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1화 (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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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기다리면, 슬플 거 같아.”

    당연한 말이다. 라트가 반대의 입장이었고, 엘리가 파르스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면 납득했을까?

    “소식이 빨리 들려오는 것도 아니고, 매일 밤 불안함에 떨면서 라트를 기다려야 하잖아.”

    납득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 엘리가 하는 말은 어린 아이의 투정이 아닌, 연인으로서 당연한 걱정이었다.

    “나,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

    감당할 수 없어, 구슬피 말하며 엘리는 슬픈 눈동자로 라트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말이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엘리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반대로 엘리가 전쟁에 나간다면, 난 네가 걱정돼서 제대로 못 싸울 수도 있어. 그건 괜찮아?”

    제대로 싸울 수가 없을 것 같다.

    “그것도 싫어. 그렇지만…….”

    거기까지 말한 엘리는 입을 다물고 라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당연히 오늘 당장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어.”

    오늘 당장 대답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기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엘리의 손을 즐겼다.

    “케이네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누나도 마찬가지로 여기서 기다리게 할 거야.”

    어차피 케이네라면 현재 순수한 철을 비롯한 광물과 화약을 연성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마 이번 전쟁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침몰당하겠지.

    만약 고집을 피운다면 반드시 말릴 생각이었다.

    “다시는 너나 누나가 죽기 직전에 몰리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속마음을 밝힌다. 다시는 케이네와 엘리가 자신의 눈앞에서 위험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그렇다면 차라리 안전한 이곳에 남아있는 게 나아.

    파르스의 치안은 현재 최고조에 달했으니까. 첩자가 숨어들기는 했지만, 겨우 그 정도다. 첩자가 숨어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작해봐야, 정보를 빼돌리는 정도일까.

    “온실 속의 화초는 아름답지만, 빨리 죽어.”

    “온실 속의 화초?”

    엘리의 말에 라트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온실 속의 화초라니, 전쟁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공작이 될 너랑, 이미 하이 마스터인 누나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랄 리가 없잖아. 1부터 10까지 간섭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걸.”

    아니 오히려, 전쟁 같이 무력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라트는 그녀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다.

    엘리를 도와주자니 정치와 행정에 관련된 재능이 전혀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케이네를 도와주자니 물건을 연성하는 건 도와줄 수 있겠지만, 가장 까다로운 일 중 하나인 연금술사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라트에게 발언권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너무 위험한 일에서는 조금 양보를 해줬으면 할 뿐이야.”

    “그런 거야?”

    “그래.”

    전쟁은 나에게 맡겨줬으면 좋겠다. 안전한 이곳에서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마음이다. 너를, 케이네를,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엘리의 말대로 온실 속의 화초는 아름답지만 금새 져버린다. 그렇기에 공작도 넘치는 부성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엘리를 감싸고 감싸 방약무인으로 키우지 않고, 엄하게 키운 것이겠지.

    “나 혼자서, 생각 좀 해볼게. 오늘은 돌아가 줄래?”

    엘리가 오늘 당장 답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자, 라트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가 이런 정도로 미안하다고 말해야하는 사이야?”

    “부으으!”

    라트의 물음에 엘리의 얼굴이 조금 더 빨개졌다. 그것이 귀여워서 엘리의 뺨을 매만진 라트는 이내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생각 정리되면 연락해줘. 아, 생각을 정리 못하면 연락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도 돼. 찾아 와도 되고.”

    “푸흡.”

    혹시나 엘리가 전전긍긍하느라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을까 남긴 말이었다.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하는 라트의 말에 엘리는 살며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는 사이였으니까.

    “알았어. 그렇게 할게.”

    “자, 그럼.”

    라트가 문 쪽으로 다가가자, 엘리 역시 그를 뒤따른다.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 좋은 꿈 꾸고.”

    “응. 라트도 잘 자.”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고민을 만들어줬음에도 엘리는 활짝 웃으면서 라트를 배웅했다.

    “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하얀색보단 검은색이.”

    그 모습이 기특해서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농담을 던졌지만.

    “빨리 가!”

    역시나 이 농담은 먹히지 않았는지, 엘리는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문을 쌔게 닫아버렸다.

    명백한 축객령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엘리는 살며시 문을 열고는 빼곰, 고개를 내밀고 라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심해서 가야 돼?”

    “바라시는 대로 할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공녀님.”

    그리 말하며 살며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뒤로 돌아섰다.

    엘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고 있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

    “마차를 대령할까요?”

    복도로 나와서 문쪽으로 향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시종장이 라트의 뒤를 따라붙어서 말을 걸어왔다.

    “조금 걷고 싶으니 됐습니다. 하아. 걷고 싶으니까 마차는 됐다.”

    존대를 하자, 시종장이 라트를 노려보았기에 하는 수 없이 말을 고친다.

    “문까지 배웅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딱히 그럴 필요는……. 부탁하지.”

    시종에게는 시종 나름대로의 규칙과 철학이 있기에 라트는 말을 바꿔 배웅을 부탁했다.

    “안녕히 가시길. 배웅이 초라하여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렇게 늦었는걸. 혹시나 공작부인께서 내 안부를 물으면 오늘은 밤이 늦어서 인사를 못 드리고 갔다고 전해줘.”

    “예.”

    루아타 공작의 사저에서 빠져나온 라트는 근처에 있는 왕성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떨어진 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깔끔하게 포기하고 길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속죄의 주박을 거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아마 떨어진 별은 내일 아침이나 돌아오겠지.

    연금술사 길드에 들어서자, 기척을 읽었다는 듯 미르차르드가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일은 어떻게 풀리셨는지요.”

