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0화 (13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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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쯧.”

    잠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바라본 라트는 혀를 찼다. 다른 감정 하나 들어가지 않은 오롯한 광기에.

    ‘순수하다.’

    잠깐이지만, 순수하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를 깨닫고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문다. 부정한 광기를 순수하다고 느끼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라트의 뇌리에 모순을 일으킨 흡혈귀가 점점 속도를 올린다.

    ‘역시 지금까지 최대 속도로 달린 게 아니구나.’

    그러나 당황은 없다. 이 세계 아니, 일반적인 판타지에서 인간은 소수의 몇 명만이 압도적으로 강할 뿐, 평균적으로 굉장히 약한 종족이다.

    평범한 인간 성인은 그 흔한 몬스터 중 하나인 오크조차도 이기지 못해. 그에 비해 흡혈귀는 어떤가. 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보다는 훨씬 강력했다.

    그리고 시리아 C. 아미라니는 특정 상황에서는 용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 년을 어떻게 초반 메인 퀘스트에서 이길 수 있냐고? 당연히 일대일로는 못 이기지.

    제국과 신전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이기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조연이고 주인공은 따로 있다.

    지금은 그 주인공이 없는 상황이니, 혼자서 해결할 수밖에.

    발을 멈추지 않고 연기를 내뿜은 라트는 미스릴 벽을 만들어 시리아를 가로막았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단번에 벨 수는 없을 정도로 두꺼운 미스릴 벽을 만들었다면 조금은 안심해도 되려만.

    라트는 표정을 풀지도 않았고, 속도를 늦추지도 않았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리이일! 미스릴도 만들 수 있는 거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미스릴 벽이 거대한 낫에 의해 종이처럼 찢어진다.

    역시나 이런 잔재주로는 그저 아주 잠깐, 잠깐 동안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

    ‘개사기 템.’

    시리아가 들고 있는 저 낫 앞에서는 미스릴도 무력하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다. 저 낫은 무려 신화 등급 아이템이니까.

    그러니 낙담하지 않는다. 하나의 벽이 무력하다면 여러 개를 만들면 되는 게 아닌가.

    삽시간에 미스릴 벽 4개가 시리아의 앞을 가로막았고 라트는 그 사이에 시리아와의 거리를 더더욱 벌렸다.

    ‘이쯤이면 되겠지.’

    그렇지 않아도 민첩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강화 포션으로 그 민첩이 더욱 상승된 상태에서 꽤나 많이 달려왔다.

    시야에 보이는 토리나 산성이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음을 확인한 라트가 걸음을 멈추자.

    “술래잡기는 이제 끝? 슬슬 질렸는데 잘 됐어.”

    ‘징그러운 년.’

    나머지 4개의 미스릴 벽도 간단히 찢어버린 흡혈귀가 싸늘히 웃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네 힘, 완전 창조는 아니지? 일단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물건의 개수는 5개.”

    맞는 말이었으나, 라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대검을 쥐었다.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담배 연기를 제물로 물건을 만드는 것 같네. 연금술하고 비슷한데?”

    진짜 징그러운 년.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 시리아를 바라보았다. 저 미친년은 미친년답지 않게 머리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전투 때는 그 머리를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돌격해서 다행이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왜 재미없게 아무런 말도 안 해? 무슨 말이라도 해봐.”

    ‘말을 할 수 있겠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걸로 끝인데.’

    “응? 아! 내가 널 바로 죽일까봐 그러는 거야? 걱정하지 마, 당장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시리아의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죽일 생각이면 진작 죽였지. 뻔히 유인하는 걸 아는데 친절하게 따라와 준 내가 당장 널 죽일 리가 없잖아.”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었지. 나니까 귀여워서 따라가 준거지, 다른 놈이었으면 다시 성으로 돌아갔을 걸?”

    킥킥, 하고 웃는 그녀의 얼굴에 더 이상 광기는 보이지 않았다.

    “날 여기까지 유인한 이유는 세뇌 때문이지?”

