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88화 (18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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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폭탄을 사용하겠다고?”

    모두의 눈에 의문이 서린다.

    조용히 입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암살자라고 하지만, 폭탄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시선을 분산시켜야 할 때는 폭탄을 사용하는 게 제격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럴 때 폭탄을 사용하면 오히려 더 많은 시선이 끌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추격을 피할 수는 없을 텐데.

    “평범한 폭탄이 아니라 조금 시간이 지나서 터지는 폭탄을 여러 곳에 설치해놓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살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날지도 모르지만, 이 주변에 포위망이 형성될 거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우리도 위험해진다.”

    “그래서.”

    나무막대기를 집어든 라트는 선을 그어 이 자리를 양분하더니, 홀로 선 넘어로 훌쩍 넘어간다.

    “이 선 넘어로는 폭탄을 설치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폭탄을 설치하고 저는 도망칠 거고요. 이 정도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렇게 말해야 저들이 자신을 신뢰해줄 거다.

    아니 신뢰 이전에, 식구들이 희생당하는 걸 원치 않는 단주의 성격 상 도망쳐서 살아남겠다고 말해야 그가 이 작전을 허락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그렇게 해라.”

    단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좌중은 침묵에 휩싸였다. 쿤네로 역시 마땅히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입을 다문다.

    그러나 그 표정은 찝찝함만이 남아있었다. 겨우 신입 암살자에게 이런 위협을 감당하게 만들다니. 한 길드의 간부치고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폭탄 설치는 언제쯤 끝낼 수 있지?”

    “2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좋아. 우리는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폭발음이 들리면 잠입한다.”

    단주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라트 혼자 뿐이다.

    “어디 보자.”

    인벤토리에서 적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을 올려두기 위해서 심심풀이로 만들어놨던 폭탄을 찾아본다.

    “이거랑, 이거.”

    폭탄은 총 두 종류. 하나는 폭발과 함께 불길이 휩쓰는 화염 폭탄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갈용 폭탄으로 무시무시한 소리만 날 뿐, 폭발의 위력은 거의 없는 소음 폭탄이었다.

    “고생을 좀 시키기는 하겠지만.”

    라트는 화염을 일으키는 폭탄을 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 숲에 불길이 붙는다면 셀룬의 군단 측에서 화재를 진압하는데 꽤나 고생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작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나선다면 순식간에 불길은 진압될 거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공갈용 폭탄은 오로지 하나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두 폭발 소리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핏빛 그림자의 단주나 떨어진 별 정도라면 차이를 감지할 수 있을 거다.

    화염 폭탄이 터지는 도중, 소음 폭탄이 터진다면 분명 떨어진 별은 수상하게 여기고 소음 폭탄이 터진 곳으로 올 거다.

    “떨어진 별이 아니더라도. 미르차르드님이 오셔도 되고. 공작님이 오셔도 되고.”

    라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셀룬에 자신의 소식을 알리는 거다. 굳이 떨어진 별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서 소식을 알려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루아타 공작은 마법사라서 모르겠으나, 미르차르드 후작 정도라면 충분히 화염 폭탄과 소음 폭탄의 차이를 알 수 있을 터. 아마 이쪽으로 달려올 가능성이 크다.

    이 작전은 어디까지나 셀룬 쪽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폭발 소리가 났다고 해서, 고위직이 찾아올 이유가 없다. 오히려 수상한 자를 찾으려고 수색에 나서겠지.

    “일단 하나 끝.”

    연성진을 그리고 그 위에 폭탄을 놓는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폭탄에 불이 붙게 설정해놓고 다른 자리로 떠난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위와 같은 행동을 수차례 반복한 라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가지고 있던 화염 폭탄의 반을 설치해놨으니 아마, 어마어마한 소란이 일어날 거다. 이 정도라면 핏빛 그림자 내부에 숨어있는 첩자도 라트를 의심할 수는 없을 터.

    “3, 2.”

