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7화 (13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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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제게 불충을 저지르시라는 겁니까? 어째서 그런 명령을.”

    아, 너무 두서없이 결론만 말했구나. 라트는 자신의 실수를 파악하고 머리를 긁적인 후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저에게 상처를 입히고, 인질로 잡아서 도망쳤다고 하면 더 급박한 상황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루만도 호르토 공작도 미르차르드님을 더 쉽게 믿어주지 않겠습니까.”

    고육지책을 약간 바꿔, 실제로 상처를 입은 채 적의 포로로 끌려갈 생각이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라트의 말이 옳았지만, 그의 몸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는 사실이 꺼려지는지 미르차르드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의문을 표했다.

    “그렇게 하면 성공률이 더 높아지잖아요. 그리고 포션도 있으니까 죽지만 않으면 상처 정도는 금방 치료할 수 있습니다.”

    포션은 전부 인벤토리에 있으니 루만 쪽 병사가 라트의 품을 뒤진다고 해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포박이 된다고 해도 딱히 문제는 없다. 연금술사에게 포박이라는 건 정말 의미 없는 짓이니까. 무색의 연금술이 아니라고 해도, 연성진을 그릴 시간만 있다면 강철 포박이라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루만 쪽은 내가 연금술사라는 걸 모르고 있으니까.’

    처음 라트와 마주했던 미르차르드처럼, 루만 역시 라트를 마검사로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 말대로 하는 게 성공 확률이 더 높다는 건 미르차르드님도 알고 계시죠? 어서 찌르십시오.”

    “지금 당장 말입니까?”

    “예.”

    작전이 정해졌으면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 병사들의 경계가 가장 허술해지는 시간대였다.

    “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오늘 낮에 엘리에게서 항상 무리만한다고 한 소리 들었던 걸 기억한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말은 하고 가야 될 거 같은데..’

    이쪽의 작전을 모른다면 내일 루아타 공작은 슬렌베로 진격하지 않고, 포로로 잡힌 라트를 빼내기 위한 작전에 골머리를 썩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제스맹의 제자이자 손자와 같은 존재이며 동시에 딸아이와 운명의 실이 이어져있는 라트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또 엘리한테 걱정을 끼쳤다가는.’

    이번에는 단순히 화를 내는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물론 이런 작전을 펼치는 것부터 엘리의 화를 돋우는 짓이기는 하지만. 설명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천지차이니까.

    “우선 공작님께 가서 말씀을 나눠보죠.”

    “좋은 생각입니다.”

    그제야 미르차르드 후작도 한숨 놨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동시에 일어나 루아타 공작이 있는 막사로 들어갔다.

    “오, 무슨 일인가.”

    아직 식사를 끝마치지 않았는지, 가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루아타 공작이 라트와 미르차르드를 맞이했다.

    당연히 다른 귀족들이 공작과 친밀해지기 위해 있을 줄 알았는데, 무슨 연유인지 귀족이라고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죄송합니다만, 가신 여러분들께서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음.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공작의 물음에 가장 오랫동안 공작을 모셔왔던 수석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당연히 비켜드려야지요.”

    식사 중에 무례를 범했기에 라트는 가신 무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할 게 없다고 손사례를 치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다.

    원래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나.

    “그래, 무슨 일인가.”

    가신들이 물러가자, 루아타 공작은 식사를 멈추고 지긋이 라트를 바라보았다.

    “먼저 미르차르드님이 말씀하실 겁니다.”

    “말씀하시지요.”

    루아타 공작의 시선이 라트에게서 미르차르드에게로 옮겨지자, 미르차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설명했다.

    “흐음.”

    슬렌베 성의 중요성과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이 작전이 통할 것이라는 설명까지 모두 들은 루아타 공작은 침음을 삼키며 라트를 바라보았다.

    “자네 또 무리하는군.”

    “하하하.”

    낮에 엘리에게서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듣자, 라트는 쓰게 웃었다. 부전여전이다.

