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68화 (16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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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설마 엘프 소녀를 보호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 딱히, 엘프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목숨을 바꿔 지켜냈고, 그 목숨을 라트에게 맡겼다. 그렇기에 리오스는 최선을 다해서 지켜줄 생각이었다.

    리오스가 진 엔딩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소녀, 재능이 굉장하더군요. 말을 걸어주지 않으셨다면, 계속 멍하니 봤을 겁니다.”

    “리오스가 출중하기는 하지.”

    리오스가 칭찬을 받자 라트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부터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돼지고기 꼬치구이 사러.”

    “네?”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렇다고 라트의 목적이 변할 리가 없다.

    “1차 목적은 그래.”

    “그럼 제가 굳이 따라올 이유가…….”

    “2차 목적은 혹시나 파르스에 적의 첩자가 숨어들어왔을 수도 있으니 살펴봐.”

    “이해했습니다.”

    1차 목적이라고 말했으니, 당연히 2차 목적도 있는 게 당연하다. 라트의 말에 떨어진 별이 곧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자발적으로 수도 전체를 둘러볼 생각이었겠지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리고 혹시나 첩자를 발견하면 가능하면 생포해줘.”

    라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다.

    암살자를 굳이 생포해올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암살자는 어지간하면 자신이 붙잡힐 것이라고 생각이 든 순간에 자결하고 마니까.

    게다가 그쪽이 알고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을 것은 물론이오, 이쪽에 붙게 할 수 있을 확률도 적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생포해오는 쪽이 좋았다. 그래야 다른 이들에게 생색이라도 낼 수 있으니까.

    들려오는 대답은 없지만, 당연히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라트는 조금 전 들렸던 꼬치구이 집으로 가서 돼지고기 꼬치 10개를 구입했다.

    기왕 사는 김에 케이네는 물론이오, 리오스와 함께 나눠먹을 생각이었다.

    ‘미르차르드님은 이런 걸 드시려나?’

    천생 귀족인 미르차르드가 과연 길거리 음식을 먹을지는 조금 궁금했다. 케이네가 굉장히 특이 케이스지, 보통 귀족의 자식으로 자랐다면 이런 투박한 음식,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감사합니다, 또 오십쇼!”

    가게 주인이 활짝 웃으며 라트를 배웅했다.

    ‘지금 시간이.’

    하늘을 바라보자, 슬슬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여기서 떨어진 별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길드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라트는 알아서 돌아오거니, 생각하고 길드로 돌았다.

    “꺄아! 사랑해!”

    라트가 돌아오자 케이네는 팔을 붕붕 흔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돼지고기 꼬치구이가?’

    왠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 같다. 케이네가 라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라트의 손에 들려있는 꼬치구이가 포장된 종이를 가로채서 껴안는 모습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이 질문은 던진다면, 당연히 케이네는 돼지고기 꼬치구이 쪽을 선택할 것이다. 착한 누나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소악마와 같이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하니까.

    “리오스도 불러서 같이 먹자.”

    “아. 리오스하니까 생각났는데. 에스페님이 잠시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돌아오시겠데.”

    역시 일이 있어서 나갔나. 급한 일이라서 길드에 없는 라트에게 말하지 않고 케이네에게 말을 남겼나보다.

    그렇다면 어째서 리오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뭐,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어쩌면 가지 말라고 울먹이는 리오스를 차마 보고 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리오스의 울음에는 굉장히 약하니까.’

    첫 만남 때도 그랬다. 리오스가 울려고 하자, 황급히 사탕을 줘서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흑사제 놈들이 그 때 마지막 여왕님이라고 했었잖아.’

    그 때 일을 기억하자, 3명의 흑사제가 굳이 라트를 죽이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던 이유를 기억해냈다.

    ‘마지막 여왕이라.’

    그건 분명 에스페를 가리키는 지칭이었을 것이다. 그 근방에서 숲의 현자인 에스페를 제외하고 다른 NPC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여나 싶어, 이곳으로 돌아와서 에스페에게 그 근처에 혹시 누가 살고 있냐고 물어봤지만, 대답은 역시나 No.

    그렇다면 에스페가 마지막 여왕이라는 소리인데.

    ‘그 때 물어볼 것을.’

    시리아와 대화를 나눌 때 분명 이것에 대해 물어볼 시간이 있었지만,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그 때는 시리아의 새로운 일면을 봤기에 당황했으니까.

    ‘나중에 만나면 물어볼 게 하나 더 생겼어.’

    하나는 떨어진 별과 시리아의 관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에스페를 어째서 마지막 여왕이라고 부르는가.

    “그럼 난 리오스를 데려올게.”

    다음에 시리아를 만나면 이 두 가지에 대해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한 라트는 탁자 위에 꼬치들을 세팅하고 있는 케이네를 바라보았다.

    “10개 사왔으니까, 먼저 집어먹으면 안 돼.”

    “누나가 돼지도 아니고, 귀여운 리오스를 데려오겠다는데 설마 혼자 먹을까봐?”

    케이네가 볼을 부풀리며 도끼눈으로 째려보자, 라트는 희미하게 웃었다.

    소악마와 같은 기질이 있다지만, 케이네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배려해줄 줄 아는 귀족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아하게 됐지.

    “사랑해.”

    뜬금없이 다시 한 번 눈앞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저도 모르게 그것을 입밖으로 뱉어버렸다.

    “누, 누나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면서 머리카락을 베베 꼬면서도 착실하게 라트의 말에 대답해준 케이네의 모습이 희미했던 미소가 진하진다.

    정원으로 가서 리오스와 미르차르드를 불러 꼬치구이를 함께 먹는다. 여기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리오스, 길거리 음식을 먹을 때는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 그냥 한 입 가득 베어물고 맛을 즐기면 돼.”

