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51화 (151/229)

0151 / 0229 ----------------------------------------------

1부

“어째서 이렇게 많은 귀족들이 이곳에 있는 거지? 얌전히 숙소나 성에서 머물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포탈에서 나온 루아타 공작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조용하지만, 그 소리는 귓가에 속삭이듯 생생히 울려 퍼졌다.

“그것이, 공작님! 공녀님께서 평민과 약혼을 했다고 얼토당토하지 않은 거짓말을!”

공작의 차가운 분노를 어떻게든 피해보기 위해서, 자신의 추한 욕망을 어떻게든 감춰보기 위해서. 슈페림 자작은 재빨리 대화 주제를 라트에게로 돌렸다.

“내 딸의 말이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지 실로 궁금하군.”

물론 그 시도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다. 공작의 말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작을 바라본다. 반대로 몇몇 귀족들은 공작을 이해하는 듯이 반응했다.

왕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위에 없는 셀룬 왕국의 유일한 공작. 그런 그가 다른 귀족과 연을 맺을 이유가 없다. 차라리 기둥서방 하나를 데려다, 데릴사위로 쓰면 그만이다. 권력을 나눌 필요도 없으니 어찌 현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어쩌면 현명한 생각일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도 틀렸어.

“다녀왔습니다, 라트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느냐?”

하나 둘, 포탈에서 나오는 귀족들 중 미르차르드와 브로켄 후작이 라트를 발견하고 급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왕국에 2명뿐인 후작에게 염려를 받고 있다는 것도 놀랄 따름인데 심지어 그 미르차르드가 라트는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고 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귀족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소동이 일어난다.

“오, 후작 대리. 아니 이제 후작 대리가 아닌가. 아무튼, 바쁜 나머지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네. 급히 기느투스 후작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고 싶은데, 안내해줄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세르먼트 후작이 라트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자, 또다시 소란이 일어난다. 후작 한 명이 염려를 해주는 것도 놀라 자빠질 지경인데, 두 후작 모두가 라트를 염려하고 있다니.

그제야 몇몇 이들이 라트가 누구인지, 그리고 케이네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대연금술사의 장례식을 지키고 있던 이라고 수근거린다.

‘그래, 이게 연금술사의 처지지.’

개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아. 분명 장례식에 찾아왔었던 귀족들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케이네와 라트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다.

연금술사니까. 장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연금술사와 사귈 시간에 대성할 마법사나 무사와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위해 스승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 역겹기 짝이 없다.

“가세나. 브로켄, 자네도 갈 거지?”

“그래야지. 쯧쯧.”

주변의 반응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유추한 브로켄 후작과 세르먼트 후작은 라트의 손을 붙잡고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 저 귀족들을 챙겨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여기 있어봐야, 라트에게, 한창 꽃 피어날 젊은이에게 득이 될 것이 없기에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멍청한 자들이로고.’

전쟁을 겪어봤기에 안다. 이 전쟁이 누구의 덕에 이렇게 쉽게 이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두 후작은 이 자리에 있는, 전쟁이 무서워서 숨은 귀족들을 향해 혀를 차며 라트를 앞장세우고 제스맹 기느투스가 묻혀있는 곳으로 걸었고, 엘리와 케이네 역시 그를 따랐다.

“선언하지.”

당장이라도 친우의 무덤으로 달려가고 싶은 건 루아타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다른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말을 잇는다.

“저 자는 기느투스 후작님의 두 번째 제자이고,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남자다. 내 딸의 짝이 되기에는 부족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넘칠 정도다.”

어찌 넘치지 않겠는가. 켈랑을 이렇게 빨리 점령한 것은 기느투스 후작의 지원 덕분이기도 하지만, 라트의 활약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평민일 뿐, 논공행상이 이뤄지는 순간 귀족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번 다시, 그를 욕한다면.”

그러니 공작은 선언한다.

“그 때는 내 딸의 분노가 아닌, 내 분노를 맛보리라고 약속하겠다.”

두 번 다시, 친우의 제자를 모욕하지 말라고.

그 말을 끝으로 루아타 공작은 포탈에서 나오는 귀족,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승전보를 당당히 알리며, 꽃길을 걸었다.

