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45화 (14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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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떠나가는 브로켄 후작을 보고 있자, 일순 어떤 감정이 엄습했다. 직감이 불안함을 알린다.

    ‘왜?’

    그러나 라트는 이 불안함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어 그저 왜, 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쓰러진 엘리나 케이네 때문인가? 아니야, 그건 아니다. 그 둘 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면 루아타 공작이 분명 말해줬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인가. 켈랑은 멸망했다. 알림창이 켈랑의 멸망을 알린 순간, 그 뒤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흑사제나, 흑마법사 쪽 때문인가? 그럴 가능성은 적다. 흑마법사 쪽은 대놓고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신전이 대대적으로 나서게 되니까. 그건 흑사제 쪽도 마찬가지다.

    아니 흑사제들이 굳이 노르스 대륙에서 날뛸 이유도 없지 않나. 그들의 목적은 제국은 전복시키는 것이지, 노르스 대륙이 아니다. 시리아의 경우가 특별한 케이스였을 뿐. 게다가 그녀 역시 조금 미친 방법으로 라트의 존재를 확인하러 왔을 뿐이다.

    “하아.”

    정체 모를 불안함을 몰아내기 위해 한숨과 함께 후작이 태웠던 담배를 입에 물고 빨아들인다. 그러나 불안함은 가시지 않는다.

    ‘일어날 일이 도대체 뭐가 있지?’

    브로켄 후작이 저런 말을 했다는 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다는 소리다. 그 일어날 일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어. 라트는 담배가 전부 말소할 때까지 염동력을 사용한 후유증인 두통과 브로켄 후작이 남긴 불안함과 싸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후작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정말로 큰일이 일어난다면 직접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을 했겠지. 그러니 고민을 접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차라리.

    “가야겠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진다. 지금 당장 가면 무슨 사단이 벌어질 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야해. 엘리와 케이네에게 가서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안심시켜줘야 한다.

    지금은 그것이 옳다. 포로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병사들을 인솔할 필요도 없는 라트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가자.”

    담뱃대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라트는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몸에 뭍은 잡냄새를 지웠다.

    “후작 대리님. 이런 곳에서 다시 뵙네요?”

    한 손에 마법사가 사용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룬타 백작이 라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그녀의 뒤에 있는 병사들도 고개를 숙인다.

    ‘말에 가시가 있는데.’

    말만 들어보자면 평범한 안부에 불과했지만, 룬타 백작의 말에는 묘한 냉기가 섞여있었다.

    “저는 당연히 공녀님과 케이네양을 뵈러 갔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아직까지 이런 곳에 있는 라트를 책망하는 말이 이어지자, 라트는 쓰게 웃었다.

    “브로켄 후작님과 이야기를 좀 하느라고요.”

    “아하.”

    변명을 조금 해봤지만, 룬타 백작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브로켄 후작님이 가시고 한참이나 담배나 피우면서 거기 서계셨던 거군요.”

    ‘보고 있었구나.’

    아무래도 이제 막 전투가 끝난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눈에 띄기 마련이다.

    “후작 대리께서 미리 말을 하지 않고 작전을 실행한 덕에 연인과 사저는 쓰러졌는데 담배나 피우고 있다니. 너무하시지 않나요?”

    ‘팩트 폭력 쩌네.’

    일말의 반박조차 할 수 없는 의견이 주먹이 되어 라트의 명치를 때린다. 표정을 보아하니, 룬타 백작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딱 봐도 엘리를 아낀다는 티가 팍팍 났는데, 그런 엘리가 쓰러지게 냅뒀으니까.

    “어서 가보세요. 둘 다 저기 임시 막사에 있을 거예요.”

    “예.”

    그래도 슬렌베를 점령하는데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도, 루만 국왕과 호르토 공작을 죽인 것도 라트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전공을 세운 것도 역시나 그였다. 그런 자를 계속해서 핍박할 수는 없었기에 룬타 백작은 순순히 라트를 보내주었다.

    “가봐야지.”

    룬타 백작이 알려준 임시 막사로 향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 몇 명이 라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를 받아준 라트가 임시 막사로 들어서자, 의사 한 명이 라트를 맞이한다.

    “후작 대리님이시군요.”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것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나무 침대에 누워있는 엘리와 케이네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리로 다가간다.

