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4화 (13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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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뭐야 왜 이래.’

    브로켄 후작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자, 라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뭐,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노르스 대륙의 오러 유저들은 카르세이나 대륙의 오러 유저들과 달리,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시키면 좋은 무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고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낸, 웨폰 엠페러 시리즈와 격을 같이하는 검들이지 않은가.

    “후작 대리 실례지만, 공평함의 검을 한 번 보여줄 수 있나?”

    탐욕에 젖은 눈이 아닌 순수하게 검사로서 공평함의 검을 보고 싶어 하는 탐구심.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거절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아.”

    한숨과 함께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응? 그건 담배이지 않은가.”

    “기다리게나, 브로켄. 이제 놀라운 일이 펼쳐질 걸세.”

    영문을 모르겠지만, 미르차르드가 기다리라고 말하자 브로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평함의 검은 마나가 너무 많이 닮는단 말이야.’

    공평함의 검을 한 자루 만들면, 대략 라트의 마나의 1/2가 사라지지만, 지금 당장 공평함의 검을 보여주지 않으면 브로켄 후작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되지 않으니까.

    담배를 갈아 넣고 불을 붙인 후, 폐 속에 가득 연기를 머금는다.

    입 밖으로 세어 나온 새하얀 연기가 라트의 손아래, 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칼날로 바뀌자 브로켄 후작은 입을 벌렸다.

    “자, 자네 사람이 맞는가?!”

    또 이런 반응이다. 이러니까 3년 전, 제스맹이 라트에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생명의 연금술은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던 거다.

    지금이야 셀룬 왕국 내에서 라트를 건드릴 사람은 존재치 않는다. 엘리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공작이 인정했는데, 어떤 이가 라트를 건드릴 수 있을까.

    그러나 제스맹의 제자일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 라트의 능력에 호기심을 느낀 이가, 혹은 욕망을 가진 이가 그를 납치했을 수도 있다.

    “일단 보시죠.”

    겉보기에는 손잡이조차 없는 칼날이지만, 이것이 바로 공평함의 검이었다. 공평함의 검이 브로켄 후작의 손에 들리자, 칼날이 조금씩 떨린다.

    “이것이 공평함의 검인가.”

    브로켄 후작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검을 쓰다듬었다.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힘을 알아차리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이래 보여도 일단 전설의 검이니까,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했다. 1, 2번이야 셰크티 제국에 실존하고 있지만, 나머지 번호는 아직까지 종적을 감추고 있으니까.

    “아!”

    정신없이 검신을 쓰다듬던 브로켄 후작은 갑자기 공평함의 검이 사라지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시간제한이 있나 보구먼.”

    단번에 생명의 연금술을 대충 파악한 브로켄 후작은 턱을 쓰다듬으며 라트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연금술인가?”

    “생명의 연금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명칭은 수명의 연금술이지만, 수명이나 생명이나 같기 때문에 라트는 생명의 연금술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맙네. 오늘 엄청난 눈 호강을 했어.”

    브로켄 후작은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자네 시간을 끌다가 공평함의 검에 당한 것이로구먼.”

    “라트님이 뛰어나셨던 것뿐이다.”

    자신을 추켜세우는 미르차르드의 말에 라트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르차르드를 이긴 건 어지간히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만약 상대가 공격을 중시하는 브로켄 후작이었다면 버틸 수나 있었을까.

    상대가 방어적인 검술을 사용하는 미르차르드였기에 그렇게 버틸 수 있었고, 버티고 버텨서 대지의 분노로 움직임을 묶고 공평함의 검을 맞출 수 있었다.

    대지의 분노가 없었더라면, 미르차르드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고,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면 공평함의 검은 명중하지 못했으리라.

    “기느투스 후작님께서 말년에 굉장한 제자를 두었군.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승리한 연금술사라니.”

    브로켄 후작이 감탄의 시선을 아끼지 않는다.

