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6 / 0229 ----------------------------------------------
1부
‘포션이면, 엘릭서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만, 엘릭서라면 이미 넘치고 넘쳤다. 당장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제스맹이 남겨놓은 엘릭서 10병이 모두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엘릭서가 한 병 더 추가된다고 해봐야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 나 먼저 부탁을 말할게. 올리노스에 있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기도 전에 바이올런이 말을 하자,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리노스가 어딥니까?”
월드 세리아의 지형은 어지간하면 전부 알고 있었지만, 올리노스라는 지형은 들어본 적이 없다.
「너희 필멸자들이 주인 없는 산맥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는 산의 이름 중 하나다.」
‘주인 없는 산맥의 산 중 하나라.’
어차피 주인 없는 산맥에는 한 번 가야한다. 그곳에 흑마법사들의 본거지가 자리잡고 있으니까. 그 김에 바이올런의 부탁을 들어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노스에 있는 드래곤 중 하나가 정신이 나갔는지, 그게 아니면 자고 있는 건지 내 말에 응답하지 않더라고. 자고 있으면 깨우고, 정신이 나갔으면 정신이 좀 들게 해줘.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좋아.」
“예?”
가능한 부탁을 하라고 했더니, 이 무슨 헛소리인가. 라트는 어이가 없어서 바이올런의 석상을 바라보았다.
「본신의 부탁과 비슷하군.」
“예에에?!”
「올리노스에 레어를 차린 드래곤의 이름은 자메오로스다. 그 드래곤에게 찾아가, 저번에 부탁했던 물건이 어찌되었는지 알아봐라. 본신도 마찬가지로, 시간은 얼마든지 걸려도 상관없다.」
“그, 그게 저한테 가능한 일입니까? 인간이 잠든 드래곤을 깨우면, 혹은 미친 드래곤과 만나면 곧바로 살해당합니다.”
「자고 있으면 그냥 뒤통수 한 대 때려서 깨우고 내 이름을 말해. 미쳤으면 역시 뒤통수 한 대 때리고 내 이름을 말하면 정신 차릴 거야.」
「본신의 생각도 바이올런과 같다.」
‘미친.’
뒤통수를 한 대 때리라니. 이 무슨 미친 부탁인가. 라트가 그 정도로 강해지려면 적어도 2차 메인 퀘스트는 클리어 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마지막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시간제한이 없으니까, 그냥 그 때까지 기다리면 되긴 하겠지만.’
「시간제한은 없지만, 되도록 빨리 부탁해. 마족들의 움직임이 불안해서 말이야.」
「입방정이 심하다, 바이올런.」
「아, 실수. 방금 내가 말한 건 잊어줘.」
‘지랄하고 있네.’
시간제한이 없다지만, 마족들의 움직임이 불안해서 그 드래곤을 찾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늦어도 제국 반란 퀘스트가 끝나기 전에는 그 드래곤을 깨우든, 정신을 차리게하든 해야된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이건 또 무슨 변수지.’
드래곤은 2차 메인 퀘스트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설마 1차 메인 퀘스트가 꼬여서, 2차 메인 퀘스트도 꼬이고 있는 건가?
“최대한 빠르게 해보겠습니다.”
어찌됐든 이번 일이 2차 메인 퀘스트와 관련돼있다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신들의 부탁에 응하기로 했다.
「부탁할게, 그럼 먼저 실례.」
「부탁하마, 필멸자여.」
그 말을 끝으로 신상에서 빛이 사라졌다. 마치 영혼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우선, 무색의 연금술부터.”
신전이기는 하지만, 라트가 나가지 않는 이상 대사제는 라트가 신들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절대로 이 안으로 사람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스탯 포인트 50을 소모하여 무색의 연금술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엥? 50?’
분명 애니그마의 말에 따르면 두 속성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스탯 포인트가 50밖에 들지 않는 건가.
‘일단 배우고 보자.’
뭐, 신이 거짓말을 치지는 않겠지.
현재 무색의 연금술의 레벨은 10. 덕분에 무색의 연금술로 연성한 자연에 마나까지 불어놓을 수 있게 됐으니, 그 사용법은 전보다 무궁무진해졌다.
희귀 기능 하나에 무려 200이라는 스탯 포인트가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희귀 특성책 : 무색의 연금술(水, 氷)’을 읽었습니다. 희귀 기능 ‘무색의 연금술’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빙? 얼음?’
물이야, 당연히 사대 원소 중 하나니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얼음도 그 범위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라트는 재빨리 프로필을 열어 무색의 연금술을 확인했다.
무색의 연금술(Lv 10 + 마력, 지혜) - 필요 기능 : 기초 연금술
* 자연을 연성할 수 있는 연금술. 현재 가능한 원소 속성 : 목(木), 토(土), 수(水), 빙(氷)
└ Lv 10 : 연성 범위(小), 마나 강화(小)
‘물하고 얼음은 속성이 비슷하니까, 스탯 포인트 50으로 퉁친 건가?’
그게 아니면 속성이 늘어날수록 소모되는 스탯 포인트가 줄어드는 것일 수도 있다. 아깝지는 않지만, 한 희귀 기능에 스탯 포인트가 200이상 소모되는 건 밸런스가 맞지 않는 일이니까.
막말로 연금술사가 아니었더라면, 스탯 포인트 200을 이용해서 훨씬 더 좋은 희귀 기능 2개를 배울 수 있다.
‘엘릭서를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라면 스탯 포인트가 별 의미가 없기는 한데.’
설마 여기까지 고려하고 밸런스를 맞춰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라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연금술사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었던가.
평균보다 훨씬 더 좋은 광물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대장장이와 달리 연금술사는 전설급 이상의 무기를 절대로 만들 수 없다.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희귀 정도.
