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3화 (17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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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케이네를 방까지 안아다주고, 침대에 눕힌 라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자 그러면. 이제 이걸 까야지.’

    이제 그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호르토 공작은 잡고 얻은 랜덤 아이템팩(전설&신화)을 깔 시간이다.

    ‘신화 등급이 나오면 좋겠지만.’

    신화 등급 아이템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전설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크겠지.

    게다가 생명의 연금술로 써먹을 수 잇는 무기가 나올 확률도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트는 주체하지 않고 아이템팩을 찢자, 새하얀 빛이 방을 감쌌다.

    [축하드립니다, 운명이 만든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알림창이 나타나자, 라트는 그것을 다시 한 번 읽느라 허공에 나타난 반지를 잡지 못했고, 당연하게도 반지는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운명이 만든 반지라고?’

    모르는 아이템인가? 아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템이다. 이것은 메인 퀘스트 종반부에 선택할 수 있는 엔딩 중에서 모리아를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는 반지였다.

    ‘왜 이런 걸 지금?’

    당황을 감추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져있는 반지를 주워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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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운명이 만든 반지

    등급 : 신화

    형태 : 반지

    특수 효과 : 파멸 회피, 올스텟 + 10

    인챈트 : -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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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운명이 만든 반지잖아.”

    운명이 만든 반지, 말 그대로 모리아가 만든 이 반지의 특수 효과는 심플하면서도 굉장하다.

    특수 효과의 쿨타임이 무려 한 달에 이르지만, 단 한 번 착용자의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

    문제는 체력까지 회복시켜주는 게 아니라 단순히 가사 상태에 빠져 적이 사용자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지.

    ‘좋기는 한데.’

    단 한 번이라지만, 가사 상태에 빠져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건 굉장한 메리트다. 그러나 운명이 만든 반지를 생명의 연금술로 이용해먹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할 줄 알고 생명의 연금술로 반지를 만들어서 착용하겠는가.

    ‘일단 끼고 있자.’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반지를 낀다. 올스탯 10의 효과도 받을 수 있으니까.

    갑자기 며칠 동안 피지 못했던 담배가 땡겨 인벤토리에서 담뱃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아.”

    담배연기가 폐를 채우자 조금 편안함을 느낀다.

    “한 번 만들어볼까.”

    문뜩 혹시나 운명이 만든 반지를 생명의 연금술로 써먹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봤다.

    생명의 연금술을 발휘하자 담배 연기가 사라지고, 허공에 반지 하나가 떨어진다. 운명이 만든 반지는 정상적으로 만들어졌다.

    “미친.”

    그런데도 라트의 입에서는 욕설이 나왔다.

    ‘마나를 거의 다 잡아먹잖아.’

    공평함의 검도 마나를 1/2 정도 밖에 잡아먹지 않는데 겨우 반지 쪼가리 하나 만드는데 마나가 거의 사용될 줄이야.

    이래서는 마나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한 전투에서 써먹기도 어렵다.

    “에휴. 망캐가 그렇지.”

    이번 아이템은 꽝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절로 푸념이 나온다.

    “다 피고 잠이나 자야지.”

    창문 밖으로 담배 연기를 뱉으며 생명의 연금술로 만든 운명이 만든 반지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걸 지켜보던 라트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

    “저를 왜 이곳으로 부르신 겁니까?”

    다음 날 아침, 왕성의 지하 감옥으로 불린 라트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루아타 공작과 오케만 국왕, 그리고 떨어진 별을 바라보았다.

    첩자의 신문은 분명 오케만 국왕에게 맡겼다. 그들에게 정보를 얻었다면 라트 뿐 아니라, 다른 귀족도 불러야하지 않나.

    “제가 저들한테 재미있는 정보를 알아냈거든요.”

    “재미있는 정보?”

    떨어진 별의 말에 눈을 찌푸린다. 정보를 얻었다면 다른 귀족도 불러야지 어째서 라트만 불러낸 이유가 무엇인가.

