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9화 (13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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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시간이 지나, 달이 저 하늘의 끝에 걸려있을 때가 됐을 때.

    “누구냐!”

    미르차르드가 슬렌베의 성 앞에 도착하자, 병사 한 명이 성벽 위에서 그의 신분을 물었다.

    “미르차르드 후작이다. 당장 다리를 내리고 문을 열어라!”

    “미, 미르차르드님이시라고요?”

    켈랑 왕국, 나아가 노르스 대륙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미르차르드가 왔다는 소식에 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횃불을 들어 어두운 인영을 비췄다.

    그곳에는 틀림 없는 미르차르드 후작이 서있었고, 그의 품에는 낯선 남자가 죽어가는 중이었다.

    “미르차르드 님이다!”

    “행방불명이라고 하셨는데?”

    “문을 열어도 되나?”

    갑작스러운 미르차르드의 등장에 병사들이 반신반의한다. 듣기로는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등장할 줄이야.

    수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러 마스터를 성문 앞에 세워두는 것 또한 무례였다.

    “미르차르드님. 상부에 보고를 올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병사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미르차르드에게 양해를 구했다. 대놓고, 무례를 범하겠다는 말이다.

    “죽을 위기를 겪고 왔더니 대접이 좋지 않군. 그렇게 하게나.”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미르차르드가 불편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죄를 한 후 급히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역시 감시가 삼엄해. 무색의 연금술로는 못 들어 왔을 거야.’

    보통 배가 칼에 뚫려 있으면 고통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지만, 고통 완화 포션을 미리 마셔뒀기에 라트는 아무렇지 않은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프긴 했다. 그렇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팠다. 멀리 있었지만, 엘리와 케이네가 쓰러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릎 꿇고 사과하자.’

    겨우 그것만으로 거센 분노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거기 병사! 성벽 아래로 붕대를 좀 던지게. 이 자는 굉장히 중요한 포로니까.”

    “명을 따릅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음에도 미르차르드는 라트의 상처를 크게 신경 쓰고 있었다. 뭐, 라트는 포로로써 가치가 있으니 상처를 치료해준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성벽 아래로 던져진 붕대와 상처약을 받아든 미르차르드는 라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이며 상의를 들어 올리고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밤이라서 다행이지. 낮이었으면 100% 들켰어.’

    그렇게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세심하게 상처약을 바를 이유가 없다. 라트는 적의 포로, 그냥 죽지 않을 만큼만 대해주면 그만이다.

    어둠이 병사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들켰을 거다.

    “다 됐습니다.”

    착잡한 그의 심정이 귓가에 느껴진다. 그렇게 싫었나? 라트의 배에 이런 상처가 생긴 건, 미르차르드의 작전에 살을 더했기 때문인데 말이야.

    작전이 먹혀들어가고 있으면 좋아해야하지 않나?

    “국왕 전하께서 직접 나오신다고 하시니 예를 갖춘 후 다리를 내리고 성문을 열어라!”

    시간이 지나, 성벽 아래로 내려갔던 병사가 내려와서 소리를 치자 라트의 미소를 그리며 기절한 척 눈을 감았다.

    ‘국왕 전하인가.’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르겠지. 자신의 가족이 또는 친구의 가족이 온 백성의 가족이 누구 때문에 괴물의 몸에 묶여 절망을 외쳤는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루만을 국왕 전하라고 부를 리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웃었다. 허황된 그의 자리를 박살내고 싶어, 웃었다.

    “미르차르드 후작!”

    이윽고 해자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거대한 성문이 열어짐과 동시에 루만 태자와 호르토 공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는 그대가 메아리치는 밀림에서 죽은 줄 알았는데! 진짜 미르차르드 후작이 돌아오다니.”

    ‘가증스러운 새끼.’

    라트도 이번 작전에서 제법 가증스러움을 보였지만, 눈앞의 남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본인이 버려놓고 간 주제에 염려했다는 듯, 걱정했다는 듯, 기쁘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저 치태를 보아라. 정말이지, 쥐새끼와 같은 가증스러움이 아닌가.