같은 생산직과도 비교되는 수준인데, 전투직과 비교하면 그 위상은 처참했다.
그런 연금술사에게 밸런스의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희귀 기능 하나에 스탯 포인트를 200 이상 투자해야하게 만들었다고?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그리고 연공서는.”
[‘희귀 특성책 : 전쟁의 울림’을 읽었습니다. 오러를 사용할 수 없어 배울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울림인가.’
오러 연공법 중에서도 희귀 기능에 달하는 오러 연공법은 손에 꼽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의 울림으로 바이올런이 가지고 있는 연공법 중에서도 2번째로 좋은 연공법이었다.
‘그래도 좀 쩨쩨하긴 하네.’
배울 수도 없는 연공법인데, 기왕 줄 거 가지고 있는 연공법 중에서 가장 좋은 연공법으로 줄 것이지. 두 번째로 좋은 연공법을 줄 게 뭐람.
이 연공서만 하더라도 오러의 길을 걷는 자들이라면 눈에 불을 키며 얻으려고 하겠지만, 라트는 약간 회의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이올런이 줬던 포션을 확인한 순간, 라트의 안색이 뒤바뀌었다.
---
명칭 : 경지 상승 포션(오러 익스퍼드)
등급 : 신화
형태 : 포션
특수 효과 : 복용자의 오러 경지를 단숨에 오러 익스퍼드까지 상승시킨다.
인챈트 : - 내구도 : -
---
‘죄송합니다, 바이올런님. 바다와도 같은 마음씨를 가지신 분을 제가 잠시 미쳤다고 욕했습니다. 소인을 벌해주시옵소서.’
포션의 효과를 본 순간 라트는 당장이라도 바이올런의 신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포션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용사나 얻을 수 있는 포션이었다. 엘릭서와 달리 이건 연금술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오로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포션이다.
그러나 포션을 얻을 때쯤 용사는 이미 오러 마스터에 도달해있었기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라트는 다르다. 현재는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기에 이걸 복용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하이 엘프와 만난다면 오러와 마나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 때 이 물약을 복용한다면?
별다른 고생 없이 단숨에 오러 익스퍼드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거다.
한 마디로 현재 라트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물건이었다.
‘두 번 다시, 바이올런한테 쩨쩨하다는 말은 안 해야지.’
그저 연공서를 달라고 요청했을 뿐인데 이런 귀한 포션까지 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신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귀한 포션이 아니겠지만, 인간 사회에 이런 포션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수 만 명이 죽어 나가겠지.’
오러 익스퍼드, 기사에게 있어서 꿈과 같은 경지다. 오러 마스터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경지라면, 오러 익스퍼드는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조금만 노력하면 그 벽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런 물약을 마신다고 오러 익스퍼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귀족들도 성화일 거야.’
귀족 중에는 오러 익스퍼드에 도달한 자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도 수두룩했다. 아니, 귀족들이라면 본인 보다는 본인의 자식에게 마시게 하겠지.
10대 혹은 20대에 오러 익스퍼드에 도달한 천재 무사가 자신의 자식이라고 자랑하기 위해서.
‘그러니 이것들은 비밀로.’
포션과 연공법을 인벤토리에 넣은 라트는 자신이 오러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이것들을 봉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리오스에게 가르칠 때는 연공서를 잠깐 꺼내야겠지만.
‘그러고보니, 리오스도 이 포션을 마신 게 아닐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오스에게 이 포션을 마시게 해서 오러 익스퍼드로 만든 후, 남은 1년 동안 훈련을 시켜서 오러 마스터로 만든 거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한데.’
이걸 가늠하려면, 리오스의 성장 속도를 눈으로 직접 지켜봐야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금 있으면 전쟁이 일어날 테니까.
거기에 현재 리오스와 에스페는 미르차르드가 후작의 작위를 얻어 영지가 생기는 바람에 그를 따라서 길드를 떠날 예정이다.
미르차르드는 라트의 곁을 떠나기 싫어했지만, 영지가 생긴 이상 어쩔 수가 없었지.
리오스는 미르차르드에게 검을 시사받기 위해서 따라나설 것이고. 에스페는 리오스를 돌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뭐, 미르차르드의 영지가 곧 라트의 영지니까 상관은 없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리오스에게 연공법을 가르치고, 돌아와서 경지가 얼마나 상승했는지 보면 되겠지.’
그리고 생각보다 리오스의 성장 속도가 느리다면, 바이올런이 리오스에게 경지 상승 물약을 먹였다고 판단하면 된다.
‘뭐, 그래도 리오스에게 이 물약을 줄 수는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리오스는 그냥 이대로, 자연스럽게 성장해주면 될 일이다. 그런 귀여운 아이가, 얼음처럼 변해서 마족을 찢어발기고 종극에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까지 죽이는 일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제 신전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었고.”
전쟁까지 시간이 없으니, 신전에서 받을 수 있는 퀘스트는 과감히 생략하도록 하자.
“실례했습니다.”
“이야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밖으로 나오자 대사제는 두 신을 한 번에 접선한 라트를 경외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예. 아쉽게도 제가 부족해서 종속이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두 분의 청을 하나 받았습니다.”
바이올런과 애니그마가 들었더라면 뒷목을 잡고 삿대질을 할 소리였다.
“그러시군요. 종속이 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아쉬워 하지마라. 진짜로 아쉬워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라트는 신전의 개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신전이랑은 친해지는 게 좋지. 마족이나 흡혈귀 때문이라도. 아, 성수.’
“성수는 어디서 구매할 수 있죠?”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건물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성수를 구입해야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라트는 대사제의 말에 따라 급히 신전 안에 있는 상점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원고료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갸아아아악...오늘..늦잠자서...예비군 못갔음....
비문이나, 오류 지적 등은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