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57화 (15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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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앞으로의 전쟁 방향이 문제로군.”

    “아무래도 핀스크 왕국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게 제일 좋아 보이긴 합니다만.”

    이곳은 셀룬의 알현실. 오케만 국왕과 루아타 공작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라트와 달리 흑마법사에 관한 정보가 없는 오케만 국왕과 루아타 공작은 당연히 핀스크 왕국으로 진격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작은 선뜻 핀스크 왕국을 치자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핀스크의 동태가 이상해.’

    동맹은 아니지만, 우호적인 관계였던 켈랑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핀스크 왕국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막말로 켈랑 왕국을 수복하겠다면서, 이름 없는 사람 하나 잡아 켈랑 왕가의 핏줄이라고 속이고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다. 전쟁의 겁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명분을 날조할 수 있음에도 움직이지조차 않는다니.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왜 그러는가.”

    “그것이…….”

    “전하! 급한 전갈이옵니다!”

    루아타 공작이 상황을 설명하려는 순간, 왕을 모시는 기사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오자 공작과 국왕의 시선이 기사에게로 향한다. 도대체 무슨 급한 전갈이기에 감히 이곳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들어온단 말인가.

    “말해보아라.”

    궁전에 속한 기사들은 예의를 알고 있다. 아니 필요 이상으로 예의를 중시한다. 그런 이들이 예를 무시하고 뛰어들어왔다면 필시 그 이유가 있을 터.

    그렇기에 오케만 국왕은 기사를 타박하기보다,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차리친 왕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옵니다!”

    “무, 뭐라고?”

    이어지는 말에 두 남자의 얼굴에 당황이 꽃핀다. 반란이라니, 나라가 하나로 뭉쳐서 국력을 키워도 모자란 지금 상황에 반란이 일어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리친의 국왕은 우둔하지 않다. 오히려 상당히 뛰어난 자였다. 그런 국왕 아래 반란이 일어날 줄이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차리친은 재기할 수가 없다. 어쩌면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영영 주장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은 왕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

    “자세히 말해보아라.”

    “예. 저희가 켈랑과 전쟁을 할 때부터 반란의 조짐이 있었다고 하옵니다. 차리친의 국왕님이 그것을 무마시켜 보려고 했지만, 결국 반란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뜸을 들이는가. 기사는 입이 탄다는 듯, 침을 삼킨다.

    “어서 말하라.”

    “그것이 반란이 일어난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차리친의 영토가 80% 이상 반란군의 손에 빼앗겼다고 합니다. 특히 놀라운 것이 차리친의 수도인 베르렐이 반란군의 손에 빼앗기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그,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 차리친은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영토의 80% 이상을 빼앗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수도가 함락되기 직전이라니. 수도가 함락된다면 사실상 반란을 성공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도대체 차리친은 셀룬과 동맹이면서도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알리지 않고 무엇을 했는가.

    “반란이 일어난 지는 겨우 이주가 넘지 않습니다. 반란군 쪽에서 정보를 최대한 감추고, 한 번에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보입니다.”

    “이, 이주도 넘지 않았다고?”

    오케만 국왕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허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루아타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한 왕국이 이주 만에 반란군에 의해 점령당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다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 정보도, 반란군 쪽에서 일부러 흘려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적에 정보를 통제하는데 관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종되옵니다.”

    “다, 당장 구원군을!”

    아직도 당황하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오케만 국왕과 달리 루아타 공작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금 구원군을 편성하여 차리친을 구원하러 간다고 해도, 그 때까지 차리친이 멸망하지 않을 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차리친을 구원한다고 해도, 이쪽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차리친을 구원해준다면 셀룬은 명성을 얻을 수 있겠지. 그러나 그것뿐이다. 전쟁의 시대에 명성은 부도난 회사의 명의로 된 수표와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땅, 그리고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국력이었다.

    “반란군 쪽에서 일부러 정보를 흘렸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공작님.”

    반란이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음에도, 반란군 쪽에서 일부로 정보를 흘렸다. 이것은 이쪽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보겠다는 심산이다.

    그 말은 이쪽에서 구원군을 보낸다고 해도, 그 전까지 차리친을 완벽하게 무너트릴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전하, 구원군을 보내기는 이미 늦은 것 같사옵니다.”

    공작의 말에 오케만 국왕은 침음을 삼켰다. 너무나 갑자기 들이닥친 소식에 아직도 제정신을 차릴 수 없는지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사옵니다.”

    “기회? 이것이 무슨 기회가 된단 말인가.”

    “저희는 차리친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걸 모르는 척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반란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대륙에 퍼지면 그 때 차리친의 복수를 외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그것은.”

    공작의 말대로 그것으로 전쟁 명분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너무 패도적인 방법이다.

    자엄한 군주의 기상을 가지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오케만 국왕은 공작의 말을 제대로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싫으시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오케만 국왕이 부정의 뜻을 내비추자 공작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면서 차선책을 들이밀었다.

    “이제 막 반란을 성공했기에 저들은 저희와 전쟁을 하는 걸 꺼려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린느탐보프로 갈 수 있게 포탈을 열어달라고 청하는 겁니다.”

    “어찌 그리 먼 길을 돌아가려고 하는가. 핀스크 왕국이 있지 않나.”

    “그들의 동태가 이상하여, 전쟁을 거는 것이 꺼려지옵니다.”

    “동태가 이상하다고?”

    “그렇사옵니다.”