    무릎을 꿇어 그녀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 순간, 깨닫고 말았다. 자신에게 있어 그녀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도 인지한다.

    적어도 엘리와 케이네에게도 작전을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럴 시간은 충분히 있었어. 게다가 이 둘이 다른 누구에게 작전을 발설하고 다닐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나 무슨 짓을 한 거지.’

    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을, 속였다. 철저하게 농락했다. 지금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사실을 이제와 인지한다.

    ‘빌어먹을.’

    자신이 이런데 이 꼴을 계속 보고 있었을 루아타 공작은 어떤 마음일까. 라트의 작전 덕분에 켈랑을 끝장낼 수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분명.

    라트가 원망스러울 거다. 틀림없이 원망스럽겠지. 라트조차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니까.

    “미안해.”

    떨리는 입술로 진심을 외친다. 소리를 높이지도 못한 채 조용히 울먹이며 말한다.

    이번 작전을 단순히 게임처럼 여겼다. 아니, 게임에서도 하지 못했던 작전이기에 흥미로웠다. 그것이 실수.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라트가 어떤 행동을 하면 전체적인 세부 사항은 달라지겠지만, 소소한 요소는 별로 변화가 없는 게임과 달리 라트가 어떤 행동을 하면 주변인들은 큰 영향을 받는다.

    “미안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상하며, 다시 한 번 전해지지 않을 사과를 받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두 분 다 괜찮으십니다. 너무 놀라셔서 정신을 잃은 것뿐이지,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라트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막에서 나갔다. 그러자 라트는 조용히 두 여자의 손을 잡았다. 가녀리고, 새하얀 그야말로 섬섬옥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손을 잡고 조용히 흐느낀다.

    그러기를 한참이 지나, 의자에 앉은 라트는 물기가 가득한 얼굴을 정리하고 적어도 두 여자가 일어날 때까지, 엘리와 케이네의 입에서 꺼지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여기서 조용히 기다릴 셈으로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으. 머리야.”

    어둠이 깊이 가라앉고, 해가 뜰 무렵까지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불안함과 싸우던 라트는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려 엘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일어난 엘리는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고개를 이러 저리 돌리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다가.

    “아, 라트! 시간이 벌써?! 내가 이럴 때가 아니야!”

    눈앞에서 미르차르드에 의해 납치된 라트의 존재를 찾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라트는 조용히 일어나 그녀가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어, 어, 어어어?”

    분명 눈앞에서 납치당했던 라트가 자신의 눈앞에 있자 엘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왜 라트가 여기 있는 거야? 아니, 여긴 어디야?”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루아타 공작에게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엘리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면 이대로 넘어가면 된다.

    라트가 고육책을 썼다는 건 귀족들만 알고 있으니 루아타 공작에게 부탁해서 귀족들에게 이 사실을 함구해달라고 말하면 됐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어. 이미 한 번 속인 연인을 두 번이나 속이다니. 그건, 허락될 수 없는 일이다.

    “으.”

    “언니!”

    도미노처럼, 엘리가 일어나자 케이네도 의식을 되찾았다.

    “엘리, 언니 말이야. 라트가 눈앞에서 납치당하는 꿈을 꿨어.”

    아직 의식이 몽롱해서 헛소리를 내뱉은 케이네를 바라본 라트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입을 열었다.

    “그거 꿈 아니야.”

    “어?”

    “작전이었어.”

    그렇게 말하며 두 여자의 앞에 서서,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에? 지금 뭐라고?”

    라트의 말에 엘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칼에 찔려서 미르차르드님께 납치당한 건 전부 작전이었다고. 여기는 슬렌베고 내가 침투한 덕분에 새벽 내에 쉽게 점령했어.”

    냉정히 진실을 고한다. 이렇게 하지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음을 알기에. 케이네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엘리와 케이네는 지금 이 아픔보다 훨씬 큰 아픔을 느꼈을 거다.

    “루아타 공작님만 내가 고육책을 쓴 걸 알고 계셨어.”

    “그러니까 그게 전부, 작전?”

    “그래.”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되묻는 엘리의 행동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 엘리의 손바닥이 라트의 뺨에 작렬했고 라트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너, 너어! 어떻게 나한테도 말 안하고! 내가, 내가 얼마나! 이 홀리님께 천벌이나 받을 망할 놈아!”

