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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59화 (15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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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라트조차,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릴 뿐이다.

황당하다, 어이가 없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거기에 더 웃긴 건, 트렌세르노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하다는 거다.

‘무슨 의도지?’

분명 의도하는 바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겠지. 어쩌면 셀룬 왕국으로 침투해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공작과 후작을 수하로 만들 정도라면, 내부를 좀 먹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

“혹시나 제가 반란을 일으킬까 못미더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어서 말하는 제안을 수락해주는 조건으로 목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목을 주겠다고 말하는 트렌세르노의 말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기껏 반란을 일으켜놓고 왕이 되어 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모자라 제안을 수락하면 죽어주겠다니.

‘정신 차려.’

정신 이상자가 아닌 이상, 저런 제안을 할 리가 없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그래 트렌세르노는 자신의 제안을 수용한다면, 이라고 말했다. 그 제안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라.

“이해를 하지 못하겠군. 하나 묻지. 자네의 조국은 차리친이지?”

“그렇사옵니다.”

“조국을 제 손으로 멸망시킨 것도 모자라서, 짐에게 넘기겠다고? 도대체 무슨 연유로?”

“후우.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오케만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트렌세르노는 숨을 고르고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차리친이 아니, 현재 세계가 어떠한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는지요.”

“음?”

무슨 의도의 물음인가. 너무 광범위한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전하께서는 세계가 얼마나 불공평한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습니까?”

“불공평, 하다?”

오케만 국왕을 비롯해 왕의 가신을 비롯한 셀룬에 속한 모든 이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단 한 사람. 라트만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렇습니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태생을 따져, 천민과 귀족을 구분합니다. 귀함과 천함이 겨우, 부모에 의해서 결정되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신분제가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고 있는 이 세계에서, 전제군주제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 세계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소름이 돋는다. 민주주의 이름 아래 살아온 라트이기에 알 수 있다. 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고금을 통틀어, 그 어떤 생명체도 이런 식으로 태생을 나누지 않습니다. 심지어 무식하기로 유명한 오크조차도, 부모가 누구인지를 보고 사람을 대우하지는 않습니다. 오크의 경우 오로지 힘으로만 대우받습니다.”

나아가 엘프는 어떤가. 그들은 모두가 평등한 개체이며 오로지 개개인의 지식과 실력, 그리고 나이로만 평가를 받는다. 혈통으로 귀천이 결정되지 않는다.

하이엘프라는 예외적인 존재가 있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종이 다른 종족이었으니 논외다.

“태생이 천한 자도 재능이 있기 마련입니다. 당연하지요, 인간은 공평하게 태어나니까요. 그러나 지금 이 세계는 어떻습니까.”

이 세계에서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종족 중 신분으로 귀천을 평가하는 건 단 하나뿐이다.

‘인간이지.’

가장 큰 무리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공평으로 얼룩져있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얼마나 어리석은 세계인가.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실력을 갖추고 좋은 자리에 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귀족에게 남아도는 게 바로 시간이니까. 본인의 실력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본인의 외모를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그럴 시간이 넘치는 존재가 바로 귀족이었다.

“반대로 평민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능을 갈고 닦기가 어렵습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평민 중에도 분명 귀족과 같은 조건으로 배울 수 있다면, 귀족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졌을 이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다. 한 나라의 인구수를 생각하면 귀족의 숫자는 1%도 되지 않으니까.

“평민이면 차라리 낫지요. 형편이 좀 좋은 이들은 공부를 해서 관리가 되거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노예는 어떻습니까.”

이어지는 말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눈앞의 남자는 위험한 자라고.

“부모가 노예라는 이유로 자식도 노예가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 이하의 자격이 부여되고, 필요 이상의 교육은 받을 수조차 없습니다.”

이제까지 눈을 감고 말하고 있던 트렌세르노는 지금에 와서 그 눈을 떴다. 그 눈에는 살기가 없었다.

원망도, 분노도, 억울함도 없다. 그럼에도 그 눈에는 힘이 넘쳤다.

“귀족이 평민의 골수를 빨아먹는 걸 당연한 일, 귀족이 노예를 부리는 것도 당연한 일.”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거대한 상식이 되어, 하나의 틀이 된 세계이니까. 아무리 뛰어난 지식인이라고 해도 이미 정해진 상식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지식인 한 명으로는 도저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런 지식인이 수백 명에 걸쳐야 비로써.

“평민이라면, 노예라면!”

거대한 한 틀을 부술 수 있는 것인데, 그런데.

“높으신 분들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세계. 정말이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세계이지 않습니까?”

이 남자는 도대체 어찌하여, 저리 말할 수 있는가. 어찌도 저렇게 머나먼 곳을 내다보고 있는 것인가.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작 왕의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됩니다.”

“무엄하도다!”

