살자가 아니다.
‘생각해둔 작전을 가다듬어야 해.’
암살자들이 군말 없이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단주의 아들을 몰래 데려갈 수 있게도 해야 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에 숨어든 이유 중 하나인 도망치기 전에 분탕질을 쳐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파우논에게 들키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자를 아직 포박하거나 죽여도 안 돼요. 그렇게 하면 트렌세르노가 알아차릴 겁니다.”
“예,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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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이틀 정도 휴식을 가졌습니다...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