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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5화 (12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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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저희에게 힘을 빌려주시겠다고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루만 태자는 난색이 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 있는 건 두껍고 긴 로브를 뒤집어쓴 여성과 남성.

    “태자 저하 아니, 국왕 폐하를 왜 도와주시겠다는 겁니까.”

    루만 태자의 옆에 있는 노년의 남자가 떨리는 입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 정체는 바로 켈랑 왕국의 유일한 공작이자, 7서클에 도달한 마법사인 호르토 공작이다.

    7서클 마법사가 입을 떨 정도라니.

    호르토 공작은 1시간 전, 갑자기 자신의 영지로 들이닥쳐 쉽사리 자신을 제압하고, 루만을 보고 싶다고 말한 두 명의 정체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물어본다면, 그 대가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도 모자라다고 생각했기에 입을 다문다.

    그 정체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으나 7서클에 도달한 호르토 공작을 쉽사리 제압한 것을 보아 어마어마한 실력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는 짓이 마음에 들었거든.”

    로브에 가려 붉은색 머리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호르토 공작과 루만은 여성이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도 크지. 사제 새끼들을 포박하고 수도에서 그런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어.”

    “그건 국왕 전하께서 하신 일이…….”

    “에헤이.”

    호르토 공작의 부정에 여자는 그의 말을 멈추게 하더니.

    “재미없게 왜 그러시나 몰라.”

    소름 돋는 살기를 흘리며 말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호르토 공작은 입술을 깨문다. 이 여자 앞에서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시리아, 살기를 거둬라. 공작님이라면 모를까, 국왕 전하께서는 네 살기를 버거워하신다. 그리고 네 앞에 있으신 분이 국왕이라는 걸 명시해라. 무례는 자제해라.”

    “아, 진짜? 어머나 그러네. 불쌍하게도, 미안해요 국왕 전하 나으리. 제가 좀 경박스러운지라. 호호호.”

    다른 이가 저렇게 말했다면 불경하다며 경을 쳤을 호르토 공작이것만,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떨떠름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시리아? 그런 이름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명인가? 갖가지 생각이 공작의 머릿속을 엄습한다.

    “나를 어떻게 도와주겠단 말이오.”

    루만은 떨리는 입술을 앙다물어 두려움을 삼키고, 당당히 물었다. 그 모습에서 한 나라의 국왕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패기가 묻어났기에.

    “후후후.”

    “호오.”

    시리아는 눈이 찢어지게 웃었고, 그 옆에 있는 남자는 감탄을 표했다.

    “그저 애송이인줄 알았더니. 과연 그만한 일을 벌인 강단이 있나보군.”

    “무엄하다!”

    감히 한 나라의 국왕을 애송이라고 부를 줄이야. 이번에는 참지 못한 호르토 공작은 남자를 일갈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국왕 전하.”

    이번에는 이쪽의 실수였기에 남자는 주저 없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 목이 떨어져도 이상치 않을 무례, 대죄.

    그럼에도 그의 목이 성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괜찮다, 애송이인 건 맞는 말이니까. 그것보다 이쪽을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지 궁금한데. 그대들이 직접 나서서 도와줄 생각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루만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떻게?”

    “셀룬의 군단은 총 두 개. 그 중 하나가 수도에 머물고 있는 군단이 있죠?”

    루만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어찌 모르겠는가. 완벽에 가까웠던 작전이 깨졌고, 브라일도 죽었다.

    병사 손해는 거의 없었다지만, 브라일 한 명을 잃은 건 굉장히 뼈가 아픈 손해였다.

    “그 군단을 저희가 처리해드리죠.”

    “그곳에는 8서클 아크메이지가 있네.”

    호르토 공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두 명이 자신을 쉽게 제압했다고 하지만, 8서클 아크메이지는 격이 다르다.

    “8서클 아크메이지 한 명뿐이라면 쉽겠네요. 그렇지?”

    “그렇군. 8서클 한 명 뿐이라면 간단하다.”

    호르토 공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8서클 아크메이지를 상대하는 일이 쉽다고? 두 대륙에서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가.