같은 시각,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두 후작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놓아주셔도 됩니다. 머리가 좀 냉정해졌어요.”

“쯧쯧, 미안하게 됐네. 대신 사과하지.”

“에잉, 멍청한 놈들.”

이제와서 화가 난다고 저것들에게 한 소리하려고 가봐야, 이미 루아타 공작이 한 마디 단단히 해놨을 것이 분명했기에 라트는 표정을 풀었다.

“멸망한 켈랑에도, 그리고 셀룬에도.어디에나 저런 자들은 있군, 그래. 라트님 저런 이들은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니콜라벨리. 물이 고이면 썩을 수밖에 없어. 썩어가는 물은 갈아치우지 않는 이상, 계속 썩어가지.”

“그렇지만 물이 썩어간다고 물을 갈아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참으로 안타까워.”

아무리 귀족들이 부패했다고 해서 치워버릴 수는 없다. 만약에 그들이 죄를 짓는다면 당장이라도 파멸시켜버리겠지만, 죄를 짓지 않으면 그럴 수는 없다.

귀족의 자리라는 것은 그렇다. 귀족이 됐다는 것은 조상 중 누군가가 분명 셀룬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소리다. 그만한 업적을 이룩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후세 중 한 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서, 그 귀족을 치워버리면 조상의 업적은 뭐가 되겠는가.

“그런데 미르차르드님은 그렇다고 쳐도, 두 분은 성으로 가셔야 되지 않아요?”

말없이 걷고 있던 엘리의 물음에 두 후작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의 말대로 두 후작은 성으로 가서 오케만 국왕에게 보고를 올려야했다.

“국왕 전하시라면 이해해주실 겁니다, 공녀님.”

“기느투스 후작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는데, 설마 뭐라 하시겠습니까? 껄껄껄.”

‘뭐라고 할 리가 없지.’

다른 귀족은 몰라도, 오케만 국왕은 진심으로 제스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신전에서 식이 끝나고, 그는 케이네와 라트의 손을 붙잡아줬다. 그 손에는 슬픔이 절절히 묻어있었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 라트는 모든 분노를 지워버렸다. 사람 사는 곳은 전부 똑같아. 썩은 놈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현재 셀룬의 우두머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기느투스 후작님은 어디에 묻히셨나? 너무 바빠서 그쪽 소식을 듣지 못했다네.”

“왕족 묘지에 묻히셨어요.”

“국왕 전하께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셨군. 후작님이라면 그런 대우를 받을 만 하지.”

셀룬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연금술사다. 왕가의 묘에 묻힌다고 해서 그 누가 대놓고 뭐라고 하겠는가. 술자리에서 뒷담화를 나누는 귀족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놈들은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저긴가?”

어느 사이에 스승님의 묻힌 곳에 도착한 라트는 세르먼트 후작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가셨군. 소식으로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지만, 묘지를 보니 이제 실감이 나.”

“난 아직도 거짓말 같네.”

묘지로 다가간 두 후작이 씁쓸하게 말하며 한숨을 내쉰다.

“멍청하기는. 술이라도 가져올 것을.”

“나중에 다시 오면 되지 않겠는가. 좋은 술을 준비해서 오세나.”

“라트님의 스승님께서 묻히신 곳이군요. 제가 예를 표해도 되겠습니까?”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두 후작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트는 미르차르드의 물음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 마스터가 예를 표해준다면 스승님께서도 기뻐하시리라.

그리하여 한 때 후작이었던 오러 마스터와 지금은 셀룬에 두 명 밖에 없는 후작들이 조용히 대연금술사에게 예를 표했다.

***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당연하지만, 논공행상이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고를 끝내야하고, 나아가 어떤 상을 줘야하는지도 논의가 필요하니까.

그런 바쁜 시간 와중에 라트는.

“라트라고 합니다.”

“구면이로구먼. 훌륭한 스승님을 곁에 둔 제자다워. 루아타 공작이 자네를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기에 이리로 불렀다네.”

“송구합니다, 전하.”

성으로 불려가, 오케만 국왕과 독대를 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독대가 아니라, 라트의 옆에 루아타 공작이 서있었다. 라트가 혹시나 예법을 제대로 못 지켰을 때 커버를 쳐주기 위해서 루아타 공작이 친히 대동한 상황.

