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82화 (18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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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떨어진 별이 직접 왔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놀란 이유는 후자 때문이었나 보다. 상급 암살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부장급 암살자도 아닌 단주 본인이 직접 왔으니까.

    단주는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저렇게 놀라는 게 당연했다.

    ‘나도 직접 움직일 줄은 상상도 못했지.’

    라트조차 상상하지 못한 것인데, 이들은 오죽할까.

    “가시죠. 단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쿤네로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몇몇 암살자들이 겔로그를 반기며 인사를 하고 라트의 정체를 묻는 해프닝이 2~3번 일어났지만,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겔로그, 살아 있었나?”

    단주의 앞에 도착하자 겔로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단주는 겔로그의 인사를 받으며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기쁨까지 섞여있어.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쪽은 엔스리드 백작님이시군요.”

    “예. 얼마 전 귀족 작위를 받은 엔스리드 백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핏빛 그림자의 단주가 이쪽을 바라보자, 라트는 일단은 이쪽에게 잘 보여야 나중에 협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존대를 사용하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엄청 초췌해 보이는데.’

    암살자다운 음침함도 분명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보다 가장 먼저 그의 안색이 눈에 띈다.

    초췌하다, 실시간으로 늙어가는 중이다. 마음고생이 상당히 심한지, 그의 눈은 움푹 패여 있었고,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와 있었다.

    “적국의 중앙에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저렇게 초췌하다면, 신경이 날카로워질 것이 분명함에도 단주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물었다.

    “단주님, 그것이…….”

    겔로그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안주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해독제를 빼돌리는 건 불가능하실 겁니다. 아니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찾아보셨군요.”

    “그렇습니다.”

    해독제를 몰래 빼돌리려는 시도를 해봤다는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눈앞의 남자는 무려 한 암살자 길드의 단주. 그의 실력은 전 대륙에서도 손을 꼽을 수 있다.

    그런 이가 몰래 해독제를 빼돌리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겠지. 나아가 자신의 아들도 구하고 말이야.

    “트렌세르노가 성을 떠나기 며칠 전 제 아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해독제를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내버려두고 왔지요.”

    해독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아들을 구하면 트렌세르노는 핏빛 그림자에게 약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핏빛 그림자의 암살자들은 그대로 독에 중독된 채 죽어가겠지.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피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나왔을 모습을 생각하니, 라트는 조금 측은한 눈으로 단주를 바라보았다.

    “지금 아드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 자가 전쟁터로 데려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트렌세르노의 생각은 알 만하다. 인질을 내버려두고 자신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단주가 아들을 구해낼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게다가 이건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모습을 보기 싫으면 당장 전쟁터에 합류하라는 무언의 협박이기도 했다.

    ‘평등한 세상은 지랄.’

    남의 피붙이를 인질로 잡고, 갑질을 하는 놈이 잘도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

    “하아.”

    자신의 이상과 한참 벗어난 트렌세르노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어 힘없이 한숨을 내뱉는다.

    “해독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단주의 능력으로도 해독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함은 트렌세르노는 처음부터 해독제를 만들어놓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머물고 있던 곳에 해독제를 놔두지 않았던가.

    ‘이게 조금 더 타당해 보이는데.’

    예상컨대, 트렌세르노의 지능은 굉장히 높다. 그렇다면 트렌세르노는 분명 단주가 이대로 이용당하고 있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독제를 다른 곳에 숨긴 거지. 단주가 자신의 거처에 오더라도 해독제를 발견하지 못하게.

    ‘그리고 지금은 해독제를 전쟁터에 가져갔을 확률이 높아.’

    당초 작전은 트렌세르노의 거처에 숨어들어 해독제를 훔쳐, 핏빛 그림자를 트렌세르노의 마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렌세르노가 전쟁에 나선 이상 당장 그 작전을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불가능하거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암살자들과 함께 핏빛 그림자의 일원으로써 전쟁터에 잠입하면 된다.

    ‘물론 몇 가지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단주에게 해독제가 어디 있는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자, 그는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다른 장소에 해독제를 숨겨놨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왕성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니 휘하의 암살자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가시죠.”

    “그러나 셀룬에 상당한 수준의 암살자가 있는 것 같기에…….”

    단주는 부하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는 듯이 말을 끈다.

    암살자에게 있어 희생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알고 있는 위협에 부하를 몰아내고 싶지는 않다는 건가.

    “셀룬에 있는 암살자는 떨어진 별입니다. 제가 고용했으니 그쪽이랑 연락만 할 수 있으면 부하들이 다치지는 않을 겁니다.”

    떨어진 별에게 핏빛 그림자의 암살자들을 죽이지 말고, 고문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는 분명 라트의 말을 지켰을 거다.

    “떨어진 별이요? 그가 직접 왔습니까?”

    단주가 놀랍다는 듯이 말하자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힌 암살자들 중에서 독을 마시지 않은 자들 역시 목숨을 잃지 않고 파르스에서 편히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라, 딱히 배려 같은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저 이용 가치가 있다 싶어서 살려준 것뿐이다.

    “적의 정체도 알았고, 위험도 없다고 하시니 전쟁터로 가야겠군요. 트렌세르노에게서 해독제를 빼돌릴 생각이시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채비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전부 갈 수는 없고 두 세 명은 이곳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어째서요?”

    이곳에 굳이 암살자를 남겨놓을 이유가 있나? 이번 일이 잘 풀려야, 다들 살 수 있는데.

