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42화 (14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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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기사가 다시금 나오기까지는 1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고작 1분이었지만, 조금 있으면 루만을 죽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는 라트에게 있어서는 1시간과 같게 느껴졌다.

    “지금은 호르토 공작님과 이야기 중이시라, 내일 뵙자고 하십니다.”

    돌아오는 대답에 라트는 미소를 지었다. 저런 말이 나올 줄 알고 미리 미르차르드에게 모범 대답을 알려줬었지.

    “다시 들어가서 토리나 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게. 국왕 전하의 안위가 걸려있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네.”

    “알겠습니다.”

    미르차르드 후작의 간곡한 요청에 기사가 사태의 심각함을 느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방으로 들어갔다.

    ‘물겠지?’

    이 미끼는 반드시 문다. 토리나 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데 캥기는 게 있는 루만이 내일 이야기 하자고 할 리가 없다.

    다시금 1분이 지난 후, 기사는 밝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전하께서 호르토 공작님과 함께 이야기해도 좋다면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미르차르드 후작님.”

    “문을 열어주게나.”

    루만 혼자 시리아와 이야기를 했다면 루만은 반드시 호르토 공작에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을 거다.

    한 나라의 공작 앞에서 흡혈귀 이야기가 나온다면 께름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루만은 호르토 공작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 하지 않고, 같이 미르차르드와 이야기를 하자고 한 것으로 보아.

    ‘호르토 공작도 시리아랑 관련이 있구나.’

    기사가 문을 열기도 전, 순식간에 결론까지 도달한 라트는 침음을 삼켰다. 루만의 무력은 무력하지만, 호르토 공작은 아니지.

    두 사람이 가까이 붙어있다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일이 틀어진다.

    경화수월은 사람을 공격하기 직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기능이니까.

    그렇다면 누구를 공격해야하는가. 마음 같아서는 루만을 곧바로 공격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호르토 공작을 좌시할 수는 없다.

    7서클 마법사에게는 아크 메이지의 칭호가 달리지 않지만, 뛰어난 마법사라는데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다.

    ‘고작 뛰어난 마법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야.’

    8서클 마법사가 조건만 갖춰진다면 오러 마스터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면 7서클 마법사는 조건만 갖춰진다면 능히 오러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바로 시간. 다시 말해 오러 마스터가 눈앞까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방패막 유무다.

    ‘내가 루만을 공격하고, 미르차르드님이 호르토 공작을 상대하면 일이 쉽게 끝나겠지만.’

    일은 쉽게 끝나겠지만, 방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루만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 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지금 당장 소란이 일어나면 곤란하단 말이야.’

    밖이라면 모를까, 거의 모든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성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도망치기가 어렵다.

    라트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이쪽은 미르차르드도 신경써야 한다. 이런 곳에서 미르차르드를 잃을 수는 없어. 그에게는 부탁해야할 일이 있다.

    ‘그럼 답은 내가 호르토 공작을 노리는 건데.’

    라트가 호르토 공작을 노린다면 과연 미르차르드가 그에 반응하고 루만의 입을 막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루만이 비명을 지를 것이고, 그 순간 일이 틀어지게 된다.

    “들어가십시오.”

    ‘일단 고민은 나중에.’

    우선은 들어가야 한다. 라트는 경화수월 기능을 사용하고 미르차르드의 뒤를 따라 유유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그 누구도 라트를 볼 수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국왕 전하. 늦은 시간에 송구하나 급히 드릴 이야기가 있어 왔습니다.”

    “송구할게 뭐가 있나 미르차르드 후작.”

    아무리 국왕이라고 해도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되기에 방 안까지 호의를 대동하지는 않아. 그렇기에 방 안에는 루만과 호르토 공작 둘 뿐이었다.

    그리고 라트의 염려대로 둘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이리로 앉게나.”