왕은 곧 신이다. 왕이 존재하기에 국가가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전제군주제의 정의. 그렇기에 우룬이 크게 외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왕을 모시는 기사의 면전 앞에서 왕의 존재를 부정하다니.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룬이 시퍼런 검을 뽑아들고, 살기를 내뿜고 있음에도 남자는 웃었다.

“무엄이라고 하셨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무엄하다는 말입니까. 인간이 인간에게 옳은 말을 하고 있는 게, 고작 태생 때문에 무엄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겁니까.”

트렌세르노의 옆에 있는 두 오러 마스터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의 옆을 지킨다. 분명 기사가 검을 뽑아들었음에도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 고작 그거 하나 때문에 인생이 결정되다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트렌세르노가 펼치는 이상에 긍정하고 있을 뿐.

“주신 홀리께서도 그것을 원하실까요? 과연 신들께서는 이 세계를 옳다고 생각하실 까요?”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빛의 신 홀리가, 모든 인간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옳다고 생각할까?

그 질문에 우룬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신전에서 거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전에서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는 것에 인간을 주시할 정도로 쪼잔한 이 세계의 신들은 이상하게도 인간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신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기에 신전도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면전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부정당한 오케만 국왕은 침착하게 트렌세르노에게 이 대화의 논지를 물었다.

여기서부터 그의 제안은 시작되겠지.

“그렇기에 저는 제안합니다. 법을 만드는 것을요.”

“법?”

법이라니. 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왕의 아래 귀족을 위한 법이 있고, 평민을 위한 법이 있다. 그렇기에 법을 어기면 귀족이라도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무슨 법을 만들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만인이 공평하게 취급받을 수 있게 법을 만드는 겁니다. 법 안에서는 귀족도, 평민도 없이 공평하게 처벌을 받는 거죠.”

귀족을 위한 법이 따로 있고, 평민을 위한 법이 따로 있는 세계다. 귀족이 평민에게 무슨 잘못을 한다고 해도, 처벌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세계다.

“물론, 왕도 거기에 속합니다.”

그런 세계에서 만인이, 심지어 왕조차 공평하게 취급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들자고 당당히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법을 심판하는 기관이 왕권에 통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누구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이 법을 집행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왕도 법의 아래에 있는 세계라니! 그렇다는 말은 왕의 힘이라 할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하라는 소린가!”

“아닙니다. 제 말은 법의 아래에는, 군주조차도 군림하되 강제할 수는 없다는 거죠. 좋은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좋은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왕이 곧 신과 같은 이 세계에서 왕조차 법아래 평등해야하다니. 초대 황제를 신으로 모시고 있는 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당장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트렌세르노는 말을 이어간다.

“겨우 이 정도로는 공평한 세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 옳은 말이다. 겨우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을 만든다고 해서, 만인이 평등할 수는 없으니까.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귀족들은 여전히 평민의 세금을 먹고 삽니다. 나라가 아닌, 귀족을 위해 평민과 노예는 평생을 일해야 합니다.”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편한 여생을 보낸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먹고 살기 위해 평생을 노동한다.

“같은 백성임에도, 일부 백성들을 위한 구조.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상위 1%를 위해 나머지 99%가 희생되는 제도. 어찌 불합리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제안합니다. 신분제의 폐지를요.”

“헛소리를! 그 이상 말하면 내 당장 네놈의 목을!”

“끝까지 들어보라. 브로켄 후작.”

브로켄 후작이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들려고 하자, 우룬의 살기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던 하이데른 공작이 입을 열었다.

“나에게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계속 들으라고? 미쳤군, 네놈년들 세뇌라도 당한 것이냐?”

“내 정신은 굉장히 맑다. 트렌세르노를 만나 깨우쳤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니 들어보라.”

“말하게 두어라. 브로켄 후작.”

왕이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왕의 면전 앞에서 감히 검을 뽑아들 수 없었던 브로켄 후작은 검으로 가져갔던 손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전하. 역시 제가 눈여겨본 분답습니다.”

“고마워하지 마라. 나 역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오케만 국왕의 대답에 트렌세르노는 웃으면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인 후 말을 이었다.

“신분제를 폐지하고, 오로지 왕만이 군림하되, 법의 아래 통치하는 겁니다. 왕의 아래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법의 아래에는 왕조차도 모두와 평등합니다.”

‘돌아버리겠군.’

계속되는 이야기에 라트는 머리를 감쌌다. 지금 저 남자가 하는 소리는 적어도 몇 백년 아니, 몇 천 년은 앞서간 소리였다. 그렇기에 그 이상은 너무나도 높았다.

“작금 평민과 노예가 개돼지와 다른 게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몰라도, 다른 귀족에게 물어보십시오. 과연 평민을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귀족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옳은 말이다. 특권 의식에 찌든 귀족들이 과연 평민을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골수가 빠져 일을 해 자신에게 세금을 바치는 평민을 그 누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평등하기에 비로써 모두가 인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인간일 수 있다. 어찌 이리 깨끗한 울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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