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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내부에 숨어들고 나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단주의 아들이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 찾는 일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불침번을 제외하고 모두가 잠든 시간, 단주가 몰래 나가서 성 내부를 살펴본 결과.
“제 아들은 성의 최상층에 있는 탑에 감금돼 있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자신의 아들이 감금되어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러나 그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주의 얼굴은 조금씩이나마, 떨리고 있었다.
‘아들을 바로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건가.’
그 떨림의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뭐라고 위로를 해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성 최상층의 탑이라.’
어떻게 보면 가장 안전한 장소일 수도 있으나, 수성전이 벌어진다면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다.
셀룬의 군단에는 공성병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대포가 있다. 그 대포의 조준이 잘못되어 성벽에 박히지 않고 위로 날아간다면?
대포의 포환이라는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곳이 바로 탑이었다.
시니아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큰 높이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성에 있는 탑이었으니까.
“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됩니까.”
“한 곳 뿐입니다. 그리고 경비가 제법 삼엄해서 안까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들어가지 못했다면, 아드님께서 탑 안에 없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단주는 슬며시 고개를 저으며 품속에 있는 단검 하나를 꺼냈고, 라트는 그 단검을 보자마자, 그게 무슨 효과를 가졌는지 파악했다.
“아들의 목걸이와 반응하는 단검입니다. 이 단검이 탑 쪽에서 반응했으니, 틀림 없을 겁니다.”
역시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단주가 아들의 안전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지.
‘그렇지만.’
확실히 단주의 아들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 그는 탑에 감금된 상태일 거다.
그러나 트렌세르노가 이미 목걸이의 정체를 파악했다면? 목걸이만 탑에 놔뒀을 가능성도 있어.
‘그럴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라트가 저 단검의 기능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라트가 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저런 종류의 아이템을 수없이 봐온 덕분이었다.
그러나 트렌세르노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아드님이 지니고 있는 목걸이를 봤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쉬이 파악할 수 없을 거다.
서로 공명하여 위치를 대략적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은 플레이어라면 자주 볼 수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세계의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다.
‘월드 세리아라는 말에 반응하지 않았어.’
트렌세르노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목걸이만 탑에 넣어놨을 가능성은 희박해.
그렇다면 단주의 아들은 탑에 갇혀있는 게 맞겠지.
“경비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됐습니까.”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병력만 30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탑 안에도 분명 병사들이 있을 겁니다.”
“대략 50명 정도로 잡아야겠네요.”
50명, 처리하기 어려운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주의 아들을 최대한 몰래 빼내야 한다는 점이지.
그래야 트렌세르노가 알아차리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뭐, 그건 암살자의 특기니까.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어떻습니까.”
“강철문으로 막혀있더군요. 2시간 정도 살펴봤지만, 열릴 기색은 없어 보였습니다.”
단주의 말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몰래 잠입하는 것은 암살자의 특기라지만, 입구가 하나뿐이라면, 그리고 그 입구가 닫혀져 있고 경비 병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암살자는 벽을 통과하는 재주는 없다. 탑으로 들어가려면 강철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대를 모르면 침입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그 강철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주의 아들은 트렌세르노가 암살자를 겁박할 수 있는 목줄 중 하나였다.
그러니 분명 감시를 철저히 하겠지. 안으로 들어가는 식사는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주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해야겠네.’
염동력을 사용한다면 탑의 안으로 침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셀룬은 아직도 가만히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시니아 성은 셀룬의 군단과 대치중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진지를 세웠음에도 대치만 할 뿐 전투를 걸어오지는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트렌세르노가 암살자들에게 빨리 적지로 침입해 정보를 알아오라고 했었지.
트렌세르노는 모르겠지만, 라트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아마도 이쪽에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떨어진 별이라면 라트가 이곳에 잠입한 사실은 알아내지 못했다고 해도, 라트가 베르렐에 도착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은 알아냈을 터.
이런 타이밍에 적지로의 침입이라니. 자신의 소식을 알리기에 완벽한 상황이었다.
‘겔로그와 부인이 빠져나갈 시간도 기다려야하고.’
단주에게는 이미 이 사실을 알렸다. 그래서 단주도 성급히 자신의 아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중이다.
‘그리고 첩자도 찾아야해.’
첩자를 찾아야 나머지 암살자들의 독을 해독시켜줄 수가 있다.
그리고 첩자를 찾지 않은 상태로 핏빛 그림자의 암살자들을 셀룬으로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까닥 잘못하면 트렌세르노가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았음에도 셀룬의 내부에 첩자를 두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우선 내일은 트렌세르노의 명령을 따르는 척 셀룬 쪽을 염탐하도록 하죠. 부인 분께서 셀룬으로 탈출할 시간도 벌어야하고, 그쪽에 제 소식을 전해야하니까요.”
“예.”
대화가 끝나자, 주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순간이동을 사용해 단주가 머무르는 천막에서 벗어난 라트는 으슥한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라트가 머무르고 있는 천막은 라트 혼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신입 암살자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켈랑과의 전쟁에서는 후작 대리였고, 공작의 사위였으며, 나아가 이제는 귀족이기에 개인 천막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 라트의 신분은 일개 암살자일 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라트는 펜과 종이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에휴.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다니.”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종이를 대고 편지를 쓰고 있다니. 다시 생각해보니 굉장히 처량했다.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모를 허무함에 라트는 단주에게 부탁해서 받은 담뱃대를 꺼내들었다.
