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84화 (18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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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현재 셀룬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은 이쪽을 공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차리친의 최전방에 있는 성 중 하나인 시니아 성이었고, 트렌세르노의 물음에 답한 것은 젠 지거 하이데른, 예전에는 한 나라의  공작이었던 남자다.

“그렇군요.”

젠의 대답에 트렌세르노는 여유롭게 웃었다.

“암살자들이 없으니 제대로 된 정보를 물어오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금방 올 것입니다. 약을 얻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인질도 있지 않습니까.”

“하아…….”

그 말에 트렌세르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독을 이용하고, 거기에 인질까지 잡다니. 너무 비겁한 짓이 아닐까요?”

인질을 이용해 암살자들을 독에 중독 시켜 협박한 것은 트렌세르노의 짓이 아니었다.

아니지. 그의 짓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결국 최종 결정자는 그 누구도 아닌 트렌세르노였으니까.

심지어 암살자들이 해독할 수 없는 독을 구한 것도 그였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은 죄책감에 찌들어있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는 이들이 모두 트렌세르노의 인성에 감탄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말아야합니다. 걱정마십시오, 제가 전부 안고 갈 것이니.”

그런 트렌세르노를 위로하듯,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젠의 모습에 세뇌를 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한 나라의 공작이었던 이가 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트렌세르노의 이상에 따르려고 하다니.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암살자 길드는 어떻게 하고 있답니까? 저희를 불신하고 있으니, 배신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 쪽에 첩자를 심어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암살자 길드이기 때문에 연락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슨 일이 있다면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 것을 각오하고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쪽은 걱정하지마시고, 수성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젠님의 말이 맞습니다.”

주변에 있는 이들마저 수긍하자, 트렌세르노를 결심이 선 눈빛을 하고 자신의 팔을 어루만진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귀족이 아니다. 귀족인 자들도 있었지만, 평민이었던 자들도 있고 천민이었던 이들도 있다.

오로지 재능, 재능 하나를 보고 뽑은 이들이었다.

반대로 적은 어떤가. 재능이 아닌 출신을 내세워 전장에 나섰다. 그런 이들에게 질 수는 없는 일.

출신을 내세운 적에게 재능을 앞세운 우리가 진다면, 트렌세르노의 이상은 처음부터 부정당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트렌세르노는 시니아 성에서 셀룬을 막을 작정이었다. 절대로 이 성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셀룬의 병사를 막고, 반대로 셀룬을 점령한다. 그것이 트렌세르노의 생각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합시다.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고 발언해주세요.”

군사 회의가 시작되자, 많은 이들이 손을 들어올렸고 트렌세르노는 그들의 의견을 하나씩 듣고 자신의 의견과 조율하기 시작했다.

***

“트렌세르노는 평민이었습니다.”

“평민이요?”

“예. 그것도 많이 가난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났지요.”

단주의 말을 들은 라트는 입을 벌렸다. 귀족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가난한 평민이었을 줄은 몰랐다.

적어도 재능이 출중함에도 출신의 한계를 느낀 상인 집안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 트렌세르노가 군사를 다루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상인이라면 그런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기회도 있었다.

재능을 꽃피울 시간이 충분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반대로 평민이라면? 재능을 꽃피울 시간도 없었을 거다. 재능을 갈고 닦을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전략 전술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은.

‘선천적인 천재라는 뜻.’

그리고 선천적인 천재는 시간이 지나 경험을 쌓게 되면, 더욱 무섭게 변하는 법이다.

지금은 경험이 없이 날뛰고 있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런 애송이가 한 나라의 수도를 점령했다. 한 나라를 붕괴시켰다.

‘시간이 지나면 위험할수도 있겠는데.’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성실하게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적어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다른 생각에 빠졌던 라트는 단주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일이라니요?”

“제 조사에 따르면 트렌세르노에게는 5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동생을 굉장히 아꼈다고 하더군요.”

“설마, 죽었습니까?”

뻔하지만, 가장 무서운 클리셰 중 하나를 떠올린 라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지자, 단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설마 귀족 때문에 죽은 건 아니죠?”

“맞습니다.”

‘빌어먹을.’

그렇다면 트렌세르노가 현재 이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중 하나인 신분제를 증오하는지 이해가 됐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귀족이 강제로 딸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 중에 트렌세르노는 상처를 입었고요.”

머리가 아파온다. 이런 과거를 듣고 있자니, 그가 가난한 평민으로 태어났음에도 어째서 신분제를 증오하게 됐는지 이해가 됐다.

물론 용납은 할 수 없지만.

“납치당한 여동생은 1년 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었다고 합니다. 그게 3년 전의 일입니다.”

3년 전이라, 공교롭게도 라트가 이 세계에 왔을 때와 시기가 비슷했다.

아마 차리친에서 플레이를 시작했다면 그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귀족 놈 지금쯤이면 이미 살해당했겠군요.”

한 나라를 전복시킨 자다.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 귀족을 찾아서 능지처참을 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트렌세르노는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예?”

그러나 단주는 고개를 저으며 라트의 말을 부정했다.

‘죽이지 않았다고?’

“호색한 점만 빼면 상당히 재능이 출중하기에 트렌세르노의 측근으로 활동 중입니다.”

“……하아.”

이어지는 단주의 설명에 라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끼던 동생을 죽게 만든 귀족을 살려준 것도 모자라 측근으로 두었다고?

“과거의 원한보다는 자기 말대로 재능을 가장 중요시하겠다는 뜻이군요.”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트렌세르노는 자신의 여동생을 죽게 만든 귀족을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었다.

