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49화 (14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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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검?”

    “이런 예쁜 애한테 검을 가르치려고?”

    “조금 그렇지 않니?”

    라트의 물음에 리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스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엘리와 케이네는 라트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거야 그럴 수밖에 없지. 리오스는 겉보기엔 검을 제대로 쥘 수 없는 조약한 몸을 가진 순수한 여자 아이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리오스의 바이올런 영향력은 10을 넘어선 11. 검은 물론이오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모든 무장에 관하여 리오스의 재능은 라트보다도 앞섰다.

    ‘뭐, 나야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니지만.’

    사실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닌 라트와 재능을 비교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다. 라트 역시 바이올런의 영향력은 맥스 수치인 10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스탯 재능은 꽝이었다.

    스탯 재능이야 엘릭서로 커버를 칠 수 있다지만, 라트는 오러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빨리 하이 엘프랑 만나야 하는데.’

    “그대여, 리오스에게 검을 가르치는 건 좋은 생각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누가 이 아이에게 검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대는 검사가 아닌 연금술사, 그대 정도라면 이 아이는 순식간에 따라잡을 것이다.”

    역시나 숲의 현자라는 타이틀은 어디가지 않는지, 리오스의 재능을 알아차린 에스페는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숲의 현자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니, 엘리와 케이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뭐, 저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겠지. 라트 역시 저 아이가 자이리오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면 믿을 수 없었을 거다.

    “내가 가르친다는 말은 안했는데?”

    “음? 그럼 적절한 사람이 있다는 소린가?”

    “켈랑의 후작이셨던 미르차르드님께서 가르칠 거야. 오러 마스터라면 리오스를 충분히 가르칠 수 있겠지. 그렇지?”

    “호오.”

    돌아오는 대답에 에스페는 입을 벌려 탄성을 자아냈다. 확실히 오러 마스터라면 리오스를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확실히 좋은 스승이로군. 그런데 그 자가 과연 리오스를 가르치려고 할까? 내가 알기로 그는…….”

    미르차르드에게 일어난 비극 역시 알고 있는 에스페는 말을 끌었다. 그 일이 일어난 이후 미르차르드는 단 한 명의 제자도 받지 않았다. 제자를 가르치려고 하면, 죽은 아들이 생각났기에.

    “충성 서약을 받았으니까. 내가 부탁하면 들어줄 거야.”

    “그렇다면야.”

    바이올런의 종속에게서 충성의 서약을 받았다는 건,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에스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래, 리오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스승을 구해놨다고 리오스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엘프 나이로 따지면 리오스는 겨우 10대 초중반 정도로 어린 나이다. 굉장히 오랜 인생을 살아가는 엘프에게 이런 나이부터 검을 잡으라고 강제하는 건 좋지 않다.

    “리오스, 검 배우면 강해져?”

    “강해지고말고.”

    리오스의 재능은 두 대륙 사이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그녀가 정해진 운명대로 바이올런의 성녀로 지냈다면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일어날 때쯤 오러 마스터가 될 정도다.

    왕국 전쟁과 제국 반란이 모두 끝나고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일어날 때까지의 시간은 대략 5~6년 정도. 그 짧은 시간 동안 검을 모르던 소녀가 성장하여 오러 마스터가 됐다니. 그 누구도 믿지 않으리라.

    “리오스 강해지면, 누구도 안 잃을 수 있어?”

    소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희생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진실이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슬프겠지, 어찌 슬프지 않을까.

    “누구도 잃지 않을 수는 없어.”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아니, 강해진 만큼 잃어버릴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렇지만 누구도 지킬 수 있는 힘은 가질 수 있어.”

    그래도 지킬 수 있는 힘은 가질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잃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럼 좋아. 리오스 검 배울래.”

    라트의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리오스는 선뜻 검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기특하여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엘리와 케이네를 바라보았다.

    “나 모레까지 할 일이 있는……데.”

    라트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레까지 할 일이 있다는 말에 엘리와 케이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아니 할 일이 있다는데 왜 저렇게 무섭게 바라보는 건지.

