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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코어형 골렘을 만들기 시작한지 5일이 지났다. 하루에 한 개씩, 코어형 골렘을 만들고 비어있는 재고를 채운다.
이제야 알았지만, 스승은 정말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단지 제자들에게는 그런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이었지.
그리고 또 하나, 모레면 돌아오겠다고 말한 루아타 공작의 귀환은 상당히 늦어지고 있는 중이다. 정리할 게 상당히 많은 모양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라트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여유를 가졌다.
루아타 공작이 돌아와야 논공행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수도로 돌아온 많은 귀족들이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만, 라트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늘리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귀족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래. 영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수입과 권력이 늘어나게 되는 거니까.
다시 말해, 힘이 강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생물이다. 하나를 만족했다고 해서, 거기에 안정을 얻는 게 아니라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지.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전전긍긍하며 루아타 공작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루아타 공작이 돌아온 순간, 어떻게든 줄을 대보려고 대소란이 일어나겠지.
라트는 제외하고 말이다.
엘리와 케이네의 말대로 어차피 귀족 자리가 확정된 것이라면, 루아타 공작에게 영지가 없는 명예 귀족 자리를 얻어주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라트가 영지를 받아야겠다고 하면, 당연히 오케만 국왕은 라트에게 영지를 줄 것이다. 그만한 활약을 했으니까. 그러나 영지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땅이 늘어났다고 해도 부족한 것이 땅이니까.
그러니 전전긍긍하지도 않았고, 급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루아타 공작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 사실이 감사하기까지 했다.
“조금 있으면 오신데.”
수정구로 루아타 공작과 연락를 취한 엘리는 조금 있으면 공작이 파르스로 귀환할 것임을 알렸다. 이제 노르스 대륙에서 켈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켈랑의 깃발을 대신해서 셀룬의 깃발이 꽂히겠지.
‘좋은 일이야.’
셀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라트에게도 좋은 일이다. 기왕 셀룬을 키우기로 마음 먹었으니, 적어도 2개 이상의 나라는 더 집어 삼켜서 제국과 동등한 힘을 갖추게 만들어야지.
‘왕국의 귀족이라도, 제국으로 가면 꽤 무시당하니까.’
제국과 왕국은 힘의 격차가 다르다. 애당초 한 대륙을 90%이상 차지한 셰크티 제국의 귀족과 일개 왕국의 귀족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겠는가. 그런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셀룬을 키워놔야 했다.
‘제국 반란 퀘스트에 참여했을 때, 내 신분 가지고 무시당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코어형 골렘(중급)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소량의 Exp를 획득하셨습니다]
“아, 다 만들었다.”
잡생각을 하면서 코어형 골렘을 만들던 라트는 완료가 됐다는 알림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라트가 가지고 있는 코어형 골렘은 총 7개. 케이네가 밤낮을 지세며 2개를 만들어줬고, 라트가 여유롭게 5개를 만들었다.
“자네는 정말이지, 놀랍군. 어떻게 그리도 집중을 할 수 있는 건가. 대연금술사도 그런 집중력은 본녀에게 보여주지 못했는데.”
아니 집중 같은 거 하나도 하지 않는데, 그렇게 물어봐야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다. 속으로는 온갖 잡생각, 예를 들어서 오늘도 케이네와 엘리는 예쁘구나부터 리오스는 귀여워 에스페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등등.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에스페의 눈에는 라트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게임 시스템의 위력은 위대하니까.
게임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라트는 연금술의 가장 기본인 연성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거다.
‘게임 시스템을 안 쓰고 직접 연금술을 해보려니까, 어우.’
며칠 전, 케이네의 불평 아닌 불평 때문에 라트는 게임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연성을 해봤고, 절망에 빠졌다. 지혜가 그렇게 높음에도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계산식을 잡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었지. 케이네가 이런 계산식을 매일매일 풀어가고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 만들었으면 나가서 아버님을 맞이할 준비할래?”
“응, 그래야지.”
루아타 공작과 대면해야한다는 사실에 라트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라트가 루아타 공작의 귀환이 늦는데 감사를 한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루아타 공작이 오는 즉시, 케이네와도 그런 관계가 됐습니다, 라고 말하기로 엘리와 케이네에게 약속했다.
‘죽지는 않겠지?’
