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80화 (1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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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곳은 주인 없는 산맥의 근처이면서 동시에 셀룬의 영토 근처다. 그런데 어떻게 흑마법사가 이곳에 올 수 있었지.

아니 올 수 없는 건 아니다. 방법은 있어. 흑마법사의 본거지는 주인 없는 산맥에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 이곳까지 온 것인가.

“그걸 어디서 발견하셨습니까.”

“저쪽에서 발견했습니다. 헌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겔로그는 말을 끌면서 라트를 바라보았다.

라트에게 무언가를 설명을 하고 싶지만, 제대로 된 단어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헌데?”

“아닙니다,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따라 오십시오.”

결국 설명을 포기한 겔로그는 앞장서서 스태프 조각을 발견한 곳으로 걸었다.

“이곳입니다.”

도착한 장소는 둥지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걸 먼저 발견 못했다니.’

둥지를 살피는데 급급해서 주변을 먼저 살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마, 주변을 먼저 살펴봤다면 이곳을 가장 먼저 발견했을 것이다.

이 주변의 땅은 썩어가고 있는 중이다. 토양뿐이 아니야, 이 일대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저마다 색을 잃어버리고 바스라지고 있다.

“레퀴엠을 부르는 자.”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은 한 가지 뿐이다. 흑마법, 그 중에서도 8서클에 해당하는 마법. 레퀴엠을 부르는 자.

생명체는 물론이오, 일대의 모든 것을 썩어가게 만드는 저주.

“은인이시여. 저쪽에 전투의 흔적이 보입니다.”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던 푸른 바람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그의 말대로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그것도 사람과 싸운 흔적이 아니다. 저 정도라면 괴물과 사람의 싸움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흔적이었다.

‘핏빛 그림자가 먹은 독이 만티코어의 독을 정제한 게 아니면. 그리고 크룩스가 만티코어를 꼬신 게 아니라, 흑마법사들이 만티코어를 죽이거나, 데려갔다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라트는 급히 인벤토리에서 만티코어의 피를 꺼냈다. 사실은 아직은 이걸 겔로그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충성하고 있지만, 중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고 자신의 중독이 풀렸다면, 그 즉시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상황이 바뀐 지금은 확인이 최우선이다.

“마셔봐라.”

라트가 만티코어의 피를 건네자, 겔로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마셨다.

“상의를 걷어봐.”

만약 겔로그가 마신 독이 만티코어의 독을 정제한 것이라면 만티코어의 피로 완전히 해독은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경과가 나와야한다.

그러나 크룩스가 상의를 걷자, 그의 맨살은 여전히 썩어가고 있었다. 만티코어의 피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후우.”

답답한 마음이 들어 인벤토리에서 담배를 꺼내들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내려도 돼.”

겔로그에게 상의를 내리라고 말한 라트는 담배를 한껏 빨아들이며 상황을 정리했다.

‘만티코어의 독을 정제한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핏빛 그림자의 암살자들이 마신 독은 만티코어의 독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독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암살자가 해독을 할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이곳까지 흑마법사가 온 이유는 또 뭐고.

몇 가지 예상이 빗나가자, 생각이 꼬이는 바람에 여러모로 머리가 아파온다.

‘일단 수도로 가서 핏빛 그림자 단주의 아내를 만나봐야겠는데.’

그녀와 이야기한다면 독의 정체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독이 무엇인지 알 수만 있다면, 굳이 트렌세르노가 사는 곳에 잠입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독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트렌세르노가 사는 곳에 침입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야.’

경화수월의 지속시간은 겨우 20초뿐이다. 20초 안에 잠입해서 해독제를 빼돌리고 도망치라고?

‘불가능한 일이지.’

염동력까지 이용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해독제를 빼돌리는데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트렌세르노의 영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이쪽에서 독자적으로 해독제를 구해볼 요량이었다.

“잠깐만. 암컷을 죽이거나, 포획한 게 흑마법사의 소행이라면 알도 흑마법사들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수컷이 암컷이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에 일을 벌였을 겁니다.”

확실히 그렇다면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수컷 만티코어가 둥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었겠지.

그렇다면 수컷 만티코어가 그렇게까지 분노에 치민 것도 이해가 된다.

둥지로 돌아와 보니 알은 물론이오, 자신의 부인까지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지금 당장은 만티코어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됐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서 빨리 핏빛 그림자가 있는 옛 차리친의 수도, 베르렐로 가야한다.

“푸른 바람님. 한시 빨리 베르렐로 가야겠습니다.”

라트가 생각을 정리하고 급한 눈으로 푸른 바람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데려왔다.

“베르렐 근처까지 가려면 10일은 걸릴 겁니다.”

이주나 걸린다고? 그건 안 된다.

“강행을 한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래도 일주일은 걸립니다.”

라트는 슬쩍 겔로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하루라는 시간을 잡아먹었다. 겔로그가 먹을 양은 2주 분 뿐.

베르렐까지 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강행을 하지 않는 이상 빠듯한 시간이다.

그러나 독에 중독되어 체력이 뒤떨어지는 암살자가 과연 강행군을 버틸 수 있을까?

“저는 문제없습니다.”

라트의 염려를 알아차렸는지, 겔로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다.

“중간에 몸이 안 좋다거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하도록. 네가 베르렐에 도착하기 전에 죽으면 이번 작전은 실패니까.”

“예.”

염려는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베르렐로 가기 전에 겔로그가 죽는 것보다는 죽기 직전의 상태에 몰린다고 해도 베르렐까지 도착해야한다.

