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53화 (15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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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자네는 명예 귀족이 어울리는 자로군. 욕심이 없어서야, 제대로 된 귀족이 되기는 힘들지.”

    오케만 국왕의 평가에 라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욕심이 없다니, 그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야.

    재화? 권력? 명성? 다 좋아. 그러나 그런 것쯤은 나중이라도 얻을 수 있어. 진 엔딩을 보고 나서, 필요하다싶으면 나라도 건국할 수 있단 말이다. 지금 당장은 강해지는 게 먼저다.

    “흐음, 가장 뛰어난 무구라.”

    일단 라트의 부탁을 수용할 생각이 있는지, 오케만 국왕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 있긴 하네만.”

    5분 쯤 지나, 고민 끝에 오케만 국왕이 입을 열었다.

    “그걸 가져오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말이지. 그것도 내가 직접 다녀와야 하네.”

    비밀 창고에 갈 생각인가? 오케만의 말에 라트는 눈을 반짝거렸다. 비밀 창고에 있는 무기는 회차 마다 랜덤이다. 그러니까 셀룬의 비밀 창고에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좋은 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되돌아오는 자도 투창용으로 사용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무기임이 틀림없지만, 라트에게는 알맞지 않은 무기다. 그저 되돌아오는 기능만으로는 조금 부족해.

    “그러니까 여기서 공작과 이야기 나누며, 좀 기다리고 있게나. 아니 아예 응접실로 가 있게. 그게 낫겠군. 여봐라, 공작과 라트를 안내하도록.”

    문 밖에 대기 중인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국왕은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라트는 그가 제발 괜찮은 기능이 달려있는 무기를 가져오길 바라면서 공작과 함께 응접실로 향한다.

    ‘이거 기회 아닌가?’

    응접실에 도착해 공작과 마주앉은 라트는 지금이 케이네의 이야기를 꺼낼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전쟁 피로도를 회복하기 위해 한두 달 정도는 쉴 수 있겠지만, 조금 있으면 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공작과 이렇게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겠지.

    아니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공작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상황이다. 오늘은 국왕이 라트를 보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공작과 이렇게 독대를 할 수도 없었을 거다.

    “저기, 공작님.”

    그러니 기회는 지금이다. 그렇게 생각한 라트가 입을 연 순간, 공작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딸 아이가 허락한 일이다.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에?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라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공작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에 엘리에게 자네가 첩실을 둘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화가 났네만.”

    ‘엘리가 말했구나.’

    분명 조금 화가 난 수준이 아닐 거다. 공작은 원래대로라면 엘리의 죽음으로 광인이 됐을 정도로, 그 정도로 딸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딸로 모자라, 첩실을 두겠다는데 어찌 조금 화가 났겠는가. 지금도 미약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엘리가 미리 언질을 해두지 않았더라면, 당장 마법을 사용해서 라트를 죽이려고 들었을 지도 모른다.

    “제스맹의 딸 같은 아이를 첩실로 두겠다는데. 그 아이도 그걸 원한다는데 내가 죽어라 반대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것도 옳은 말이었다. 케이네는 제스맹의 첫 번째 제자이자, 그가 딸같이 여겼던 여자다.

    이제는 떠나간 친우가 남긴 유이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바라는 일이 루아타 공작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참았다. 분노를 거뒀다. 평생 한 명의 부인만 둔 공작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라트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해는 할 수 없더라도, 납득하려고 했다.

    “다만, 딸아이에게 소홀히 대한다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공작의 말에 라트는 단언한다. 엘리를 소홀히 대한다니,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남겨두고 홀로 떠날 일은 생기겠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엘리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자네를 믿겠네. 정확히는 자네의 스승이었던 제스맹을 봐서 믿어보겠네. 아, 그리고 미르차르드님의 처분에 관해서인데.”

    거기까지 말한 루아타 공작은 더 이상 이 대화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미르차르드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연금술사 길드에서 기거 중이신가?”

    “예.”

    미르차르드는 포로가 아닌, 셀룬에 투항한 자다. 그런 자를 감옥에 가둘 수도 없다. 그래서 왕성에 기거할 곳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미르차르드가 한사코 라트의 옆에 있어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연금술사 길드에서 기거 중이었다.

    “그럼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냥 뭐, 혼자 수련하시고 하십니다.”

    사실은 리오스를 가르치는 중이다. 리오스의 잠재 능력을 본 미르차르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정말 제가 이 아이를 가르쳐도 되냐고 물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아직은 공작에게 리오스의 존재를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혹시나 신전 쪽에 리오스의 실력이 알려지면 곤란하니까.

    물론 리오스의 존재가 신전 쪽에 알려진다고 해도, 신전에서는 리오스를 지금까지 보호해줘서 고맙다고 라트에게 사례를 하면 했지, 라트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리오스가 바이올런의 성녀가 되는 건, 신전으로 들어간 이후니까.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지만.’

    리오스를 신전으로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순진한 아이가 신전에서 훈련받게 되면 운명의 실을 연결할 기회가 사라지니까. 게다가 냉혹한 검의 성녀가 되는 걸 보고 싶지도 않아.

    ‘아, 슬슬 신전에도 들려야 되는데.’

    혹시나 애니그마가 자신을 종속으로 삼을까 싶어 라트는 아직까지도 신전에 방문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장례식은 예외다. 그 때도 신전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정확히는 신전에 딸린 건물 중 하나에 들어갔을 뿐이다.

    ‘슬슬 들려야지.’

    신전으로 가서 얻을 퀘스트도 있고 성수도 몇 병 얻어놔야 한다. 언제 또 흡혈귀 같은 괴물을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미리 성수를 얻어놔서 언제든 생명의 연금술로 성수를 만들 수 있게 해놔야 한다.