    “전쟁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있었는데, 또 할 일이 있다고?”

    “무슨 일인데.”

    “그게 그러니까…….”

    서로 말이라도 맞췄는지, 서로가 은근히 라트를 압박하는 모습이 자매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바라보면 무섭다고.’

    한숨 한 번 내쉬고 생각을 정리한 라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누나 미안. 누나가 준 코어형 골렘이 망가졌어. 멀쩡히 쓰고 돌려주기로 했는데 못 지켜서 미안해.”

    “응? 아, 아니야. 라트가 이렇게 무사하니까 누나는 괜찮은 걸.”

    누나는 역시 천사야. 분명 케이네의 첫 코어형 골렘이었겠지. 연금술사인 케이네의 특성 상 첫 작품을 아끼는 건 당연지사. 그걸 망가트렸는데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건 자신의 작품보다는 라트가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누나 것도 그렇지만, 만들어둔 코어형 골렘이 전부 망가졌거든. 그래서 코어형 골렘을 보충하는 김에 몇 가지 더 만들려고.”

    만들어둔 코어형 골렘은 전부 박살이 났다. 그렇지만 코어형 골렘이 전쟁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제법 대단했지. 그렇다면 전쟁을 계속 이어가야하는 셀룬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코어형 골렘을 보충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은 코어형 골렘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시험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수류탄이라던가.’

    이 세계의 폭탄은 사용하는데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곁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90년대 애니메이션처럼 생겨가지고, 무게도 엄청나고, 게다가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던져야한다.

    폭발의 위력은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현대의 폭탄에 비하면 번거로우니까. 생명의 연금술 덕분에 폭발의 위력은 새삼 깨달았기에 휴대하기 간편한 폭탄을 좀 만들어보고 싶었다.

    ‘인형도 몇 개 만들어놔야겠어.’

    그리고 인형. 제스맹이 남긴 유품 중 하나인 엘릭서들은 전부 인형이 만들고 있는 중이다. 상당한 마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입력된 행동을 실행하는 인형은 제법 매력적이었다. 잘 사용하면 전쟁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당장은 탁상공론이지만.’

    뭐, 만들어보고 싶다는 거지 실제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른다. 게임 시스템은 정해진 물건만 만들 수 있고, 나머지 물건은 플레이어가 미니 게임을 통해 직접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 미니 게임이라는 게 희귀 기능을 사용할 때 나오는 계산식이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미니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다.

    그게 조금 귀찮기는 해도, 일단 만들 수만 있다면 귀찮음 정도는 아무런 것도 아닌 물건이 탄생하게 될 거다.

    “그럼 누나도 도와줄게.”

    “어?”

    확실히 케이네 정도의 연금술사가 도와준다면 일은 더 수월하게 끝날 것이다. 라트가 직접 머리를 써서 물건을 만들면 미니게임을 클리어해야하지만, 케이네가 라트의 구상안을 듣고 물건을 만들어준다면 그 물건을 레시피에 등록하면 미니 게임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도와줄 수 있어? 누나 안 바빠?”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 케이네는 아직 제스맹 기느투스의 후계자로 임명된 것이 아니니까. 후계자로 임명된다면 그 순간 바빠지겠지만, 아직까지는 한가로워. 라트의 실험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케이네는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에에, 언니 그럼 저는요!?”

    케이네가 합법적으로 라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얻자, 엘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처지를 묻는다.

    “엘리한테는 재료 조달을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혼자서 라트를 독차지할 생각은 없는지, 그게 아니면 엘리가 자신을 받아준 걸 감사하게 여겼는지, 케이네는 엘리의 처우를 개선시켜주었다.

    ‘재료 조달이라.’

    확실히 공녀인 엘리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없다. 그녀가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라트도 케이네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 그럼. 엘리한테는 재료 조달을 맡길게.”

    “에에에. 그럼 재료를 구하러 가는 사이에는 라트를 못 보는 거잖아.”

