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5화 (17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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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묘한 시기라니?”

    “겨울이 끝나긴 했지만, 아직 동물들이 움직이는 시기는 아니다. 이번에도 마땅히 대접할 게 없어 미안하게 됐다.”

    이번에도 대접할 게 없어서 그러는 건가? 그거라면 딱히 상관없다. 여기에 대접을 받으려고 온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대접할 것이 없어서 묘한 시기에 왔다고 하는 건가?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아니 이건 외부인인 너에게 말할 필요가 없겠네.”

    ‘무슨 일이 있나보네.’

    외부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래서 묘한 시기에 왔다고 한 건가.

    ‘길 안내 받을 수 있으려나.’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는 상황이라면, 길 안내를 해줄 인원을 차출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도가 있다면 혼자서 찾아갈 수 있겠지만 야만인들이 지도를 그려놨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옆에 남자는?”

    “일행이야.”

    “일행, 인가. 사람이 아니라 시체처럼 보이는데. 그를 구하려고 하는 건가?”

    겔로그가 죽어가고 있는 걸 알아차린 적색 늑대의 물음에 라트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구할 수 있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서 좋겠지만, 현재로써는 구할 수 있을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일단 따라와라. 몸 정도는 녹이게 해주지.”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곧바로 본론을 말하기는 조금 그래서 군말없이 적색 늑대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역시나 적색 늑대의 천막. 바닥에는 낯익은 호랑이 모피가 깔려있었다.

    “겨울은 잘 버텼어?”

    일단 대화를 조금 나눠볼 요량으로 말을 붙인다.

    “은인 덕분에 잘 버텼지. 네가 만들어준 목책은 우리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손봐주고 갈게.”

    “그럼 우리야 고맙지.”

    천막 안에 있는 모닥불이 타들어가면서 불똥이 튀어 바닥에 떨어진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며 고심하던 적색 늑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지?”

    “길 안내가 필요해서.”

    “길 안내? 어디로?”

    “차리친.”

    “차리친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않나? 그냥 도로를 타고 가면……. 설마 주인 없는 산맥을 통해서 갈 생각인가.”

    “맞아.”

    라트의 긍정에 적색 늑대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단언하는 그녀의 모습에 라트는 혀를 찼다. 이곳에서 차리친의 영역까지 주인 없는 산맥을 타고 가는 건 길은 꽤 험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적색 늑대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아까 묘한 시기에 찾아왔다고 했지? 무슨 일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거야.”

    묘한 시기에 찾아왔다는 말과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표현을 쓴 것을 보니 분명 무슨 일이 있다.

    “그것이…….”

    적색 늑대는 말을 끌며, 설명하기는 주저하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은 사냥철을 대비해야하는 시기다. 사냥감의 위치를 미리 확보하고, 움직여야 할 때지.”

    “그런 것치고 부족 내에 남자가 너무 많던데?”

    보통 사냥은 족장과 남자들의 몫이고, 지금은 대낮이니 남자들은 당연히 밖으로 나가있어야 한다.

    그러나 목책 위에서 화살을 겨누던 야만인들도 그렇고 안에서 자신을 맞이하던 이들 대부분이 남자였다.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듯.

    “좋은 관찰력을 가졌군.”

    라트의 말에 적색 늑대는 쓰게 조소한다.

    “네가 말했지. 전쟁이 시작되면 주인 없는 산맥의 몬스터들이 날뛸 거라고.”

    “그랬지.”

    주인 없는 산맥의 몬스터들은 이종족들과 싸우느라 어지간하면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종족들이 모두 숨은 지금은 상황이 달라. 싸울 상대를 잃은 몬스터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서 산에서 내려오겠지.

    “그 중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가 내려왔다.”

    “음?”

    야만인 부족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라고? 야만인의 전력은 꽤 강한 편이다.

    드루이드도 있고, 주술사도 있다. 거기에 야만인 전사의 힘은 막강하지.