설마 친우의 제자를 첩으로 두겠다는데 라트를 죽이려고 들지는 않을 거다. 그렇겠지? 물론 공작에게 있어 엘리가 소중한 외동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막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반죽음은 당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건 감수해야지. 소중한 딸내미를 두고 다른 여자랑도 같이 살겠다니.
‘나 같으면 죽여 버리지.’
그래 그 죽일 놈이 바로 나다.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 한창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케이네를 부른다.
“누나, 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
“응!”
리오스와 에스페는 일단 보류다. 에스페도 그렇고 리오스도 그렇고 눈에 너무 띄어. 이 둘은 나중에 따로 소개하기로 마음 먹은 라트는 에스페와 리오스에게 이곳에 있으라고 말한 후 옷을 갈아입고 길드 밖으로 나와 두 여성을 기다렸다.
“많이 기다렸어?”
라트가 길드 밖으로 나온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엘리와 케이네가 밖으로 나왔다.
“아니.”
지구에 있을 적에 남자가 현관에서 여자를 기다리는 시간에 얼마를 소비하는지 봤던 라트는 5분이면 적은 편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가자.”
마차를 부르지 않고, 산책을 겸해서 포탈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지금 파르스에는 엘리를 모시는 수호기사나 메이드들도 없어. 전부 공작의 영지로 돌아간 상황. 엘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루아타 공작과 함께 있는 가신들 정도일거다. 그만큼 루아타 공작은 라트를 신용하고 있는 거겠지.
‘그 신용을 내 손으로 부수겠구나.’
케이네와의 일을 고백한 순간, 루아타 공작과의 신용이 박살날 것이라고 예감한 라트는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이건 자신이 선택한 일. 거기에는 어떤 후회도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어.
후회를 한다면, 진작 케이네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을 향한 케이네의 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점 뿐이다.
포탈에 도착하자,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퍼져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귀족들이 벌써부터 루아타 공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돼지 새끼들.’
하나씩 그 얼굴을 바라보며 외운다. 이들이 어떤 귀족인지 아는가?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사병도 1/2 정도나 줬을까? 전쟁 비용은 얼마나 부담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이득을 위해, 루아타 공작과 연을 잇기 위해서 이렇게 수도에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전쟁에 참여한 귀족들과 달리, 편하게 자신의 몸을 눕히고 있는 주제에.
“하아.”
“정말로 꼴 보기 싫어.”
엘리 역시 이를 알기 때문에 눈을 찌푸렸다. 이들 중 진짜베기 귀족은 한 명이나 있을까?
“이거 공녀님 아니십니까?”
그 때 한 귀족이 엘리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추한 돼지새끼 주제에 진한 콧수염까지 길러, 중후한 멋을 한껏 뽐낸다.
‘허우대만 멀쩡한 새낀가.’
“맞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일단 귀족들이 모여있기 때문인지, 엘리는 최대한 얼굴 표정을 풀고 공손히 그가 누군지를 물었다.
“슈페림 자작이라고 합니다.”
‘슈페림 자작?’
들어본 적도 없는 귀족이다. 라트의 기억에 없는 귀족인 것으로 보아 그렇게 중요한 귀족은 아닐 것이다. 라트가 슈퍼 컴퓨터도 아니고 월드 세리아의 모든 NPC를 외우고 있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NPC는 전부 외워두고 있다.
“이거 듣던 대로 공녀님께서는 정말로 아름다우시군요.”
우선은 칭찬부터인가. 뭐, 상대방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엘리가 아름다운 건 사실이니까.
“혼기가 차신 것으로 아는데, 혹시 제 아들과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풉.”
그의 말에 라트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 어디서 사는 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귀족은 분명 변방에서 살고 있는 귀족일 게 분명하다.
루아타 공작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귀족 중에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피츠로이 백작의 아들인 프레만 마저도 걷어차 버린 엘리인데, 겨우 자작의 아들로 성이 차겠는가.
격을 맞추려면 최소한 백작 정도는 돼야지.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입니다.”
“예? 그,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요. 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싫어서 그러신 것입니까?”
“제가 그 약혼자입니다만.”
아무리 공녀라고는 하지만, 일단 작위가 없는 귀족일 뿐이다. 그렇기에 엘리가 거짓말을 해서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생각한 슈페림 자작이 약간 얼굴을 붉히자 라트는 앞으로 나섰다.
