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40화 (1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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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국왕 전하!”

    바로 그 때 한 명의 병사가 파발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척후병에게서 중요한 파발이 왔다고 합니다.”

    병사가 건넨 파발을 읽어 내린 루만 태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무슨 중요한 보고이기에 표정이 피시옵니까, 전하?”

    “직접 보게.”

    그렇게 말하고 루만은 아주 흡족한 미소로 미르차르드를 바라보았다.

    ‘셀룬 군단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는 걸 알린 파발이구나.’

    라트는 루만의 표정으로 파발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루만이 미르차르드를 의심할 가능성은 0%다.

    그렇지 않아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 때문에 흐려진 판단력에 이런 정보까지 들어왔으니 사람을 의심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자네가 주인공인 파발이구먼, 후작.”

    호르토 공작 역시 파발을 전부 읽고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믿어라, 믿음의 끈이 이어져 멸망이라는 고리를 만들어낼 때까지.

    ‘문제는.’

    눈을 살며시 뜬 채, 웃고 있는 루만과 호르토 공작을 바라보던 라트는 조용히 혀를 찼다.

    ‘정확히 언제 일을 일으켜야 할까.’

    루아타 공작에게 미리 언질을 줬으니 셀룬의 군단은 서서히 슬렌베로 진격해서 상황을 지켜볼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저쪽의 상황은 고려할 필요가 없고, 이쪽의 상황만 고려하면 된다. 최적의 타이밍은 대부분의 귀족들이 잠들었을 때지만, 라트를 어느 정도로 감시 할지도 문제였다.

    ‘어지간하면 루만을 죽이고 성문을 열고 싶은데.’

    생각해보라, 루만은 현재 켈랑의 국왕이다. 소란과 함께 성문이 열린다면 이곳의 모든 병사와 귀족들은 분명 루만을 대피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할 것이다.

    국가는 왕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것이 이 세계의 믿음이었다. 왕이 없으면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왕이 있다면 국가는 부활할 수 있다.

    ‘군단이 성으로 들어왔을 때를 노려서 루만을 죽이는 건 힘들겠지.’

    셀룬의 군단보다는 전력이 적다고 하지만, 국왕의 안전을 보살핌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리고 그 전투에 승산이 없다면 가장 먼저 국왕을 피신시키겠지.

    그러니까 일을 벌이기 전에 루만을 죽이는 게 베스트. 그것이 이쪽의 상황이었다.

    “가둬라.”

    기절한 척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감옥에 도착한 모양이다. 쇠를 긁는 짜증나는 소음과 함께 라트는 자신이 바닥에 내팽겨 쳐졌음을 느꼈다.

    “포로를 잘 감시하도록.”

    “충!”

    자 그럼 이제 일을 어찌한다. 라트는 현재 온 몸이 사슬로 묶인 채 감옥에 갇힌 상황이다.

    재갈이 물려지는 바람에 무색의 연금술은 사용할 수 없다. 생명의 연금술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병사들의 감시도 제법 삼엄했다.

    ‘그냥 미르차르드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제일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 늦은 밤이 되면 미르차르드는 분명 라트를 풀어주기 위해 이쪽으로 올 거다.

    현재는 높으신 후작님이니 감옥 정도는 쉽게 들어올 수 있겠지. 그렇지만,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조금 지루하고 생각할 때 쯤이었다.

    “으으으으읍!!”

    갑작스러운 격통에 라트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으나, 재갈 때문에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미친, 아파, 아파, 아프다고. 존나 아파아아아!’

    고통 완화 포션, 현대로 바꿔 말하자면 마취제의 효과가 끝났는지 어마어마한 고통이 찾아왔고, 눈앞이 새까맣게 변해간다.

    그러고보니,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수술 중에 쇼크사를 하는 환자가 많았다고 했었다. 그때는 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이제는 알 수 있다.

    쇼크사를 안 하는 게 이상했다. 이 정도 고통으로도 죽을 것 같은데, 배를 가르는 고통은 얼마나 심할까.

