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8화 (178/229)
  • 0178 / 0229 ----------------------------------------------

    1부

    「이 날파리 같은 놈들이! 한 입에 씹어죽일 놈들이 감히 나에게!」

    “어머니 라쉐의 축복을 받은 이가 우리를 지켜준다! 겁먹지 말고 싸워라!”

    다시금 라트에 의해 야만인 몇 명이 목숨을 구원받자 모두가 큰소리로 외친다.

    “명예! 영광! 용기!”

    “우리의 후손을 위하여!”

    집중하라, 생각하라, 계산하라. 할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기억하라.

    본래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젓겠지. 상대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움직임을 계산하고 미리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 꼬리를 봉해야하며 동시에 날아오는 독침까지 고려해야한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뇌가 녹아내리는 계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라트는 그 정도로 멈추지 않고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중이다.

    혹자가 이 상황을 봤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 놓아 말했겠지.

    그러나 불가능 하지 않아.

    나는 이 세계에서 수없이 정점에 이르렀던 자다. 단순한 강함을 야기하는 게 아니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관심을 가졌던 다양한 분야에서 정점에 올라섰다.

    그렇기에.

    그런 나라면 가능하다. 불가능조차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전부, 전부 씹어 먹어주겠다! 내 당장!」

    다시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독침을 어떻게든 피했지만, 그 사이에 만티코어가 절규와도 같은 고성과 함께 저 하늘 위까지 독침을 쐈다.

    이제 와서 공중에 쏘아져, 하늘 위로 빗발치는 독침까지는 막을 길은 없다.

    ‘꽤 많이 당했는데.’

    덕분에 만티코어의 앞에 있던 야만인들 중 상당수가 독에 중독 당했는지, 상태 이상 면역 포션을 마신다.

    이로써 10분 정도 후 아슬아슬했던 힘의 균형은 무너지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 전에 승부를 봐야한다.

    “만연하라!”

    포션을 마시느라 만티코어의 공격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거기에 휩쓸릴 뻔했던 야만인을 구한 라트는 만티코어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지쳤군.’

    꽤 많은 독침을 뿜어냈는지 꼬리의 힘이 풀려 축 늘어지는 것을 확인하자, 라트의 눈이 반짝인다.

    아직 그 몸뚱이는 멀쩡하지만, 확실히 꼬리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만연하라. 적색 늑대, 달리세요!”

    마지막으로 날뛰는 만티코어의 꼬리를 묶은 라트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던 적색 늑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겔로그, 너도!”

    이어서 어둠 속에 숨어든 겔로그까지 부른 후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이게 바로 라트와 함께 온 적색 늑대가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다.

    날개를 찢어놓은 겔로그에게 다시금 숨어있으라고 한 이유노라.

    간단한 답이다. 라트가 꼬리의 움직임을 막고,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시킨다면, 적색 늑대와 겔로그가 할 일은 바로 저 꼬리를 자르는 일이었다.

    만티코어의 꼬리는 1분 쯤 지나면 다시금 기운을 차릴 것이니, 시간이 촉박하다.

    라트는 자신의 마나가 거의 다 떨어졌음을 느끼고 인벤토리에서 급히 마나 포션을 꺼내서 그것을 마셨다.

    적색 늑대에게는 별다른 무기가 필요 없다. 그녀는 야만인의 특성상 신체에 오러를 불어넣지 않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전사다.

    보아라, 저기 푸른색 투기를 내뿜고 있는 도끼를. 당장이라도 저 꼬리를 잘라버릴 듯, 기세를 내뿜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겔로그는 다르다. 단주급이라면 모를까, 지부장 급이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는 없어.

    “후우.”

    그렇기에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염동력을 이용해 입 밖으로 내뿜어진 담배연기를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겔로그의 앞으로 보낸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것은 잡아먹는 자, 두 개의 검이 모여 신화급 아이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검.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는 전갈의 꼬리를 잘라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꼬리의 힘은 풀렸다지만, 아직 그 몸뚱이는 온전해.

    「버러지. 그 연기로 수상한 힘을 사용하는구나!」

    그렇다고 아까 전과 같이 생명의 연금술로 블랙 크토니움을 만들어 놈의 움직임을 봉할 수도 없다.