“그래, 라트라고 했던가? 루아타 공작, 라트가 무엇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설명해주겠나?”

“예, 전하.”

국왕의 요청에 루아타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난공불락이라고 평가받던 이루크 성을 하룻밤 사이에 점령했으며, 메아리치는 밀림에서 미르차르드 후작을 생포. 그 후 그의 투항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런트에서는 후방을 기습한 몬스터 약 300마리를 홀로 처리했으며 그 과정 중에 그림자 까마귀의 단주인 브라일을 처리했습니다. 또한.”

“거기까지.”

아직 슬렌베에서 활약한 일도 남아있지만, 오케만 국왕은 루아타 공작의 말을 멈추고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국왕이 평민을 바라본다고 하기에는 굉장히 따뜻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거기까지만 하더라도 귀족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정도야.”

“그렇사옵니다.”

오케만 국왕의 말에 루아타 공작은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라트의 전공은 뛰어났으니까. 이 전쟁의 1등 공신은 단언컨대, 라트였다.

“그런 활약을 벌인 젊은이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불렀네. 연금술사임에도 전투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전투 실력이라는 단어에서 라트는 오케만 국왕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귀족이었더라면 전투 실력이 아닌 그냥 실력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실력이라고 함은 곧 힘이니까.

그렇지만 굳이 실력 앞에 전투라는 단어를 덧붙인 이유는 연금술사는 전투 실력이 아닌 연금술 실력으로 평가받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 말할 것이다.

“제 한 몸 지킬 정도의 실력뿐입니다. 이름을 내밀 정도는 아니옵니다.”

“겸양은 아주 좋은 행동이라네. 자만을 보이지 않고, 겸손해하면 당연히 시선이 좋아지거든.”

라트의 겸양에 오케만 국왕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있는 라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나.”

겸양은 언제나 옳다. 자만보다, 겸양을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호감을 이끌어내니까. 그렇지만 그 겸양이 도가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겸양만 떨다보면, 저평가 당하기 마련이라네, 젊은이. 자네는 오러 마스터를 붙잡은 남자야.”

겸양의 도가 지나치다면, 사람들은 멋대로 해석하게 된다. 겸양 속에 자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저 자만하는 것보다 더욱 거대한 시기와 질투를 보낸다.

“조금 더 당당해도 좋네. 기느투스 후작의 제자여.”

오케만 국왕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젊은이와.

“과장을 조금 보태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건 사제의 활약 덕분이니까 말이야.”

숨은 공신을 찬양한다. 그리고 웃으면서 당당하라고 말한다. 자만은 옳지 않지만, 당당함은 필요하다. 특히나 귀족은 당당하지 않으면 잡아먹히기 마련이지.

“이야기를 좀 해볼까? 일어서게나.”

‘진짜로 일어나도 되는 건가?’

라트가 루아타 공작에게 눈짓을 하자, 루아타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케만 국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의 얼굴은 덕이 넘쳐났지만, 한 편으로는 냉정했다. 실로 훌륭한 국왕이 아닐 수 없다. 성군과 패왕의 자질을 동시에 지닌 국왕이라니.

‘그래서 셀룬도 시작지로 인기가 좋았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노르스 대륙 중 시작지를 잡으라면 셀룬과 사라이 그리고 차리친이 꼽혔다.

사라이는 글란츠 백작의 인기 때문에 시작지로 유명해졌고, 차리친은 몬스터 테이머나 기사가 되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마지막으로 셀룬은 마법사가 되려는 플레이어에게 인기가 좋기도 했지만, 오케만 국왕 때문에 인기가 좋기도 했다.

설정만 봐도 감이 오지 않는가. 연금술이 천시 받는 세계에서 현자의 돌을 연성하기 위해 그 많은 제물을 감당한 자다. 한 남자의 꿈을 이뤄주려고 노력한 자다.

물론 그 안에는 현자의 돌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을 껴안고 그만한 재산을 부담할 수 있는 거의 없다.

이 일화만 보더라도 오케만 국왕의 인성됨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 작품 후기 ============================

끝. 독자님들 선작 추천 원고료 쿠폰 감사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