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8화 (13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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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막사로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케이네의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어가며 그를 떨쳐낸 라트는 미르차르드가 기다리고 있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하죠.”

    반론을 허락하지 않을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에 미르차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옥체에 손상을 가하려 하는 제 불충을 용서하시옵소서.”

    “제가 시킨 건데 불충은 무슨, 깔끔하게 찌르세요.”

    ***

    - 그래? 에잉, 그 놈 참 무모한 짓을 하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홀로 앉은 루아타 공작이 수정구를 바라보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수정구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고 만다.

    오늘 낮에도 제스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루아타 공작은 그에게 라트의 무모한 작전을 설명해주기 위해 또다시 그와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정말 이야기 한 번 안해도 괜찮겠는가?”

    -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지 않나. 당장 수도로 돌아올 놈이야. 스승 되는 자가 제자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미안하네, 정말로.”

    노인의 안색은 창백하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과 같은 아니, 이미 죽어있는 자와 같은 시체의 모습이다. 친우의 안색을 보고 있는 루아타 공작의 가슴 속에 응어리가 맺힌다.

    - 뭐가 미안하다는 건가.

    “……전부 다. 내가 아니었다면 자네는.”

    앞으로 훨씬 더 오래 살았지 않았나.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가장 친한 친우를, 죽였다고 시인하는 꼴이니까.

    - 자네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네.

    루아타 공작의 생각을 읽은 제스맹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씹으며, 붉게 충혈이 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아타 공작이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는 제스맹조차 상상이 가지 않았다.

    - 전부 내 선택이었어. 알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건,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그것이 마지막으로 친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루아타 공작이 연금술을 천시하지 않는다지만, 그는 연금술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

    루아타 공작은 이제 겨우 40세 후반에 들어선 몸으로 8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다. 공작의 업무를 수행하면 마법을 탐구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그러니까 몰랐겠지. 제스맹이 진심으로 전쟁을 지원하게 된다면, 그의 수명이 깎여나갈 될 것을.

    어중간한 연금술사가 무색의 철이나 기타 광물 혹은 화약을 다루면 그 질은 떨어진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감당했다. 어중간한 것이 아닌, 연금술사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

    - 쿨럭쿨럭.

    “제스맹!”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자, 루아타 공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아아, 말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수도로 올 놈이 하나 더 있었군.’

    루아타 공작이 손까지 떨어가며 자신을 바라보자, 제스맹은 별 것 아니라는 듯 피가 묻은 입술을 닦아냈다.

    - 걱정 말게. 오래도록 이랬으니까.

    피를 토하는 것쯤은 이제 예삿일이 아닐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지 오래다.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다.

    셀룬이 모든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광물과 화약을 만들기 전까지는 죽지 않아.

    적어도, 친우가 보는 앞에서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그러니까 내가 곧 죽는 건, 전부 내 선택 때문이네. 내 신념 때문이기도 하지. 이렇게 갈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연금술의 끝에 도달해보았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도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경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연금술사의 처지를 바꾸려고 한다. 천시 받는 연금술이 이리도 훌륭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이 꿈은 두 눈으로 볼 수 없겠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이 이어나가 줄 것이다.

    미련은 없다.

    아니, 미련은 아직 남아있어.

    제자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케이네는 강해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은 어려. 그것이 어릴 적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도 가족의 정을 주었건만, 그대로 아직 케이네는 약했다.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맡길 수밖에 없다. 제스맹은 케이네의 옆에 있을 이제는 청년이 된 소년을 생각했다.

    ‘스승 주제에 부탁할 것이, 남기고 가는 것이 너무 많구나.’

    자소한다, 스스로를 비웃는다. 해준 것은 별로 없으면서 맡기고 가는 것은 너무 많다.

    이미 자신의 꿈을 라트에게 맡겼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첫 번째 제자를 라트에게 맡기려고 한다.

    ‘훌륭한 스승이라고 할 수 없구먼.’

