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9화 (12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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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깨달았다. 이전 성과 지금 성에 어째서 사람이 없는지. 그렇기에 시리아를 노려본다. 이 많은 구울을 만들며 그녀가 섭취했을 혈액의 양은 도대체 얼마인가.

‘저년 만복 상태인거 아냐?’

“지랄하고 있네, 진짜.”

만복, 흡혈귀의 공복이 완전히 해소되어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 2세대 흡혈귀는 쯤 되면 어마어마한 양의 혈액을 먹어치워야만, 만복 상태에 돌입할 수 있지만.

이 정도 구울을 만들면서 마셨을 피를 생각하면 시라아는 아마도 만복 상태일 것이다.

‘헤톤이 없는 걸 하늘에 감사해야지.’

헤톤이 있었더라면 승산을 장담할 수 없겠지만, 저 둘 뿐이라면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

‘아니지. 그 새끼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

만약 헤톤이 있었더라면 시리아는 이런 일을 벌일 수 없다. 헤톤이 없는 걸 감사해야하지만, 헤톤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아니 지금은 그런 잘잘못을 가릴 상황이 아니다. 그럴 시간에 생각해라. 이쪽이 유리하다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유리한 건 아니다.

‘어떻게 하지.’

병사들과 귀족들은 분주히 땅속에서 기어 나오는 구울을 처리하고 있다. 다만, 공작과 미르차르드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상대의 전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안 되니까. 연세를 드신 분들이라 그런지 판단력이 상당히 좋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아. 구울은 잘 처리하고 있다지만, 시리아의 세뇌 권능이 언제 발휘될지 모르니까.

‘따로 떨어트려놔야 하는데.’

3대2로 싸운다면 이쪽이 불리하다. 저쪽은 오랜 시간동안 서로 호흡을 같이한 사이지만, 이쪽은 단 한 번도 같이 싸워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한 쪽이 2대1, 그리고 다른 한 쪽이 1대1로 싸우면서 아군이 이길 때까지 버티는 게 옳다.

우선 시리아와 미르차르드의 상성은 좋지 않다. 저 낫이 문제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거대한 낫의 등급은 신화급이다.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저 낫에 대해 모른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미르차르드가 페르시를 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악신의 기사인 페르시와 미르차르드는 좋은 승부를 나눌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싸움에 루아타 공작이 합류해서 페르시를 빠르게 처리하고 그 시간동안 라트가 시리아를 상대하는 게 가장 베스트인가.

‘좋아.’

구울들이 지상 위로 완연히 제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생각을 정리한 라트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공작님! 미르차르드님!”

“저 두 명을 떨어트려서 상대해야합니다. 제가 여자 쪽을 상대할 테니까, 두 분은 다른 쪽을 최대한 빨리 쓰러트리고 저를 지원해주십시오!”

“명을 따릅니다, 라트님.”

“조심하게.”

공작이 잠시 염려스러운 눈동자로 라트를 바라보았지만, 반론은 없었다. 상대의 전력을 모른다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아군의 피해가 속출할 테니까.

미르차르드와 루아타 공작이 먼저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후작님. 사저와 엘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두고 다녀오게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세르먼트 후작에게 케이네와 엘리의 안전을 부탁한 라트 역시 담배를 입에 물고 몸을 날렸다.

‘우선 떨어트리는 것부터.’

무색의 연금술은 사용할 수 없다. 지금 당장 흑사제 쪽에 노림 받으면 왕국 전쟁 메인 퀘스트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생명의 연금술은 다르지. 아니 애당초 이 힘은 연금술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연금술인지도 모르는 힘이니까.

“후우.”

우선은 잠시라도 저 두 명을 떨어트리는 게 관건이다. 아주 잠깐만 떨어트려놓을 수 있다면, 루아타 공작과 미르차르드가 페르시를 상대할 테니까.

‘그리고 시리아가 세뇌를 쓰기 전에 여기서 끌어내는 게 베스트.’

그리 생각하며, 염동력을 이용해 담배 연기를 길게 보냈다. 이게 라트가 생각한 염동력을 이용하는 첫 번째 방법.

생명의 연금술은 담배 연기가 있는 곳에서만, 연성을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거리 제약이 심했는데 염동력 덕분에 그 제약이 사라진 셈이다.

“어라라?”

담배 연기가 페르시와 시리아의 사이까지 보내지자, 라트는 재빨리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 철벽을 만들었다.