    “으으읍! 읍, 으읍!”

    “조용히 해라!”

    “내버려둬, 이제 정신 차리고 발악하나 보지. 저러다 조금 있으면 잠잠해질 거야.”

    감시병은  라트의 고통 어린 신음 소리를, 이제껏 기절하고 있다가 감옥에 갇힌 자의 발악이라고 생각했는지, 안으로 들어와 그의 상태를 보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고통이 이어질수록 점차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몸을 굴려 봤지만, 몸이 묶여있는 상태로 몸을 굴려봐야 얼마나 굴릴 수 있겠는가.

    고통 완화 포션, 마취제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는 알지 못했던 라트는 어처구니없게도 잠시 기절하고 말았다.

    “으?”

    다시금 정신을 차린 라트가 주변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 감옥에 있기에 지금이 몇 시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미르차르드님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늘은 지나지 않았겠고.’

    또 혹시나 일이 수틀려서 미르차르드가 봉변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됐다면 라트 역시 죽었어야 했다.

    라트를 감시하고 있던 2명의 병사가 잠들었으니, 꽤 늦은 밤. 3시간 혹은 4시간 정도 기절해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이 빠져나가기에는 최적인 거 같은데.’

    바로 감옥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조는 중이고, 나머지 병사들은 이쪽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있다.

    무색의 연금술도 생명의 연금술도 사용할 수 없는 몸이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크윽.”

    몸을 벽에 밀착해, 벽을 이용해 손톱을 부러트려 피가 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주 조그마한 고통어린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다행히도 이쪽을 바라보는 병사는 없다.

    ‘좋아.’

    연필 같은 게 없으니 피로 연성진을 그릴 생각이었다. 손이 뒤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눈으로는 연성진을 볼 수 없었지만, 그건 라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성진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평범한 연금술사가 연성진을 그리려면 도구가 필요할 정도다. 아무리 숙련된 연금술사라고 해도 눈으로 보고 연성진을 그려야만 했다.

    대충 그리면 되지 않냐고? 천만에 말씀. 연성진은 고도의 술식이 집결된, 연금술사의 정수로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

    그 복잡한 연성진을 정확하게 그려야만 비로써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는 기본이 갖춰지게 된다.

    그러니 무조건 눈으로 보면서 그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연금술은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연금술사에게나 해당되는 일일 뿐.

    게임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있는 라트에게 있어, 눈으로 연성진을 확인할 수 없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 그렸다.’

    피로 그린 연성진 위에 손을 가져다대고, 연금술을 사용한다. 연성진 위에 있는 사물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이다.

    무색의 연금술이 희소한 까닭은 그 범위도 범위지만, 연성진 없이 그 정도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수갑이랑 사슬은 풀었고.’

    연금술을 사용해 수갑과 사슬을 끊은 혹여나 소리가 나지 않게 그것들을 조심히 바닥에 놓았다.

    ‘다음은 빨리 치료부터.’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고 있는 복부에 포션을 가득 붙고, 또 한 병을 꺼내서 마셨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기절까지 했으니, 그 고통은 말로 이뤄 설명할 수 없으리라.

    ‘일단 지금 당장은 소란이 일어나지 않아야 해.’

    루만을 죽이기 위해서는 소란이 일어나면 안 된다.

    아주 조용히, 은밀하게 루만을 죽이고 그 후에 소란을 일으켜서 병사들의 시선을 돌리고 성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역시.’

    “만연하라.”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로 바닥의 돌을 사람 형태로 만든 후 자신이 입고 있는 로브와 하의를 벗어서 돌에 입혔다.

    그리고 연금술을 사용해 바위 인형을 사슬로 꽁꽁 묶은 후 얼굴이 보이지 않게 뒤로 돌려 눕혔다.

    ‘좋아.’

    인벤토리에서 셀룬을 잠시 떠났을 때 갈아입을 용도로 사놨던 바지와 검은색 로브를 입고는 염동력을 이용해 조용히 감옥 밖으로 빠져나갔다.