    루아타 공작이 핀스크 왕국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을 언급하자, 오케만 국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확실히 그렇군. 그렇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그 먼 길을 돌아가야겠는가?”

    “소신의 감을 믿어주시옵소서.”

    공작은 이상하게도, 지금 당장은 핀스크 왕국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린느탐보프를 쳐야한다는 의견을 강경이 들이밀었다.

    오랜 세월 공작을 지켜본 오케만 국왕은 오랜 고민 끝에 그라면 필시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저쪽과는 어떻게 협상을 하려고 하는가.”

    “분명 반란을 성공하면, 왕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셀룬에 사신을 보낼 것입니다. 그 때 협상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루아타 공작이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이 이상은 다른 사항을 논의하기엔 아직 완전히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전쟁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건 어째서인가.”

    “한 왕국을 단번에 전복시켜버린 위험한 무리입니다. 혹시나 이쪽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여봐라, 네 후작과 엔스리드 백작을 성으로 부르도록 하라.”

    “충! 하오나 시간이 늦었는지라, 주무시고 계실 수도 있는데 어찌할까요.”

    “혹여 한 명이라도 자고 있다면, 깨우지 말고 내일 아침 일찍 찾아오라고 알리게.”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고 약간의 평화가 찾아오나 싶었던 셀룬에 혼란의 소용돌이가 찾아왔다.

    ***

    국왕의 부름에 급히 왕성에 도착한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이네, 미르차르드, 브로켄, 거기에 세르먼트 후작. 왕국의 네 후작은 전부 모였다. 거기에 유일한 공작인 루아타 공작까지 있는 상황.

    ‘권력의 핵심층은 전부 모였어.’

    정확히 말하면 케이네는 권력의 핵심층이라고 말하긴 그랬지만, 현재 케이네는 연금술사 길드의 하이 마스터다. 셀룬에서 사용하는 모든 병장기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니 권력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인 군부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케이네는 과로에 시달리고는 있었지만, 스승이 미리 만들어둔 것이 있고 라트도 조금씩 도와주고 있기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급히 부른다고 불렀지만, 각자 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상당히 소비한 덕분에 결국 다음날이 돼서야 국왕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었다. 애당초 국왕이 이들을 모이라고 한 시간대가 늦은 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로 급히 부르셨습니까, 전하.”

    “우선 앉게.”

    세르먼트 후작의 물음에 오케만 국왕은 알현실에 놓여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긴 이야기가 될 모양이다.

    ‘앞으로의 전쟁 방향을 회의할 생각이신가?’

    공작과 네 후작, 거기에 켈랑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인 라트까지 불렀으니,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아보였다.

    “이른 시간에 불러 미안하다고 생각하네.”

    “괜찮사옵니다, 전하. 괘념치 말아주시옵소서.”

    밤새 잠을 못 잤는지, 국왕과 공작의 눈이 조금 퀭한 것을 보니 감히 불평을 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대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급한 소식이 있어 부른 것이라네.”

    ‘급한 소식?’

    딱히 급한 소식이 있을 게 있나? 오케만 국왕의 물음에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핀스크 왕국은 전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상 가만히 있을 거다.

    린느탐보프 왕국은 사리이 왕국에 의해 차근차근 점령되고 있을 거도.

    그나마 급한 소식이 생기려면, 차리친 왕국이 린느탐보프에 전쟁을 선언하는 정도일까?

    “차리친 왕국에 반란이 일어났네.”

    “예?!”

    다음 순간, 라트의 생각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그, 그것이 정말이옵니까, 전하.”

    “정말이라네.”

    “현재 차리친이 2주일 만에 반란군의 손아귀에 영토를 80% 이상 빼앗겼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작 2주일 만에 영토를 80% 이상 빼앗겼다니. 그동안 어째서 정보가 들어오지 않을 수가 있지?

    아니 그 전에 반란이라니, 차리친에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는 수없이 왕국 전쟁을 플레이 해오면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흑사제 짓인가?’

    아니 그건 아니야. 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차리친 왕국에서도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다니.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고, 흑사제들은 그걸 알 정도로 똑똑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설마 랜덤 NPC가?’

    월드 세리아는 항성 정해진 NPC들만이 활동했지만, 게임에 항상 변수를 주기 위해서 랜덤으로 네임드 NPC를 나타나게 설정되어있다.

    그렇지만 네임드 NPC가 반란까지 일으켰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랜덤 NPC의 영향력은 기껏해봐야 한 나라의 국력을 강화시킨다던가, 갑자기 영웅으로 등장해서 전장을 뒤집는 정도의 변수 정도만 만들 수 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게임의 변수가 급격히 늘어나지만, 한 왕국을 전복시킬 정도의 변수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게임 상 분명 그렇게 설정되어 있을 건데.

    ‘잠깐만.’

    또다시 이것이 게임이라고 생각한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생각해보자, 랜덤 NPC는 능력치도 랜덤이라서 가끔 상상도 못할 정도의 괴물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괴물이 게임 안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이런 변수도 납득할 수 있다. 한 나라를 뒤집어 엎어버렸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정보, 그리고 선동 쪽에 엄청나게 특화된 책사형 랜덤 NPC가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기회였다.

    “국왕 전하께서는 이 일에 관해 자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신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래서 군부의 핵심층을 전부 부른 것이군.

    ‘상황이 재밌게 됐는데.’

    그렇지 않아도 핀스크 왕국을 치지 않고 어떻게 전쟁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라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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