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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셰크티 제국, 천 년 전 즈라시나 셰크티라 불리는 초대 황제의 손에 의해 막대한 영토를 얻게 되었고 겨우 50년 만에 유일무이한 제국이라고 불리게 된 나라.
주변의 조그마한 왕국들에게 천년 제국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이 제국은 현재까지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국력이 어느 정도로 강하냐면, 이 세계의 모든 왕국들이 합심해서 셰크티 제국을 친다고 해도 승률은 40%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한 플레이어가 직접 비공인 에디터를 이용해서 모든 왕국의 군사력을 동원한 것으로 모자라 용 한 마리를 이용해 제국을 침략해봤음에도 결과는 패배.
물론 제국군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승리를 했다는 점에서 놀라울 뿐이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제국인 만큼, 그 수도는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파르스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여기가 셰크티 제국의 수도, 벨론…….”
포탈에서 빠져나온 라트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겨우 웅장하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게임 상에서는 수없이 많이 봐왔지만, 그건 2D 그래픽일 뿐. 눈앞에 현실로 펼쳐진 이 광경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셀룬 왕국의 엔스리드 백작님. 맞으십니까?”
“그렇다.”
포탈의 규모조차도 셀룬과 차원이 달랐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포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십의 마법사가 이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포탈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도 남달라 보였다.
‘저건 기사인 것 같은데.’
포탈 앞에 경비병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설마 기사까지 이렇게 세워두고 있을 줄이야. 기사는 굉장히 귀한 자원이다.
한 명의 기사를 육성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평범한 4인 가족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기사 한 명에게 들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귀족들이 고용한 기사들과 달리, 셀룬의 기사들은 오로지 왕성을 수호하기 위해 양성되는데.
‘그런 기사조차 흔하다는 건가.’
자원의 양이 다르다, 인구수의 양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관념조차도 왕국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제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아직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거겠지.
‘이런 제국이 반란 때문에 풍비박산이 나는 건가.’
라트는 다시금 흑사제들의 위험함을 실감하며 포탈에서 걸어나왔다. 뒤를 이어 미르차르드와 시그나 공주가 포탈에서 빠져나오자, 모두가 신분을 확인받는다.
“시그나 공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비병을 지나치자 굉장히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시종들이 마차와 함께 시그나 공주를 맞이했다.
“세나릭에프토리아 프리그 델 셰크티 1황녀님께서 공주님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직접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타시지요.”
황녀가 직접 마차까지 준비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보통 친분을 맺은 게 아닌 듯 하다.
‘그 얼음 황녀께서 타국에 친한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고작 히로인 NPC에 불과한 시그나 공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라트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나도 모르는 정보가 많기는 하지.’
수없이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했다지만, 워낙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임인지라, 모르는 정보는 꽤나 많았다.
막말로 엘리와 케이네도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는 잘 모르는 NPC였다. 아니 이름조차 외우지 않았었지.
커뮤니티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했으니 망정이지, 개인이 아무리 이 게임을 많이 했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어. 게다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플레이어들까지 생각하면.
‘내가 모르는 정보가 전부 변수가 될 수도 있겠어.’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이건 게임이 아니다. 상황이 라트가 원하는 쪽으로 굴러간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인 이상 항상 상황이 원하는 대로 되겠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저쪽에서 마차를 준비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그나 공주를 위한 마차일 뿐이다. 라트와 미르차르드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 도도한 황족께서 겨우 왕국의 귀족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니 여기서 헤어진다. 그건 라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당장은 제국에 있는 암살자 길드에 들려야 하니까.
“저희는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만, 황녀님께서 빨리 공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시니, 서둘러 주시길.”
‘서둘러 보고 싶을 정도로 친할 정도였어? 나중에 줄을 대기엔 편하겠네.’
다시 한 번 시그나 공주에게 빚을 만들어주길 잘했다고 생각한 라트는 이내 공주가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엔스리드 백작님. 혹시나 제 도움이 필요한 날이 오거든 주저하지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한 것은 라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나.
“제국에서 편한 여생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공주님.”
망국의 공주라지만, 공주는 공주. 그렇기에 예의를 차려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서 자소하고 말았다. 1년 정도 후면 제국에서 반란이 일어날 텐데, 어찌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장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셀룬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미르차르드 후작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엔스리드 백작님을 보필해주세요.”
“명, 받듭니다.”
비로써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씻겨나갔는지 미르차르드 후작은 떨리는 입술을 씹으며 시그나룬벨 공주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것으로 인사는 끝. 아마 1년 정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겠지. 마차를 타려는 시그나룬벨 공주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라보던 라트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가시죠, 후작님.”
“예.”
마차가 떠나자, 라트는 걸음을 옮겼다. 제국에는 대략 4개의 암살자 길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방문할 곳이 어디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기에 그 걸음에 망설임은 없다.
‘포탈을 정면에서 보고 왼쪽으로 꺾은 다음에 한참 동안 걸으면 빈민가가 나오지.’
“지독하군요.”
어느 곳이나 명암은 확실히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벨론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빈민가의 상황은 처참했다.