    “병사 한 명을 기절시켜서 옷을 뺏어 입을까.”

    창문하나 없어 어둠이 드리운 복도를 바라보자, 잠입 액션 게임의 한 장면을 떠올린 라트는 어디 손쉬운 먹잇감이 없는지 주변을 살펴보았다.

    ‘게임이랑 현실이 같을 리가 있나.’

    그러나 혹은 역시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뭐,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지.

    그래도 병사의 갑옷을 빌려 입으면 잠입하기가 편하겠다 싶어서 계속 주변을 살펴보던 중.

    “마누라가 보고 싶구먼.”

    “여기 안 그런 놈이 어디 있냐.”

    “창녀랑 노닐고 있을 귀족들은 또 모르지.”

    복도의 끝 편에서 조그마한 빛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뤄지는 대화와 발소리로 유추해 보건데, 이쪽으로 오는 건 두 명 뿐이다.

    ‘충분하지.’

    검은색 로브 덕분에 어둠 속에 몸을 가릴 수 있다. 저쪽이 등불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여기까지 빛이 밝혀지고 있지는 않아.

    신체 능력을 이용해 시야에 잘 뛰지 않을 천장으로 올라가, 매달린 라트는 두 병사가 바로 아래까지 오기를 기다렸다가, 바닥으로 내려와 간단히 그들을 기절시켰다.

    “읏챠.”

    그 중 한 병사의 갑옷으로 옷을 갈아입은 라트는 기절한 병사들을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벽 속에 가뒀다.

    ‘나중에 빼줄게.’

    넓은 공간에 가뒀으니, 산소가 부족할 일은 없을 거다. 병사들의 모습까지 완벽히 감춰놓은 라트는 그들이 들고 있던 등불을 손에 쥐고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성의 지하겠고.’

    창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보통 감옥은 지하에 있다는 점을 들어 이곳이 지하라는 걸 유추한다.

    ‘지하 몇 층일까.’

    뭐 올라가다보면 알겠지.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돌아다녔다.

    ‘지하 1층이었구나.’

    잠시 후 창문이 있는 복도로 빠져나온 라트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곳이 지하 1층임을 알 수 있었다. 지하와 달리 지상은 수많은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병사의 수가 적으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겠지만, 사람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를 모르니까.

    다수라는 그림자에 스며들어 근방을 살펴보았다. 1층에는 병사와 장교만 있을 뿐, 귀족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가야 되는 건가.’

    라트의 시선이 수십의 병사가 감시하고 있는 거대한 계단에 머문다. 저기서부터는 일반 병사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 상태로 위층으로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어?’

    그렇게 1층을 감시하는 척 돌아다니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 계단을 타고 익숙한 인영이 내려왔다.

    ‘이제 오는 건가.’

    1층으로 내려온 미르차르드가 지하로 가기 위해서 걸음을 옮기자 라트는 재빨리 그에게로 다가갔다.

    “후작님.”

    “음? 어!”

    부름에 고개를 돌린 미르차르드의 입가에 탄성이 튀어나왔고,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아, 아무것도 아닐세. 다들 볼 일 보도록.”

    급히 시선을 무마시킨 미르차르드는 라트의 손을 잡고 시선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말씀대로 알아서 잘 빠져나오셨군요. 상처는 좀 괜찮으십니까?”

    “전부 치료했습니다. 제가 빠져나온 걸 눈치 챈 병사들도 없고요. 손을 좀 써놨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라트의 대답에 미르차르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미르차르드님. 성문을 열기 전에 루만을 죽이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 아닙니까? 그냥 소란을 일으키고 성문만 열면 슬렌베는 허망하게 무너질 겁니다.”

    “슬렌베는 무너트릴 수 있겠지만, 아직 호르토 공작의 영지는 남아 있습니다. 루만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할 겁니다. 전투가 일어나면, 도망치는 루만을 잡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요.”

    라트는 반드시 이곳에서 루만을 죽일 작정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놓친 상대다. 세 번째는 없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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