라트는 겔로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말에 올라섰다.

‘주인 없는 산맥에서의 일주일이라.’

생에 최초로 가장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을 예감하며 푸른 바람을 따라 말을 몬다.

***

예상대로 주인 없는 산맥에서의 일주일은 끔찍했다.

쉬도 때도 없이 습격하는 몬스터 덕분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덕분에 레벨업은 꽤 했지만.’

몬스터만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지. 길이 제대로 나지 않아서 말에서 내려서 걸어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다.

그것도 무색의 연금술로 말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서 어떻게 해결할 수는 있었지만, 덕분에 마나 포션을 꽤 많이 먹었다.

마나 포션을 허비한 건 아깝게 됐지만, 무색의 연금술이 없었더라면 강행을 했다고 한들 이주는 꼬박 주인 없는 산맥에서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 근방에 있는 야만인 부족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거 정도.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쭉 올라가시면 베르렐이 있습니다.”

“루트 성 근처로군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해드릴 수 있습니다.”

주변을 살피던 겔로그가 길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여기서 베르렐까지 말을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리지?”

“이 말들은 꽤 지쳤으니, 루트 성에서 말을 바꿔서 탄다고 하면 5일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야만인들 때문에 하루를 잡아먹었고 주인 없는 산맥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리고 또 5일인가. 5일 정도라면 겔로그가 죽기 직전에 베르렐까지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 아직 남은 약이 있다면 겔로그의 생명도 연장할 수 있겠지.’

고작 일주일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는지, 라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겔로그의 생명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혼자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희에게는 앞마당 같은 곳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은인이시여.”

푸른 바람이 여유롭게 웃자, 라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겔로그에게 어서 가자고 신호를 보냈다.

“그럼 루트 성에 들려서 말을 바꾸고, 식량과 식수를 챙기고 곧바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일주일동안 야영을 했기에 편안 잠자리가 그립기는 했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여관에 몸을 누일 수는 없다.

“성문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지친 말을 몰면서 그에게 묻자 겔로그는 잠시 침음을 삼켰다.

“아마 제가 잡혔다는 건 사실은 이미 트렌세르노 쪽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러겠지.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문제입니다. 신분패를 위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일 좋은 방법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해서 훔치는 건데.”

“저쪽처럼?”

“이런 변방에는 사람이 자주 다니지도 않으니. 예?”

라트의 말에 말을 끊은 겔로그가 라트의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라트의 말대로 상인 세 명이 길을 걷고 있었다.

전쟁 중에 그것도 반란에 의해 전복당한 나라에서 상인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웃긴 일이지만, 반대로 타당한 일이다.

그들이 마차로 운반하고 있는 것은 무기다. 이런 시기야 말로 무기 상인이 돈을 벌 수 있는 때였다.

“신분패는 어찌할 수 있겠군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겔로그가 어둡게 웃었다. 오랜 만에 암살자다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죽이는 건 좀 그런데.”

라트가 약간 꺼림직 하다는 듯 눈을 찌푸린다.

자신이 저들을 지목하기는 했지만, 적이라면 모를까, 저런 일반인에게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았다.

“죽이면 오히려 눈에 띕니다. 일단 묶어놓고, 신분증과 무기를 가져간 다음 성에 납품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 돈을 돌려주고 풀어주면 될 겁니다. 적당한 입막음 비용이 필요하겠지만요.”

“그건 괜찮겠네.”

겔로그의 말에 그제야 찌푸린 얼굴을 정상으로 만든 라트는 그럼 그렇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라트와 겔로그는 상인 세 명을 가볍게 제압하고 그들의 신분패를 뺏을 수 있었다.

“잠시 후에 돌아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제압한 상인을 완벽하게 묶은 후, 루트 성으로 잠입한다. 전쟁 중이라지만, 무기를 가져온 상인의 신분 조사는 그렇게 꼼꼼히 하지 않았기에 둘은 쉽사리 루트 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상점에 들러서 식량과 식수를 구입하고 마굿간에 들려서 말을 교환한다.

그리고 루트 성 밖으로 나와 포박했던 상인들을 풀어주고, 그들에게 무기를 납품한 금액의 1.5배를 주었다.

“내 옆에 있는 자는 핏빛 그림자 지부장이야. 오늘 겪었던 일은 비밀에 부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지?”

“무, 물론입니다. 평생 비밀로 가져가겠습니다. 그렇지?”

“그럼요.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아니 죽어서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악명 높은 암살자 길드의 지부장이라는 말에 상인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겁을 줬으니, 아마 섣불리 이번 일을 나불거리고 다니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판단한 라트는 겔로그와 함께 베르렐로 향했다.

“제가 말씀드린 방법이기는 했지만,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겔로그가 슬쩍 뒤쪽을 바라보며 라트에게 조언을 했지만, 라트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의 말대로 저들을 죽여 놓는 게 뒤탈이 없으리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을 죽이기에는 입맛이 쓰다.

저들에게는 죄가 없다. 그저 마침 라트의 눈에 띄었을 뿐이다. 겨우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니, 그럴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몬스터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오,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망설임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살을 베는 감촉에 더 이상 소름이 끼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변명을 할 수 있었던 건, 라트가 베었던 모든 자들은 반대로 베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마음속으로 정상참작이 가능했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달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상참작이 불가능하다. 저들을 죽인다면, 무언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겔로그는 당연히 라트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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