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83화 (18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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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죄송합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단주가 고개를 숙이자, 라트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가족을 위해 이런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부터, 그의 가족애가 각별한 것쯤은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반응을 보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모두 설명했으니, 들어가서 이야기하시면 될 겁니다.”

    아무래도 그 전까지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단주가 직접 부인께 설명을 한 모양이다.

    부인이 저지른 죄를 직접 말하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레나라고 해요.”

    침대 근처에 앉아 죄책감이 깃든 표정으로 고심하고 있던 부인이 라트가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엔스리드 백작입니다.”

    간단히 서로의 통성명을 마친 라트는 침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암살자분들에게 독을 먹인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이의 설명 덕분에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있어요.”

    그리 말하는 레나의 얼굴이 더더욱 죄책감에 물들어간다.

    식구와 같은 이들에게 본인의 손으로 직접 독을 먹였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 때 먹였던 독을 누구에게 받았는지도 기억하십니까?”

    “아니요. 거기까진 기억나지 않아요.”

    어차피 독을 건네준 건 트렌세르노나 그의 측근이겠지. 그 부분에 관해서는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부인이 지금부터 할 질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다.

    “독이 무슨 색이었는지는 기억나십니까?”

    “물과 같이 투명했어요.”

    ‘만티코어의 독은 역시 아니었네.’

    만티코어의 독은 특성 상 물과 같은 색으로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만티코어의 독과 동급이면서 정제하면 몸이 썩어가는 효과를 낼 수 있는 독이 몇 개나 있을까.

    ‘그리핀의 피, 페가수스의 날개 깃털.’

    신에게 사랑받는 몬스터를 죽이고 그 부산물을 섭취하면 신의 저주를 받아, 몸이 썩어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확히는 신의 저주라기보다는 신성한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어 생기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투명한 물처럼 만들 수는 없어.

    ‘투명한 물이면 체액일 가능성이 높은데.’

    “혹시 남은 독이 있습니까?”

    다음 질문에 부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심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있다고?’

    솔직히 독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데, 진짜 있었을 줄이야.

    “저 안에 넣어놨던 기억이 나요.”

    부인이 가리킨 곳은 귀중품을 넣어놓는 보관함이었다. 단주가 살며시 그쪽으로 다가가 보관함을 열고, 투명한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이런 곳에 있었군요.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긴 말 그대로 부인의 귀중품을 넣어두는 곳이니까.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정확히는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들은 납치당했지, 본인들은 독에 중독됐지, 부인은 미쳐버렸지.

    ‘나 같아도 돌아버릴 걸.’

    그렇기에 어째서 부인과 관련된 물품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책망하지 않고 단주가 건네준 병을 소중히 받았다.

    “이걸 받으면서 혹시 주의를 받은 게 있습니까?”

    “네. 딱 세 방울, 세 방울만 먹이라고 했었어요. 그 이상 먹이면 죽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와인잔에…….”

    거기까지 말한 부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오, 셀룬이시여. 넥스시여. 제가 무슨 짓을.”

    “진정해 여보. 좋아서 한 일이 아니잖아. 협박당해서 한 일이니까, 우린 아무렇지 않으니까. 진정해. 괜찮아, 괜찮을 거야.”

    눈물을 흘리는 부인의 옆에 앉은 단주가 그녀를 위로하는 사이 라트는 슬며시 약병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투명하다. 그리고 독을 가까이 하는 암살자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마셨다면, 이 독은 무미무취겠지.

    “나가보겠습니다. 부인을 잘 위로해주세요.”

    “백작님.”

    라트가 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단주가 그를 멈춰세웠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감사를 전한다. 부인을 제정신으로 돌려줘서인가.

    “감사는 아드님까지 구한 후에 받겠습니다.”

    아직은 감사를 받을 단계가 아니기에 라트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 백작님.”

    때마침 겔로그가 이쪽으로 와서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말씀하신 재료들입니다.”

    “벌써 구했다고?”

    “예. 혹시 몰라 신분을 숨기고, 한 가게에서 구입하지 않고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구입했습니다.”

    반란이 일어났다지만, 수도는 수도라는 건가. 아무래도 가게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가보다.

    “아무도 없는 방 하나 내줬으면 좋겠는데.”

    죽 주머니를 받아들고, 방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겔로그는 급히 라트를 안내했다.

    “여기는 현재 아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좋네. 아 그리고 단주님께서는 지금 부인 분을 위로해주고 계시는 중이니까 침실 쪽으로는 아무도 들이지 마.”

    “그 말은, 부인 분께서 정신을 차리셨습니까?”

    “그래.”

    라트가 사정을 설명해주자, 겔로그는 감탄했다는 듯이 라트를 바라보다가 퍼득 정신을 차리고 라트에게 절을 한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겔로그 역시 부인을 단주의 부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인 뿐 아니다. 단주의 가족들은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평범한 일상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아들이 납치당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에게 독을 먹였음에도 겔로그는 레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를 원망하는 암살자는 누구도 없었다.

    그저 말도 못하고 속으로 앓다가, 자신들에게 독을 먹이고는 미쳐버린 부인을 바라보며 슬픔과 분노에 얼룩져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데 그런 부인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다니. 절을 하며, 고개를 낮게 조아려 감사를 표하는 것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지경이다.

    “일어나. 내가 필요해서 제정신으로 되돌린 거였고, 사실 확률은 반반이었어.”

