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1화 (1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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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봤다고?’

    시리아의 말에 라트의 얼굴에 당황이 찾아왔다. 그 날 시리아가 런트에 있었다고? 흑사제 쪽에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는 건가.

    “지금 당장은 나만 알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나?”

    ‘죽인다.’

    지금은 시리아만 알고 있다는 건, 당장 시리아를 죽이면 해결된다는 소리다. 이제까지는 그저 시간을 끌 생각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생각을 고친다.

    ‘여기서 죽인다.’

    “와우. 이제 진짜 재미 좀 볼 수 있겠는데. 어서 날 두근거리게 해줘.”

    “후회하지 마라.”

    사실 이곳에서 페르시와 시리아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제국에서 일어나는 반란이 성공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반란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도 곤란하니까.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죽여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전의를 다잡는다, 살기를 내뿜는다.

    “후회? 그런 거 한 번밖에 해본 적 없는데.”

    그런가, 들려오는 대답에 라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 네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 후회를 하게 만들어 주리라.

    “만연하라.”

    나무, 돌, 흙 너나 할 것 없이 만개하여 시리아를 향해 뻗어간다. 그러나 무색의 연금술로는 시리아를 이길 수 없다.

    무색의 연금술은 어디까지나 보조용이다. 그러니 달린다. 뻗어가는 나무의 위에 숨어서, 휘몰아치는 흙의 아래에 몸을 감추고, 돌진하는 바위와 함께.

    “그래 이렇게 나왔어야지!”

    시리아가 손톱을 내뻗자 분노한 자연이 처량하게 변모한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무색의 연금술을 막아낸 흡혈귀는 너무나도 신나게 웃었다.

    그러나 라트는 이 정도 공격은 시리아가 쉽게 상쇄할 수 있음을 알기에 미리 다음 수까지 계산해둔 상태였다.

    “꺄하하하하!”

    대지가 울부짖으며 바위 주먹이 용솟음치며 시리아의 턱을 정확히 때렸다. 그럼에도 흡혈귀는 고통에 신음하지 않는다. 충격 때문에 허공을 노니고 있음에도 웃었다.

    “만연하라.”

    달려가면서 바닥에 손을 집고 미리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한 후, 아직 지상에 착지 하지 못한 흡혈귀의 앞에 당도한다.

    공중에서 자세를 고쳐 잡고 낫을 휘두르는 시리아. 저 낫에 접촉이라도 하는 순간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다시 물러설 수는 없다. 물러서기만 하면 흡혈귀를 이길 수 없지 않는가.

    물러서지 않는다. 그것이 최선의 판단. 물러설 수 없다면, 파고들 수밖에 없다.

    낫을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고, 염동력을 사용한다. 그러자 일순간, 낫의 움직임이 멈췄고 라트는 시리아의 품에 파고들었다.

    “꺄아!”

    “죽어.”

    장난스러운 미소와 살기가 깃든 얼굴이 교차한다. 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대검을 아래서부터 위로 휘두른다. 그 행동에 망설임은 없어. 검격이 끝나자, 시리아의 몸이 정확히 양분되었다.

    “좋아, 아주 좋다고!”

    몸이 두 동강 났음에도 시리아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래 알고 있다. 만복 상태의 흡혈귀는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몸이 완전히 재생되지 않았음에도 시리아는 낫을 쥐지 않은 손으로 라트의 목을 붙잡았다.

    정확히는 붙잡으려고 했다. 갑자기 대지를 뚫고 나온 나뭇가지가 시리아의 관절을 관통하지 않았으면 필시 저 손에 목이 박살났겠지.

    “어? 음? 뭐야 이거?”

    나뭇가지에 관절이 고정되는 바람에 손이 움직이지 않자 웃고 있던 표정에 놀람이 서렸다.

    그리고 살기등등했던 얼굴에 비웃음이 피어난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을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다음 수까지 고려해뒀지.

    “이까지 꺼!”

    “큭.”

    아직 움직이는 손에 쥐고 있던 낫을 바닥에 던져버린 시리아는 이번에는 라트의 심장을 노렸다.

    고통 어린 신음에 폐 속을 헤엄치던 새하얀 연기가 입 밖으로 세어 나왔고, 양측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뭐야? 왜, 왜 안 뚫려?”

    강철마저도 손쉽게 찢어발길 수 있는 손톱이 종이 같은 얇은 갑옷을 뚫지 못했기에 놀랐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음에도 마음껏 비웃었다.

    이렇게 보여도 무려 미스릴로 만든, 대연금술사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액체 금속으로 만든 갑옷이다.

