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64화 (164/229)
  • 0164 / 0229 ----------------------------------------------

    1부

    진짜 이름은 ‘브레세이너’지만, 통상적으로는 욕심 많은 모자라고 불리는 그 물건은 매일 오전 12시 정각에 금화 한 덩어리를 뱉어내는 드래곤의 창조물로 유명했다.

    문제는 이 물건의 탄생 비화다. 지금은 거대한 셰크티 제국과 조그마한 왕국 3개가 있는 카르세이나 대륙이지만, 오래 전 셰크티 제국이 카르세이나 대륙을 통일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바로 그 때 드래곤을 신으로 추앙하던 로자빈 왕국에서 드래곤에게 셰크티 제국을 막아달라고 간청했고, 그러자 드래곤은 그들의 청에 응답하여 셰크티 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쟁을 멈추는 대신에 그에 준하는 재물을 주었는데, 그 때 준 재물 중에 섞여있는 것이 바로 브레세이너다.

    역사가 증명하듯, 브레세이너의 소유권은 셰크티 제국의 황가에 있지만, 십 년 전 황궁의 창고에서 브레세이너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뒤로 브레세이너가 어떻게 됐는지는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모른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떨어진 별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바로 그의 앞에 서있는 라트였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시는지요?”

    분명 동요하고 있을 게 분명함에도, 떨어진 별의 말에는 조금의 이상도 없었다. 과연 암살자, 언제나 냉정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이 다워.

    “시치미 때지 말고 이야기해보자고. 암살자 길드가 도둑질에도 능통하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 중 떨어진 별은 암살자라기보다 도둑 쪽 능력이 더 탁월하다는 건 꽤 유명한 소문이지.”

    “그 소문 덕분에 당시 저는 황실의 조사를 받았고,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 말대로 떨어진 별은 당시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결국 증거가 없어 무죄로 풀려났다. 그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니가 무죄가 아니라는 건, 니가 더 잘 알고 있잖아. 뭣하면 내가 지금 당장 욕심 많음 모자가 어디 있는지 찾아볼까?”

    그러나 증거가 없어서 무죄가 되었다는 말은 증거가 있다면 언제든 유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어째서 다른 곳은 2D 그래픽이 아닌, 리얼하게 펼쳐진 풍경 때문에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라트가 벨룬의 빈민가 지리는 이리도 잘 알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빈민가를 돌아다니다보면, 초반에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정보는 오로지 라트만이 알고 있다. 라트가 커뮤니티에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으니까. 뭐,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알고 있는 플레이어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적어도 라트 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술집에서 나간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서 그 다음 조금 걸어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있는 조그마한 판잣집.”

    당황했겠지? 분명 당황했으리라. 라트의 눈에는 떨어진 별이 필사적으로 당황한 걸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럼에도 미끼를 물지 않는 건 왜 인가. 이쯤이라면 분명 라트를 공격하던가, 조건을 수락하던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지 않나?

    “이걸로 부족해? 그럼 축복의 수정은 어때.”

    설마 협박이 부족했나? 그렇다면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그건 여기 어디에 있을 건데. 찾아보라고 시켜준다면, 5분 안에 찾아주지.”

    축복의 수정은 제국에 단 3개 뿐인 공작가 중 하나인 세르테노스 공작가의 보물이었다. 그걸 훔친 장본인도 바로 떨어진 별이다.

    이쯤이면 입질 정도는 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눈앞의 암살자는 미끼를 물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라고 시키는 게 싫으면 은빛 사자는 어때. 그건 니가 지금 들고 있을 거 아니야.”

    은빛 사자는 로자빈 왕국의 근처에 있는 에브로고 왕국의 국보였다. 약 5년 전 국보가 사라져서 에브로고 왕국이 떠들썩했었지. 그 범인이 바로 이 남자였다.

    “이걸로도 부족하면, 이곳 지하에 다크 엘프 노예들이 수두룩하다고 소문을 내볼까? 다크 엘프라면 귀족들이 눈이 뒤집혀져서 이곳을 방문할 텐데.”

    보통 암살자 집단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단 하나. 재력을 모아서 밤의 거리의 권력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욕망의 단검은 그렇지 않아. 돈을 모아서 권력을 넓히기보단, 현재 권력에 안주하고 노예 시장에 다크 엘프들을 몰래 사들인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귀족들은 엘프라면 눈이 돌아가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꽤나 곤욕스러울 게 분명하다.

    “하아.”