    가능하면, 보고 싶었다. 네가 만들어갈 길을 보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볼 수 없다. 그래서 미련이 남았다.

    “제스맹…….”

    이제는 눈물까지 흘리는 친우의 모습에 제스맹은 퍼득 정신을 차리고 노인네 특유의 고약한 미소를 지었다.

    - 꼬마 로이. 어릴 적에 울보였던 놈이 훌륭히 어른이 된 줄 알았더니만, 아직도 꼬마였구먼. 허허허.

    “자네에게 나는, 항상, 꼬마이지…않았나.”

    떨리는 목소리로 슬픔을 고하는 친우의 모습에 이번에는 밝게 웃는다.

    - 그럴 리가 있나. 자네는 언제나 훌륭한 내 친우, 루아타 공작이었다네. 그러니까 눈물 흘리지 말게. 내가 아는 루아타 공작은 언제나 당당했으니까.

    “……알았네.”

    뺨을 타고 흐르는 차디찬 눈물을 닦아낸 루아타 공작의 눈은 여전히 슬픔이 가득했지만, 그는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제자들, 손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겠는가?

    “조금만, 기다려주게나.”

    타이밍 좋게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누구의 짓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공작님!”

    헐레벌떡 들어온 수석 마법사가 루아타 공작에게 바깥의 상황을 전한다. 비밀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재 이 작전은 루아타 공작만이 알고 있었기에 저리도 당황하는 것이겠지.

    아마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가지.”

    슬픔을 지우고, 당황을 연기한다. 품속에 수정구를 넣어가는 걸 잊지 않은 채 막사 밖으로 나오자, 복부에서 상당량의 피를 흘리고 있는 라트가 눈에 띄었다.

    곧이어 눈에 들어온 미르차르드는 그런 라트는 붙잡고 그의 목에 칼을 들이민 상태로 방패막으로 쓰고 있었다.

    덕분에 주변의 모든 귀족과 병사들은 화살도,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어. 자칫 잘못했다가는 라트가 다치니까.

    - 생각 잘했군. 그래 저 정도는 되야, 적도 믿을 수 있겠지.

    제자의 작전을 미리 들었던 제스맹은 살짝 감탄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상처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 작전을 실행하다니.

    어지간한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미르차르드 후작!”

    주변 귀족들은 그저 말로만 미르차르드를 책망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미르차르드에게 감히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르차르드 후작인가.’

    그래, 그게 맞겠지. 그는 현재 셀룬에 투항한 미르차르드가 아닌, 켈랑의 귀족 미르차르드 후작이라고 봐야한다.

    “포로로써 좋은 대우해줬더니, 이게 무슨 배은망덕한 짓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한층 더 심화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놓였는데, 내 어찌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가만히 있겠는가!”

    아무리 연극이라고 하지만, 대군을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저것이 오러 마스터, 저것이 일국의 후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남자다.

    “길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의 목숨은 없다!”

    “크윽.”

    - 케이네와 공녀님이 보이는구먼. 허허허, 둘 다 표정이 안 좋은데. 라트 녀석, 이번 일이 끝나면 죽겠군.

    고통어린 라트의 신음소리에 패닉 상태에 빠진 케이네와 엘리를 발견한 제스맹은 조용히 웃었다.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에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거지, 제스맹도 상황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웃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간을 넘어서 이곳으로…….”

    “허튼 짓 하지 마라!”

    귀족 중 한 명이 마법을 사용해 라트를 빼내려오려고 하는 순간, 미르차르드 후작의 절기가 터졌다.

    크나큰 함성이 청각을 찢고 뇌리에 공포를 새겨,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 니콜라벨리지.”

    전율하는 공포가 머무르고 있음에도 단 한 명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서히 걸어 나왔다. 브로켄 후작, 셀룬 왕국의 오러 마스터였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온 브로켄 후작이 검을 뽑아든다.

    “후작님의 제자에게 무슨 짓을 했다간, 그 즉시 네 목을 치겠다. 니콜라벨리.”

