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4화 (17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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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어차피 짐을 쌀 것도 없다. 어자간한 장비는 전부 인벤토리에 넣어놨으니까. 문제는 엘리와 케이네지. 또 말없이 사라져버리면, 분명 화를 낼 거다.

“루아타 공작님께서 엘리와 사저에게 국왕 전하와 공작님께서 저를 억지로 보냈다고 잘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조건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조건을 달았다. 저번에는 모든 원망을 라트가 받았으니, 이번에는 루아타 공작이 모든 원망을 받을 차례가 아닌가.

엘리의 분노가 눈에 보였는지, 루아타 공작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지.”

“그럼 하겠습니다. 당장 출발할 테니, 저 자를 감옥에서 꺼내주십시오.”

루아타 공작의 손에 의해 겔로그가 밖으로 꺼내려고 하자 그는 감옥 안에 다른 이들이 눈에 밟힌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핏빛 그림자가 이쪽에 협력한다면 저들도 당연히 풀어줄 것이고, 일이 틀어지지 않는 한 고문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루아타 공작이 걱정 말라는 듯이 말하자 그제야 겔로그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떨어진 별.”

“부르셨습니까?”

“내가 없는 동안에는 루아타 공작님과 미르차르드님의 명령에 따르도록.”

“예, 알겠습니다. 부디 잘 다녀오시길.”

떨어진 별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까 속죄의 주박은 어떻게 됐지?’

분명 어젯밤 떨어진 별은 그림자 까마귀 중 포로로 잡힌 이들에게 속죄의 주박을 걸기 위해서 왕성으로 왔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가.

“전부 제 명령에 따라 일을 하러 갔습니다. 아마, 셀룬에 있는 첩자들은 일주일 내로 전부 잡힐 겁니다.”

“그런가. 이 자의 말이 맞다하면 그들도 별 수 없이 협력하고 있을 테니까, 고문은 자중하도록.”

겔로그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루아타 공작이 사용한 마법에 별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혹시 모르는 일이다. 겔로그는 이 정보를 진짜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이 정보가 가짜일 수도 있다.

아직 의심을 완전히 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으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동족 업자로써, 이런 꼴은 보고 싶지 않아요.”

떨어진 별이 알았다고 말하면서, 약간의 분노를 보인다. 독으로 암살자를 협박해서 이용하다니. 같은 암살자 입장에서 분노를 느끼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인간은 추악하기 짝이 없군요.”

떨어진 별이 오로지 라트의 귀에만 들리게끔 조용히 말하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

“약은, 혹시 도망칠수도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지.”

“그렇게 하십시오.”

떨어진 별에게서 가루가 들어있는 병을 받아낸 라트는 오케만 국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리친 왕국의 국경 근처에 있는 성까지 포탈을 이용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혹시나 위험하면…….”

라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케만 국왕은 말끝을 흐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치게나.”

도망이라니. 임무를 내려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무안함이 들어, 뒤통수를 긁어 그것을 상쇄시킨다.

“명에 따릅니다, 전하.”

그것을 끝으로 겔로그에게 얼굴을 숨길 수 있는 후드를 넘겨준 라트는 그와 함께 왕성에서 벗어났다.

“그러면 포탈을 타고 호센 성으로 가십니까?”

호센, 주인 없는 산맥과 맞닿아 있지 않고 차리친, 아니 옛 차리친의 영토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아니 호센은 너무 위험해.”

시종장 덕분인지, 아니면 아직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인지, 라트는 겔로그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겔로그는 라트의 하대가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상대가 아무리 타국의 귀족이라고 하지만, 귀족은 귀족이다.

“우리는 로델세나 성으로 간다.

로델세나 성은 셀룬의 동남부에 있어, 주인 없는 산맥과 붙어있으면서 옛 차리친의 영토와 가장 가까운 성이었다.

“주인 없는 산맥이 붙어 있어 길이 험하지 않습니까? 아, 아니군요. 현명하십니다.”

그렇기에 의문을 가졌던 겔로그는 이내 라트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라트를 현명하다고 평가한다.

“주인 없는 산맥을 통해서 침투하실 생각이시군요.”

“그래.”

호센에는 분명 첩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호센으로 이동해서 차리친의 영토로 접근하려고 들면, 분명 이쪽의 소식이 알려지겠지.

반대로 로델세나 성은? 로델세나 성도 마찬가지로 첩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설마 주인 없는 산맥을 통해서 그쪽으로 침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길은 알고 계십니까?”

주인 없는 산맥의 길은 굉장히 험하다. 나무가 빼곡하게 자라 있어 방향 감각을 어지럽히는 것은 기본이고, 기후조차도 엉망이다.

거기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강함도 무시할 수 없지.

어지간한 강자라고 해도 홀로 주인 없는 산맥으로 가는 건 꺼려한다.

가장 문제는 길이 개척되지 않았고, 지도도 없기 때문에 까닭 잘못하면 조난자가 된다는 점이다.

“나는 길을 모르지만,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알고 있지.”

라트 본인 역시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주인 없는 산맥의 길을 찾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길을 알고 있는 자는 알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슬며시 반지를 바라본 라트는 미소를 지었다.

현재 라트가 끼고 있는 반지는 총 세 개다. 하나는 런트의 왕성에 있는 비밀 창고에서 얻은 죽음을 맞이한 자의 반지고, 다른 하나는 어젯밤에 얻은 운명이 만든 반지다.

그리고 마지막 반지가 바로 약 1년 전 셀룬의 영토 바로 아래의 주인 없는 산맥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야만인의 족장, 적색 늑대가 준 붉은빛 나무 반지였다.

