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65화 (16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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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떨어진 별과 함께 파르스로 돌아온 라트는 그에게 다시 인식 장애 마법이 걸려있는 로브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미르차르드에게 떨어진 별을 연금술사 길드로 안내해주라고 말하고는 혼자 어디론가 향한다.

    ‘우선 신전부터 들려야 돼.’

    승률 60% 높다면 높은 승률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확률이었다. 후에 핀스크 왕국을 멸망시키고 나서, 여차하면 사라이 왕국까지 점령해야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반란군 때문에 셀룬의 전력을 깎아먹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승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사실 지금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오묘한 상황이기는 하다. 트렌세르노의 전술 능력이 글란츠 백작급이라면 어떻게 상대해볼 수 있겠지만, 만약 글란츠 백작 이상급이라면…….

    ‘진다. 100% 져.’

    붉은 대지 전장의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2D 도트 그래픽임에도 글란츠 백작의 적이라면  그 전장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런 백작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리고 붉은 대지 전장급 전투가 몇 번 나온다면. 결과적으로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략이 불안하다면 전술을 강화하면 된다. 그 방법은 바로 라트 본인이 강해지는 것이었다.

    게임 시스템의 비호를 받고 있는 라트의 성장 속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

    지금은 오러 마스터가 자신의 전력을 알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서 간신히 한 번 이길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강해지면 된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시점에서 신전에 들리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신을 상대로 원하는 걸 뜯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엔스리드 백작님이시로군요. 어서 오십시오.”

    “수고하십니다.”

    신전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성기사들이 라트를 반갑게 맞이해주자, 라트 역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보자, 본관이. 저기 있네.’

    신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본관이다. 각 왕국마다 적어도 2~3개 정도 있는 대신전의 본관에는 황금으로 조각된 신들의 석상이 모셔져있다.

    신을 모시는 사제 주제에 너무 사치스럽지 않느냐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조각상에 들어간 황금은 전부 신께서 주신 황금이다.

    애당초 평범한 황금으로 만들어진 석상이 아니야. 그 석상은 신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 중 하나다.

    “이거 백작님이 오실 줄이야. 기느투스 후작님의 장례식 이후로 처음 오시는 게 아니…….”

    스승의 장례식에서 만났던 대사제가 라트에게 인사를 하려는 그 순간, 황금으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석상 중 두 개의 석상이 밝게 빛났다.

    “바이올런님과 애니그마님을 뵙습니다.”

    「이제야 왔나. 본신은 네가 언제 여기에 올지 궁금했었는데 오늘에야 그 의문이 풀렸군.」

    「그는 연금술사다, 바이올런. 눈독 들이지 마라.」

    그리고 폭력과 명예의 신 바이올런과 비밀의 신 애니그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라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영향력을 최고로 찍은 플레이어는 신전에 방문하자마자, 이런 이벤트를 겪기 마련이다.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이야기 나누시기를.”

    그러나 두 신이 한 번에 말을 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지, 대사제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기도실에서 물러났다.

    「이 자는 나에게 짙게 영향을 받고 있는 자다. 당연히 나의 종속이 되는 게 합당하지 않은가?」

    ‘어라? 바이올런의 말투가 이랬던가?’

    분명 바이올런은 신 중에서도 특이하게 경망스러운 말투를 쓰기로 유명했는데?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을 종속으로 두겠다니. 체면을 생각해라, 바이올런.」

    이 이벤트는 당연히 신이 플레이어에게 종속이 되라고 꼬시는 이벤트다. 종속, 그래 뭐 좋은 말이지. 신전에서 수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신성력이 들어간 무기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점이 좋은 만큼, 안 좋은 점 또한 수두룩하다. 당장 미르차르드를 보라, 맹세 한 번 잘못해서 평생토록 충성했던 나라를 버리고 라트의 부하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종속이 되는 건 피해야한다.

    ‘어차피 이 세계의 신은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아.’