    “검을 거둬라, 브로켄 후작. 그렇지 않으면 이 자의 목숨은 없다.”

    “그게 오러 마스터가 할 말이냐! 포로를 잡고, 협박하는 것이 긍지 높은 기사가 할 짓이냔 말이다!”

    포효하는 맹수의 앞에서 미르차르드 후작은 잠시 입술을 씹었다. 그의 말대로 이건 기사가 할 짓이, 오러 마스터가 할 짓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연극. 그렇다면 꼭두각시 역할을 제대로 해야지.

    “……왕국을 위해서라면 긍지도 버릴 수 있다.”

    웃기는 소리다. 왕국을 위해 긍지를 버릴 수 있다면, 루만이 저지른 짓을 봤어도 셀룬에 투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미르차르드의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극박한 상황인지라, 이곳에서는 오로지 두 사람만이 미르차르드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새끼가. 투항했다기에 널 믿고 있던, 내가 병신이로구나!”

    브로켄 후작이 이를 갈면서 얌전히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선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길을 열지 않으면, 이 자의 목숨은 없다.”

    “길을 열어라.”

    “공작님! 그럴 수는!”

    “그러면, 안 됩니다……. 공작님. 저는, 괜찮으니.”

    “라트!”

    루아타 공작의 명령에 주변의 귀족들과 미르차르드에게 잡혀있는 라트가 그를 말렸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공작을 말리려는 그 모습에 엘리와 케이네가 비명을 지른다.

    - 에잉 가증스러운 놈.

    그 모습에 제스맹이 한 마디 하자, 루아타 공작은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고 근엄한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무엇들 하는가. 길을 열라고 했다!”

    “현명한 판단이다.”

    현재 라트의 신분은 고작 후작 대리다. 그래 후작 대리일 뿐, 진짜 귀족은 아니다. 그저 전시 상황이기에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라트는 수없이 많은 활약을 펼쳤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공녀의 짝임을 인정받은 상황이며, 루아타 공작의 친구인 제스맹의 제자이기도 하다.

    루아타 공작이 라트의 목숨을 걱정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 자는 휴전 협상을 위한 포로로 쓰겠다. 추격대를 보내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죽일 것이니 허튼 생각은 하지 말도록.”

    병사들이 서서히 물러나자, 미르차르드는 여전히 라트를 방패막으로 쓰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서더니, 어느 순간 라트를 한 팔로 질질 끌며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났다.

    “당장 추격대를!”

    “아까 한 말 듣지 못했나!”

    추격대를 보내겠다는 피츠로이 백작의 말에 일갈을 날린 루아타 공작은 두통이 일어났다는 듯, 머리를 꾹꾹 눌렀다.

    “공녀님!”

    “빨리 막사로! 의사도 불러오게!”

    연기처럼 보이지만, 이 두통은 진짜였다. 엘리가 쓰러져버렸다.

    - 자네 딸이 쓰러졌구먼.

    “후우우. 난 이번 일을 모르는 거야. 자네 제자 놈이 전부 떠맡을 일이네.”

    아는 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이 작전이 통하리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저렇게 쓰러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케이네양!”

    - 이, 이, 못난 놈!

    엘리에 이어 케이네까지 쓰러지자, 제스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히 손녀를 울리다니, 울린 놈이 손자 놈이라 욕을 할 수도 없다.

    - 그래도 이렇게나마 얼굴을 봐서 좋구먼. 어서 딸아이에게 가보게. 그러는 김에 케이네도 부탁함세.

    “그렇게 하지.”

    고개를 끄덕인 루아타 공작이 통신을 끝내자, 제스맹은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래 이렇게나마 얼굴을 봤으니, 이제 됐다.”

    친우에게도 손주들에게도 자신의 마지막은 보지 않게 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제스맹은 자신의 취향이 가득 담겨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선물을 남겨놓으마.”

    죽어가는 이는 처량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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