    얼굴에 철판을 깐다고 해도 저러지는 못할 거다.

    “적의 포로가 되었다가,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태자 저하!”

    “이제는 국왕 전하일세, 미르차르드 후작.”

    “실례했습니다, 국왕 전하!”

    “아니요, 포로로 잡혀있었으면 소식을 모를 만도 하지.”

    겨우 며칠이 지났다고 국왕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루만에게 국왕 전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미르차르드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그 자는, 그 때 그 마검사가 맞나?”

    “예, 전하. 이 자를 붙잡아서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저 자가 누구입니까?”

    “나도 모릅니다. 공작. 그건 미르차르드 후작이 설명해줄 거라 믿습니다.”

    호르토 공작은 물론, 라트와 한 번 만났던 루만도 라트의 정체를 몰랐다. 당연히 모르겠지.

    라트가 아무리 대연금술사의 제자라지만, 연금술을 천시하는 자들이 라트에 대해서 조사를 했을 리가 없다.

    “이 자는 루아타 공작의 예비 사위입니다.”

    “이 자가 루아타 공작의 예비사위라고?”

    “훌륭하네.”

    만약 미르차르드가 라트를 후작 대리나, 제스맹 기느투스의 두 번째 제자라고 말했으면 저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겠지.

    “그 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했더니, 루아타 공녀의 약혼자라 이거지?”

    ‘슬슬 일어날까.’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정신을 차린 척 일어나기에는 최적의 시간이다. 라트는 서서히 눈을 떠서, 자신의 앞에 서있는 루만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렸나보군.”

    “이 십 새끼가!”

    아직 지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척, 그저 눈앞에 원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흥분한 척 미르차르드의 손에서 빠져나와 루만 태자에게 달려든다.

    이 짧은 시간 안에 호르토 공작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마법은 시간과 마력을 들여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니까.

    ‘그렇지만. 미르차르드는 다르지.’

    “감히 전하에게 위해를 끼치려고 하느냐!”

    “컥.”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미르차르드 후작이 재빨리 루만의 앞에 나타나더니 그의 배를 걷어찼다.

    그 위력이 상당해서 바닥에 쓰러져 몸을 구른 라트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래, 이 정도라면 루만도 미르차르드를 믿을 수밖에 없을 거다.

    “고맙소, 후작. 그대를 만났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있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군.”

    “아닙니다, 전하. 일단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항마력 수갑을 채워놓지요.”

    “그래, 그게 좋겠군. 어서 항마력 수갑을 가져와라.”

    미르차르드의 제안에 호르토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있던 자신의 가신에게 항마력 수갑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와, 이거 너무 아픈데? 포션 안 먹었으면 기절했겠어.’

    바닥에 쓰러져 입으로 피를 토하고 있지만, 고통 완화 포션 덕분에 그렇게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라트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통 완화 포션을 먹었음에도 한 순간 정신이 아찔한 고통이었다. 포션을 먹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기절했으리라.

    “저 자는 여기 있는 이들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도록 하세나, 후작.”

    “안 됩니다. 저 자는 위험한 자이니, 감옥에 갇히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습니다.”

    “위험하다고? 저런 젊은 놈이?”

    “뒤늦게 루아타 공작의 지원을 받아서 저를 이겼다지만, 저를 상대로 한 시간 이상 버텨낸 놈입니다, 공작.”

    “자네를 상대로 한 시간이나?”

    미르차르드 딴에는 라트가 어느 곳에 갇혔는지를 지켜봐야 나중에 합류할 수 있어서 한 말이었지만.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한 시간 이상 버틸 수 있다는 건 그만한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기에 호르토 공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나도 지켜봐야겠군. 다른 귀족들만 있으면 불안하겠어.”

    시간이 지나 라트의 손에 항마력 수갑이 채워졌다. 병사들은 그걸로 모자라다고 느꼈는지 라트의 몸에 사슬을 둘둘 감았고, 그제야 몸을 일으켜 세웠다.

    “걸어라.”

    “이리 주게. 내가 직접 끌고 가지.”

