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2화 (172/229)
  • 0172 / 0229 ----------------------------------------------

    1부

    미르차르드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니, 이 뒤는 후작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귀족 가문에서 양자나 양녀를 받아드리는 건 흔한 일이다.

    특히나 후계자가 없는 미르차르드와 같은 귀족은 더더욱 그렇다. 이 경우 혈통의 정통성이 야기되기는 하지만, 리오스가 오러 마스터에 오른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귀족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누가 오러 마스터한테 입을 털겠어.

    “누나는 아직 안 자고 있죠?”

    “케이네님이라면 연구실에 계실 겁니다.”

    그럼 이제 한 명 남았네. 라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르차르드에게 리오스를 잘 부탁하다고 말하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케이네가 있을 연구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연구실에 있다고 하지만, 어디 있을까? 스승님이 돌아가신 이후 슬픔을 털어낸 케이네가 가장 먼저한 것은 스승님의 연구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스승님이 진행해왔던 연구를 자신이 맡아야한다고 했던가.

    제스맹이 남긴 유서에도 케이네에게 자신의 연구를 맡긴다고 쓰여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다. 현재 케이네는 자신이 사용하던 연구실 말고도 스승의 연구실도 자신의 연구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제스맹의 연구실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어디있는지 정확히 물어볼 걸.”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미르차르드에게 돌아가기도 그래서 우선 가장 가까운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누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이 연구실은 꽝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응, 왜 부르니?”

    케이네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좋았네.’

    까닥 잘못하다가는 길드를 전부 돌아다닐 뻔했다는 생각과 함께 라트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뭐하고 있어?”

    “라트가 마력으로 작동하는 인형을 만들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선물로 주려고. 봐봐!”

    “오.”

    케이네가 가리킨 곳에는 은색으로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있는 인형이 보였다. 실에 걸려있지 않았다면, 기사라고 착각했을 모습이다.

    “실험품이긴 하지만, 우선 이렇게 만들어봤어. 어떠니?”

    “좋은데? 인형은 뼈대가 원체 약하니까, 갑옷으로 무장시켰구나.”

    “아니야.”

    라트의 말에 케이네는 활짝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더니 인형이 있는 쪽으로 끌고 갔다.

    “만져봐.”

    “어?”

    케이네의 말대로 갑옷을 입고 있는 인형을 만진 라트의 얼굴에 의문이 서린다. 이건 갑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잖아.

    “갑옷 째로 인형을 만든 거야?”

    “정답! 누나는 라트가 바로 보고 맞출 줄 알았더니, 못 맞췄네? 헤헤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활짝 웃는 케이네를 바라본다. 소름이 끼친다.

    당연히 뼈대가 있는 인형에 갑옷을 입힐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인형의 뼈대를 두껍게 만들면 인형이 그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러나 인형의 몸 자체를 갑옷으로 만들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갑옷 사이사이에 관절을 만들어서 인형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어.’

    케이네가 만든 인형을 자세히 살피던 라트는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입을 쓰다듬었다.

    ‘이건 인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한 건데.’

    케이네에게 이런 지식이 있던가? 평생 연금술만 배워온 케이네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포션을 만드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알베도 학파조차도 인체를 자세히 공부하지 않는다. 그저 효과가 좋은 포션을 조합할 뿐, 그것이 인체에 무슨 작용을 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건 당연했다.

    알 필요가 없으니까. 당장 배워야할 것이 산더미 같이 많은데 사람의 인체까지 공부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관절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했어?”

    “그건 비밀.”

    살짝 웃는 케이네의 모습이 조금 무섭게 보인 것은 어째서일까. 앞에 있는 여성이 진짜로 케이네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렇게 빤히 바라보면 부끄럽잖니.”

    아까 한 생각은 취소. 양손을 뺨에 가져다대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보니, 앞에 있는 여성은 케이네 폰 글란츠가 확실했다.

    “진짜로 안 알려 줄 거야? 이런 관절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루아침에 만든 거 아니야. 일주일이나 걸린 작품이란다.”

    이런 관절을 익숙하게 만들려면 최소 1년은 인체의 관절에 대해서 공부해야했다.