    자, 어떻게 한다. 미르차르드가 자리에 앉기 위해 걸어간다. 이제 경화수월이 풀리기까지는 10초 밖에 남지 않았다.

    루만을 죽이면 깔끔하게 목적을 완수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호르토 공작이 마음에 걸려.

    반대로 호르토 공작을 죽이면 일이 틀어지게 된다.

    ‘아, 그건 루만을 죽일 때도 마찬가지구나.’

    호르토 공작이 비명을 지르면 어차피 소란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루만을 죽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어차피 소란이 일어날 거라면.’

    그렇다면 호르토 공작을 죽이는 게 우선이다. 반항을 할 수 있는 전력을 먼저 제거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토리나 산성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공작님.”

    “흠흠, 거기서 무엇이라도 본 건가?”

    자리에 앉은 미르차르드가 호르토 공작의 재촉에 난색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겉으로 보면 말을 꺼내는 걸 망설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떻게 나올지 주시하고 있어.’

    라트만이 미르차르드의 진정한 속내를 깨달았다.

    조금은 진짜로 난색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마 저런 행동을 하는 진짜 이유는 방 안에 상대가 두 명인 이상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처리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우선 호르토 공작을 먼저 암살해야 된다는 걸 미르차르드 역시 알고 있겠지.

    ‘좋아, 그럼.’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낸 라트는 급히 호르토 공작의 뒤로 다가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3초 쯤.

    이제 꾸물거릴 시간조차 남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대검을 휘두르자 호르토 공작의 목에 대검이 닿기 직전, 라트의 모습이 나타났고.

    “읍! 으읍!”

    호르토 공작의 목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순간, 언제 라트가 나타날지 긴장하고 있던 미르차르드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기겁하여 악을 쓰려던 루만의 입을 막았다.

    [켈랑 왕국의 공작, 가라스 텐 호르토를 파티 없이 홀로 죽이셨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셀룬 왕국의 모든 이들이 당신의 업적을 칭송할 것입니다]

    [암살자와 관련된 기능 하나 없이 적국의 본진으로 침입해 네임드 Npc를 암살하셨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랜덤 아이템팩(전설&신화)이 지급됩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고 최초로 공작을 살해하셨습니다. 칭호 ‘멸망의 불을 지피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미르차르드님.”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을 무시한 라트는 먼저 미르차르드에게 칭찬을 보냈다. 그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풀지 않은 채 루만과 호르토 공작을 주시했다.

    난색하다는 듯 눈을 굴리는 행동은 사실 라트가 나타나는 순간을 노려서 루만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건 제가 드리고고 싶은 말입니다, 라트님. 그런데 저조차 기척을 잡지 못하다니요. 그건 브라일 놈의 특기 아닙니까?”

    “뭐, 제가 좀 재주가 뛰어나서요. 놀라셨습니까?”

    “놀랐습니다. 그리고 라트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혹시나 방에 침입하시지 못했을까 굉장히 긴장했었습니다.”

    얼굴에서 약간 진심이 느껴졌던 이유는 라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가.

    “으읍! 읍, 읍!”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다. 이 쓰레기야.”

    루만은 어떻게든 미르차르드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죽하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을 물어뜯고 있을까.

    하지만 오러를 쓰지 않은 상태임에서 루만의 이빨에 물렸음에도 미르차르드 후작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평온했다.

    ‘오러 마스터의 손을 물어봐야.’

    살아온 날 중 검을 손에 쥐지 않은 날이 더 적은 미르차르드 후작이다. 그 손에 박힌 굳은  살은 짐승의 가죽과도 같다. 단단한 가죽을 물어봐야 아픈 쪽은 가죽이 아니라 이빨이다.

    “잡았다, 이 쥐새끼야.”

    웃으며 고한다. 피가 묻은 거대한 대검을 들고 서서히 다가가며 조소한다. 그 모습에 루만의 얼굴에 공포가 꽃을 핀다.