    슬슬 세팅해놨던 폭탄들이 순차적으로 터질 시간이다. 영광스러운 첫 번째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카운터하면서 그쪽을 바라본다.

    “1.”

    제로. 숫자를 세는 것이 끝남과 동시에 황홀할 정도로 화려한 폭발이 기세등등하게 일어나, 하나의 장관을 이뤄낸다.

    ‘폭발을 일으킨 자들이 꽤 많다고 생각하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겠지만, 연금술을 사용할 수 없으면 이렇게 순차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마치 만화에서 볼 법한, 원시적인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이 지나 도화선에 불이 붙게끔 해야 하니까.

    첩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도 이렇게 폭발을 순차적으로 일으킨 이유는 단 하나, 첩자가 연금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카르세이나 대륙이라면 모를까, 노르스 대륙에서는 연금술이 천시 받고 있으니까. 아니 카르세이나 대륙조차도 노르스 대륙보다 취급이 좋은 거지, 천대받고 있는 건 똑같다.

    폭발 때문에 셀룬의 진지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다.

    “자, 이것도.”

    슬슬 괜찮겠지. 라트는 성냥으로 소음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지상으로 던졌다.

    툭하고 떨어진 폭탄은 뒹굴뒹굴 구르더니 나무에 부딪친다. 도화선의 완전히 불타 사라지고, 굉음이 일어난다. 굉음이 일어난 것치고 폭발의 여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와라 빨리.’

    인벤토리에서 제스맹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팔찌를 찬 라트는 초조하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떨어진 별, 혹은 미르차르드 정도라면 충분히 지금 터진 폭탄이 다른 폭탄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제발.’

    자신 있게 접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확률은 낮았다. 이렇게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폭발 소리가 들렸다고 이쪽으로 누군가 올 확률은 지극히 적었으니까.

    이 작전은 셀룬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실행한 작전이기도 했지만, 떨어진 별과 미르차르드를 믿기에 실행한 작전이기도 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방심은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목에 싸늘한 금속의 촉감이 느껴진다.

    ‘떨어진 별이네.’

    라트의 기대에 응답해,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이곳까지 찾아왔다. 다만, 외모 변경 포션 때문인지 라트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로브는 핏빛 그림자의 끄나풀들이나 입는 로브인데, 목적은 잠입입니까? 그렇다면 제 실수군요. 아슬렌이 자기 식구를 희생시키는 짓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슬렌은 핏빛 그림자 단주의 이름이었다.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떨어진 별은 지금 소란이 핏빛 그림자가 벌인 일이 아닐 거라고 판단한 거 같다.

    “여기만 묘하게 폭탄 소리가 다르기에 찾아왔더니. 제대로 낚였습니다.”

    “단검 좀 치우지. 고용주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예?”

    지금까지 냉정하게 말하던 떨어진 별의 입에서 당황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현재 그에게 있어 고용주는 단 한 명 뿐이다.

    “팔찌를 봐.”

    “팔찌? 어, 아!”

    라트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팔찌를 확인한 떨어진 별은 그제야 자신이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이가 라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단검을 땠다.

    “실례했습니다, 백작님. 모습이 완전히 바뀌시는 바람에.”

    “이해해.”

    목소리도 살짝 변조했으니까, 못 알아보는 게 정상이다. 오히려 알아봤으면 변장이 조금 부족한가 고민했을 거다.

    그 떨어진 별조차 자신을 못 알아봤으니, 트렌세르노나 핏빛 그림자에 숨어있는 첩자가 라트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일은 없을 터.

    “외모를 바꾸고, 그 로브를 입고 있다는 건 내부로 숨어드셨군요.”

    “그래.”

    “고생 좀 하셨겠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았어.”

    떨어진 별은 라트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이 정도 변장이 가능하면 내부로 숨어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얼굴은 아예 다른 사람이었고, 머리와 눈색도 다르다. 일부러 등을 구부정히 하고 있기에 키도 제대로 알아차리기 힘들다. 게다가 목소리도 조금 다른 사람이야.