    만티코어와 같이 지능이 높은 괴물이 생명의 연금술이 어떻게 발동되는지 알아차린 이상, 만티코어의 몸 근처에 담배 연기를 보내는 순간 괴물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피할 것이다.

    생명의 연금술의 단점이다. 근접하지 않는다면, 아니 설령 근접한다고 해도 상대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전제 하에 이 힘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순간 몸을 묶을 수 없게 된다.

    알고 있었다.

    처음 생명의 연금술로 놈의 몸을 묶은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에 생명의 연금술을 다시 이용해 놈의 몸을 묶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생각해뒀지. 너의 몸을 잠시라도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어머니 라쉐의 이름으로 명하니, 분노하라 대지여!”

    [대지의 분노가 발동됩니다]

    어머니 대지가 라쉐의 권능 아래, 라트의 이름을 빌려 분노여 솟구친다.

    솟구친 대지가 뭉쳐 만티코어의 몸을 감싼다.

    이 현상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만티코어조차 차마 피할 수가 없었다.

    대지의 분노, 무려 라쉐의 이름을 빌리는 권능이다. 아무리 만티코어라고 해도 피하는 건 어렵고, 더욱이 빠져 나오는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충분하고도 남아.

    “후우.”

    담배 연기가 꼼짝하지 못하고 들썩이는 사자의 엉덩이를 향해 다가가자, 연금술사가 조소한다.

    만티코어를 구속하고 있는 대지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음에도 냉소한다.

    “마지막이다.”

    사자의 엉덩이, 정확히는 그 엉덩이와 꼬리가 연결된 곳에 담배 연기가 닿자, 라트는 밝게 웃었고.

    동시에 거대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연기가 걷히자, 꼬리와 엉덩이가 연결된 부분이 너덜너덜해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 그 일점만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으니까, 저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입니다!”

    명령이 떨어지자, 불과 어둠을 잡아먹는 한 쌍의 검과, 푸른빛 투지를 담은 거대한 도끼가 기다렸다는 듯, 교차하고.

    허무하게도 툭, 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지상에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왔다.

    「캬아아아악!」

    높게 울려 퍼지는 외로운 비명 소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케 해준다.

    「증오한다, 분노한다, 감히 나를 이렇게 만든 너희 인간을!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아니, 죽이지 않겠다.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고문해주마. 자식의 창자를 뽑아 그 어미의 목에 걸어주겠노라. 부모의 골수를 뽑아 그 자식에게 마시게 해주겠다!」

    그럼에도 무시무시한 것은 저 괴물이 아직까지 건제하다는 것이다.

    만티코어의 몸을 묶고 있던 대지가 금이 가 바스라진다.

    대지의 분노까지 사용한 것치고 놈은 아직도 팔팔하다. 날개를 잃고, 꼬리까지 잃었음에도 아직 사자의 형상을 닮은 몸은 상처 하나 없는 상황.

    “독에 중독된 자들은 즉시 뒤로 물러서라! 몸이 괜찮은 자들은 괴물의 공세에 대비해!”

    오히려 이성을 잃고 날뛴다는 점에서 전보다 흉악함과 포악함이 배로 상승한 기분이다.

    “괜찮은 거 맞아? 꼬리까지 잘랐지만, 아직 멀쩡하잖아. 어머니 라쉐의 힘도 부서지려고 한다고!”

    “겔로그, 넌 할 일을 다 했으니까 뒤로 가서 쉬어.”

    “예.”

    안타깝게도 지금부터는 지부장급 암살자인 겔로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빨리 대답 좀 해봐.”

    적색 늑대의 재촉에 라트는 잠시 말을 아꼈다.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저 괴물을 상대했지만, 지금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을 겁니다. 저쪽으로 가서 그들을 최대한 지켜주세요.”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소리인가. 여기까지는 설명을 듣지 못한 적색 늑대가 반문을 하려고 했지만, 라트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명령권이 아직 저에게 있는 게 맞으면 빨리 가세요.”

    그 확고한 말에 적색 늑대는 뭐라 말하기 위해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 만티코어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간다.

    ‘지금부터는 내가 해야 할 일이지.’