    “미안.”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반대 쪽 뺨에 불꽃이 튀었다. 또 한 번, 또 한 번. 라트는 신음하나 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엘리의 폭력을 받아들였다.

    “미안하다고, 그게, 될, 일이야! 어!?”

    엘리의 폭력이 끝을 고한 순간은.

    “하아, 하아, 하아.”

    그녀가 지쳤을 때쯤이었다. 그 때까지 묵묵히 엘리에게 뺨을 맞던 라트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

    “안 들을 거야. 절대로 안 들어! 꺼져, 저리 가버려!”

    분노의 소용돌이에 빠진 엘리의 외침이 하나하나, 바늘이 되어 심장을 찔렀다.

    “그러니까 그게 전부 작전이었다고?”

    “응.”

    “나하고 엘리한테 설명할 시간도 없었어?”

    “아니, 있었어.”

    없었더라면 거짓말이겠지. 분명 케이네와 엘리에게 작전을 설명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이 작전은 비밀을 엄수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느낄 감정은 염두도 해두지 않았다.

    분노, 좌절, 실망, 배신감, 슬픔, 혐오.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증오로 바뀔 것이라고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슬렌베를 점령하고 루만을 죽일 생각에 빠졌다.

    왜 루만을 죽이려고 했는가. 이제 와서는 그 이유가 희석되고 만다. 케이네를 울렸기에 죽였다. 엘리를 죽이려고 했기에 죽였다. 그것이 루만의 죄라고 오만하게 선언하며 죽였다.

    그런데 작금 이 상황을 보라. 케이네와 엘리에게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루만을 죽였다면, 라트 역시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과연 라트의 논리대로 따지자면 루만의 죄질과 라트의 죄질 중 어느 쪽이 더 깊을까. 둘 중 어느 쪽이 더 잔인한가.

    “그래. 공작님께만 말씀드렸다면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 사제는 비밀을 엄수하려고 한 것뿐이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성공률을 높아질 테니까.”

    케이네가 라트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뜻은 완전히 달랐다. 라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사제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케이네와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리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터다.

    “전부 이해해, 사제. 그런데 내가 조금 피곤해서 그런데 자리 좀 비켜줄래?”

    “꼴도 보기 싫으니까, 빨리 꺼져!”

    한쪽은 이글거리는 분노를 발미로, 한쪽은 얼음처럼 싸늘한 증오를 빌미로 라트에게 명백히 축객령을 내린다.

    “미안. 정말로 미안해.”

    “듣기 싫어!”

    사과를 거절한다. 아니 사과를 받아드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케이네는 이제 말조차 섞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아파온다. 배에 칼을 찔리고 감옥에서 의식을 잃은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루만과 호르토 공작을 암살했고 성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염동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두통이 있었는데, 브로켄 후작과의 대화 이후 내내 불안함과 씨름을 하고 있던 라트다.

    심지어 두 여자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자리를 피하자, 지금 당장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두통 때문에 쓰러질 지도 모른다.

    “세 명 모두. 정신없을 때 찾아와 미안하게 됐지만, 나와 너희 모두 당장 포탈을 타고 파르스로 돌아간다.”

    갑자기 루아타 공작이 막사로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에서 떠났을 것이다.

    “왜요?”

    이제 막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 정리할 것은 많았다. 이곳에 있는 포로들도 그렇고, 아직은 점령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켈랑의 영지들도 정리해야한다. 그쪽과는 전투가 일어나지 않겠지만, 항복을 받아내야하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루아타 공작은 파르스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케이네, 그리고 라트.”

    이 불안함이 엘리와 케이네 때문이 아니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루아타 공작의 말에 어째서 이 불안함이 커지고 있는가.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지만.”

    ‘아니야.’

    그제야 불안함의 정체를 깨닫는다. 자신도 모르게 루아타 공작의 다음 말을 예상한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라고, 아니어야한다고 부정했다.

    “조금 전 내 친우이자, 자네들의 스승인 제스맹 기느투스 후작이 숨을 거두셨다.”

    그러나 라트의 부정을 무시하고, 루아타 공작이 비보를 전하자.

    녹색 머리의 연금술사는 힘없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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