“누구입니까?”

“야만인.”

당연하게도 라트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반지는 붉은빛 나무 반지였다.

“에, 예? 야만인과 친분이 있으셨습니까?”

“조금은.”

조금 수준이 아니긴 하지. 적색 늑대 부족의 우호도를 올릴 수 있는 퀘스트에서 뼈 목걸이를 대략 1500개 정도 줬으니까.

게다가 위험이 닥칠 것도 미리 알려줬고, 그들의 목책도 무색의 연금술로 손봐줬다.

이 정도라면 분명 라트를 옛 차리친의 영토까지 안내해주겠지.

‘가는 김에 엘프 쪽에서 소식이 들려왔는지도 물어봐야지.’

하이 엘프와 만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엘프와 접촉해야한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적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차리친의 영토에 숨어들 겸 적색 늑대 부족에 들를 생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어디까지 가십니까?”

“로델세나. 뒤에 있는 남자도 같이 간다.”

“알겠습니다.”

포탈에 도착해, 포탈을 관리하고 있는 마법사에게 골드를 건넨다. 그러자 마법사는 몇 가지 사항을 간단히 기입한 뒤 라트와 겔로그에게 포탈을 이용해도 좋다고 알려온다.

그렇게 순식간에 로델세나 성까지 이동한 라트는 야만인 부족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에 겔로그를 바라본다.

“힘들지 않나?”

“아직은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겔로그는 조금씩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암살자가 겨우 이 정도 걸었다고 지칠 리는 만무하니, 이건 분명 독의 영향인 게 확실하다.

“이 정도면 며칠이나 먹는 양이지?”

품속에서 떨어진 병이 건네준 약병을 보이자, 겔로그는 병에 담긴 가루의 양을 가늠한 후 입을 열었다.

“그 약은 2일에 한 번씩 먹어야 합니다. 병 당 2번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니, 이주일은 버틸 수 있겠군요.”

“이주일이라.”

2주, 핏빛 그림자의 아지트에 도착해서 겔로그가 단주에게 사정을 설명할 시간만 생각하면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도와주겠다고 나선 이가, 게다가 타인에 의해 협박을 당해 강제로 일을 하는 이를 죽게 내버려두는 건 찝찝하다.

“일단 한 병 가지고 있도록. 위급하다 싶으면 먹어라. 그리고 말을 사서 가도록 하지.”

당연하지만, 순간적인 속도만 가늠하자면 말보다는 라트나 지부장급 암살자의 속도가 더 빠르다. 그러나 그것을 항상 유지하는 건 또 다른 일이지.

하루에 얼마나 이동할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면 말을 타고 가는 게 훨씬 낫다.

라트는 마구간에 들러, 튼실한 말 두 마리를 구입해, 그 중 한 마리를 겔로그에게 넘겼다.

“말은 탈 줄 알겠지?”

“예.”

겔로그가 약을 먹은 후, 말을 타는 것까지 바라본 라트는 자신 역시 말에 탑승하고는 적색 늑대 부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단 리젠 존으로 가서.’

대략 1년 전에 방문했기에 길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야만인 리젠 존으로 간다면 기억이 나겠지.

“조금 더 가면 야만인이 보이겠지만, 그쪽은 내가 아는 야만인과 적대적인 부족이다. 타지인을 보면 공격하는 습성이 있으니 미리 조심하도록.”

“예.”

NPC는 리젠 존의 개념을 모르기에 겔로그가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줬다.

“저쪽에서 기척이 느껴집니다.”

겔로그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야만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쪽을 공격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아, 맞다. 내 레벨이 그 때랑은 차원이 다르게 높구나.’

1년 전, 리젠 존에서 노가다를 하던 때와 달리, 라트의 레벨이 너무 높았다. 리젠 존에 있는 놈들은 몬스터가 아닌 몹이다.

몹은 플레이어가 강함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레벨을 인지할 수 있다.

야만인이 선공 몹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레벨 차이가 나면 덤벼들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경계는 하고 있지만, 덤비지 않는군요.”

“시간낭비하지 않아도 돼서 좋네. 가자.”

이곳에 도착하자, 적색 늑대 부족까지 가는 방향이 어렴풋이 떠오른 라트는 말을 몰았다.

잠시 후, 목책이 눈에 들어온다. 희미했던 기억이 맞았어. 목책은 조금 헤져있었지만, 멀쩡한 편이었다.

적색 늑대 부족이 어떻게든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뜻이겠지.

“정지!”

목책 근처에 도착하자, 활을 들고 있는 야만인 중 한 명이 라트를 향해 정지 신호를 보낸다.

그 모습이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 라트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손을 흔들었다.

“푸른 바람님. 1년 전에 라쉐의 축복을 받았던 이방인을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그가 목책을 수리해준 덕분에 몬스터의 침공도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푸른 바람, 적색 늑대와 가깝게 보이던 남자다. 라트의 생각대로라면 그는 분명 이 부족의 2인자였다.

“저 기억 안나십니까?”

“음? 아, 이런. 다들 활을 내려라! 은인이 오셨다!”

라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던 푸른 바람이 앗차 싶어서 활을 내리고 주변에 있는 야만인들에게 활을 내리라고 말한다.

푸른 바람이 라트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순식간에 목책의 문이 열리고, 몇몇 야만인들 특히나 드루이드로 보이는 자들이 라트를 환대한다.

“묘한 시기에 왔군.”

그리고 적색 늑대 부족의 족장, 적색 늑대가 까무잡잡한 피부에 거친 붉은색 머리카락을 뽐내며 라트에게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2편이 끝입니다..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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