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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여기서 의문을 가지고 끙끙거릴 바에야 그와의 싸움에서 이겨서, 물어보면 그만이다.
“그럼 즉시 다른 이들에게 이 사실을!”
“잠깐만요.”
단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소식을 모두에게 알리려고 하자, 라트는 재빨리 그를 만류했다.
“겔로그와 이야기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랬지요.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겔로그에게서 핏빛 그림자 안에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의심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낌새가 전혀 없었기에…….”
“암살자입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해독제를 만드는 일은 단주님과 겔로그가 직접해주십시오. 그리고 일단 다른 분들께는 해독제를 주지 마시고, 두 분만 드세요.”
“……알겠습니다.”
단주는 탐탁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라트의 의견을 수락해주었다.
“그런데 이미 백작님께서 이곳에 온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는 셀룬으로 돌아갈 겁니다. 표면적으로는요.”
“그 말씀은?”
표면적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은 셀룬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기에 단주는 라트에게 다른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해독제를 만드신 후 제가 돌아가면, 신입 암살자들을 전부 소집해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몰래 숨어드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지만 백작님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띌 겁니다. 그렇다고 가면을 쓰자니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고.”
“가면이라, 그래 가면이지요.”
단주가 가면을 쓰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음에도 라트는 킥킥 웃으면서 가면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까 구해주신 재료가 무슨 포션을 만드는데 쓰이는지 아십니까?”
“분명 푸른 장미와 불타는 가지를 말린 가루, 그리고 반짝이는 물이었지요?”
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라트가 만든 포션에 들어가는 재료는 그것들 외에도 꽤 많은 재료가 필요했지만.
그건 전부 인벤토리에서 있던 재료였으니까.
“그 세 재료가 들어가는 포션이라. 제가 연금술에는 무지하여 상급 강화 포션 밖에 모르겠습니다.”
“오.”
단주의 대답에 라트는 입을 벌렸다.
정답은 아니었지만, 설마 세 재료로 만들 수 있는 포션들은 꽤 많았지만, 그 중 한 가지 포션을 맞출 줄은 몰랐다.
“정답은 아니지만, 상급 강화 포션에 세 재료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놀랍네요. 연금술 지식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천대받은 연금술이기에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은 있다는 건가.
“알베도 학파와는 친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들은 해독제를 만드는데도 능통하기에.”
“아, 과연.”
단주의 대답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을 즐겨 사용하는 암살자의 입장 상, 해독제를 만드는 알베도 학파와는 때려고 해도 땔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정답이 아니라고 함은, 무슨 포션을 만드셨습니까?”
“이겁니다.”
인벤토리에서 조금 전에 갓 완성된 따끈따끈한 포션을 꺼내들었다.
“특이한 색이군요.”
완성되자마자 인벤토리에 넣어놓은 덕분인지 아직까지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보라색 포션을 바라본 단주는 특이한 감상평을 남기며 포션에서 시선을 때고 라트를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효과를 가진 포션입니까?”
“외모를 바꿀 수 있는 포션입니다.”
“외모를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서 설명을 잇기 위해 입을 연다.
“외모를 바꿀 수 있다지만, 당연히 영구적인 건 아닙니다. 지속 시간은 3일 정도고, 외모만 바꿀 수 있지 키는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 지속 시간을 고려해서 여러 개를 만들어 놨다.
“외모는 이 포션으로 바꾸면 되고, 머리는 염색약을 써서 염색할 겁니다. 일단 저는 여기서 떠난 후, 겔로그와 함께 신입 암살자로 여기로 다시 올 겁니다.”
“그렇군요.”
암살자 중에 첩자가 있다고 해도, 신입 암살자를 세세히 알 리는 없으니, 그런 식으로 신분을 위장하겠다는 소리다.
키는 어쩔 수 없다지만, 머리와 외모만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굳이 그러실 이유가 있으십니까? 해독제를 구했으니 문제는 제 아들뿐인데. 아들을 구하는 거야 저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의 말이 맞다. 해독제를 구했으니, 이제 남은 건 인질인 단주의 아들뿐이다. 그리고 그를 구하는 것은 단주 혼자서라도 할 수 있겠지.