“네가 공녀님의 약혼자라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사람을 스캔하듯이 쳐다보는 시선에 불쾌함을 느낀다. 마치 격을 평가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역겹기 짝이 없다. 누가 누구의 격을 논하려고 드는가.
인간이라면 그리해도 좋지만, 돼지 새끼 주제에 인간의 격을 평하려고 들다니. 실로 건방지지 않은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지?”
“라트라고 합니다.”
“라트?”
슈페림 자작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겠지. 변방에 사는 귀족은 물론이오, 이곳에 있는 귀족 대부분이 라트의 이름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아직 논공행상이 이뤄지지도 않았고, 라트가 제스맹의 두 번째 제자라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니까.
“성은 어떻게 되지?”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 아직은 없다. 엘리와 결혼을 해서 루아타의 성이 생길 수도 있고, 이번에 명예 귀족직을 얻어서 성을 하사받을 수도 있다.
“그 말은 평민이라는 소린가?”
“예.”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슈페림 자작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했는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감히 주제넘게 평민이 공녀님의 약혼자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무례하다! 네 이 놈을 당장!”
그리고는 노발대발하며 검을 뽑아든다. 그는 라트의 얼굴조차 몰랐다. 어쩌서냐고? 기느투스 후작의 장례식에 오지도 않았으니까. 아니 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케만 국왕에게 인사를 하려고 왔을 뿐이지, 스승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해서 온 게 아니었으니까.
스승은 명예 후작일 뿐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라트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겠지.
그런 돼지 새끼 주제에 좋은 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런 자질의 철이라면 분명 스승이 만든 검일 것이다. 그런 검을 차고 있다면 전쟁에 나섰어야지. 안전하게 이곳에 있던 주제에 어디서 감히 내 스승이 만든 검을 뽑아드는가. 빽을 이용해서 구한 검을 어디다 들이대는가!
“약혼자 맞는데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제 약혼자가 평민이라고 감히 검을 뽑아 드시는 지요?”
당장이라도 검을 휘둘러 라트의 목을 벨 것 같았던 자작의 행동은 엘리의 말에 의해 가로막히자, 라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 모습에 엘리와 케이네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작의 검이 휘둘러졌으면, 쓰러진 것은 라트가 아닌, 자작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금은 내가 화를 낼 수 없지.’
평민이 귀족에게 대들다니, 그건 제국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꽉 막힌 노르스 대륙의 왕국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라트는 분노를 지우고 한발자국 물러섰다.
“그, 그게 무슨. 상종할 수도 없는 이런 무례한 평민이 약혼자라니요? 그냥 차라리 제 아들과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하시지요, 공녀님.”
“약혼자 맞아요. 다시 묻겠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제 약혼자를 폄하하시는지요?”
상종할 수 없는 무례한, 인가. 그 말에 이번에는 엘리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조금 전까지는 예의를 차렸다면 이제는 그것까지 벗어던지고 차가운 분노를 보인다. 그 모습이 루아타 공작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닐지니.
“그게, 그러니까…….”
엘리의 차가운 분노를 목도한 자작은 입도 제대로 벙끗하지 못하고 엘리와 라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 소란에 의해 주변의 시선이 몰린다. 승전보를 위한 꽃길을 만들고 있는 귀족들은 포탈에서는 조금 떨어져있으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귀족들이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귀족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겠지. 전쟁 중에도 프레만 덕분에 한 번 이런 소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번에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널리 알려질 것이다.
“정말로 평민과 약혼하신 겁니까, 공녀님? 그렇다면 그건 너무 그렇지 않습니까?”
“뭐가요?”
“공녀님의 짝이 되고 싶은 훌륭한 자제들이 넘치고 넘쳤는데, 어째서 이런 평민과 맺어질 수 있습니까.”
슈페림 자작의 말에 이쪽을 보고 있던 귀족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진다. 그 중에는 몰래 엘리의 흉을 보고 있는 귀족들도 있었다. 아마도 엘리에게 청혼을 했다가 깨진 놈들이 분명하다.
“훌륭한 분은 훌륭한 이와 이어져야합니다. 그러니까 제 자식처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귀족들이 자신의 편임을 확인한 자작이 기세등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순간.
“이게 무슨 소란이지?”
이 소란을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는 이가 포탈을 타고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