    게다가 그들의 자존심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오우거가 내려왔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은 표현하지 않을 텐데?

    ‘도대체 무슨 몬스터가 내려온 거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군.”

    “그렇지. 자존심이 쌘 너희가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라고 단정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산맥에서 내려온 몬스터 중에 만티코어 두 마리가 섞여있었다.”

    미친. 적색 늑대의 말에 라트는 물론이오, 겔로그마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티코어라니, 강함은 몰라도 위험도만 따지면 드래곤 바로 아래에 있는 최상위 몬스터가 아닌가.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내려왔다고?’

    “설마 그런 몬스터가 내려올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놈은 인육에 맛이 들렸는지,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다.”

    만티코어, 사자의 몸에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얼굴. 전갈의 꼬리와 매의 날개를 가진 괴물.

    레벨만 300이 넘어가는 초특급 몬스터로 레벨도 굉장히 높지만, 만티코어가 위험한 이유는 특유의 높은 지능과 꼬리의 독 때문이다.

    “어째 이상할 정도로 경계를 하고 있더라니.”

    “다행인 점은 어느 날 한 마리가 보이지 않게 됐다는 점이지.”

    이대로라면 부족에 먹을 것이 없어져 전멸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만티코어를 피해 다른 곳으로 정착하자니 그 사이에 만티코어에게 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것까지 모두 설명한 적색 늑대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한 마리가 사라졌다고?”

    “그래. 분명 수컷과 암컷 한 쌍이었는데, 암컷이 사라지는 바람에 수컷이 미쳐 날뛰는 중이다.”

    “잠깐만, 그거 완전 이상하잖아.”

    적색 늑대의 말에 라트는 의문을 느꼈다.

    인육에 맛 들린 만티코어가 굳이 사냥감이 몰려있는 곳을 내버려두고 갑자기 사라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순간 공기를 찢어버릴 것 같은 기세를 가진 광포한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있는 것 같음에도 심장이 저려온다.

    “놈이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돌아버리겠네.’

    “지금이 낮이라 꽤 떨어져있는 거다. 밤만 되면 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만티코어가 저렇게 목책 밖에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주인 없는 산맥을 통해 차리친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그러니 주인 없는 산맥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너희는 어쩌려고.”

    라트야 주인 없는 산맥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적에게 들킬 것을 감안한 채 도로를 이용해 차리친으로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야만인들은 갈 곳이 없다.

    “죽기 전에 만티코어와 싸워볼 생각이다.”

    싸워볼 생각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말 속에 어째서 일말의 희망조차 담겨있지 않은가.

    가장 좋은 방법은 이대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내버려두자니, 기껏 엘프에게 닿을 수 있는 끈을 놓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는 만티코어 한 마리의 행방도 수상쩍어.

    “엘프하고는 아직 연락이 안 닿았지?”

    “저런 놈이 길목을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럼 도와주지.”

    엘프를 만나서 하이엘프가 어디있는지를 물어보기 위해서라도, 도와줄 수밖에 없다.

    “뭐라고?”

    “예?”

    라트의 말에 겔로그와 적색 늑대가 동시에 의문을 표했지만, 라트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도와주겠다고. 나는 엘프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하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목숨을 걸고 도와주겠다는 말이냐?”

    고작 그런 이유라니. 마력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오러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목숨 정도는 걸어야 수지가 맞지.

    그렇기에 고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채,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적색 늑대를 보며 혀를 찼다.

    “나한테는 그게 목숨보다 중요한 이유야.”

    퀘스트가 이렇게 꼬이고 있는 이상, 앞으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만티코어도 마음에 걸려.”

    “마음에 걸리다니요?”

    “아니 그렇잖아, 생각해봐. 암살자조차 해독할 수 없는 독 중 하나가 만티코어의 독이잖아.”

    라트의 말에 겔로그의 입이 벌어진다.

    “게다가 트렌세르노에게 협력하고 있는 자 중 크룩스가 있잖아.”