    미르차르드는 길거리 음식을 제법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리오스를 앙녀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식사 때마다 리오스에게 예절을 알려주던 미르차르드는 여기서는 예절이 필요 없다고 말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스승님, 입, 엉망.”

    미르차르드가 입가에 소스를 묻히면서 꼬치구이를 베어 물자 리오스는 킥킥 웃으면서 자신도 마찬가지로 꼬치구이를 베어 물었다.

    ‘그냥 미르차르드님께 양녀로 삼으라고 할까.’

    현재 리오스가 엘프라는 사실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비밀로 하고 있지만, 리오스가 미르차르드의 양녀가 된다면 그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

    저렇게 갑갑하게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땋아 묶어, 귀를 숨길 필요도 없어진다.

    귀족들이 엘프나 다크 엘프에 환장한다지만, 누가 한 왕국의 양녀에게 손을 대겠는가. 그것도 오러 마스터의 양녀를. 미친 놈이 아닌 이상 그럴 놈은 없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길드 후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라트와 미르차르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트?”

    “스승님, 오빠, 왜 그래?”

    이런 먼 거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는 것은 상대방이 일부러 인기척을 흘린 것이다.

    이 인기척의 주인이 침입자라고 생각했는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르차르드와 달리 라트는 이게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이 갔기에 웃으며 리오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님이 온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 계셔도 됩니다, 후작님. 저희 둘 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 그렇지만.”

    괜찮다면서 미르차르드에게 여기 있으라고 말을 남긴 라트는 자신 몫의 꼬치구이를 하나 집어 들고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왔어? 이거라도 먹…….”

    인기척의 주인은 예상대로 떨어진 별이었다.

    “이크. 흘리셨군요.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바닥에 떨어진 건 먹지 않는 주의라.”

    그가 벌써 파르스를 전부 살펴봤다고 생각한 라트는 그에게 꼬치구이를 내밀려고 했으나, 당황 때문인지 꼬치구이가 라트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낙하한다.

    “제대로 생포해왔네. 가능하면 생포해와 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뭐, 첩자는 생포해오는 것이 당연한 일 이지만.?”

    라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는 떨어진 별의 뒤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6명.’

    보기에는 전혀 수상해보이지 않는, 정말 억울해 보이는 선량한 백성으로 보이나, 떨어진 별이 잡아온 것이니 당연히 그 이유가 있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엔스리드 백작님께서는 제 기척을 파악하지 못하시겠군요. 이런 실수를.”

    라트가 포로를 관찰하고 있는 사이에 떨어진 별은 어째서 자신이 라트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라트가 오러 마스터와 싸워 이겼다는 사실은 꽤 유명한 일이다.

    그래서 라트의 전력을 오러 마스터로 잡았고, 그래서 라트가 당연히 자신의 기척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생각이다. 오러 마스터를 이겼다고 해도, 연금술사는 연금술사. 중급 암살자 정도라면 모를까, 떨어진 별과 같은 최상급 암살자의 기척을 잡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일단 설명부터 들어보자. 전부 평범한 백성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거지?”

    “평범한 백성이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지나치게 절도 있다, 싶어서 뒤를 캐봤습니다.”

    “저, 저희는 억울합니다 백작님!”

    ‘백작님?’

    그 말에 라트는 피식 웃어버렸다. 라트가 백작이 됐다는 것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이나, 평민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이 아니었다.

    “조용. 지금부터 입을 열면 목을 치겠다.”

    당장 오늘 내일 먹고 살기 바쁜 평민들이 귀족이 한 명 늘어났다고 거기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그렇기에 라트는 살며시 경고를 주었고, 그러자 붙잡혀온 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문다.

    “주변 백성들이, 여기 잡혀온 자들 전부 켈랑과의 전쟁 이후부터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켈랑과의 전쟁 이후부터 파르스에 정착했다면 이들 중 병사로 참가했던 자나, 병사와 알고 있는 이는 없겠지.

    “거기에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을 살펴본 결과 이런 상자를 발견했는데 말입니다.”

    떨어진 별이 품속에서 조그마한 상자를 꺼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게 생긴 상자다.

    평범한 평민이 금고나 혹은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 구입할 수도 있는 물건.

    그리고 떨어진 별이 상자를 꺼낸 순간, 붙잡혀온 이들의 얼굴에 안심이 스쳐지나간다.

    “평범한 상자 아냐?”

    “그럴까요?”

    라트의 말에 떨어진 별은 주저 없이 상자를 벽에 던져버렸다. 쾅, 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숙여 벽을 치고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바라본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상자라고 말한 거 취소. 수상한 상자네.”

    “그렇습니다.”

    평범한 상자처럼 보이는 주제에 최상급 암살자가 벽에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흠집이 생기지 않았다. 이런 물건, 평민이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이걸 열 수 없다고 안심하는 모양인데. 이런 거, 저한테는 식은 죽 먹기에요. 그냥 이렇게 돌리면.”

    상자를 주워든 떨어진 별은 품속에서 락픽을 꺼내 열쇠 구멍에 넣고는 대충 돌렸고.

    “어, 어떻게!”

    “쨔잔.”

    너무나 간단하게 상자가 열려버리자, 붙잡혀 온 이들 중 하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통신 수정구. 평민이 가지고 있을 물건은 아니네. 이놈들 단단히 묶어놓고 기다리고 있어. 왕성에 연락하고 올 테니까.”

    “예이.”

    상자 안의 물건이 통신 수정구임을 알아차린 라트는, 루아타 공작의 도움과 이들을 가둬놓을 감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왕성으로 연락을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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