자신의 이상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는 용도겠지.

자신은 과거의 원한 따위 없고, 평민으로써 서러움이 없다. 그저 신분제를 없애고 평등한 세계를 만들겠다.

트렌세르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그렇습니다. 알아본 결과 그 귀족은 따돌림 같은 것도 당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귀족 역시 트렌세르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고요.”

이상을 위해 개인적인 원한에 눈을 감다니.

어떻게 보면 트렌세르노의 이상을 발화시킨 것이 바로 그 귀족 놈이었다.

여동생을 빼앗기고, 불평등한 이 세계를 저주하며 트렌세르노는 악착같이 이상의 사회를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 귀족을 향한 원망과 증오를 가슴 속에 새겼겠지. 그런데 그것을 가슴에 묻을 수 있다고?

‘미친 놈.’

불가능하다. 적어도 라트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트렌세르노가 그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모를까.

그렇기에 조금은 트렌세르노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제가 조사한 트렌세르노의 과거입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뼈에 사뭇히는 개인적인 원한까지 가슴에 묻을 정도로, 이상의 사회를 실현하려고 하는 미친놈과의 싸움인가.

‘그것도 완전히 재능이 꽃피지 않은 괴물.’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음에도 글란츠 백작과 동급의 용병술을 다룬다면 이대로 내버려두면 골치 아픈 적으로 성장했을 거다.

‘지금 밟아야 해.’

랜덤 NPC라고 하기에는 심각할 정도로 능력치가 높았다.

이상하다, 랜덤 NPC의 재능과 스탯 그리고 희귀 기능은 일정했다. 그러나 트렌세르노는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재능이 너무 뛰어나.

오히려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모리아께 감사드려야 할 지경이다.

방법은 단 하나.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 짓밟을 수밖에 없다.

“더 물어보실 건 없으십니까?”

“있습니다. 지부장급 암살자는 길드 내에 소속된 암살자들이 누가 있는지 전부 꿰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신입 암살자는 저조차 누가 있는지 서류로 알고 있을 뿐.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암살자도 수두룩합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주는 라트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됐어.’

이걸로 됐다. 라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유리병 두 개를 꺼내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나는 좀비꽃의 꿀입니다.”

“좀비꽃의 꿀이라고요? 좀비꽃이 뭡니까?”

라트의 말에 단주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아무리 독에 능통한 암살자라고 해도, 좀비꽃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좀비꽃은 카르세이나 대륙에서도, 제국에서 직접 인간의 출입을 금하는 골드 드래곤의 서식지에만 피어나는 꽃이었으니까.

“노르스 대륙에는 없고, 심지어 카르세이나 대륙에서도 희귀한 꽃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걸 보여주시는지요.”

“좀비꽃의 꿀은 소량만 섭취해도 피부가 조금씩 썩어가게 됩니다.”

그 말에 단주는 깜짝 놀라, 라트를 바라보았다. 피부가 썩어가다니, 자신이 먹은 독의 증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실리스크의 체액입니다. 효과는 알고 계시지요?”

라트의 물음에 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실리스크의 체액은 암살자 사이에서도 악랄하기 그지없는 독으로 유명했다.

사용자의 몸 안 쪽, 장기를 서서히 굳게 만들어 종극에는 돌로 만들어버린다.

시간이 지나 장기가 돌로 변해버린 사람은 당연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죽게 된다. 자신이 왜 죽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심지어 만티코어의 독과 마찬가지로, 바실리스크의 체액은 상태 이상 면역 포션으로도 해독을 하지 못한다.

“부인께서 가지고 계시던 독을 분석해봤더니 이 두 가지가 주된 재료더군요.”

라트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운명의 여신인 모리아께서 첫 번째 카드는 트렌세르노가 아닌 라트에게 쥐어주었다.

“그, 그렇군요!”

라트가 어째서 약병을 보여줬는지 그 이유를 깨달은 단주가 책상을 쿵치며 즉시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 앉는다.

“바실리스크의 체액은 시간이 조금 있으면 해독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좀비꽃의 꿀은 간단히 해독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단주의 표정이 침울해진 이유를 파악한 라트가 웃으면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건…….”

단주는 요상하다는 시선으로 라트가 꺼낸 것을 바라보았다.

라트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약이 아니라 길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였다.

“야생꽃 아닙니까?”

“맞습니다. 단주님은 지금부터 이걸로 벌들을 유인해야 합니다.”

“벌이요?”

단주는 더욱 요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진지한 라트의 모습에 선뜻 이상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벌의 침에 있는 독을 마시면, 좀비꽃의 꿀은 저절로 해독 됩니다.”

“아하!”

좀비꽃의 꿀은 생각보다 해독이 간단했다. 그냥 벌침에 있는 독을 먹으면 된다.

벌침 째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 이 꽃의 해독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플레이어인 라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조차 모르는 지식을?”

“연금술사니까요.”

‘플레이어였으니까.’

머리와 입이 각자 다른 대답을 한다.

‘그나저나 트렌세르노는 좀비꽃을 어떻게 안 거지?’

무려 골드 드래곤 무리가 살아가고 있는 서식지에만 피는 꽃이다.

제국에서도 좀비꽃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는 세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그런데 어떻게 평민, 그것도 노르스 대륙에서 태어난 자가 이 꽃의 효과를 알고 있었던 거지?

============================ 작품 후기 ============================

새벽 쯤에 1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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