    ‘그놈의 성수는 신전에서만 팔아서 귀찮단 말이야.’

    실로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전이 없는 곳에서는 성수를 구하지 못해. 이 세계의 성수는 소독약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데 탁월했다. 그래서 흡혈귀 같은 괴물과 싸울 때 굉장한 효과를 보여주지.

    “아마 미르차르드님께도 영지가 생길 거라네.”

    루아타 공작의 말에 대화로 돌아온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투항한 귀족 중에서도 루아타 공작은 지위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가장 뛰어났다. 당연히 영지를 줘야한다. 작위도 최소 백작, 어쩌면 후작위를 내려줄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면 너와 미르차르드님은 떨어져야 하는데, 과연 허락을 하실지.”

    그 말을 하려고 했던 건가. 라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을 겁니다.”

    미르차르드가 영지를 얻는다면 리오스와 에스페를 그곳으로 보내면 된다. 라트의 미래를 위해서 리오스를 가르치라고 하면, 미르차르드는 충분히 납득할 거다.

    그리고 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때는 미르차르드와 같은 군단에 속하면 그만이다. 그 정도라면 미르차르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그렇다면 상관없겠지.”

    혹여나 미르차르드가 귀족 자리를 거절하고 라트 옆에 있겠다고 할까봐 노심초사했던 루아타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트야 평민에서 귀족이 되는, 왕국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상황이니, 영지를 내리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미르차르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적국이라고 하지만, 한 때 후작이자 오러 마스터에게 영지를 주지 않으면 셀룬에 투항한 다른 귀족들의 처리도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말일세…….”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아니 말은 할 수 있다지만,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에 말을 흐리는 건가.

    라트는 말을 꺼내지 않고, 머뭇거리는 루아타 공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제스맹이 자네에게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네.”

    아, 그런 문제였나.

    “물론 케이네양이 자네의 부인이 된다면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네만, 혹시나 제스맹에게 섭섭함이 생길 것 같아서…….”

    자신 때문에 죽은 친우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작은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며 라트의 눈치를 살폈다. 한 나라의 공작이 고작 평민의 눈치를 살피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뭐, 공작 입장에서야 당연히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저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지만, 꿈을 넘겨주셨으니 괜찮습니다.”

    “그런가.”

    괜히 제스맹이 라트에게 따로 유서를 남겼다고 말하면 곤란하니, 그렇게 말한다. 제스맹이 루아타 공작에게조차 엘릭서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다면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에게 라트와 케이네가 엘릭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지 않았나.

    ‘분명 파란이 일어나겠지.’

    엘릭서, 루베도 학파의 최종 목표나 다름없는 경지. 포션을 만드는 이들의 꿈과 같은 물건. 포션과는 격이 다른 회복력을 보여줘, 죽기 직전의 사람조차 살릴 수 있으며 나아가 재능을 무시하고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물약.

    그런 걸 개인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타국은 물론이오, 어쩌면 제국에서 라트를 넘기라고 협박할 수도 있다.

    ‘당연히 숨겨야지.’

    자랑하고 다닐 것은 자랑하고 다니는 게 맞지만, 숨겨야할 것은 숨겨야한다. 라트가 제법 강해졌다고 해도 아직도 이 세계에서는 한없이 약자에 불과하다.

    플레이어 사이에서 드래곤 정도는 가볍게 때려잡을 수 있어야,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그 정도는 되야, 개인이 나라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니까.’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마족들이 이 세계로 넘어옴에도 용들은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천계를 살아가는 신들과의 계약으로 악신의 석판이 완성됐기에 넘어오는 거다.

    게다가 인간계로 넘어온 마족들의 힘은 마계에 있을 때보다 1/2 정도 약하다. 마왕이 인간계로 넘어온다고 해도 고룡 열 마리나 상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월드 세리아의 드래곤은 다른 게임에서 나오는 드래곤보다 너무 강해.’

    제작자 중에 용 빠돌이 새끼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용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지.

    용의 힘은 규격외다. 악신을 모시는 이들이 마족과 악마라면, 천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용들이다.

    천신의 영향력이 강한 인간계에서 용들의 힘이 강하다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세계의 용은 너무나 강대했다.

    “제스맹의 장례식을 마저 보지 못했네만, 포탈 앞에서 일어난 소란을 생각하면 대충 알 것 같더군.”

    루아타 공작은 제스맹의 최후를 확인하고 다시금 돌아갔었다. 그렇기에 장례식을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포탈 앞에서 일어났던 소동을 생각하니, 그 장례식이 대충 어떤 꼴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제스맹 기느투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귀족은 거의 없었겠지. 그저 국왕을 보기 위해서, 이번 논공행상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보상을 얻기 위해 핑계꺼리로 장례식에 온 귀족들이 많았을 것이다.

    “성미도 급하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릴 것이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면,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귀족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래, 전쟁을 겪어본 귀족들은 제스맹의 무덤으로 달려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연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자신의 가신으로 연금술사를 기용한 이도 수없이 많다.

    “성미가 조금 급하기는 하셨지요.”

    스승의 모습을 떠올린 라트는 슬픔에 젖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눈물은 삼킬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후유증은 오래갈 것 같다.

    “오래 기다렸나?”

    분위기가 침울해지려는 그 순간, 오케만 국왕이 웃음꽃을 피우며 응접실로 들어왔고 그의 손에 들린 초록색의 쌍검을 본 순간, 라트의 눈이 번쩍였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새벽~ 내일 오후 쯤에 올라갑니다.

    선작, 추천, 원고료 쿠폰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특히 오늘은 원고료 쿠폰을 너무 많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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