    “당장 얻은 수확은 없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떨어진 별이 첩자를 잡았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는 미르차르드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제 생각이지만, 저쪽의 정보를 빼내는 건 불가능 할 겁니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놈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동의합니다. 그러나 파르스 말고도 어느 곳에 첩자가 숨어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상당히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미르차르드의 말대로 파르스를 제외하고 또 어디에 첩자가 숨어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편하다.

    셀룬에 숨어든 첩자의 생각은 대충 이해가 간다. 전쟁이 벌이지고 나서 경비가 약해진 틈을 타,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것이겠지.

    전쟁 중 본토에서 선동이 일어나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게다가 그 선동이 병사들 사이에서까지 일어난다면?

    그럼 더 싸워볼 필요도 없이 이 전쟁은 패배하게 된다. 한 사람이 만인지적이라고 하더라도, 병사가 없으면 전쟁은 이어갈 수 없으니까.

    “리오스는 자고 있어요?”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까지 열심히 배우다가, 이제 막 잠들었습니다.”

    “성장 속도는요?”

    “이대로라면 1개월 안에 스콰이어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개월 안에 스콰이어라. 페이지가 이제 막 오러를 배우기 시작한 이들의 호칭인데 비해 스콰이어는 미숙하나 마나 소드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이다.

    ‘미르차르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틀림없겠지.’

    “오러 마스터에는 언제 도달하게 될까요?”

    “그건 장담드릴 수 없습니다. 오러 익스퍼드까지는 적어도 2년 안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마스터의 경지는 쉽게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공작의 대답에 라트는 침음을 삼켰다.

    예상대로 리오스가 바이올런의 성녀가 되었을 경우 경지를 억지로 올리기 위해 물약을 복용시켰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리오스 양의 재능이 워낙 출중하다보니 10년 안에 오러 마스터 자리에 오를 겁니다.”

    라트의 표정에서 흘러나온 고민을 눈치 챈 미르차르드 후작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리오스가 반드시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지만, 라트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냥 리오스한테 경지 상승 물약을 먹일까?’

    리오스의 성장력은 무시무시하다. 오러 익스퍼드를 뛰어넘어, 마스터가 된 리오스는 평범한 오러 마스터와는 격을 달리하는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 힘이 리오스 본인의 힘이 아닌, 바이올런의 성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플레이어도 많았지.

    그렇기에 머리가 아파왔다. 게다가 리오스에게 물약을 먹여서, 빠른 시간 안에 오러 마스터로 성장시킨다고 해도 현재 리오스의 외견은 어린 소녀에 불과하다.

    그런 소녀가 오러 익스퍼드에 도달했다는 소문이 흘러나간다면, 분명 난리가 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전에서 리오스를 주목할 수도 있다.

    ‘일단은 내버려두자.’

    2차 메인 퀘스트에서 큰 전력이 되어주는 리오스를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도 조금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신전에 리오스를 넘겨줄 수도 없으니까.

    ‘아, 지금이 말을 꺼내기 가장 좋은 시기 아닌가?’

    현재 이곳에는 미르차르드와 라트 밖에 없다. 수련생과 사범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을 것이고, 케이네는 아마 자신의 연구실에 있겠지.

    지금이야말로 미르차르드에게 리오스를 양녀로 들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 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주저없이 입을 열었다.

    “후작님.”

    “하명하십시오.”

    “리오스가 엘프인 건 후작님도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엘프가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약자인지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리오스가 엘프라는 건 미르차르드 후작에게 이미 밝힌 일이었다.

    라트는 그의 심성을 믿었으니까. 라트의 생각대로 미르차르드 후작은 리오스가 엘프인 것을 알고도 그저 안타깝게 쳐다봤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오스의 재능을 보고 기뻐했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귀족은 엘프를 본 즉시 노예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다. 엘프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이 없으니까.

    엘프를 노예로 뒀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귀족이 셀룬에도 있을 정도다. 엘프는 인간 사회에서 철저한 약자에 불과해.

    미르차르드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계시니, 그 점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리오스를 양녀로 받아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야, 양녀로요?”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후작님은 영지를 살펴야합니다. 리오스는 당연히 후작님을 따라가 검을 배우겠죠. 그렇다면 차라리 그게 낫지 않습니까?”

    라트는 당황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는 미르차르드 후작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후작님께서 가족을 잃으신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올런의 종속이 됐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미르차르드 후작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절망하여 방황했고, 그 절망을 끝내기 위해 신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이올런의 종속이 되었다.

    그러나 신에게 의지한다고 해도, 인간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세계의 신에게 의지하는 건 특히나 그래.

    “그러니 리오스를 앙녀로 두고, 상처를 치유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이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리오스를 위해서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머리를 땋아서 귀를 숨기는 모습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그러나 귀를 드러내고 다니면 위험해서 감히 풀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라트의 말에 미르차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훈련 중에 땀 때문에 귀가 간지러움에도 땋은 머리카락을 풀지 못해서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던 리오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나 리오스가 후작님의 양녀가 된다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후작의 양녀를 감히 납치하려고 들겠습니까. 엘프라고 해도, 후작의 양녀. 아무도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

    특히나 그 후작이 오러 마스터라면 더더욱 그렇지. 게다가 리오스는 언젠가 오러 마스터가 될 것이다. 미르차르드도 그런 소녀를 옆에 두고 가르치면서 정을 주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차마 그런 내색을 하지 못하는 건, 지키지 못한 가족이 생각나서겠지.

    여기서 필요한 건 그저, 강제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밀어서, 한 발자국 움직인다면 그 다음은 쉬워지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어졌습니다.”

    라트의 설득에 미르차르드는 고민과 당황의 흔적을 얼굴에서 지워버리고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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