    “그렇지만.”

    “일어나래도.”

    타인에게 절을 받는다는 건 익숙하지 않다. 하대를 하는 것도 시종장에게 시달려서 간신히 할 수 있게 된 라트다.

    더욱이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절을 하다니. 익숙하지 않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라트의 독촉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겔로그는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오겠습니다.”

    “아니, 그건 나중에. 혹시나 이중에 첩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

    “예?”

    뜬금없는 말을 들었는지, 겔로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라트를 바라보았다.

    라트 역시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이곳이 어딘가?

    암살자 길드의 본부다. 단주의 가족들이 평범한 가정집에 머무른 게 아니라 본부에서 머물고 있었다면 첩자가 없다는 전제 조건 하에 단주의 아들을 납치할 수 있었을까?

    납치가 아니라, 무력을 이용해 강제로 빼앗았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납치는 무리다. 암살자들 사이로 몰래 잠입한다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암살자는 단 한 명, 브라일 뿐이었다. 떨어진 별도 가능은 하겠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다크 엘프니까 논외다.

    “생각해봐. 단주의 아들이 여기서 머물고 있었다면 첩자 없이 납치할 수 있었겠어?”

    “그게…….”

    라트의 말에 겔로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도련님은 아카데미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납치를 당했습니다.”

    ‘뭐야, 그렇다면 본부 내에서 납치당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렇다면 첩자가 있다는 말은 취소…….’

    “그러나 도련님이 단주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저희뿐이었습니다. 왜 그걸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는지!”

    ‘아니 그런 건 빨리 말하라고.’

    취소하려고 했던 생각을 다시금 원위치 시킨다.

    겔로그의 말에 따르면 단주의 아들은 베르렐에 있는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통학으로 말이다.

    이쪽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 중 평범한 가정집이 있는 이유 역시, 단주의 아들이 집으로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단주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부인이라면 항상 본부에 머물고 있지만, 아들은 다르니까.

    가족이라는 건,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라도 약점이 된다.

    약점을 드러내면 안 되는 건 모두가 같지만, 암살자들은 특히나 그 약점을 드러내면 안 된다. 그래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단주님께서 나오시면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부인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역시 숨겨야겠지요.”

    사실상 첩자가 있다는 게 확실시 되자, 겔로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겔로그가 황급히 단주가 있는 곳으로 가자, 홀로 남겨진 라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혹시나 해서 던진 말이었는데.’

    갑자기 첩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 던져본 말이었는데 정황을 들어보니 첩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소 뒷걸음치다 개구리 밟은 격이라고 하는 건가.

    “자, 일하자 일.”

    여기에 첩자가 있는 건 단주랑 겔로그가 알아서 파헤치겠지. 그들은 암살자니까, 이런 종류의 일은 라트보다 훨씬 뛰어날 거다.

    그러니 자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우선 독 분석부터.”

    분명 이 독은 정제된 독일 것이다. 무색무취무미인 독이 몸을 썩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미 정제된 독을 어떻게 분석하느냐고? 간단한 일이다. 연금술에는 이미 섞인 액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

    “우선 램프랑. 유리병이랑.”

    인벤토리에서 연금술에 사용하기 위한 장비들을 꺼내던 라트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가죽 주머니를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웃었다.

    ‘해보자고, 머리싸움.’

    떨어진 별의 평가를 생각하면 트렌세르노는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그러나 이길 자신은 있었다.

    이 독을 분석하는 것이 첫 번째 카드가 될 거다.

    독의 분석에 성공해서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면 이 카드는 라트의 것이고, 실패한다면 이 카드는 트렌세르노의 것이다.

    그리고 가죽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두 번째 카드.

    이것을 이용해 트렌세르노를 속일 수 있다면 이 카드 역시 라트의 것이 된다. 반대의 경우는 트렌세르노의 손에 들리겠지.

    물론 이 두 가지 카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해도 이기는 게 확정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손에 들어온 두 가지 카드를 이용해, 몇 가지 상황을 만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정면에서 한 번 눌러줘야지.’

    독을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라트는 피식, 웃었다. 심장이 떨려 왔지만,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보다는 막연한 흥분, 그리고 기대와 긴장 때문에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내 전술을 통해.’

    수없이 정점에 올랐다. 그 중에는 신체는 평범하게 만들어, 오로지 전술과 전략만으로 정점에 올랐던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즐거웠다. 과연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면 얼마나 다채로운 전략과 전술을 펼칠까. 그리고 그것을 깨부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누가 틀린지, 결판내자고.’

    서로가 상대방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누가 틀렸는지 결정이 나는 것은 전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겔로그의 말에 따르면 단주가 트렌세르노의 과거를 알아냈다고 했었지?

    갑자기 만티코어가 등장하는 바람에, 그리고 주인 없는 산맥에서 정신없이 구른 덕분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물어봐야겠어.’

    트렌세르노는 랜덤 NPC다. 라트는 그의 과거를 모른다. 랜덤 NPC는 과거도 항상 다르고, 목적도 항상 달랐으며, 그 힘도 항상 달랐으니까.

    그렇기에 궁금했다. 과연 어떤 과거를 겪었기에 이런 세계에서 공화정, 나아가 민주주의를 꿈꾸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용납은 해줄 수 없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독의 분석이 완료됐다는 알림창이 나타나자 라트는 분석 결과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카드는 이쪽에서 가져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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