    미연의 사태를 대비해 미르차르드 후작이 라트의 몸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넘겨받자, 성으로 걸을 수 있었다.

    “버려진 너를 불쌍히 여겨 대접해줬더니, 감히 나한테!”

    “포로에게 재갈을 씌워라.”

    라트가 루만이 미르차르드를 버렸다고 말하려 하자, 루만은 곧바로 라트에게 재갈을 씌워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용을 써봐야 미르차르드는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 단지 연극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라트 역시 마찬가지다.

    “읍, 으읍!”

    입에 재갈이 물리자, 거칠게 반항하면서 무어라 말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재갈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전하가 앞에 계신다. 조용히 하지 못할까.”

    그 발악을 보다 못한 미르차르드가 검 손잡이를 이용해 라트의 목을 때렸다. 그러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다시금 쓰러졌다.

    “엎어라. 말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보다 이게 더 낫겠군.”

    “예!”

    미르차르드의 지시에 병사 중 한 명이 곧바로 라트를 업었다.

    “전하, 지금 전황은 어떻습니까?”

    라트가 병사에게 엎히는 모습을 확인한 미르차르드는 지금까지 포로로 잡혀 있어, 전황을 모르는 척 연기했다.

    “좋지 않네.”

    “포로로 잡혀있으니 알고 있겠지만, 그림자 까마귀랑 케츠 그 년 때문에 런트가 허무하게 함락되어 버렸어.”

    “그건 들었습니다, 공작님.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런트를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포로로 잡혀있던 몸이 아닌가. 이렇게 돌아와서 다행이라네.”

    미르차르드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루만의 모습을 본 라트는 그제야 왜 이렇게 의심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전황은 불리하다. 켈랑의 국력은 50% 이하로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슬렌베에는 남은 병사와 귀족들이 전부 집결해있네. 그래도, 전력 상 이쪽이 불리하다네.”

    최후의 수성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전력 상 이쪽이 불리하다는 건 루만과 호르토 공작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전력의 차이가 심했다. 그래서 런트에서 그 전력 차이를 메워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지.

    그렇기에 안심하고 있는 거다. 이렇게 불리할 때에 전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나.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냉철하다고 해도 위기 상황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지.

    “역시 그렇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에 미르차르드는 침음을 삼켰다.

    “전하. 소신이 알기로는 상왕 전하께서 파르스로 끌려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예.”

    미르차르드의 말에 루만은 기쁜 척 반문을 했으나, 지나가는 그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그건 호르토 공작 역시 마찬가지다.

    루만의 현재 직위가 국왕이라지만, 즉위식도 거치지 못한 임시 국왕에 불과하다. 셀틱 국왕이 돌아온다면 자연스럽게 루만도 다시 태자가 되겠지.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나, 전하께서 선왕 전하를 포기하신다면, 휴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음?”

    이어지는 말에 루만 태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셀틱 국왕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루만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셀틱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미르차르드가 이런 발언을 하다니.

    “자네는 아버님을 구하고 싶지 않은가?”

    “선왕 전하보다, 켈랑의 명맥이 이어지는 게 중요하옵니다. 상왕 전하께서도 그리 생각하실 겁니다.”

    ‘그리 생각하기는 개뿔이.’

    그럴 리가 없지. 셀틱 국왕은 루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 켈랑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그런데 어떻게 휴전을 할 수 있다는 건가.”

    “이 자를 이용해 휴전 협정을 하면 됩니다.”

    “오호라.”

    미르차르드가 라트를 가리키자, 라트가 공녀의 약혼자임을 상기한 루만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자네 말대로 하면 휴전을 할 수도 있겠어.”

    “그렇사옵니다.”

    “이거 후작이 돌아오면서 크나큰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루아타 공작이 하나 뿐이 외동딸을 지극정성으로 아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나 뿐인 외동딸의 연인도 끔찍하게 여길 터.

    라트가 얼마나 가치 있는 포로인지 알아차린 루만과 호르토 공작은 어두웠던 전황이 밝아져간다고 생각하겠지.

    그 빛이 잠시 후, 심연과도 같은 어둠으로 바뀔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한 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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