    이제야 입질을 할 생각이 들었는지, 떨어진 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그걸 알고 계십니까. 다른 암살자 길드 놈들도 심증은 있겠지만, 그렇게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하는데. 심지어 다크 엘프들을 노예로 사고 있다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건은 저희 길드 사람들도 모릅니다.”

    다크 엘프 노예를 몰래 구입하는 거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나, 그 외에 보물을 훔친 일은 다른 이들도 몰랐다. 그가 어째서 그런 보물을 훔치는지 그 이유는 라트조차 몰랐고.

    “그런 정보를 알 수 있을 정도라면 굳이 저희의 도움이 필요 없을 텐데요.”

    “내가 지금 네 의문을 해소시켜줘야 할 입장인가?”

    애당초 입장이 다르다. 그쪽의 의문을 라트가 해결해 줄 이유가 없다. 중요한 건 단 하나, 라트가 떨어진 별 쪽의 약점을 잡고 있다는 것뿐.

    “뭐해. 습격하려면 지금이 기회라고. 물론 습격한다고 해도 너희가 이길 보장은 없겠지만, 발악이라도 해볼 생각이면 빨리 해.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시리아님과 싸워 살아남으신 분과 싸우라고요? 차라리 자살이 빠르겠군요.”

    조건을 수락할 낌새는 보이지 않으니, 슬슬 싸울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라트는 떨어진 별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오자 입을 살며시 벌렸다.

    “니가 시리아를 어떻게 알아? 설마 흡혈귀냐?”

    2세대 흡혈귀는 흡혈귀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자신의 둥지를 습격하지 않는 이상 흡혈귀가 인간을 습격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인간 사이에서는 흡혈귀의 위상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대충 성수가 있다면 상대할 수 있다. 그 정도 지식만 알고 있을까?

    “조금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떨어진 별의 정체가 흡혈귀라고 내심 짐작했으나, 암살자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흡혈귀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흡혈귀라니, 말이 심하시군요. 음, 이 주제는 여기서 끝내죠. 더 이상 발설하면 제 목이 사라지거든요.”

    “그렇다면야, 뭐.”

    말하는 기색에 조금의 불편함이 섞여있는 걸 보니, 정말 흡혈귀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발악도 못하고, 이대로 황실에 잡혀 들어가서 고문 받기도 싫을 테니. 선택지는 하나뿐이네?”

    “그렇죠. 몇 명이나 원하십니까.”

    “5천 골드에 트렌세르노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급 암살자 4명만 빌려줘.”

    5천 골드면 상급 암살자 4명을 장기간 빌리기에는 충분한 액수다. 전쟁이 빨리 끝난다면, 남는 장사기도 하고.

    “하아.”

    그런데도 어째서 한숨을 내쉬는가. 분명 적절한 가격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는데.

    “상급 암살자 4명 대신, 제가 직접 따라가겠습니다.”

    “어? 진짜? 그래준다면 나는 고맙지만, 괜찮겠어?”

    “제가 간다면 승률이 조금 더 오르겠지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위험한 도박에 걸어보죠.”

    그리 말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상급 암살자 4명과 떨어진 별 사이에 고르라면 누구라도 떨어진 별을 고른다. 그의 실력은 제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사이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니까.

    “아, 대신 돈은 더 못준다.”

    “상관없습니다. 대신, 승리하신다면 약속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맹세하지. 1만 골드는 내놨고, 여기 오천 골드까지. 상급 암살자를 빌려준다면, 노예를 샀다고 말하고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니가 간다면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이쪽으로 넘어와 주면 좋겠어.”

    상급 암살자라면 포탈을 이용할 방법이 없으니, 노예인 척 데려가려고 했다. 제국에서 노예를 사서 같이 가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러나  떨어진 별이라면 알아서 넘어올 수 있겠지.

    ‘솔직히 연기라지만, 노예 취급을 하기도 그렇고.’

    “아무리 저라도 황실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전쟁 지역으로 포탈을 이용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죠. 1시간 정도면 모든 준비를 할 수 있으니, 엔스리드 백작님의 방법을 사용하죠.”

    그렇게 생각했지만, 떨어진 별은 고개를 저으며 포탈을 이용하는 게 무리라고 말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녀와.”

    “예. 기다려주시길.”

    라트가 준 골드를 가볍게 들어 올린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방에서 사라졌다.

    “문 밖에 있던 놈들의 기척도 사라졌습니다.”

    역시, 수틀리면 기습을 할 생각이 있긴 했나보다.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다섯 명 정도였습니다. 싸움이 벌어졌다면 제압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죽일 자신은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섯 명인가. 현재 길드에 남아있는 상급 암살자를 전부 대기시켜 놨나보다. 그래봐야 미르차르드를 상대로 승리를 점치기는 어려웠겠지만.