라트 전용인 미스릴로 코팅한 담뱃대는 당연히 사용할 수 없었다. 아마 이곳에서 그 담뱃대를 사용한 순간, 라트의 정체가 곧바로 들통 날거다.
“후우.”
담배를 태우면서 마저 종이에 글자를 적은 후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천막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출발하도록 하지.”
다음날 아직 태양이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각, 라트는 셀룬의 군단을 염탐하기 위해 나선 암살자 무리에 섞여 성 바깥으로 향했다.
“떨어진 별이 셀룬에 협력하고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겠지? 그러니 진지로 숨어드는 것은 자중하고, 밖에서 상황을 살핀다.”
정보를 캐려면 안쪽으로 숨어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떨어진 별이 이곳에 있다면 잠입은 무리였다.
물론 떨어진 별을 적이 아니라, 아군으로 생각하고 있는 단주와 라트는 그가 무슨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첩자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단주님.”
“왜 그러지?”
그런 단주의 발언에 의문을 재기한 것은 핏빛 그림자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암살자인 쿤네로였다.
“차라리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란을 일으켜 시선을 분산시키고 잠입해서 정보를 캐는 게 어떻습니까.”
쿤네로의 말에 단장의 인상이 조금 구겨진다. 만약 무조건 정보를 캐야하는 상황이었다면, 그 의견은 옳았다.
그러나 그럴 이유는 없다. 단주에게 있어 트렌세르노는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원수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몇 명이 희생당할지 모른다. 굳이 우리 식구를 희생하면서 그 놈을 위해 정보를 캐줄 이유가 무엇이냐.”
단주는 쿤네로가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말의 분노가 섞인 싸늘히 씩은 목소리로 그 이유를 물었다.
“저희가 정보를 얻지 못하면 도련님을 고문할지도 모릅니다. 식구들이 희생당하는 걸 원치 않으시다면 제가 소란을 일으키겠습니다. 저 정도라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쿤네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분명 트렌세르노는 한 번 더 실수를 한다면 단주의 아들을 고문하겠다는 취지가 담긴 말을 남겼었지.
슬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현재 라트가 있는 곳에서는 쿤네로의 등밖에 보이지 않아, 그의 얼굴을 살필 수 없었지만.
‘쿤네로는 첩자가 아닌 거 같은데.’
분명 쿤네로도 알고 있을 거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킨다면 자신은 살아갈 수 없음을.
그는 지부장급 암살자다. 한 마디로 실력이 뛰어나다. 그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
그러나 독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에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이며, 나아가 그가 소란을 일으킨다면 마주해야할 상대는 바로 떨어진 별이었다.
컨디션이 최상이라고 해도 도망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은커녕 목숨이라도 보존하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그리고 첩자는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이쪽의 정보를 캐야하지.
자신이 희생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쿤네로가 첩자일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물론 연기일 수도 있지만.’
이럴 때는 공작의 마법이 부러워진다.
상대방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마법은 상당한 고난이도 마법이기에 어지간한 마법사는 사용할 수도 없다.
‘이럴 때는 마법사였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
운이 좋아서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연금술사가 아닌 마법사로 시작한 상태에서 이 정도 이점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는 훨씬 강했겠지.’
무색의 연금술, 생명의 연금술을 포함해서 검술까지 배웠음에도 당장 순수한 마법사가 성장했을 때 가지는 힘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다.
그렇지만 트롤 캐릭을 만들었던 과거의 자신을 탓한다고 바뀌는 게 없기 때문에 그저 아쉽다고 생각하고 입맛을 다실 뿐,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쿤네로는 첩자가 아니라는 게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굳이 그를 희생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셀룬 쪽과 어떻게 접촉을 할지 고민하던 차였는데, 오히려 잘 되지 않았나.
“소란을 일으키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라트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자, 자연스래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라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단주의 눈이 살며시 떨렸다.
라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걸까?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겔로그 지부장님께서 맡으시던 쉐로 지부의 신입 암살자, 엔드라고 합니다.”
쿤네로의 물음에 라트는 겔로그와 미리 입을 맞춰놨던 자신의 현재 신분을 소개했다.
“그래 여기로 오기 전에 겔로그가 소개해주던 게 기억나는군.”
단주가 라트의 얼굴이 기억난다고 하자, 몇몇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지운다.
“신입이 난동을 부리겠다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는 건 생각하지 않나? 목숨이 아깝지 않나보지?”
냉소적으로 묻는 쿤네로였으나, 그의 말에 담긴 뜻은 걱정이었다.
“가족도 생각해야 될 거 아니냐. 어차피 나는 죽을 수도 있는...”
죽을 수도 있다. 그 발언에 좌중의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길드의 단주와 지부장급 암살자가 어떤 상태에 빠졌는지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몰랐다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저에게 남은 가족은 없습니다. 그리고 죽을 생각도 없습니다.”
“셀룬에 누가 있는지 잊어버렸느냐? 떨어진 별이다. 나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어찌 신입이!”
“직접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신입 주제에 소란을 일으키고도 떨어진 별과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방진 소리를 하자 쿤네로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롭게 변했다.
자신감은 암살자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만으로 변하는 건 언제나 조심해야한다.
“폭탄을 사용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