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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9화 (17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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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신화급 몬스터 만티코어를 처치하셨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나, 만티코어를 처치한 것은 모든 이들이 경이로이 바라볼 위대한 업적입니다.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기능 Exp를 지급합니다]

    [인간의 머릿속에 평생토록 각인될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신성 스탯이 1 증가합니다.]

    만티코어를 처치하는데 성공하자 알림창이 주르륵 나타났지만, 일단 이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주술사와 궁수들은 부상당한 사람부터 챙기고, 독에 중독당한 사람들은 여기로 와라!”

    상태 이상 면역 포션을 마셨다고 하지만, 만티코어의 독이 완전히 해독된 것은 아니기에 라트는 재빨리 후방으로 물러나있던 야만인들을 불렀다.

    “독에 중독 당한 사람들은 역겹더라도 이걸 마셔야 됩니다.”

    만티코어의 얼굴에서부터 흐르는 피에서 퀴퀴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이걸 마시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야만인들은 얌전히 라트의 말에 따랐다.

    야만인들이 피를 마시는 걸 확인한 라트는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들고 다친 야만인 중 가장 위급해 보이는 이에게 급히 달려갔다.

    만티코어의 발에 짓뭉개져, 한 쪽 팔이 더 이상 팔이 아닌,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이 팔은 고칠 수 없어.’

    성녀라면 모를까, 신전의 대사제가 온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엉망이 돼버린 팔은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다.

    “팔을 잘라야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고통 때문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음에도 야만인은 굳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린 팔을 잘라내고 잘린 부위에 포션을 뿌린다. 이걸로 일단 응급조치는 끝. 조금 있으면 몸 정도는 가눌 수 있게 될 거다.

    그 야만인 외에도 돌아다니면서 위독하게 보이는 이들에게 포션을 뿌려준 라트는 한숨 돌렸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들다.’

    그제야 두통이 느껴진다. 염동력을 한계까지 사용하지 않았지만, 꽤 머리를 굴린 편이니 두통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결과겠지.

    “괜찮아?”

    “그러는 적색 늑대님은 괜찮으십니까?”

    적색 늑대가 라트에게 다가와 안부를 묻자, 라트는 쓰게 웃으면서 되묻는다.

    다섯 명 정도가 병신이 되었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그에 배는 넘는 사람들이 다쳐서 몸을 갸누기 힘들어하는 상황이다.

    “부족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전혀 문제없어. 우리는 강하니까.”

    굳건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흔들림 따위는 전혀 없었다.

    “설마 그렇게 갑자기 등장해서 만티코어를 죽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 재주가 많은데?”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재주가 많을 수밖에 없지.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라트 본인은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 한 가지의 길만 걸어서 겨우 대성을 할 수 있다면, 게임 시스템이 있는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 여러 가지 길을 대성할 수 있다.

    “너무 늦게 나타났으면 네가 도망쳤다고 생각했을 거야.”

    “설마요.”

    도망칠 리가 없다. 야만인 부족이 전멸하면 당장 급한 처지에 놓이는 것은 라트니까. 엘프와 간신히 닿은 끈인데, 여기서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마워.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지만, 네가 없었더라면 전부 죽었을 목숨이야.”

    “별 말씀을.”

    이쪽은 필요에 의해서 야만인을 도왔을 뿐이다. 감사를 들을 처지가 아니야.

    “제 부탁은 잊지 않으셨죠?”

    “당연하지. 우리는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아.”

    그랬다. 야만인들은 단순하지만, 단순하기에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하고, 오늘은 쉬어.”

    부상당한 사람도 치료해야하고, 만티코어의 사체도 처리해야한다. 더군다나 격렬한 전투가 끝난 밤이다. 오늘은 다들 쉬고 싶겠지.

    “그러죠.”

    쉬고 싶은 마음은 라트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는 흔쾌히 적색 늑대의 제안을 수락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제가 잘 곳은 있습니까?”

    “쉴 곳이야 있지. 남아도는 천막이 몇 개 생겼으니까.”

    그리 말하며 적색 늑대가 죽은 이들의 시체를 바라보자, 라트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다시 말하지만, 네 덕분에 전부 살았는걸.”

    라트의 사과에 적색 늑대가 슬픈 표정을 지우며, 다시금 당당히 말한다.

    “전원, 집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만티코어는 라트가 적색 늑대 부족에 오고 단 하룻밤 만에 정리되었다.

    ***

    “차리친까지 길 안내는 푸른 바람이 해줄 거야.”

    다음날 아침, 충분히 휴식을 취한 라트는 적색 늑대의 천막에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족장이 부족을 떠나도 됩니까?”

    “그쪽 지역에 있는 야만인들하고 혹시나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부족에서도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가는 게 나아.”

    “그런가요.”

    “그리고. 만티코어의 가죽은 네가 가져가.”

    “예? 그래도 됩니까?”

    적색 늑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라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만티코어의 가죽은 굉장히 단단하다.

    그 가죽을 이용해서 갑옷을 만든다면 어지간한 강철보다 훨씬 높은 방어력을 자랑할 정도다. 그런데 그걸 가져가라고?