    “저들의 말에 따르면 핏빛 그림자가 본인들의 의지로 트렌세르노를 따르는 게 아니라고 하는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핏빛 그림자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트렌세르노가 그렇게까지 정보를 통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핏빛 그림자가 본인들의 의지로 트렌세르노를 따르는 게 아니라고? 그럼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아니 암살자 길드가 약점을 잡힐 구석 있던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설명해라.”

    루아타 공작은 감옥 안에 갇혀있는 첩자 중 한 명에게 설명을 하라고 명한 후,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마법을 사용했다.

    루아타 공작이 사용한 게 무슨 마법인지 아는지, 첩자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핏빛 그림자의 지부장 중 한 명입니다.”

    “지부장?”

    ‘지부장을 잡아왔다고?’

    라트는 놀란 표정으로 떨어진 별을 바라보았다.

    암살자의 생포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이 생겨, 혹시나 잡힐 것 같으면 자결을 하는 게 그들의 원칙이니까.

    그래서 당연히 첩자들은 모조리 일개 잡졸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습니다.”

    확답하는 남자를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 루아타 후작이 사용한 마법은 남자가 진실을 답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믿을 수밖에 없잖아.’

    혀를 차면서 첩자를 바라본다.

    “이름이 뭐지?”

    “겔로스라고 합니다.”

    “핏빛 그림자가 원해서 트렌세르노에게 협력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겔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들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핏빛 그림자의 단주가 트렌세르노는 만난 건 약 6개월 전, 그러니까 왕국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 가지 일을 의뢰하고 후한 보수를 줬기에 그저 좋은 고객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면 갈수록 의뢰하는 일이 수상해서 핏빛 그림자는 단주의 명령 아래 트렌세르노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아낸 게 있어?”

    핏빛 그림자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그렇게 기가 막힌 정보전을 펼친 트렌세르노의 뒤를 캘 수 있었을까? 반신반의할 뿐이다.

    “처음에는 허탕이었습니다. 그러자보다 못해, 단주님께서 직접 나서셨고.”

    단주까지 나선 건가. 그렇다면 그의 정보를 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직접 나서서 어떻게 됐는데.”

    “단주님께서는 무려 2주 끝에 그의 과거를 알아내셨습니다.”

    과거를 알아냈다니, 그건 굉장한 일이다. 랜덤 NPC의 과거를 알아냈다면 혹시나 그의 약점도 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었나?”

    “그 비열한 자식이 단주님의 아드님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상투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로 암살자들이 트렌세르노를 따를 이유가 있나?

    필요하다면 가족까지 처낼 수 있는 것이 암살자가 아닌가.

    “저희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단주님의 부인 분께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단주님은 물론이오, 지부장급 암살자들에게 모두 독을 먹인 이후였습니다.”

    “독?”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라트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겔로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이게, 뭐야…….”

    “홀리시여, 맙소사.”

    오케만 국왕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겔로스가 상의를 벗자, 그의 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으로 물들어 썩어빠지고 있는 그 몸뚱이는 마치, 시체와 같았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당장 죽을 것 같이 보이긴 합니다만,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멀쩡합니다.”

    씁쓸히 말하는 그의 말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는다. 독을 이용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런 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잡혔으니 저는 곧 죽을 것 같습니다.”

    “단주의 부인이 원망스럽지 않나?”

    “부인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이셨을 테죠. 협박 때문에 제정신을 차리기도 힘드셨을 테고요. 저도 아들이 있는 몸이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부인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는 겔로스는 그 순간, 눈을 날카롭게 찢었다.

    “그러나 저희를 이딴 독으로 이용하는 놈은 원망스럽습니다. 죽기 싫으면 말을 따르라니, 저희는 암살자지 개가 아닙니다.”

    “해독제는? 독은 너희 전문이잖아. 만들어볼 생각은 못했나?”

    독은 암살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암살 방법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암살자는 독을 제조하는데 프로라고 할 수 있다.

    “저희 수준으로는 해독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트렌세르노가 자신의 말을 듣는다면 언젠가 해독제를 준다면서 독이 장기까지 퍼지지 않는 약을 꾸준히 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암살자들조차 해독할 수 없는 독이라니? 라트는 믿기지가 않아서 떨어진 별을 바라보았다.