    “작전은 잘 들었습니다만, 겨우 그 정도로 호르토 공작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분명 의심할 겁니다.”

    “그래서!”

    루아타 공작 역시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라트가 미소와 함께 입을 연다.

    “저도 공작님과 똑같은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해본 결과. 제가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로 포로로 잡혀간다면, 그쪽도 크게 의심을 안 할 거 같지 않습니까?”

    “이보게 자네!”

    “라트님!”

    ‘아니, 왜들 이래.’

    루아타 공작도 그렇다 치고 이미 이 안건을 알고 있는 미르차르드조차 소리를 지를 줄은 몰랐다.

    “진짜로 그러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한 말이다. 오히려 칼빵 한 번 당하고 루만과 호르토 공작의 의심을 지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당해줄 수 있다.

    “무리가 아니라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부상당한 상태로 도망칠 자신은 있고?”

    “포션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포로로 잡혀서 몸을 수색당한다고 해도 포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을 자신도 있고요.”

    포션만 먹을 수 있다면 그 뒤로는 일사천리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수갑은 있지만, 연금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수갑은 없다.

    게다가 염동력도 있고 경화수월도 사용할 수 있다. 일을 그르칠 거 같으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내 딸 아이의 목숨이 달려있는 사람이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작전에 동의하라, 이 말인가.”

    “예.”

    루아타 공작의 물음에 라트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당당함은 죽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활약하는 건 공작님께서도 원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허허.”

    라트의 대답에 루아타 공작은 메마른 웃음소리와 함께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래 분명 라트가 활약하기를 원하는 건 루아타 공작도 바라는 바였다.

    라트가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연금술사의 입지가 조금씩 바뀔 테니까.

    연금술이 가장 활발히 발전하고 있는 셀룬에서 조차, 은연 중 연금술을 천시하고 있다. 대놓고 천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스맹 때문이지.

    문제는 그 제스맹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친구가 살아있을 적에 꿈을 이뤄줘야 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나.”

    “새벽 무렵에 소란을 일으킬 테니……. 그때 병사들을 이끌고 진격하시면 됩니다.”

    “그런가.”

    그 이후의 일은 라트가 아닌 미르차르드가 이야기하자, 루아타 공작은 한참이나 라트와 눈싸움을 하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하게나.”

    “네. 에, 예?”

    뭐야, 조금 더 완고하게 안 된다고 말할 줄 알고 설득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작이 쿨하게 그렇게 하라고 하자, 오히려 라트 쪽이 더 당황해버렸다.

    “자네는 묘하게 제스맹을 닮았어. 내가 말린다고 듣지 않을 게 분명한데, 말려봐야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하하하하.”

    “다만, 죽으면 안 되네.”

    “명심하겠습니다.”

    죽으면 안 된다. 그 사실은 라트도 통감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전은 언제 실행할거지?”

    “가신들과 다시 식사를 시작하시면 바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실감나는 연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꼭두각시 역할까지 해야 하다니. 자네는 공작을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아타 공작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의 뜻을 보냈다.

    “아. 딸 아이가 추후 어떻게 나올 지에 대해서는 나도 감당 못하니 알아서 잘 하게나. 난 이 작전을 모르고 있었던 거네. 알았지?”

    우와, 치사하게 이렇게 엘리의 분노를 피할 생각을 하다니.

    “치사하십니다.”

    “자네가 제안한 작전이니, 후폭풍도 자네가 감당해야하지 않겠나?”

    옳은 소리였지만, 치사한 건 치사한 거였다. 그렇지만 공작의 말대로 작전을 제시한 건 라트였으니 후폭풍도 라트가 감당해야한다.

    “그럼 돌아가보겠습니다.”

    라트와 미르차르드는 루아타 공작에게 인사를 한 후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아타 공작은 조금 전, 친우인 제스맹에게서 연락이 왔었던 사실을 기억해내고 무슨 이유인지 쓰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제 막사로 돌아가서 바로 시작하죠.”