    만약 싸움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떨어진 별이야 라트가 경화수월 기능을 사용하고 상대할 수도 있으니, 그 사이에 미르차르드가 나머지를 정리해줬겠지.

    “가만히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후작님. 덕분에 협상이 수월하게 풀렸어요.”

    미르차르드가 함부로 나섰더라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끌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라트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떨어진 별이 노예가 사용할만한 목줄과 수갑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가시죠.”

    “너, 그 로브 입고 그냥 갈려고?”

    노예 주제에 인식 장애 마법이 걸린 로브를 입고 다닌다니.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포탈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이 수상하게 여길 게 분명한데.

    “물론 아닙니다.”

    떨어진 별은 고개를 저으며 로브를 벗었다.

    플레이어 중에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떨어진 별의 정체가 허무하게 공개되는 순간.

    “이 모습이라면, 노예로 구입했다고 해도 포탈 쪽 경비병들도 이해할 겁니다.”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떨어진 별을 응시한다. 지금까지 떨어진 별이 이름이 아닌 호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게 떨어진 별의 진짜 모습인가?”

    “예. 축하드립니다, 인간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 모습을 보셨군요.”

    “설마 다크 엘프였을 줄이야.”

    쓰게 웃는다. 설마 이런 곳에서 다크 엘프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크 엘프는 부족은 전부 멸망했고, 다크 엘프들은 인간들의 눈을 피해서 도망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이제야 떨어진 별이 어째서 연인에게도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지 이해가 된다. 보여줄 수가 없었겠지.

    다크 엘프는 엘프보다 더욱 희귀한 존재다. 하이 엘프 정도는 아니라지만, 어떤 이유로 부족이 전멸당한 이후 다크 엘프의 개체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니까.

    남자든, 여자든 그 몸값은 평균적으로 5천 골드가 훌쩍 넘어간다. 아마도 눈앞의 다크 엘프 남성은.

    ‘1만 골드는 가볍게 넘어가겠는데.’

    저 정도 외모라면 귀부인께서 자신의 노리개로 사용하기 위해서 눈에 불을 키고 구입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니까 그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거다.

    “시리아님을 믿고, 얼굴을 보였습니다. 제가 인간 세상에 흘러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믿어보는 것이니, 제발 배신치 않으시길.”

    “피프토에스테리.”

    떨어진 별을 엘프어로 직역하면 이렇게 부른다. 아마도 이게 떨어진 별의 진짜 이름이겠지.

    “그게 이름이지?”

    “에, 엘프어를 아십니까?!”

    “조금은. 그렇게 유창하지는 않고.”

    어떤 플레이어가 엘프어의 체계를 조사해서 커뮤니티에 올려놨었고, 그게 한동안 베스트 게시글이 되었다. 덕분에 심심할 때마다 그 글을 봤으니, 어느 정도는 엘프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 맞지?”

    “그렇습니다.”

    떨어진 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처음부터 이름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이름을 공용어에 맞게 바꿨을 뿐.

    “동족을 구하려고 다크 엘프를 그렇게 구입했던 거구나. 미안하다. 사과하지.”

    그러니 다크 엘프 노예를 그렇게 구입했었던 거다.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 금을 벌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협박꺼리로 사용하다니.

    “사과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쥐어 주십시오.”

    저쪽에서 시원스레 사과를 받아들여줘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뭘 쥐라는 거야?

    “기왕이면 실감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자신의 목에 목줄을 건 떨어진 별은 그 줄을 라트에게 건넸다. 설마, 이걸 지금 나한테 쥐고 가라는 건가.

    “수갑은 직접 채워주시겠습니까?”

    “허참.”

    목줄은 직접 채웠으나, 수갑은 직접 채울 수가 없다. 그렇기에 라트는 그가 말하는 대로,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보니 완벽한 다크 엘프 노예다.

    문제는.

    “남자한테 목줄에 수갑이라니. 그리고 그걸 내가 끌고가야 한다니.”

    남자라는 거지.

    “후작님이 끌고 가주시겠습니까?”

    “거절, 하면 안 됩니까?”

    “역시 후작님도 좀 그렇죠.”

    라트의 명령이라면 껌뻑 넘어가는 미르차르드조차, 질색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게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아, 몰라.’

    어차피 제국에는 앞으로 1년 후에나 올 수 있을 텐데. 오해를 받아도 그쯤이면 전부 가라앉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