    “그 말은 트렌세르노가 크룩스를 이용해서 만티코어를 테이밍했다는 말이십니까?”

    “추측일 뿐이야. 그러니까 조사가 필요해.”

    만약 트렌세르노가 암살자들을 협박하기 위해 만티코어의 독을 사용했다면 골치 아픈 일이다.

    상태 이상 회복 포션을 마신다고 해도 만티코어의 독은 해독할 수 없다.

    상태 이상 면역 포션을 마신 상태에서 만티코어의 독에 걸린다면 포션의 지속 시간이 끝난 순간 만티코어의 독이 활성화된다.

    그 정도로 위험한 만티코어의 독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

    만티코어는 독을 사용해 사냥감을 마비시키고 그 고기를 먹는다. 독에 절여진 사냥감을 먹어도, 만티코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피에 항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 만티코어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만티코어의 피를 먹는 것 말고 그 이외에 해독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크룩스라면 차리친에 몬스터 테이머일 것이고, 트렌세르노는 누구인가.”

    “차리친에서 반란을 일으킨 놈이야. 전쟁 통에 인간 세상이 조금 복잡해서.”

    “그렇군.”

    적색 늑대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 라트는 혀를 찼다.

    결국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그리고 엘프와의 끈을 만들어두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주인 없는 산맥을 통해 차리친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만티코어를 사냥할 필요가 있다.

    “작전을 짤 필요가 있겠어. 적색 늑대, 현재 부족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소집해줘.”

    “……그 말은 마치 네가 사람들을 총괄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정답.”

    당연한 말이다. 전략에 관련된 재능은 하나도 없지만, 이 머리에 수많은 전략이 내장되있으니까.

    그 중에는 당연하게도 강대한 몬스터를 레이드하는 방법도 숙지되어있다.

    “그걸 내가 허락할 이유는?”

    “내가 도와준다면 부족민이 살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나잖아. 이럴 때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겠어?”

    “그것도 그렇군. 어머니 라쉐의 축복을 받은 네가 도와준다면 확실히 승산이 있을 지도 모르지. 푸른 바람!”

    라트의 설득에 납득이 갔는지, 적색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고 푸른 바람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싸울 수 있는 부족민들을 모두 소집해.”

    건장한 남성이 천막 안으로 들어오자 적색 늑대는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요? 아직 만티코어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요.”

    “싸우겠다는 말이 아니다. 은인께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시는데, 그 전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신다.”

    “아아, 이해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라쉐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타이틀 덕분인지, 그게 아니면 적색 늑대의 명령 덕분인지, 푸른 바람은 곧바로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길 수는 있나?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지만, 조금 불안해서 말이다.”

    “만티코어가 한 쌍이었다면 무리였겠지만, 진짜로 한 마리밖에 없다면 승산은 있어. 물론 그전에 준비가 좀 필요하겠지만.”

    인벤토리를 열어 상태 이상 면역 포션이 몇 개가 있는지를 살폈다.

    “이쪽은 오늘 내로 준비가 끝난다.”

    “내가 안 왔어도 진짜로 싸워보려고 했나 보네.”

    “이대로 굶어 죽으나, 만티코어에게 죽으나 결과는 같으니까.”

    적색 늑대의 대답에 라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상태 이상 면역 포션의 개수를 확인하고 인벤토리를 닫았다.

    “일시적으로 만티코어의 독이 통하지 않는 포션을 만들어야하는데, 혹시 주술사한테 재료가 있는지 물어봐줄래?”

    상태 이상 면역 포션에 필요한 재료를 이야기하자, 적색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서는 흔한 재료니 아마 있을 거다. 차라리 주술사에게 직접 가는 게 어떤가?”

    “그럼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하고 안내해줘.”

    “그렇게 하지.”

    ‘시간이 없으니, 가능하다면 오늘 밤 내로 만티코어를 처리한다.’

    적색 늑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라트는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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