아기의 시체를 붙들고 울고 있는 여인은 예사. 신체 중 어느 하나가 없는 병신들이 즐비해있다. 결정적으로 그 냄새가 너무나도 지독해서, 당장이라도 속에 든 것을 게워내고 싶을 지경이다.
“아이고, 나으리. 한 푼만 줍쇼.”
당연하지만, 앵벌이를 하고 있는 거지도 있었다. 한 푼만 달라며,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해달라며 눈물을 머금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누구라도 은화를 한 닢 건네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그러나 라트는 거지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고 경고를 날렸다. 주변의 시선을 보라. 모두가 탐욕 어린 눈동자로 라트를 바라보고 있다가, 라트의 위협에 눈을 돌리지 않는가.
이런 곳에서 한 푼이라도 꺼내는 순간, 그 인간은 거지들의 맛좋은 먹잇감이 된다.
“가시죠, 후작님.”
“……예.”
빈민가에 들어왔으니, 암살자 길드를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다. 지금부터 라트가 찾아야할 곳은 바로 술집이다.
‘이런 빈민가에 술집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빈민가에 술집을 차려놔봐야 수입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리타분한 위장을 위해서 빈민가에 술집을 차려놨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십니까? 설마 그들에게 돈을 줘야 됐다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죠?”
미르차르드가 아까부터 불편한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에 라트는 질문을 던졌다.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잘 대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왜 불편해 하십니까?”
“아무리 제국이라도, 아니 오히려 제국의 빈민가가 왕국보다 더럽워서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라트님.”
“아뇨, 그럴 수도 있죠.”
그런 생각 때문에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면 죄송할 일이 아니다. 솔직히 라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게임에서는 빈민가가 그렇게 더럽게 묘사가 되지 않았기에 설마 이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이 참혹한 현장을 믿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이런 곳에도 암살자 길드가 있습니까?”
“걔네들은 이런 곳에 숨어있어야, 가장 눈에 안 띈다고 생각하나보죠. 뭐, 옳은 말이기도 합니다.”
당연하지만, 빈민가에서 술집을 찾으려고 하는 이들이 없었기에 그들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오로지 암살자에게 청부를 할 사람만이 그들을 찾았다.
“저기 있네요.”
낡아빠진 간판은 빈민가에 잘 섞여들어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술집은 단 하나 뿐이기에 술집을 찾는 이들의 눈에는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치를 알고 있다고 해서, 접선하실 수 있겠습니까? 술집을 찾는다고 암살자들이 어서 오십쇼, 하고 반겨주는 건 아닐 텐데요.”
“접선하는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트는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미르차르드의 걱정은 당연했다. 아무리 빈민가라지만, 술을 찾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술집을 찾는다고 해도, 암살자 길드와 접선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설마 그 생각을 못하고 있을까. 실제로는 여기에 온 건 처음이지만, 게임에서는 질리도록 와본 곳이다. 당연히 어떻게 하면 암살자들과 접선할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미리 조사해놓으신 겁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미르차르드 후작은 감탄에 젖은 눈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게 바라보면 조금 찔리는데.
알아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알고 있었던 사실일 뿐인데. 그렇게 존경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면 부담스러워.
그러나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기에 후작의 시선을 피해 황급히 술집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시오.”
빈민가 안에 있는 술집답게, 내부는 허름했다. 더군다나 술을 마시고 있는 이들도 오늘 내일 할 정도로 부실해 보이는 이들 뿐이다.
‘돈도 없으면서 술은 잘도 마시고 있군.’
구걸해서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은 않고, 술을 마시는데 탕진한다. 그래 이게 바로 이들의 생활 방식이지.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빈자리에 앉았다.
“욕망의 단검 한 잔.”
그 말에 안내를 맞고 있던 여자 종업원과 카운터에서 술을 팔고 있던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세계에 욕망의 단검이라는 술은 없다. 애당초 단검이라는 단어 자체가 술에 들어가기에는 부적합한 단어잖아.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굳어지는 까닭은 하나다. 욕망의 단검이란, 제국에 있는 암살자 길드의 이름이었다. 그것을 한 잔 달라고 함은 청부할 일이 있다는 뜻.
“그 술은 안쪽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시려면.”
“자, 선수금.”
이어서 할 말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인벤토리에서 50골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뿌린다.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암묵적으로 선수금을 내야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만나기 위한 돈일 뿐. 당연히 임무와 관련된 돈은 따로 내야했다.
“안내해드려라.”
“예. 따라오시겠어요?”
“아, 들어가기 전에 물 한 잔만 먹을 수 있을까? 목이 조금 말라서.”
“여기 있습니다.”
남자가 물컵을 내밀자 라트는 군말없이 그것을 마셨다. 지금부터는 말을 많이 해야 하기에, 미리 물로 목을 축여놓은 셈이다.
라트가 미르차르드와 함께 여자 종업원을 따라 술집 내부로 들어가자.
“오늘 장사는 끝났습니다.”
“엥? 좀 더 마시게 해달라고. 아직 대낮이잖아.”
“다시 한 번 말할까요? 아니면 나가시겠습니까.”
“알았어, 나가면 되잖아, 나가면.”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을 모조리 쫓겨난다. 그렇게 벨론의 빈민가에 있는 이름 모를 술집은 일찍 영업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