    싫다는 듯 볼을 부풀리는 엘리의 모습에 라트와 케이네는 동시에 미소를 짓는다. 저렇게 투정을 부리고 있지만, 결국 이게 라트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들어줄 게 뻔하다.

    “부탁할게.”

    “어쩔 수 없네.”

    이거 봐, 금방 들어준다고 말해주잖아. 정말이지 착하고 귀엽기 그지없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말이야.

    “본녀도 도와주마.”

    “엥? 도와줄 거야?”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부탁한 일도 제대로 못했으니. 밥값은 해야되지 않겠느냐.”

    아니 그렇게 말해도. 에스페가 원래 밥을 먹고 지내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는 건 알고 있다. 식량은 자급자족으로 해결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주전부리 역시 숲의 현자에게 질문을 하러 오는 이들이 수없이 많이 챙겨왔으니까. 그런데 밥값을 하겠다니.

    “그리고 차세대 연금술사의 실력에 흥미도 있다. 대연금술사의 실력은 옆에서 몇 번이고 보았지만, 그대의 실력은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라트는 대단하다고요. 숲의 현자님. 겨우 2년 만에 제가 따라잡혔다니까요?”

    “그럼 그렇게 해.”

    자신을 칭찬하는 케이네의 말을 끊는다. 사실 실력이고 나발이고 보여줄 것도 없다. 연금술 실력이라고 해봐야 라트는 게임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있을 뿐이다. 진짜로 대단한 건 제스맹이나 케이네 같은 부류지.

    그래서 조금 부끄러웠다. 진짜로 천재로 불려야할 사람이 자신 때문에 그렇게 불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호오. 기대하마, 그대여.”

    기대하지 말아주실래요? 그 말이 목젖까지 나왔지만, 간신히 삼킨 라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선망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케이네의 기대치를 깎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코어형 골렘부터 보충해둘까.”

    “코어형 골렘은 지하실에 있는 재료로 충분할 거야. 누나가 루시 언니한테 부탁해서 꽤 많이 사놨거든.”

    “그래?”

    당장 경매장으로 가거나 루시에게 재료 공급을 부탁하려고 했던 라트는 걸음을 멈췄다. 하긴 라트야 한 번에 코어형 골렘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케이네는 아니다. 몇 번이고 실패했을 거다. 그러니까 그만한 재료도 구비해둔 건 자명한 일.

    “그럼 할 일 없는 나는 옆에서 구경할래!”

    “구경은 괜찮지만, 재미없다는 건 미리 알아둬.”

    엘리의 말에 라트는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구경하는 건 전혀 상관없다. 그렇지만 연성 도중에는 게임 시스템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 엘리와 어울려주지 못한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아아,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잖아. 돌아온 대답에 라트는 쓰게 웃으면서 따라오라고 말하고 자신의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지하실로 향했다.

    그리고 옛말에 하나 틀린 게 없다는 말에 실감하고 말았다.

    비가 온 뒤에는 땅이 더 굳어진다.

    자칫 라트의 실수로 관계에 위기가 생길 수 있었음에도, 슬픔을 이겨내고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니, 관계가 더더욱 돈독해졌다.

    “아, 맞다.”

    그러던 중 케이네가 입을 벌리고 라트를 바라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소리다.

    “스승님이 만들어서 상점에 전시해놓던 물건은 우리가 만들어놔야해, 라트. 그건 잊어버리면 안 돼?”

    “네이, 네이.”

    보통 상점에 진열해놓는 물건은 사범들이 만들지만, 사범들이 만들지 못하는 물건은 주로 스승님과 케이네가 만들었었다. 이제 스승님이 계시지 않으니, 그 일이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사실을 상기한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조금 슬프지만, 스승님의 존재를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산 사람들이 빈자리를 메운다.

    슬프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슬프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브로켄 후작의 말처럼 슬픔에 잠식당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승의 말대로 행복해져야하니까.

    살아서, 살아나가서, 스승이 맡긴 꿈을 이뤄드려야지.

    ‘제자에게 맡긴 꿈이 너무 크십니다.’

    그리 생각하며 쓰게 웃은 라트는 다시금 지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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