    “우리는 저 가죽을 어떻게 할 재간이 없어. 그렇지만 도시라면 다르겠지. 저대로 썩히는 것보단 네가 가져가는 게 맞는 거 같아. 다른 사람들도 내 말에 동의했어,”

    “그럼 사양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야만인 중에서 저 질긴 가죽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라트에게 가져가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받아야지.

    “아 그전에 만티코어가 머물고 있던 곳에 가보고 싶은데요.”

    “푸른 바람이 곧 채비를 끝나고 올 거야. 바쁠 테니까, 거기에 가보고 바로 떠나도록 해. 축제를 열어줘야겠지만, 너도 바쁘고 우리도 힘드니까. 다음을 기약하자고.”

    축제를 열어준다고 했어도, 거절했을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까.

    “이해합니다. 그럼.”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풀었다.

    “가기 전에 약속한대로 목책을 손보고 가겠습니다.”

    “신세만 지네.”

    적색 늑대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라트는 괜찮다는 듯이 웃으면서 천막 밖으로 나왔다.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백작님?”

    “조금 있으면 출발한다. 몸은 괜찮지?”

    “예.”

    겔로그는 만티코어의 독에 중독되지도 않았고, 그 괴물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기 전에 후방으로 갔기에 딱히 다친 곳도 없었다.

    “가기 전에 만티코어가 있던 곳에 들러서 조사를 좀 하고 갈 거야.”

    “예. 그리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라트의 말에 겔로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묶어두었던 곳으로 향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잘 참고 있네.’

    겔로그는 라트가 연금술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브라일의 특기였던 경화수월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라트의 말에 충실히 따를 뿐이다.

    ‘프로 암살자는 달라.’

    쓸데없는 물음은 지양하는 건 프로 암살자의 정신 중 하나.

    라트는 그것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겔로그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헤진 곳이 있는 목책을 손봤다.

    그 후 푸른 바람이 여행 채비를 끝내자, 많은 이들의 성원과 함께 라트는 말에 오르고 길을 떠났다.

    “제가 예상하기로는 저 근처에 만티코어의 둥지가 있을 겁니다.”

    목책을 넘어서, 어젯밤 격전이 있었던 곳에 도착하자, 푸른 바람이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둥지? 둥지까지 폈습니까?”

    “만티코어 한 쌍이 출몰한지는 2개월이나 지났으니까요.”

    2개월이라면 만티코어가 둥지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한 기간이 아니었기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컷이 사라진 건 대략 얼마 전쯤 입니까?”

    “3주 전쯤입니다.”

    3주 전쯤이라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아마 무슨 일이 있었다면 분명 흔적이 남아있을 터.

    “그 때 혹시나 특별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까?”

    “그날따라 만티코어가 더 흉포하게 울부짖었던 기억은 납니다.”

    ‘흉포하게 울부짖었다고?’

    “일단 둥지까지 가보죠.”

    그 정도로는 단서가 되지 않는다. 어찌됐든 둥지까지 갈 수밖에 없다.

    푸른 바람의 말대로 바위 위에서는 임시로 만들어진 거대한 둥지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남겨진 것은 인간과 동물의 것으로 추측되는 해골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암컷은 사라졌다고 했고, 남아있던 수컷은 어젯밤 죽었으니까.

    “흐음.”

    말에서 내린 일행이 둥지를 살펴보았음에도 딱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보내기를 5분.

    “백작님. 저는 이 주변을 수색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겔로그가 둥지에서는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이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여기 좀 보십시오.”

    그리고 또 5분 후, 드디어 무언가를 찾았는지, 푸른 바람이 라트를 향해 손짓을 했다.

    라트가 그곳으로 다가가자, 푸른 바람이 말라붙어버린 흰색 고체를 가리킨다.

    “이게 뭡니까?”

    “양수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알을 낳았나봅니다.”

    “알을 낳았다고요?”

    만약 진짜로 만티코어가 이곳에서 알을 낳았다면, 알을 낳은 암컷은 어디간 것인가. 그리고 알은 또 어디로 사라졌고.

    “이게 양수인지는 어떻게 아신겁니까.”

    “먹어봤습니다.”

    푸른 바람의 대답에 라트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바깥에 노출된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는데 먹어봤다니.

    “백작님!”

    라트의 표정에 푸른 바람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을 때, 겔로그가 급히 그를 불렀다.

    “이, 이걸 보십시오.”

    꽤 멀리까지 갔는지, 아니면 무언가 심각한 것을 발견했는지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눈을 돌려 그의 손에 들린 것을 확인한 순간, 라트의 표정이 굳어진다.

    눈에 들어온 것은 어떤 충격에 의해 부서진 스태프 조각이었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스태프의 끝에 매달린 검은색 역 십자가는 이야기가 다르다.

    흑마법사의 상징이 셀룬의 영토 근처에 내뒹굴어져 있다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오늘은 한편이 끝이에요. 내일 한편 더 올ㅣㄹ던가 할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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