    “그것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겔로그도 분명 이곳에 암살자 한 두 명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확신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는가.

    “말할 수 없으시면 됐습니다. 아, 그리고 전쟁터로 가기 전에 필요한 게 있습니다.”

    단주가 말을 하지 못하자, 라트는 됐다는 듯 고개를 저은 후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했다.

    그 말을 전부 들은 단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라트를 바라본다.

    “……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에 쓰시려고요?”

    “그건 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그것들을 구하는 사이에 부인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부인의 이야기가 나오자 단주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상관은 없지만.”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입을 연다.

    “현재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유폐시켜놨습니다.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부인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렇지 않아도 초췌했던 단주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변했다.

    아들이 인질로 잡히고 부인이 제정신이 아니게 됐다.

    더욱이 자신을 포함해 길드에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지부장급 암살자들이 모두 독에 중독됐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실신을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럴 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남자가 대단한 거다.

    ‘그래서 전부 전쟁터로 갈 수 없다는 거구나.’

    제정신이 아닌 부인을 내버려두고 전원이 전쟁터로 갈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겔로그도 이곳에 한 두명의 암살자는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부인은 평범한 사람이라서 정신을 놓아버린 거겠지.’

    조금 곤란한 상황이기는 하다. 부인에게서 암살자들에게 무슨 독을 먹였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아직 남은 독이 있다면 그것을 조사해서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트렌세르노에게서 해독제를 빼돌릴 필요 없이, 단주의 아들만 구해내면 그만이다.

    물론 그 이후에 도망치는 것도 상당한 에로사항이 꽃피겠지만.

    ‘각성 포션이라면 제정신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이다. 단순히 충격 때문에 잠시 정신이 엉망이 된 것이라면 각성 포션으로 제정신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충격으로 인해 정신 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라면, 각성 포션으로 정신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경우는 신전에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치료를 받아야해.

    “그래도 일단 만나 뵙고 싶습니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다. 각성 포션을 먹여 부인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면 좋은 일이다.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트렌세르노에게서 해독제를 빼앗아야 한다.

    “따라오십시오. 너희는 백작님께서 부탁한 것들을 구하고 다른 암살자들에게 채비를 하라고 전하라.”

    “예.”

    자리에서 일어난 단주가 천천히 어딘가로 향한다. 그의 뒤를 뒤따르자, 잠시 후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장소가 튀어나왔다.

    암살자 길드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더욱 놀라운 것은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거다.

    평화로운 낮 시간을 맡이한 평범한 가정집. 그것이 눈앞에 노인 풍경이었다.

    ‘발광석.’

    창문 쪽을 바라본 라트는 그 빛이 발광석이 발하는 빛이라는 것을 깨닫고 살며시 입을 벌렸다.

    발광석은 귀족들조차 상당히 구하기 힘든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가족의 생활환경을 위해 구했다니.

    ‘가족애가 남달라.’

    조금 전 아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왔다는 말에 라트는 그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체스판을 반대로 돌려서 생각해보자. 만약 라트가 엘리나 케이네가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그녀들을 구할 수 있는데도 그대로 나와야했다면?

    당장이라도 그녀들을 구하려고 안간 힘을 쓰는 손과 발을 칼로 찌르면서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단주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여깁니다.”

    단주가 살며시 문을 열자 그곳에는 평범하나, 아리따운 여성이 구석에 쪼그려 앉아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같이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예.”

    방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넓고 편안해 보이는 침대였다.

    아마도 이곳은 부인과 단주가 침실로 사용하는 방일 거다.

    “겔로그, 마르스, 론타,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제가.”

    여성은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사죄하고 있었다.

    “아들, 내 아들. 어디 갔니? 엄마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사죄하는 것을 멈추더니, 이번에는 애타게 아들을 참는다. 단주의 말대로 이성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 같은 사람들에게 독을 먹인 죄책감과 아들이 인질로 잡힌 것에 급박함을 느끼고 망가졌나.’

    저런 상태라면 평범한 각성 포션으로는 정신이 돌아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걸 부인께 먹여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라트는 최고급 각성 포션을 인벤토리에 꺼내 단주에게 넘겨주었다.

    백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던 포션 중 하나였다.

    “이거라면 또 모르겠군요.”

    라트가 꺼내든 포션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단주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는 천천히 부인에게 다가갔다.

    “여보.”

    “응? 여보, 왜 불러? 우리 아들은 어디있어?”

    “이……걸 마시면 돌아올 거…야.”

    단주는 떨리는 입술을 애써 억누르며,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속삭인다.

    그러나 부인은 활짝 웃으면서 단주의 손에 들린 포션을 재빨리 빼앗아 마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단주의 얼굴은 기대와 슬픔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부인이 포션을 전부 마시자 포션 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라트의 발아래까지 굴러왔다.

    “여, 보?”

    그리고 조금 전까지 탁한 목소리로 미친 듯이 중얼거렸던 부인의 입에서 멀쩡한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아, 아파요.”

    단주는 힘차게 그녀를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왜 그래요, 어린애처럼. 응?”

    부인은 그런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자신이 무슨 상태였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아, 나가 있을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트는 조금 뻘쭘해졌다. 그러나 이제까지 단주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기에 얌전히 몸을 돌려서 밖으로 나가, 둘 만의 해후를 즐길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어차피 전쟁터로 가려면 준비를 해야하니까.’

    해독제를 구한다고 한들, 단주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쟁터에 나가야 하고, 그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충분했으니, 지금 필요한 것은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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