    라트와 비슷한 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드래곤이나 신이 아닌 이상, 이 남자를 라트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는 없겠지.

    “지금 그 변장은 연금술로?”

    “어. 외모 변경 포션이 있거든.”

    “외모 변경 포션이라. 그런 좋은 게 있었군요. 공부가 됐습니다. 그런데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는 뭡니까?”

    떨어진 별은 라트가 소음 폭탄으로 자신을 불러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래야 그 많은 골드를 써서 고용한 보람이 있지 않은가.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고. 도움도 받고 싶고.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먼저.”

    “먼저?”

    “여기에 진지를 세우고 가만히 있는 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거지?”

    “그렇습니다.”

    떨어진 별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라트의 말에 긍정했다.

    “굳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백작님의 소식이 끊기는 바람에 저쪽에 포로로 잡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요.”

    포로라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라트는 로브에 가려져 있는 떨어진 별의 얼굴이 분명 웃음기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트가 포로로 잡혔으면 분명 그 소식이 떨어진 별의 귀에 들려왔을 거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고. 진짜 이유가 뭐야? 설마 작전이냐?”

    농담 따먹기를 할 시간은 없다. 떨어진 별 역시 그 점을 알기에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암살자들이 이쪽을 염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암살자가 정보를 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처음부터 떨어진 별은 잠입하려고 하는 암살자를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는 소리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이쪽의 전력을 적이 파악하게 되면, 오히려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뿐이다.

    이쪽의 전력을 적이 안다면 그 전력을 감안한 방비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필요한가?

    ‘아.’

    라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던 중 스스로 깨닫고 말았다. 굳이 이쪽의 전력을 노출시키려는 이유.

    그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적이 염탐한 전력을 상회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적이 염탐한 전력을 상회하는 전력을 가지려면 방법은 단 하나.

    “크레몬 성에 있는 군단 일부가 비밀리에 이쪽으로 오고 있다. 맞지?”

    “굳이 알려드릴 이유가 없었네요. 왜 물어보신 겁니까?”

    떨어진 별이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셀룬은 전쟁을 치룰 때 대부분 군단을 두 개로 나눈다.

    하나는 루아타 공작이 지휘하는 군단이고 다른 하나가 브로켄 후작이 지휘하는 군단이다.

    전력을 두 개로 분산시키면 그만큼 힘이 빠지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두 군단이 몰아치면 그만큼 빠르게 적의 영토를 유린할 수 있다.

    물론 군단을 두 개로 나누는 건 그렇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다르다. 승률이 높기는 하지만, 피해를 예상할 수는 없어. 그렇기에 두 군단 모두 침공하지 않고, 죽은 듯이 있는 거다.

    “크레몬 성에 있는 군단은 허수아비겠고.”

    ‘이쪽으로 오는 건 브로켄 후작과 정예병들이겠지.’

    “허수아비도 보통 허수아비가 아니죠. 브로켄 후작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전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말대로다. 브로켄 후작이 없다고 하지만, 현재 병사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장비 역시 타국과 비교하면 압도적이었으니까.

    “브로켄 후작님은 언제쯤 도착하시는데.”

    “몰래 오시느라,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도착하실 겁니다.”

    일주일이라. 좋은 정보를 얻었다. 첩자의 정체를 밝혀내고, 단주의 아들을 구하는데 제한 시간은 일주일 정도다.

    그쯤이라면 겔로그와 단주의 부인도 배에 탑승했으리라.

    “공작님께 전해드려 8일째 되는 날, 성문을 열겠다고.”

    “괜찮으시겠습니까? 트렌세르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괜찮아.”

    트렌세르노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연금술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무색의 연금술이라는 힘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을 거다. 알 리가 있나, 이 힘이 연금술이라는 것을 아는 건 셀룬의 귀족들 뿐인데.

    “슬슬 가봐야겠어. 아 그전에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도움이요?”

    “어. 그러니까 말이야.”

    라트가 조용히 자신의 요구를 말하자, 떨어진 별은 몸을 살짝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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