    그 방어력은 무려 전설급 갑옷과 맞먹는다. 그런데 어찌 흡혈귀의 손톱이 이 갑옷을 뚫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아프긴 하네.’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겪기는 했지만, 버텨냈으니까 상관없다.

    “왜, 안 뚫어지는데!”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라트의 심장을 노리는 시리아. 그러나 시리아보다 라트가 한 발 더 빨랐다.

    신음에 세어 나온 담배연기로 시리아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에 블랙 크토니움을 선사해주자, 흡혈귀의 손은 감히 내뻗어지지 못하고 축 늘어지고 만다.

    “아프잖아!”

    갑자기 몸의 무게가 늘어났음에도 바닥에 쓰러지지 않는 흡혈귀. 두 쪽으로 나눠진 몸도 벌써 거의 다 재생되었다.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운 존재다. 그렇게 생각하며 라트는 그녀의 심장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켁.”

    짧은 신음소리. 심장의 두근거림이 칼날을 타고, 손잡이까지 느껴진다. 그 징그러운 촉감에 일순 눈을 찌푸리며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검신에서 폭발 소리가 인다. 붉은색으로 변한 칼날의 열기에 살이 구워지는 역겨운 냄새가 풍긴다.

    “아, 너, 최고야.”

    이런 순간에도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에 라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시리아를 바라보았다.

    “진짜 너 같은 미친년은 다시는 못 볼 거다.”

    심장에 꽂아져있는 대검을 대각으로 들어올려, 흡혈귀의 목을 베었다. 핏방울 하나 없이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라트의 발치에 안착한다.

    눈을 내려 그것을 바라본다. 틀림없이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웃고 있는 얼굴에 도대체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아직 멀었어.’

    평범한 흡혈귀였다면 이미 죽었겠지. 그러나 눈앞의 흡혈귀는 평범한 흡혈귀도 아니고, 평범한 상태도 아니었다.

    슬쩍 뒤로 물러나 담배를 태운다. 입에서부터 쏟아지는 연기가 염동력에 의해 뻗어나간다.

    “이제 좀 죽어라.”

    이 세계로 온 직후 가장 큰 폭발을. 몬스터라고 해도 이 폭발에 휘말린다면 사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을.

    한 번으로는 멈추지 않아. 계속해서 염동력으로 담배 연기를 옮기고 생명의 연금술로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로 인한 파편이 라트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나가 부족하면 포션을 마시고 계속해서 터트린다.

    흡혈귀의 시체가 흔적조차 남지 않아, 완전히 가루가 될 때까지!

    폭발이 멎었을 때쯤 분명 숲이었을 공간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제발 좀 죽어있어라.”

    이제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대지를 내리 본다. 안개와 같은 연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지.

    “후우, 후우, 하아.”

    거칠게 숨을 내쉰다. 힘들어서, 마나가 부족해서 숨을 헐떡이는 게 아니다.

    ‘머리 아파.’

    계속해서 염동력을 사용했기에 머리가 아파왔다. 정신력을 상당히 소모했는지, 절로 숨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시리아를 죽일 수 있다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 죽일 수 있다면 말이야.

    “찍찍찍.”

    “지랄하고 있네.”

    귓가를 간질이는 생쥐 흉내에 라트는 입술을 씹었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죽일 수 없다는 건가.

    “꺄하하! 망태 도깨비, 화려하게 부활!”

    짙게 깔렸던 연기의 안에서 하나의 인영이 천천히 라트를 향해 거닐어온다.

    조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됐을 몸을 재생시키며, 한 손에는 거대한 낫을 든 흡혈귀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강화 침술을 쓸까?’

    액체 금속을 이용해서 갑옷을 변형 시킨다면 침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이길 수 있을까?’

    그러나 강화 침술을 사용한다고 한들, 이길 수 있을까. 이 정도 데미지를 줬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재생하고 있는 흡혈귀를 과연 이길 수 있는가.

    “오, 아직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마음에 들어.”

    시리아는 완전히 회복된 몸뚱이를 이끌고 라트의 앞으로 걸어오며 사랑에 빠진 여자와 같은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전례 없는 고통에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고 있어. 돌아버릴 거 같아, 미칠 거 같아.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재밌는 걸 보여줄게.”

    시리아의 몸이 사라져 안개로 변한다. 그 모습에 라트는 눈을 일그러트렸다.

    ‘뭐야 저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힘에 입을 벌렸다.

    “만연……!”

    무색의 연금술과 생명의 연금술을 동시에 사용해 안개를 흩어지게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시리아가 한 발 빨랐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목을 타고 머리에 전달되자 라트는 입을 다물었다.