    “저런 독은 저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뱀의 심장 단주라면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은 제국으로 넘어갈 방법도 없으니.”

    뱀의 심장, 셰크티 제국에 있는 다른 암살자 길드 중 하나로 그곳의 단주는 모든 암살자 중에서도 독을 가장 잘 다루는 놈이다.

    그에게 데려가면 저 독의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번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으니 셰크티 제국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

    라트는 살짝 눈을 돌려 오케만 국왕을 바라보았다.

    일국의 왕이 직접 부탁한다고 해도, 무리겠지. 제국의 권력은 그 정도로 막강하다.

    그리고 어째서 라트를 혼자 이곳에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독제를 얻고, 단주의 아들을 구하면 핏빛 그림자는 트렌세르노를 죽이려고 하겠지?”

    “당연합니다.”

    “됐어, 그럼.”

    겔로스의 확답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루아타 공작과 오케만 국왕을 바라보았다.

    “제가 가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라트의 물음에 오케만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차르드 후작의 말에 따르면 자네가 그림자 까마귀의 단주가 사용하던 신묘한 은신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맞나?”

    “그렇습니다.”

    하루에 한 번, 지속 시간은 겨우 20초 뿐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것에 거짓은 없다.

    “원래는 이 자를 보낼 생각이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선동을 막아야죠. 그렇죠, 엔스리드 백작님?”

    옳은 말이다. 현재 셀룬에 있는 유일한 암살자이자, 정보원인 떨어진 별은 이곳에서 혹시나 일어날 선동을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건 라트 뿐. 타국에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개인의 무력도 상당히 강력한 편에 은신술까지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오케만 국왕과 루아타 공작은 라트의 지휘 능력을 모른다, 그러니 라트아 개인의 무력은 강하지만, 병사를 인솔하는데는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라트만큼 옛 차리친 왕국의 영토에 숨어들기에 적합한 자가 어디 있는가.

    “전쟁 준비는 거의 다 끝나가고 있지만, 이 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쪽의 승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하더군. 그러나 전쟁을 피할 수는 없어.”

    “핏빛 그림자를 트렌세르노의 손아귀에서 핏빛 그림자가 벗어날 수 있게 한다면 승률이 올라가겠지.”

    “승률은 올라가겠지만, 제일 좋은 건 핏빛 그림자가 이쪽에 협력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쪽이 저희에게 협력을 할까요?”

    “제가 단주님께 편지를 쓰겠습니다.”

    겔로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아, 한 사람에게 협박을 당해 이용당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억울했던 모양이다.

    “핏빛 그림자의 단주가 너의 편지가 분명하다고 믿게 할 방법이 있나?”

    “그, 그건.”

    편지를 날조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라트의 물음에 겔로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저를 데려가주십시오.”

    “뭐?”

    “핏빛 그림자의 아지트까지 귀공을 안내하겠습니다. 죽더라도, 단주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죽겠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죽는 몸을 이끌고 차리친까지 가겠다고 말하는 겔로그의 말에 라트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까지 걸어갈 체력은 있고?”

    “아지트에 아직 복용할 약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충분할 겁니다.”

    “아, 이게 그 약이었나보네요. 뭔지 몰라서 일단 챙겨는 뒀는데.”

    떨어진 별이 품 속에서 가루가 들어있는 병 세 개를 꺼내들었다. 대도, 떨어진 별께서 그걸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예, 그겁니다. 그게 있다면 귀공을 안내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겠나, 엔스리드 백작. 그대에게 부탁을 하긴 했네만, 위험한 일이니 명령은 내리지 않겠네. 그대가 선택하게.”

    선택을 하라는 국왕의 말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말해서야 거절할 방법도 없다.

    ‘승률을 올릴 수 있으면 해야겠지.’

    가능하면 핀스크 왕국과 전쟁을 하기 전까지 전력을 아끼고 싶은 것이 라트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전쟁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이 일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겠습니다.”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케만 국왕과 루아타 공작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을 하나 말하자 루아타 공작의 얼굴에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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