    “검술도 굉장히 뛰어나시다. 오러 유저셨다면, 단 한 분을 제외하면 같은 나이 또래에 적수가 없으셨을 거야. 아니 오러 유저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단 한 분, 그 말에 브로켄 후작이 침음을 삼켰다. 라트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미르차르드가 언급한 자가 바로, 대륙 역사상 최연소 오러 마스터에 도달해, 천 년 만에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노리고 있는 여자였으니까.

    “1황녀님이 무시무시하게 강하긴 하시지. 1년 전, 제국에서 일어났던 결투 대회에서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믿지 못했을 정도로.”

    세나릭에프토리아 프리그 델 셰크티. 셰크티 제국의 1황녀이자,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NPC.

    “그런데 오러 유저가 아닌데도 검을 다룬다는 건가?”

    “신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다. 게다가 나조차 모를 검술을 사용하시더군.”

    “호오, 자네도 모르는 검술이라고?”

    미르차르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브로켄 후작이 놀라운 시선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오른손으로 남몰래, 자신의 검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라트와 대련을 해보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당장 한 수 청하고 싶지만, 이놈의 전쟁 때문에. 클클클.”

    그러나 당장 언제 전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련을 청할 정도로 브로켄 후작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기에 검을 매만지고 있던 손을 거두고 다시금 술잔을 들어올린다.

    “순수하게 검술로만 오러 베철러를 상대하신다면 어떨 것 같나. 물론 오러 베철러가 오러를 쓴다는 가정 하에.”

    “라트님의 압승이다. 내 장담하지.”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익스퍼트는 어떤가? 상황은 동일하네.”

    “라트님께서 강화 물약을 드신다면, 단언컨대 이기신다.”

    “클클클. 아들놈을 데려오고 싶구먼.”

    브로켄 후작은 혹시나 모를 일 때문에 본국에 남겨두고 온 아들을 언급했다. 그러자 미르차르드의 얼굴에 침울함이 깃든다.

    “아, 미안하구먼.”

    “아닐세.”

    괜찮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미르차르드의 얼굴에 침울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지. 미르차르드 후작은…….

    “이제부터 이 친구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허락해주겠나 후작 대리?”

    “그렇지 않아도 일어날 생각이었습니다. 차분히 말씀 나누십시오.”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브로켄 후작의 요청에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막사에서 빠져나왔다.

    미르차르드는 그가 아직 후작이었을 때, 그러니까 라트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지 않았을 때도 자신에게 검술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보았던 씁쓸한 표정을 지었었지.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기에 그런 것이다.

    ‘미르차르드 후작은 젊은 적에 가족을 잃었으니까.’

    라트가 알기로는 미르차르드가 검에 미쳐 수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 부인과 아들이 런트로 가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들었다.

    부인과 아들을 살해한 괴한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기에 미르차르드는 복수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살해당한 어여쁜 부인의 시체를 껴안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린 아들의 시체는 찾을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후 미르차르드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바이올런의 종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미르차르드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 역시, 라트는 알고 있다.

    ‘당장은 말 안하는 게 좋겠지.’

    린느탐보프 왕국과 핀스크 왕국에 깊숙이 침입한 것으로 모자라, 켈랑까지 침투하려고 했던 흑마법사가 벌인 짓이라는 걸 알면 미르차르드 후작은 당장 흑마법사 무리로 뛰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목적은 미르차르드의 정신력을 약하게 만들어 그를 세뇌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당시 흑마법사들이 미르차르드에게 마수를 뻗치지 못한 이유는 얼마 전 미르차르드가 처리하는데 도움을 줬던 브라일이라는 거다.

    “딴에는 미르차르드를 도와줬다기 보다는 켈랑에 수상한 무리가 침입하지 못하게 한 거지만.”

    브라일은 켈룬의 밤을 지배하던 그림자 까마귀의 단주로써 사명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미르차르드를 지켜준 꼴이 되었으니, 미르차르드는 은인을 죽인데 협조했다고 볼 수 있었다.

    ‘뭐 안 도와줬어도 상관없었지만.’

    미르차르드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브라일은 죽일 수 있었을 거다. 미르차르드의 협조 덕분에 쉽게 처리했을 뿐이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어.

    “정말로 아름다우십니다.”