    이 세계의 신은 다른 생명체가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생명체일 뿐,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 당장 바이올런이 전지했더라면 라트가 리오스를 빼돌린 사실을 알고 분노했어야 옳다.

    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도 그래. 자기 이름이 팔리는 게 싫어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지휘가 있는 사람에게나 본보기로 벌을 줄 뿐이다.

    평민이나, 천민이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을 어긴다고 해도, 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럼 직접 물어보기로 하지. 너, 나의 종속이 되어라.」

    「흥. 제안할 수 있는 게 겨우 종속뿐이냐. 그대 나의 사도가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어?’

    뭐야, 사도라니? 애니그마의 사도는 게임을 하던 중에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됐다고 했던 사람도 없다.

    ‘종속은 거절이지만, 사도는 이야기가 다른데.’

    종속은 이래저래 피곤한 입장이지만, 사도는 다르다. 용사나 성녀, 성자급은 아니지만, 사도라면 어느 정도 자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애당초 신전에 귀속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신전에 귀속되면 2차 메인 퀘스트 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으니까. 애니그마의 제안이 솔깃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거절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미천한 인간인지라 두 분 중 누구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뭐라?」

    「네가 나와 같이 나왔으니 한낱 필멸자가 망설이는 것도 당연하지 않느냐. 빨리 사라져라, 바이올런. 어차피 이 자는 연금술사, 너의 종속이 되어도 검보다는 연금술을 주로 사용할 것이 틀림없다.」

    「이런 기회가 언제 있을지 모르는데 나더러 포기하라고 하면. 그러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아 역시.’

    바이올런이 경망스러운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라트는 제 버릇 남한테 줄 수 없다는 속담을 상기하면서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신의 종속은 그 숫자가 얼마 없다. 한 신 당 종속이 5명이나 될까? 그렇기에 신들은 자신의 종속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왜냐고? 종속이 늘어난다함은 임무를 내릴 수 있는 자가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사에 간섭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종속을 통해 몇 가지 필요한 임무를 시킨다.

    그렇다면 종속을 마구마구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당장 신전에 속한 성기사들도 강자이니까.

    그러나 종속은 오로지 영향력을 짙게 물려받은, 그 신의 영향력이 10 이상인 자만이 될 수 있는 거다.

    오러 마스터면 무조건 영향력이 10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미르차르드가 바이올런에게 받는 영향력이 10이라면 브로켄 후작의 바이올런 영향력은 9다.

    ‘솔직히 미르차르드가 가족을 잃은 것 때문에 공백기가 생겨서 그렇지. 공백기가 없었더라면 브로켄 후작보다 더 강했을 걸.’

    둘의 나이 차이 역시 심각하다. 브로켄 후작은 말년에 겨우 오러 마스터가 되면서 신체가 젊어졌다지만, 그의 나이는 제스맹과 비슷하다.

    그에 비해 미르차르드는 가족을 잃은 고생 때문에 얼굴이 많이 삭기는 했지만, 글란츠 백작보다 10살이나 젊은 40대 초반이다.

    영향력이 9 정도만 되도 스탯 재능이 받쳐준다면 시대가 낳은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영역이지만, 영향력 10의 위력은 솔직히 엄청났다.

    예시를 들어주자면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최소 선결 조건이 바이올런 영향력이 10이 되는 거다. 영향력 9가 시대가 낳은 천재라면, 영향력 10의 영역은 5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자의 영역이다.

    그리고 영향력 11은. 1차 메인 퀘스트 때는 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리오스가 2차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는 그 1년 사이에 오러 마스터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는 걸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사라지는 게 어떤가. 지금이라도 간다면 지난 번에 했던 내기를 물러주도록 하지.」

    「그 내기 값의 2배를 줄 테니 이 자를 나한테 넘기는 건 어때.」

    「거절.」

    「당연히 나도 거절이다.」

    ‘떡줄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서로 싸우고 있네.’