    전부 알고 있었다. 시리아는 라트의 속셈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왔다. 어째서?

    “알고 있으면 왜 따라온 거냐.”

    “그거야 당연히, 그쪽이 즐거우니까!”

    “네 노력은 비상했지. 그런데 이를 안타까워서 어쩌나~ 내 세뇌 권능의 범위는 이 산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깔깔깔깔!”

    시리아는 인간이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을 광소하며 짓밟았다. 거기에 쾌락을 느끼는 자신의 작태를 보고 미친 듯이 웃는다.

    ‘세뇌 범위가 그렇게 넓었다고?’

    게임에서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라트는 입술을 씹으며 시리아를 노려보았고, 흡혈귀는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고 있는 인간을 바라본다.

    “그 표정 마음에 들어.”

    웃음을 그친 흡혈귀는 너무 웃어,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내더니 라트에게서 눈을 돌려 달빛을 바라보았다.

    “안심해, 세뇌는 사용하지 않을 거니까.”

    “하아?”

    “지금은 너랑 노는 게 제일 우선이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세뇌로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동시에 라트를 상대할 수 있음에도 굳이 세뇌를 하지 않겠다니.

    “생각해봐, 이렇게 노력했는데. 현실은 네가 나한테 진 다음 사지가 잘려서 저 성으로 가는 거지.”

    달빛을 바라보는 시리아의 얼굴이 점점 야릇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거기서 네가 아는 사람들이 내 세뇌 때문에 서로 죽이는 걸 니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거야! 상상만으로도 짜릿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쾌락으로 절여진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아. 나 조금 도달해버렸어.”

    “미친년.”

    시리아가 미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이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흡혈귀는 정말로, 미쳤어.

    “칭찬 고마워. 보답으로 눈을 감지 못하게 눈꺼풀도 잘라줄게.”

    다시금 순수한 광기를 머금고 낫을 들어 올린 시리아는 라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둘러지는 낫은 생각보다 느렸다. 받아친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받아칠 수 있을 정도다.

    “후.”

    그러나 라트는 굳이 낫을 받아치지 않고, 몸을 굴러 옆으로 피했다.

    “어라?”

    라트가 공격을 피할 줄은 몰랐는지 시리아의 얼굴에 의문이 꽃핀다. 그러나 그 의문에 응해줄 정도로 한가롭지 않아.

    라트는 몸을 굴리기 전 남겨둔 담배 연기를 이용해 생명의 연금술을 펼쳐, 폭발을 일으켰다.

    천둥과도 같은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 흙먼지가 나부낀다.

    “아직 멀었어.”

    다시금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 드락사나를 만들어 염동력을 사용해 던진다.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아직은 괜찮아.’

    염동력은 마력이 아닌 정신력을 소모한다. 정신력은 포션으로도 회복하지 못해.

    그렇기에 아무리 캐릭터의 레벨이 올라도 하루에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쓰레기 희귀 기능 취급을 당했지.

    ‘아직은 버틸 수 있어.’

    이미 꽤나 오랫동안 염동력을 사용했기에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지만, 아직은 괜찮다. 그러니까 조금 더 던져라, 저 괴물 같은 년이 움직이지 못하게.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복 상태의 2세대 흡혈귀를 이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루아타 공작과 미르차르드가 지원을 오기 전까지만 버티면 된다.

    이윽고 흙먼지가 사라지자,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폭발에 휩싸여 너덜거리는 흡혈귀의 몸이 창에 꿰뚫려 구멍투성이가 됐다.

    특히나 한쪽 눈에 창이 박혀 역겨움을 연출하고 있는 흡혈귀는 아직 온존한 다른 눈으로 라트를 바라보더니.

    “짜릿해.”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웃더니, 엉망이 된 팔을 들어 올려 눈에 박힌 창을 뽑아냈다.

    “제한 시간은 담배 연기가 사라질 때쯤인가.”

    뽑아낸 창이 곧바로 사라지자, 시리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몸을 원래대로 회복시키고는 라트에게 낫을 휘둘렀다.