    만티코어의 공략 마지막. 그 머리를 처리하면 된다.

    「죽기 싫은 놈은 고개를 조아려라! 그리하면 죽여 달라고 빌 때까지만 가지고 놀아주마! 죽고 싶은 놈은 나와 맞서라!」

    대지의 분노의 효력이 완전히 사라지자, 만티코어가 광인과 같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누가 저 괴물의 머리까지 접근할 수 있을까. 접근한다고 해도 그 머리를 벨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지부장급 암살자는 무리다.

    그러나 단주급 암살자, 그 중에서도 몸을 감추는데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이가 나선다면 어떨까.

    “경화수월.”

    담뱃대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경화수얼을 발동시키자 라트의 몸이 공기와 같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야말로 거울 속에 피어난 꽃처럼, 물 위에 떠오른 달과 같이. 있으나 없는 존재가 된다.

    이성이 있는 만티코어라면 경화수월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 기척을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성이 없는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

    ‘간다.’

    저 멀리, 만티코어의 앞발에 채여 날아가는 이가 보인다.

    적색 늑대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야만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애당초 지금까지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이유도 라트의 존재 때문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후방으로 빠진 야만인들의 숫자도 반쯤은 되어보인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고 만티코어를 상대로 버티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역시 적색 늑대였다.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고 있는 도끼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만티코어에게 저항하고 있는 여전사의 위용에 눈이 부실 정도다.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롭게. 마치 구렁이가 담을 타고 가듯이, 부드럽게.

    점점 만티코어와의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만티코어의 발에 의해 생겨난 흙먼지 역시 불어닥친다.

    그런 흙먼지에까지 동화되어 움직인다.

    「제법이구나! 네년은 특별히 박제해서 나의 베게로 삼아주마!」

    주술사들과 드루이드들이 축복과 주술이 쏟아진다. 궁수들의 화살이 하늘에 빗발친다.

    그러나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고, 만티코어는 그저 묵묵히 앞발을 휘둘러 눈앞에 보이는 벌레를 짓밟는다.

    “이 괴물 새끼가!”

    바로 옆에서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야만인이 만티코어에게 달려들지만, 역시나 역부족.

    만티코어의 손톱에 의해 그 육신이 찢겨진다.

    그 움직임을 예측하라. 저 발에 닿지 않게. 몸에 접촉하지 않게 움직여라. 서서히 다가가, 조용히 머리를 노려야한다.

    팽팽하다고 말하기에는 만티코어에게 미안한 힘의 균형 사이를 줄타기를 하듯, 거닌다.

    이것이 현재로써 만티코어를 죽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레벨이 높았으면 또 몰랐겠지만.’

    만티코어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도록 하자.

    보통은 1차 메인 퀘스트에서 만티코어를 만난 순간 게임 오버다.

    플레이어가 천 명의 군사와 대동했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그 수상한 힘을 쓰던 버러지도 사라졌으니, 너희에게 승산은 없다! 아니, 그 버러지가 있었더라도 너희에게 처음부터 승산 따위는 없었다!」

    만티코어가 공격을 멈추고, 광소하며 울부짖는 사이 라트는 만티코어의 머리 앞에 도달해 손에 쥐고 있는 대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성스러운 은으로 만들어진 대검이 달빛을 머금어 고고히 빛나며,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 승산이 없어 보였어?”

    만티코어의 얼굴에 닿기 전, 경화수월이 풀려 모습을 드러낸 라트가 광소하는 만티코어를 비웃는다.

    “유감. 승산이 있었네.”

    「크아아아아!」

    살을 찢는 소리와 함께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시끄러워. 당장이라도 입을 닥치게 하고 싶다. 이 괴물의 입을 닥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까?

    윽박을 지르면 되나?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면 되나? 아니, 그게 아니지.

    “진짜로 마지막이다. 죽어.”

    대검의 손잡이 부분에 있는 방아쇠를 당기자, 검신에서부터 폭발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칼날이 붉게 물들었고.

    칼날보다 더욱 붉은 물방울이 날을 타고 흘러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름끼치는 비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주변은 적막함만이 감돌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예악으로 올린 글입니다....저는..자러갔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