    “호호호. 부끄럽네요.”

    브로켄 후작의 막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던 중, 케이네의 웃음 소리가 들렸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상당수의 젊은 남자 귀족, 혹은 귀족의 아들들에게 둘러싸인 케이네가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니, 조금 마음이 욱신거렸지만, 라트는 그것을 무시했다.

    ‘주관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누나가 예쁘긴 하지.’

    케이네는 굉장히 아름답다. 미모를 놓고 보자면 엘리와 맞먹을 정도다. 게다가 아버지는 타국의 오러 마스터에 기느투스 후작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장래가 보장된 아름다운 여인이 남자 귀족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필연 일어날 일이었다.

    ‘그냥 지나갈까.’

    조금 쓰라리기는 했지만, 저 중에는 괜찮아 보이는 귀족들도 많았다. 라트가 평생 케이네를 책임질 것도 아니니 그녀는 필연 다른 누군가와 이어져야한다.

    물론 안 괜찮은 귀족들도 있기는 했지만, 케이네도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 놈팽이와 친해지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려왔다.

    “라트, 뭘 그렇게 봐?”

    케이네와 귀족들이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중 엘리와 몇몇 여자 무리가 라트의 옆으로 다가왔다.

    “우와, 언니 인기 대단하네.”

    엘리의 감탄에 라트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엘리도 케이네와 같은 인기를 받아야했다.

    엘리가 남자 귀족 사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공작이 인정한 연인이 있는 공녀에게 어찌 다가갈 수 있겠는가.

    엘리에게 무례를 저지른 순간 공작의 분노를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몇몇 남자 귀족들은 힐끗 엘리를 바라보고나 인사만 할 뿐, 엘리에게 치근덕거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지.

    “후작 대리님을 뵈어요.”

    엘리와 같이 온 여성들이 인사를 건네자, 라트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귀족의 여식이 아닌, 정식 귀족이었으니 당연히 예를 갖춰야했다.

    “죄송합니다, 정신이 팔려서 인사가 늦었네요. 라트라고 합니다.”

    “공녀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브로켄 후작의 군단에 속한 여자 귀족들은 하나 같이 라트에게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녀님의 백마 탄 왕자님이라면서요?”

    “배, 백작님!”

    그 중 가장 작위가 높아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폭탄 발언을 던지자, 엘리의 얼굴이 붉게 변했고, 그녀의 주변에 있던 여자 귀족들은 중년의 여인에게 당장이라도 엄지를 치켜세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룬타 백작님이시죠?”

    룬타 백작은 설정상 굉장한 수완가였고, 동시에 6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였다. 그런 재능이 있었으니, 남자 형제들을 제치고 백작 작위를 얻을 수 있었겠지.

    “어머 알아봐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백마 탄 왕자님, 맞나요?”

    “백작님! 아니, 이모! 좀!”

    수완가답게, 대화의 주제를 넘기려고 했던 라트의 시도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룬타 백작이 엘리와 상당한 친분을 가진 덕분이겠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보면 아무리 나라도 부끄럽잖아.’

    이제는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이 달아오른 엘리와 마찬가지로 라트의 얼굴도 조금 붉어졌다. 대놓고 백마 탄 왕자가 맞냐는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맞다고 하시면 되요.”

    라트의 고민을 깨달은 룬타 백작이 그저 긍정하면 된다고 조언해주자.

    “마, 맞습니다.”

    떨리는 입술로 라트는 룬타 백작의 물음에 긍정을 던졌고, 그 대답에 룬타 백작을 포함한 주변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엘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우리 엘리 완전 철벽인데, 비결이 뭐에요?”

    그리고는 질문의 세례와 함께.

    “공녀님이 얼마나 가드가 단단했는지 아세요?”

    “공녀님한테 청혼했다가,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진 애들만 몇 명인지 기억해?”

    “기억하지. 아! 2년 전쯤 파르스에서 열린 무도회장에서 볼톤도 차버렸잖아.”

    엘리가 과거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게 망신을 줬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튀어나왔다. 덕분에 엘리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갔지만, 여인들은 그것마저 즐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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