아들을 구한 후 셀룬을 도와 트렌세르노에게 복수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현재 믿을 사람은 세 명 뿐입니다. 겔로그, 저, 그리고 단주님.”
겔로그는 암살자가 아니다. 그는 공작의 마법인 진실을 파악하는 마법을 통과했다.
만약 그가 트렌세르노에게 느끼는 증오가 진실이 아니었다면, 공작의 마법이 분명 그가 거짓을 고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을 거다.
그리고 단주는 이 일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아들이 납치당하고 부인은 미쳐버렸으니까.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이가 첩자일 가능성은 경미했다.
“그러나 겔로그는 이곳에 남아야합니다. 저희가 떠난 직후 부인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하니까요.”
“과, 과연.”
“아직 부인이 제정신을 차렸다는 건 다들 모르고 있으니, 겔로그를 남겨둔다고 해도 첩자가 딱히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이곳은 적지다. 만약에 단주가 아들을 구해내는데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고 성공했다고 해도, 부인의 목숨은 보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부인을 다른 곳으로 가게 하자니, 첩자가 무언가 낌새를 느낄 거다.
그러니까 모두가 떠난 후 부인을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게 가장 베스트.
더욱이 겔로그는 죽을 위기를 넘기고 이곳에 도착했으니, 그에게 휴식을 취하라는 이유를 덧붙이면 누구도 겔로그가 이곳에 남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단주님 혼자 일을 하다가 혹시나 그르치면요. 아니 당장, 아들을 구했다고쳐도 도망칠 곳은 있습니까?”
그 물음에 단주는 고개를 저었다. 전쟁터의 한복판, 안전한 곳이 있을 리가 없다.
“단주님이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히시면 이쪽도 곤란합니다. 저는 핏빛 그림자의 협조를 얻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요. 셀룬으로 도망치시려면 제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지요.”
라트는 셀룬의 백작이다. 그가 있다면 수상한 자들이 접근한다고 해도 셀룬의 군단이 저지하지는 않을 거다.
“그럼 따라오셔서 제 아들을 구할 때까지 숨어계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지. 천만의 말씀이다. 적의 안쪽을 휘젓기 위해서 외모를 바꿀 수 있는 포션까지 준비했는데, 그냥 숨어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요. 우선 따라가서 첩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라트가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절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으니, 안에서 분탕질을 좀 쳐야죠.”
그 모습에 단주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간다.
“좋군요.”
그 역시 트렌세르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던 몸. 그렇기에 라트의 의견에 동의하고, 협조하기로 마음먹었다.
***
일은 간단하게 흘러갔다. 단주와 겔로그가 재료를 구해와 해독제를 만들었고 둘은 그 해독제를 마셨다.
해독제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서, 분명 썩어 들어가던 단주와 겔로그의 상반신이 조금씩 나아졌다.
해독제의 효과를 확인하자마자, 둘은 나머지 암살자들이 마실 수 있게 미리 해독제를 만들어 라트에게 넘겨주었다.
라트가 자신이 보관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해독제는 첩자가 누구인지 밝혀지면 그 때, 나머지 암살자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
“얻을 게 없으니, 가보도록 하겠다.”
한껏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해독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도 부인이 제정신을 차리게 할 방법도 없다고 말한 라트는 얻을 게 없다고 말하고 셀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아마 첩자가 이 사실을 알린다면 분명 주인 없는 산맥의 길목에 병사들을 배치시켜놓겠지.
그리고 그 병사들이 라트가 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고 알린다면, 트렌세르노는 라트가 셀룬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알아챌 것이다.
그러니까 적의 내부로 들어가 분탕질을 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뭐 사실, 단주의 부인이 이곳에서 사라졌다는 사실만 발각되는 게 더 빠를 거 같지만.’
“이쯤이면 되겠지.”
길드에서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곳까지 이동해 포션을 마셔서 외모를 추악하게 바꾸고, 염색약을 이용해 머리색깔을 바꾼다.