동시에 미르차르드 후작과 루아타 공작이 페르시와 맞붙는다. 이제 중요한 건…….

“너, 재미있는 힘을 사용하네?”

‘어느 틈에!’

라트가 시리아를 향해 달려드려는 순간, 그녀는 이미 라트의 코앞까지 다가와 라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마뱀은 아닌데 잠깐이지만, 창조의 영역에 달할 수 있다니.”

이쪽으로 다가왔음에도 공격을 하지 않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시리아의 모습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고 대검을 휘둘렀다.

“꺄꺄!”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대검을 피한 흡혈귀는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와도 같은 눈빛에 라트의 심장이 얼어붙는다.

“저쪽도 맛있어 보이지만.”

페르시와 싸우고 있는 두 남자, 오러 마스터와 8서클 대마법사를 바라보던 시리아는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를 라트에게 돌렸다.

“네가 여기서 제일 맛있을 거 같아.”

혀로 입술을 핥으며 거대한 낫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죽음을 몰고 오는 사신과도 같았다.

‘나한테 흥미를 느껴주면 고맙지.’

그렇지 않아도 페르시와 시리아를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시리아가 아군을 세뇌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어? 어디가!”

그렇기에 라트는 등을 돌려 성벽 쪽으로 뛰었다. 시리이가 흥미를 느낀 이상, 따라올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리와, 나랑 놀자고!”

예상대로 시리아가 자신을 따라오자,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너는 작전 같은 건 전혀 없는 부류였지.

소름 돋게 똑똑하기는 하지만, 그 높은 지능이 무색할 정도로 미친년이다.

‘따라와라.’

인벤토리에서 강화 포션을 마신 후 담배 연기를 내뱉어 생명의 연금술을 이용해 계단을 만들어 성벽 위로 올라가, 성밖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성벽이라고 하지만, 높이는 상당히 높다. 오러도 익히지 못한 라트가 뛰어내린다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도망치지 말고 놀, 자!”

단 한 번의 점프로 성벽에 올라온 시리아는 고개를 기울이며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는다.

‘아직은 세뇌 범위겠지.’

2세대 흡혈귀의 세뇌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적어도 성벽 밖으로 벗어나야겠지. 그렇지만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시리아가 쫓아오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래, 놀아보자고.”

그럼 반대로 시리아를 성벽 밖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이제 놀아주는 거야?”

내려와 반짝이는 달빛아래 흡혈귀는 활짝 웃자 송곳니가 번뜩인다.

라트와의 싸움을 기대하는 건지, 그게 아니면 라트의 피가 얼마나 맛있을지를 기대하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방심하고 있다.’

방심하고 있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시리아의 모습에 라트는 차갑게 웃으며 염동력을 사용해.

시리아를 밀어버렸다.

라트가 아무런 자세도 갖추고 있지 않았기에 생긴, 적이 아닌 먹잇감을 보았기에 생긴 방심.

그 틈을 파고들어 지금, 시리아는 성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후.”

생명의 연금술로 다섯 개의 드락시나를 만든다. 이어서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내뱉어, 드락시나는 열 개가 되었다.

열 개의 창을 염동력으로 들어서 아래로 던진다. 목표는 당연히 떨어지고 있는 흡혈귀.

이 정도로는 죽일 수는 없겠지만, 전설 등급의 창에 맞는다면 상처 정도는 생기겠지.

‘아직은 괜찮아.’

염동력을 사용하는데 소모되는 건 마력이 아닌 순수한 정신력. 그렇기에 염동력을 계속해서 사용하면 플레이어는 두통 상태, 심하면 기절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라트는 시리아를 뒤따라,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 정도 높이라면 떨어지는 순간 다리가 부서질 수도 있지만, 그의 눈동자에 망설임은 없다.

망설임이 있을 리가 없지.

“게임이랑 현실은 확실히 달라.”

지상에 떨어지기 직전, 염동력을 사용해 몸을 떠올려 사뿐히 대지에 발을 안착한다.

현실과 게임은 다르다. 게임에서는 쓸모가 없었던 염동력이 현실에서는 이렇게나 유용하다.

‘엉망인데.’

고개를 돌려 먼저 떨어진 시리아를 바라본다. 열 개의 창은 아직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시리아는 팔 다리 몸, 어디 할 것 없이 처참하게 꿰뚫려있었다.

그 모습은 생기를 잃은 시체와 같았다.

“안 죽은 거 알고 있으니까. 일어나, 미친년.”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필시 죽었겠지.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저 여자는 이 정도로 죽을 상대가 아니다.