    어깨와 팔꿈치 쪽은 물론이오,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을 새겨 진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놓지 않았는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잖아.”

    “으응~ 그래도 일단 비밀로 해둘래. 나중에 알려줄게. 라트도 저번에 누나 몰래 위험한 일을 했잖니.”

    찔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라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을 그런 식으로 빠져나갈 줄이야.

    ‘누나가 그러니까 누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두지 않은 과거의 나한테 짜증을 느끼게 되잖아.’

    케이네 폰 글란츠, 사라이 왕국의 유일한 오러 마스터 루브그흐 폰 글란츠 백작의 여식으로 어머니는 케이네를 낳다가 사망.

    위로는 망나니 오빠가 있고, 어릴 때부터 그 오빠에게 구박을 받고 글란츠 백작에게는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겨우 11살에 정략결혼으로 가문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찾겠다면서 셀룬으로 도망쳐서 제스맹의 눈에 들어 연금술사가 되었다.

    그게 라트가 알고 있는 케이네의 정보였다.

    물론 그 외에도 소악마와 같이 장난을 좋아하지만, 굉장히 착하고, 부끄러움도 잘 타지만, 언제나 자애롭다는 점도 알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니까 라트는 그녀가 미래에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 관심이 없는 NPC였으니까 자세히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조금 전 케이네의 얼굴에 드러났던 스산한 웃음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위험한 짓 하거든 가만히 안 내버려둔다.”

    그러나 당장은 더 이상 캐물을 수가 없게 됐으니, 으르렁 거리며 경고를 해둔다.

    “가만히 안 내버려두면 어떻게 할 건데? 꺄아악!”

    “이렇게 할 거야!”

    케이네를 품에 안고 움직일 수 없게 구속한 후 그 가벼운 몸을 들어 올리자, 케이네는 즐겁다는 듯 비명을 지른다.

    케이네의 약간의 알코올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실험실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배었다고 생각했다.

    “라트는 멋대로 위험한 일을 해놓고, 누나한테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응. 난 그런 꼴 절대 못 봐.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아.”

    케이네나 엘리가 위험에 처하는 꼴은 절대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음, 뭐 좋아. 라트가 이기적으로 변할 정도로 누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케이네는 라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걱정 마. 라트랑 달리 누나는 라트를 너무 사랑해서, 위험한 일을 하게 된다면 라트에게 반드시 말해줄게.”

    “그 말은 숨기는 게 있긴 하다는 소리지?”

    “아마도?”

    의문에 의문을 답하고 케이네는 진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밤도 늦었는데, 피곤하니까 자야되지 않아?”

    그 이상, 이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돌려 말하는 케이네의 작태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유가 있기는 할 것이고, 언젠가 라트에게 반드시 알려주기는 할 것이다. 케이네는 약속을 지키는 여자니까.

    조금 걱정되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우선은 그냥 넘어가자고 생각한 라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번 전쟁 말인데.”

    “따라오지 말라는 거지? 그럴 생각이었어.”

    너무나 간단하게 알았다고 대답하는 케이네의 모습에 라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오우거한테 죽기 직전에 몰린 모습을 봤으니, 당연히 누나를 걱정할 거 아니니. 그런데 고집을 피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 말하면서 케이네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라트의 초록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누나가 없으면 길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걸. 전쟁에 따라가겠다고 어리광을 부릴 상황이 아니야.”

    “확실히 그렇지?”

    케이네가 없으면 길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 셀룬의 전쟁 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건 각 도시에 있는 연금술사 길드다.

    그 중에서도 파르스에 있는 연금술사 길드는 모든 연금술사 길드를 통솔하는 중이고.

    케이네가 없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연금술사들이 제대로 지시를 받지 못하고 일을 못하는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 물론 어리광을 부리면 따라갈 자신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그렇겠지.’

    명예 후작이라고는 해도, 후작은 후작. 전쟁 물품을 만든다고 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은 권한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하면 라트는 누나가 걱정돼서 제대로 못 싸울 거 아니야. 그러니까 두 가지만 약속해주면 여기서 얌전히 라트를 기다리고 있을게.”