    “큭!”

    몸을 옆으로 재껴 낫을 간신히 피한 라트는 검을 이용해 시리아의 목을 베려고 했지만, 시리아가 낫으로 자신의 대검을 쳐내려고 하자 곧바로 검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섰다.

    “너, 알고 있구나?”

    라트의 행동에 시리아는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낫을 쓰다듬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는 거지? 그렇지?”

    모를 리가 있나. 게임 도중에 그 낫에 당해서 몇 번이나 저장된 파일을 불러왔는데.

    “일부러 네 수준에 맞춰서 휘두르고 있는데 아예 낫에 접촉하려고 하질 않는 걸보면 넌 이 낫이 뭔지 알고 있어. 빨리 말 좀 해봐.”

    “알고 있다마다.”

    저 낫은  신화 등급 낫으로 무려 대지의 여신인 라쉐가 만든 무기다.

    신이 만든 무기를 흡혈귀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냐고? 그거야 라쉐는 중립신이니까.

    홀리를 필두로 한 선한 신들은 흡혈귀의 존재를 부정한다.

    흑마법사들이 추종하는 오미너스나, 흑사제들이 모시는 악신인 마니아는 흡혈귀의 존재를 긍정한다.

    그리고 라쉐나 미스참 그리고 모리아와 같은 중립적인 신들은 흡혈귀와 인간을 동등하게 본다. 중립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시리아가 라쉐가 만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무려 신님께서 만든 신 저 낫의 효과는 간단하면서도 흉악하기 그지없다.

    “대지의 척추, 땅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낫.”

    저 낫은 전후좌우 약 600m 내에 존재하는 땅의 무게를 실을 수 있다. 사용자에게는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지만, 낫에 담긴 무게는 진짜다.

    미스릴 벽도 한 번에 부술 때 요란한 소리가 났던 것도 그 때문이다.

    미르차르드가 시리아를 상대했다면 뭣 모르고 검으로 낫을 막았다가 팔이 부러졌겠지.

    “잘 알고 있네. 이게 뭔지 몰라서 당하는 멍청이들도 있는데. 점점 마음에 들어.”

    “사양하고 싶다.”

    저런 년의 마음에 들어봐야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목숨이 위험할 테니까.

    “어머, 후회할 텐데?”

    “지랄.”

    후회할 리가 없다. 루아타 공작과 미르차르드가 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거다. 시리아도 그렇지만, 페르시도 만만찮은 놈이니까.

    게다가 이쪽은 시리아 하나만 신경 쓰면 되지만, 그쪽은 구울도 신경 써야 하니까.

    “진짜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진짜로? 진짜, 진짜?”

    ‘답지 않게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해?’

    시리아가 적과 대화할 때는 단 하나, 적의 절망을 즐길 때뿐이다. 무료한 삶에 미쳐버린 흡혈귀는 타인의 절망을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니까.

    “안 해.”

    “그래?”

    확고한 대답에 시리아는 소리 없이 웃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웃음과는 조금 달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차갑다.

    ‘뭐야, 애 왜 이래?’

    싸우고 있는 중임에도 생각 없이 돌진하지도 않고,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부터가 신기한 일이긴 한데 저런 웃음도 지을 줄 알았다는 게 더 신기하다.

    “그 때 헤톤이랑 페르시는 니가 무색의 연금술을 못 쓸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리아가 갑자기 무색의 연금술을 이야기하자 라트의 눈동자가 커졌고.

    “너 쓸 수 있지?”

    흡혈귀는 해맑게 웃으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니 못쓰는데.”

    “거짓말.”

    라트의 부정을 곧바로 부정한 시리아는 여전히 웃었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웃음.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조금 전 했던 말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봤거든. 네가 런드인지, 런트인지에서 싸우는 모습을. 킥킥.”

    이제는 소리까지 내며 웃는 흡혈귀. 그 웃음소리는 라트의 귀에 너무나도 불길하고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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