    그래 이걸 바랐다. 너의 얼굴이 그렇게 바뀌기를 원하고, 또 원했다. 원래라면 엘리가 그런 표정을 지었겠지. 죄 없는 소녀가 피지도 못한 채, 져버렸겠지.

    “미리 말해둘게. 나는 널 살려둘 생각이 없어.”

    그것이 너의 죄다. 그렇기에 라트는 루만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미리 선언했다. 그가 자신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조차 품지 못하게.

    “으읍!!”

    죽음의 공포를 느낀 남자가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이 미르차르드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반인, 그래 일반인이다. 루만이 왕이라지만, 그것은 떠받들어줄 자들이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너는 떠받들어질 자격이 없어.”

    밖으로 나가면 루만을 떠받들어 줄 자가 있지만,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고 해서 그가 왕이 아니라고 묻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는 왕의 자격이 없다. 루만은 왕의 힘이 떠받드는 사람에게서 나옴을 모른다. 알고 있다면 백성들을 그런 꼴로 만들지는 않을 거다.

    “추악하니까, 비열하니까.”

    왕임에도 백성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왕임에도 흡혈귀와 거래를 했다.

    그 결과 어찌 되었는가? 너는 그것을 모른다.

    두 성에 있던 병사는 물론이오, 백성들마저 흡혈귀에게 피가 빨려 구울이 된 사실을 너는 당연히 모를 것이다.

    “너는 왕의 그릇이 아니다. 기껏 해봐야 책사의 그릇이나 될까.”

    너는 왕의 그릇이 아니다. 머리가 좋은 건 인정해. 그러나 너에게는 왕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없다.

    “그렇지만 네가 여기서 죽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사실 그런 건 라트가 알 바 아니었다. 자기 앞길도 가기 바쁜데 그 그릇을 판단하고, 그릇이 아니다싶어 죽인다니.

    그렇게 따지면 당장 죽일 사람이 몇 명인가. 아니, 그 전에 라트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러니까 루만을 죽이려고 하는 건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그렇지만 라트에게 있어선 굉장히 중요한 이유 때문이지.

    “감히 내 소중한 사람을 죽이려고 한 거. 감히 내 소중한 사람이 죽어야 될 존재였다고 입을 놀린 거.”

    루아타 공작을 미치게 하겠다는 이유로 엘리를 죽이려고 했다. 엘리가 죽어야 했던 존재라고 아쉬운 듯이 말했다.

    “내 소중한 사람을 죽기 직전에 몰리게 한 거. 내 소중한 사람을 처절하게 울게 만든 거.”

    오우거로 인해 케이네가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었다. 그 때문에 누나가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오열했다.

    사소하기 짝이 없지. 대범한 이가 보자면 치졸하기 그지없는 복수다. 오히려 앞서 말한 그릇 때문에 죽이는 거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나아 보인다.

    그러나 라트에게 있어서는 고작, 그 정도로 이유로 충분했다.

    “그것이 너의 죄다.”

    대검의 칼날이 목에 꽂히자, 루만의 몸이 축 늘어져 꿈틀거림과 함께 공기가 힘없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뜩 그 소리에 소름이 끼치는 까닭은 이것이 바로 죽음의 소리이기 때문이리라.

    [켈랑 왕국의 임시 국왕, 루만 켈랑를 파티 없이 홀로 처치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셀룬 왕국의 모든 이들이 당신의 업적을 칭송할 것입니다]

    [암살자와 관련된 기능 하나 없이 적국의 본진으로 침입해 네임드 Npc를 2명째 암살하셨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희귀 기능 Exp가 지급됩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고 최초로 국왕을 살해하셨습니다. 칭호 ‘추락하는 것에 날개는 없다’를 획득하셨습니다]

    루만을 죽이자 다시금 알림창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5개가 아닌, 6개였다. 어째서 그런가, 하고 맨 마지막에 나타난 알림창을 본 라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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