“들켰어?”

열 개의 창이 사라지자 시리아는 머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관절이 고장 난 인형처럼 서서히 일어섰다.

“아쉽네.”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된다. 찢어진 옷이 새것으로 바뀐다. 인지한 순간 이미.

“날 죽였다고 착각하고 희열을 느끼고 있는 걸, 절망으로 바꿔줄 생각이었는데.”

처음 나타났을 때 보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간 시리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죽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처 하나 없을 줄이야.’

과연 만복 상태의 2세대 흡혈귀.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중간 보스를 맡고 있는 여자답다고 할까. 저렇게 멀쩡하니, 절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500년 만에 고통을 느껴봐서 굉장히 짜릿했어. 봐봐, 심장이 이렇게 두근거리고 있다니까?”

시리아가 기나긴 손톱으로 자신의 가슴을 갈라, 뛰고 있는 심장을 보이자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게임하고 현실은 다르네.’

게임에서도 어마어마한 광기를 자랑했던 년이다. 겨우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중간 보스임에도 가장 기억이 남는 보스 중 한 명이니 오죽할까.

그런데 실제로 만나니 그 광기가 배로 느껴진다.

“좀 더 내 심장이 뛰게 해줄래?”

“미친년.”

가슴을 벌리고 있던 손을 치우자, 심장이 보일 정도로 깊었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우선 거리를 벌리자.’

아직 시리아의 세뇌 범위는 아군에 닿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으니 시리아는 자신을 쫓아올 거다.

“미쳤더니, 적한테 그런 칭찬을 해줘도 괜찮아?”

거대한 낫이 달빛을 머금음과 동시에 담배 연기가 자욱이 깔린다. 서로가 부딪치기 일족즉발의 순간, 라트는 뒤로 물러서면서.

‘공평함의 검은 기본 공격력이 낮으니까, 지금은 드락시나로 상대하자.’

다섯 개의 드락시나를 만들어 염동력을 사용해 날렸다.

“또 그거야?”

시리아는 거대한 낫을 휘둘러 간단하게 드락시나를 튕겨내더니 라트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좀 더 쫓아와라.’

이대로 조금 더 멀리, 세뇌 권능이 발휘되지 않게 떨어지면 이쪽의 생각대로 된다.

강화 포션 덕분에 성벽에 올라가기 전보다 스탯도 높은 상황. 이대로라면 시리아를 산 중턱까지도 유인할 수 있다.

“이건 이미 봤으니까, 다른 걸 보여주지 않을래?”

흡혈귀가 빠른 속도로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지만, 괜찮다. 위기감은 전혀 없어.

“다른 게 없으면 실망할지도?”

“다른 걸 보여주기 바란다면야.”

왜냐면 그녀의 말마따나 다른 걸 보여줄 생각이었으니까.

조금 전 시리아는 낫으로 드락시나를 튕겨냈다. 그리고 아직 생명의 연금술이 효력을 다할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튕겨나간 다섯 개의 드락시나를 어떻게 됐을까.

“어?”

무언가를 목도한 시리아의 입가에 의문이 드리운다. 그녀의 시선은 라트의 등 쪽에 향해있었다.

“보여드려야지!”

생명의 연금술은 가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진짜를 만드는 힘.

설령 그것이 신이 다루는 무기라고 할지라도, 마나만 충분하다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전설 등급 무기의 효과도 그대로 발현한다. 라트의 등에 나타난 것은 다섯 개의 창.

드락시나, 되돌아오는 자가 이름 그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우와!”

염동력을 사용해서 되돌아온 창으로 시리아의 발을 노렸다. 상처를 줄 수 없다고 해도 속도는 늦출 수 있다.

창을 막기 위해 시리아가 잠시 속도를 늦춘 순간 라트는 다시금 시리아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내가 쫓아가는 보람이 있지!”

흡혈귀의 얼굴에 드러나는 건 당황이 아닌 환희. 창을 전부 튕겨내고 다시금 달리는 시리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모습만 모방하는 게 아니라, 전설급 무기를 완전히 창조하는 힘이라니! 빨리, 어서 더 보여줘! 네 힘을 전부 보여줘! 마실 거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마셔줄게. 꺄하하하하!”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이 살의도, 투지도, 원망도 없는 광기만을 내뿜으며 웃는다.

미친 듯이 웃는다. 어서 저 먹이를 먹고 싶어 안달이 나 광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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