    “정말 제가 라트님을 찔러야하는 겁니까?”

    “에이, 저번에는 제 갑옷이 박살날 때까지 검을 휘두르셨으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미르차르드가 웃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이 굳어지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지한 성격이 좋기는 한데, 이럴 때는 피곤해.’

    차라리 이럴 때는 죽은 브라일처럼 유쾌하게 바로 배에 칼빵 한 방 놓을 수 있는 성격이 편하다.

    “하셔야 됩니다. 제가 상처를 입어야 오히려 제 목숨이 안전해요. 알고 계시죠?”

    루만에게 의심을 받는 순간 둘 모두 위험해진다.

    라트는 빠져나올 수 있다고 쳐도, 미르차르드가 빠져나올 수 있을 지는 미지수. 그러니까 라트의 상처는 둘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했다.

    “알고는 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충성을 맹세한 라트에게 상처를 입혀야 한다는 사실이 어지간히 꺼려지나보다. 그래도 때가 되면 알아서 잘할 사람이니까.

    “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사로 돌아가는 도중 케이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인사라도 하고 오시겠습니까?”

    “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최근 들어, 정확히는 런트를 점령한 이후부터 케이네와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상기한 라트는 미르차르드를 먼저 막사로 보내고 케이네에게 다가갔다.

    “누나.”

    “어머. 라트 식사는 했어?”

    식사라. 아직 먹지 않기는 했지만, 식사를 할 생각도 없었다.

    “먹었지.”

    그렇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이실직고하면 케이네가 이대로 라트의 손을 잡고 배급 장소로 갈 게 뻔했기에 마음속으로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거짓말을 했다.

    “누나한테 할 말 있어?”

    “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누나가 보여서. 누나랑 내가 꼭 할 말이 있어야 이야기할 사이는 아니잖아.”

    “후후, 그렇긴 하지.”

    라트의 말에 케이네는 웃으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가, 그 손을 원위치 시켰다.

    “그런데 이런 시간에 누나랑 이야기해도 돼? 엘리가 쓸쓸해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는 뜬금없이 엘리를 언급한다. 이 시간에 엘리와 함께 한 적은 거의 없다. 굳이 있다고 하면 런트에서 있을 때와 오늘 뿐이다.

    회의와 수련 때문에 바빴으니까. 심지어 도중에 세리아를 만나서 피로가 쌓인 덕분에 마차에 실려서 하루 종일 자기도 했었고.

    “뭐, 엘리도 바쁘겠지. 나도 바쁘고.”

    “그러니?”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평소 같으면 단 둘이서 이야기할 때 머리를 쓰다듬거나 껴안는 등, 스킨십을 아끼지 않던 케이네가 오늘따라 아무런 스킨십도 하지 않자 거리감이 느껴졌다.

    ‘뭐 시선이 모여 있으니까.’

    그 이유를 남자 귀족들의 시선이 케이네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긴다.

    “아, 맞다. 누나 식사 이후에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 분이 계셔서 먼저 가 봐도 될까?”

    “어, 어 그래.”

    겨우 인사와 안부를 물어봤을 뿐. 평소 같으면 수 십 분은 같이 이야기를 나눴을 케이네가 휑하니 가버리자, 라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몇 년 전처럼 왠지 케이네가 자기를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겠지?”

    그래 기분 탓이다. 케이네는 라트를 피하지 않았다. 단지 선약이 있었을 뿐이다. 대화도 받아주었고, 웃어주지 않았던가.

    케이네가 자신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도,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자 욱신거리는 가슴도 전부 기분 탓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게 편해.

    “가자, 가.”

    케이네가 갔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몇몇 귀족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고 있지만, 그들과 대화를 할 시간까지는 없었기에 라트는 누가 다가오기 전에 재빨리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개가튼 서버가...12시 30분 쯤에 글 올리려고 했더니 서버가 맛이 가서 자고 왔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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