    “두 가지? 뭔데?”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웃는 것인가. 라트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케이네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몸 성히 돌아오는 것. 져도 되니까, 다치지 말고 돌아와.”

    다치지 말고 돌아오는 의례적인 대사를 던진 케이네의 얼굴에 후회가 깃든다.

    “저번에 라트가 쓰러졌을 때 누나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지 라트는 절대로 모를걸. 쓰러지기 직전까지 라트를 차갑게 대하던 내가 미웠어. 그 정도로 불안했어.”

    그 때는 그렇게 쓰러질 줄 몰랐다. 염동력이 안 좋은 희귀 기능으로 분류된 이유다.

    희귀 기능 주제에 너무 무리해서 사용하면, 플레이어의 체력과 마나가 얼마나 남아있든 기절 상태에 빠지게 되는 패널티를 가지고 있다니.

    “미안.”

    “으응. 라트가 사과할 일은 아니야. 이미 사과는 충분히 했잖니.”

    라트의 사과에 케이네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나가 나중에 부탁을 하거든, 무조건 들어줘.”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것도 비밀. 무슨 부탁이든 무조건 들어줘야해.”

    그렇게 말하며 케이네는 살며시 웃었다. 그 웃음이 왜 이렇게 불길하게 느껴질까.

    “그건 좀, 들어주기 무서운데.”

    “무조건이야, 무조건. 싫으면 전쟁 따라 나선다?”

    그리 말하며 케이네가 라트의 머리를 토닥토닥 때리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들어주면 되잖아.”

    “좋아, 좋아. 그것만 들어주면 누나는 얌전히 라트를 기다릴게.”

    이제 와서 눈치 챈 것이지만, 케이네가 조금 이상했다. 진짜 케이네가 맞나? 설마 첩자가 케이네로 변장한 것이 아닐까?

    “왠지 오늘따라 영악하게 보이는데.”

    “착각이야. 누나는 언제나 라트 앞에선 사랑에 빠진 여인인걸.”

    “그런 부끄러운 대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이상……. 잠깐 누나 술 마셨어?”

    연구실에 들어와서는 케이네가 만든 인형을 봤고, 그 뒤로는 케이네와 이야기를 하느라 지금까지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라트는 그제야 실험대에 놓인 술이 눈에 들어왔다.

    제스맹이 지하실에 보관하던 술 중에서도 상당히 독한 것임이 분명했다.

    “쪼오금, 마셨어. 라트가 사온 꼬치구이가 조금 남아서 말이양.”

    이제까지는 발음을 제대로 하던 케이네의 혀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둔 케이네는 술에 취한 이들의 전형적인 대사를 내뱉는다.

    “조금 마시기는. 지금 몸에서 나는 알코올 냄새가 다 술 냄새잖아!”

    그래 어째, 누나답지 않게 너무 당당하더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라트는 케이네를 품에 안았다.

    “방까지 데려다줄게.”

    “에에에? 됐어. 누가보면 좀 그렇잖니. 내려줘.”

    “안 돼.”

    정신은 멀쩡할지 몰라도 몸은 모른다. 아니 지금 보니 정신도 멀쩡하지 않아 보아.

    “도대체 저런 독한 술은 왜 마신 거야.”

    케이네가 평소 와인을 마시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저렇게 독한 술을 마시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말이야. 저 인형은 취해야 제대로 만들 수 있거든.”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비밀이라고 했잖앙. 방까지 데려가려면 빨리 가.”

    그리 말하며 공주님 안기 상태에서 라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케이네는 눈을 감았다.

    “누나, 자?”

    들려오는 대답은 없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로 술을 마셨다면, 내일 케이네가 일어나서 오늘했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일 다시 말해야지.’

    내일 다시 전쟁에 나서지 말고 파르스에 있으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라트는 얌전히 케이네의 방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뉴스..너무 재밌어..!

    선작 추천 원고료 쿠폰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오늘도 어떻게든 뉴스의 유혹을 떨쳐내고 글을 썼네요..

    Raha000님 10장, unusedid님 1장, 하겐다츠님 10장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제가 후원쿠폰 보는게 너무 느려욧...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