    “바이올런님, 그리고 애니그마님?”

    「왜 부르지?」

    「말해.」

    “두 분 중 한 분께서 저에게 제안을 했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어느 한 쪽 분의 제안을 수락하면 다른 한 쪽 분의 분노가 떨어질 것 같아 두렵습니다.”

    종속이나, 사도로 임명되는 것은 강제적으로 일어나는 이벤트다. 인간은 이를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는 순간 째째한 신께서 분노를 내리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두 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끄응.」

    「당연한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두 분 중 어느 한쪽의 종속이 될 수는 없겠지만, 두 분의 청은 언제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가능한 선에서 말입니다.”

    종속의 안 좋은 점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몇 년이 걸릴 일을 혹은 아예 불가능한 일을 신이 떠맡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러니 미리 덧붙였다.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 부탁을 한다면 들어주겠다고.

    「그럼 네가 얻는 게 없지 않느냐.」

    「맞아. 종속이 되지 않으면, 사제나 성기사 놈들이 널 비호해주지도 않을 걸?」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신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도, 종속이 아닌 이상 신전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

    “신전의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두 신님께서 저에게 개인적으로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호오,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만 들어주면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뜻?」

    “그렇습니다.”

    라트의 대답에 두 신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속을 놓치는 건 안타깝지만, 이대로 두자니 어느 쪽도 무엇 하나 얻을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차라리 내 제안을 수락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겠지.’

    「난 좋아.」

    「어쩔 수 없군. 욕심 많은 바이올런이 양보해주지 않을 것 같으니. 나도 좋다. 필멸자여, 먼저 원하는 것을 말하라.」

    “제가 애니그마님께 바라는 것은 무색의 연금술입니다.”

    「무색의 연금술? 아아, 마그눔 오푸스를 말하는 건가. 그래, 필멸자이면서 에메랄드에 다가가고 있어 사도로 임명하려고 했었는데. 그래 아직 마그눔 오푸스를 완전히 숙달하지는 못했나 보군.」

    ‘에메랄드? 아.’

    애니그마의 말에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을 배웠을 때 얻은 칭호인 에메랄드에 다가선 자를 떠올렸다.

    무색의 연금술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어서 애니그마가 자신을 사도로 임명하려고 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무색의 연금술을 전부 익힌다면 애니그마의 성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

    「내 필멸자에게 마그눔 오푸스 중 두 조각을 주도록 하마.」

    “가, 감사합니다.”

    딴 생각에 빠져있던 라트는 황급히 무릎을 꿇어 감사를 표했다. 두 조각이라는 말은 두 속성을 배울 수 있게 해주겠다는 뜻이겠지. 한 속성만 알려준다고 해도 감사할 따름인데, 두 속성이나 내준다니.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신의 자애에 탄복할 뿐.

    ‘지금 내 스탯 포인트가.’

    현재 라트의 스탯 포인트는 132개. 무색의 연금술의 한 속성을 배우기 위해서 소모되는 스탯은 50이니, 두 속성 모두 배울 수 있다.

    「가져가라.」

    애니그마의 석상 앞에 빛나는 책이 생기자, 라트는 황급히 일어나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럼 나에게 원하는 건 뭐지?」

    라트가 애니그마에게서 보상을 얻자, 바이올런은 조금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오러 연공법을 원합니다.”

    「엥? 그거면 되겠어? 너,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못 배우잖아.」

    “그거면 됩니다.”

    바이올런의 말대로 지금은 배우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또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리오스에게 가르칠 연공법도 필요했다.

    미르차르드의 연공법을 가르쳐도 괜찮겠지만, 그보다 좋은 연공법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리 하는 게 옳다.

    「연공법만 주기에는 내 체면도 있으니까. 이것도 같이 줄게.」

    잠시 후 바이올런의 석상 앞에 책 한 권과 포션 하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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