    “내 비술 중 하나야. 어때? 굉장하지? 응?”

    꺄르륵, 웃으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시리아.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내려 자신의 목에 닿기 직전인 낫을 바라보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시리아의 힘에 놀랐고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 두 번 놀랐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오히려 냉정하게 된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분명 위기 상황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후회를 이끌어내기에는 모자랐네. 아참, 니 입에 있는 연기로 허튼 짓을 하면 바로 죽여 버린다?”

    시리아의 말대로 담배 연기를 입에 머금고 있기는 하지만, 허튼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명의 연금술을 쓰는 것보다 시리아가 자신의 목을 베어버리는 게 빠른 걸 알기 때문이다.

    “안심해 날 두근거리게 해줬으니까 상으로 죽이지는 않을게.”

    “그럼 이 낫은 뭔데.”

    “대화를 조금 하고 싶은데, 그냥 대화를 하자고 하면 안 믿어줄 거 같아서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써봤어.”

    “니가? 대화를?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 그러니까 죽어!”

    금속이 라트의 목을 조이려고 했지만.

    “라고 말할 줄 알았지? 놀랐지? 그렇지?”

    시리아는 라트의 목에 날이 닿기 직전 낫을 멈추고 웃었다. 진짜 대화를 하고 싶은 건가, 그게 아니면 농락을 하고 싶은 건가.

    “그래도 곤란해, 진짜로 곤란해. 무심코 죽일 뻔했잖아. 나는 진짜로 대화를 하고 싶단 말이야.”

    현재 이상할 정도로 냉정한 라트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당황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흐를 정도다.

    ‘진짜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죽였겠지.’

    시리아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라트의 목숨은 이미 태양을 맞이한 새벽의 이슬처럼 사라졌을 거다.

    “무슨 대화가 하고 싶은데.”

    “이제 대화할 마음이 들었어? 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지. 좋아, 좋아. 그럼 진짜로 대화를 할 생각이라는 걸 증명해줄게.”

    그 말과 함께 시리아는 라트의 목을 겨누고 있던 낫을 천천히 거두고 뒤로 물러선다. 심지어 낫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흙밖에 남지 않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로 대화를 하고 싶은 건가.’

    아직까지 금속의 감촉이 남아있는 목을 쓰다듬으며 시리아의 행동을 지켜보던 라트는 자신 역시 대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렇지만 언제 상황이 변할지 모르기에 자리에 앉지는 않았다.

    “이제 대화가 좀 되겠네.”

    왠지 조금이지만, 시리아가 차분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무슨 대화.”

    “꺄하! 차가워. 목숨도 살려줬는데 조금은 따뜻하게 굴어줘!”

    “빨리 말해.”

    “농담이 안 통하는 아이네. 좋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지고의 세월을 살아온 흡혈귀가 무엇이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하는 거지?

    잠시 고민한다. 지금 반응만 보자면 시리아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반대로 라트는 시리아를 죽일 생각 이유가 충만했지만, 조금 전과 달리 시리아를 죽인다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죽이기는, 무리지.’

    검술, 염동력, 무색의 연금술, 거기에 생명의 연금술까지. 현재 라트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부었음에도 만복 상태의 시리아를 죽일 수 없었다.

    ‘역시 흡혈귀는 사제나 성기사가 있어야 처리하기 쉽단 말이야.’

    아니 사제나 성기사가 있다고 해도 눈앞의 흡혈귀를 죽일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힘, 몸을 안개로 바꾸는 흡혈귀라니. 들어본 적조차 없어. 사제나 성기사가 있다고 해도, 죽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말해봐.”

    그러니 우선은 대화를 이끌어가는 게 좋아보인다. 대화를 거절하면 저년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

    흑사제 집단에 자신의 존재가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낫다.

    “우선 니 보이시아는 어느 거야?”

    “보이시아?”

    처음 들어보는 지칭에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월드 세리아에서 어지간히 중요한 지칭이라면 전부 기억하고 있음에도 보이시아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무색의 연금술을 보조해주는 아티팩트 말이야.”

    “아.”

    고대의 연금술사들이 사용했다던, 무색의 연금술을 보조해주는 아티팩트를 보이시라라고 부르는 건가.

    ‘들어본 적이 있을 리가 없지.’

    이제껏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하면서 연금술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무색의 연금술이 알려진 것으로 보아 생산직을 좋아해서 연금술사를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무색의 연금술에 대해서는 몰랐을 거다.

    “없는데.”

    “에? 어? 음? 네? 지금 뭐라고?”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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