목소리를 변조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위급한 상황에서나 사용하기로 하고 되도록 말을 아낄 생각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외모를 바꾸는데 성공하자, 핏빛 그림자 암살자들이 입는 로브를 걸친 라트는 미리 약속된 장소에 대기하고 있던 겔로그와 만났다.
“이제 소집령이 떨어졌으니, 적어도 3시간 정도면 모두 모일 겁니다. 그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그러지.”
“그런데 백작님. 부인을 모시고 갈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어디 있습니까? 차리친의 영토는 전부 트렌세르노의 영역이지 않습니까.”
하긴 그랬다. 암살자에게는 은신처가 한 두 개쯤 있겠지만, 동료 암살자 중 첩자가 있다면 은신처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겔로그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라트는, 이내 이 질문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셀룬으로 가.”
“예? 그, 그건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라트님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을 뿐이지. 주인 없는 산맥에 부인과 같이 들어갔다가 몬스터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굳이 주인 없는 산맥으로 갈 이유가 있어?”
셀룬으로 가라니까, 왜 주인 없는 산맥을 이야기 하는지. 라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겔로그를 바라보았다.
“주인 없는 산맥으로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셀룬으로 갑니까?”
“바닷길.”
“아!”
라트의 말에 겔로그는 드디어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세계의 무역은 모두 육로나 해로로 이뤄진다. 포탈을 이용해서 막대한 무역품을 가져가려면 어마어마한 마나가 필요하다.
당연히 포탈 이용료 또한 막대해진다.
어지간한 상인들이라도 이용료를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겠거니와, 그 이용료를 부담할 수 있는 상인들이라고 해도 마진이 나오지 않으니 포탈을 이용해 무역을 하지는 않았다.
“분명 여기서 내려서, 셀룬 쪽 항구로 가는 배도 있을 거 아니야. 그 배에 타도록 해.”
“그렇지만, 신분은 어떻게 합니까.”
“위조해. 그 정도는 쉽잖아. 외모가 마음에 걸리면 이거 가져가.”
“이건?”
라트가 인벤토리에서 외모 변경 포션 2병을 내민다.
혹시 몰라 상당한 양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2병 정도는 줄 여유가 있었다.
“외모 변경 포션. 내가 마신 거랑 똑같은 포션이다. 지속 시간은 3일 정도니까, 배에 타면서 신분 검사를 받을 때 쓰라고.”
“알겠습니다.”
이 정도 해줬으면 알아서 하겠지.
“아, 잠깐만.”
라트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셀룬의 백작임을 증명하는 신분패를 꺼냈다.
“포탈을 이용해서 파르스로 가면 돼. 혹시 막거든 이걸 보여줘.”
“그럼 백작님은 어떻게 신분을 증명하시려고요?”
여기서 라트의 신분패를 주면 후에 셀룬의 군단으로 합류할 라트는 어떻게 신분을 증명할 생각인가. 그 물음에 라트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흔들었다.
“난 이게 있어.”
“아.”
라트의 오른쪽 팔목에 채워진 팔찌는 제스맹 기느투스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팔찌였다.
확실히, 셀룬에서는 저 팔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가 없으니 라트는 신분패가 없어도 충분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아, 이건 일단 빼야겠네.”
팔찌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변장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팔찌를 빼내,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라트는 겔로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고민 끝?”
“예. 감사합니다.”
그 감사를 끝으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라트는 서서히 머릿속으로 짜놨던 계획을 맞추기 시작했다.
‘부인을 피신시키고, 아들을 구한다. 물론 그 전에 엿을 먹여줘야지. 그리고 트렌세르노의 실력도 가늠해봐야 하고.’
현재 트렌세르노의 실력을 글란츠 백작급으로 잡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떨어진 별의 가늠일 뿐이다.
그러니 그의 실력을 직접 옆에서 봐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작전을 세울 수 있으니까.
‘두 카드는 나한테 들어왔어.’
현재 트렌세르노와 라트의 싸움은 라트가 유리한 상황이다. 그에게 유리한 카드가 두 장이나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방심은 없다. 과시하지 않는다, 자만하지 않는다, 오만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완벽히 성장하기 전에 철저히 짓밟아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