    오로지 용, 용 밖에 그런 말을 하지 못할 텐데. 그러나 용은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머지 군단 하나는 이쪽에서 처리할 수 있죠?”

    “그, 그렇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작이 말을 더듬자, 루만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지?”

    무려 한 나라의 군단 하나를 상대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다. 분명 원하는 게 있을 터.

    “없어요.”

    “없다고?”

    “네. 병사 지원도 필요 없고, 보상도 원하지 않아요.”

    병사 지원도 필요 없다는 말은 두 명이서 한 나라의 군단을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보상도 필요하지 않다니.

    “우리가 그쪽을 돕는다고 한 건, 심심해서니까.”

    “시리아.”

    “아, 죄송해요, 전하. 제가 좀 주책이라. 호호호.”

    저도 모르게 건방지게 말하는 습관이 나온 시리아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두 개의 조건이 있기는 합니다. 먼저 런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있는 성의 지휘권을 주십시오. 그리고 다음은 후에 저희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쪽에서 도움을 주기를 신께 맹세해주십시오.”

    일반적으로 신께 맹세를 하라고 하는 건, 굉장히 무례한 짓이다.

    이 세계의 신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벌을 내린다.

    “패는 당연히 주도록 하지.”

    우선 패는 당연히 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이 두 명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압도적인 물량을 상대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인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고 함은.

    “비밀의 신 애니그마의 이름을 걸고 켈랑이 살아남는다면 그대들의 도움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겠다.”

    국가가 위기 상황에 봉착한 이상, 루만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를. 시리아.”

    “좋은 시간이었어요, 전하.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기를.”

    로브를 쓴 두 인영은 일어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느 사이에 그들은 성을 넘어, 광활한 대지에 도착해있었고.

    “거봐 페르시. 저쪽으로 가기 전에 여기 오길 잘했지?”

    “어지간히도 촉박한 모양이군. 이쪽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저리 맹세를 하다니. 하지만 혹시나 헤톤에게 이 일이 알려진다면, 전부 네 탓이다.”

    “네이, 네이. 그럼 먼저가서 준비를 좀 해둘까.”

    “그렇게 하지.”

    악신을 모시는 두 명의 사제는 노르스 대륙의 일에 간섭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

    비밀 창고를 둘러보고, 시그나룬벨 공주를 방까지 모셔다준 후 다음날.

    공작이 포탈을 활성화시키고 셀틱 국왕과 시그나룬벨 공주를 포함한 귀족 무리를 파르스로 이송시키고 나서야 군단은 슬렌베로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하아.”

    말을 탄 채 아이템 창을 열어 전날 비밀 창고에서 발견했던 아이템 목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던 라트는 보기 드물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라트?”

    “그냥, 좀 피곤해서.”

    엘리의 물음에 전날 충분히 휴식을 취했기에 피곤함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라트는 피곤하다고 말하고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좋기는 한데.’

    비밀 창고에 있던 것은 상당한 양의 금은보화, 그리고 올 스탯 10을 올려는 엘릭서 3병. 마지막으로 장비 3개가 있었다.

    비밀 창고니까, 아무래도 적은 양밖에 수용하지 못한다는 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비밀 창고에 있는 물품은 랜덤으로 정해졌다.

    ‘그래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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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레이델  등급 : 전설

    형태 : 팔찌  특수 효과 : 마력 회복 속도 10%, 수호지대

    인챈트 : 근력 + 5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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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 등급에 속하는 팔찌, 레이델은 마력 회복 속도를 올려주는 것뿐 아니라 마나를 소비해서 일정 범위의 아군에게 보호막을 걸어주는 수호지대를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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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죽음을 맞이한 자의 반지  등급 : 희귀

    형태 : 반지  특수 효과 : 건강+10

    인챈트 : 의지+30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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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은 무려 건강을 올려주는 반지. 그 이상의 효과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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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드락시나 : 되돌아오는 자  등급 : 전설

    형태 : 투창  특수 효과 : 회귀

    인챈트 : -  내구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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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드락시나가 있을 줄이야.’

    ‘드락시나 : 되돌아오는 자’라고 명시되어있는 이 아이템의 효과는 단 하나. 부서지더라도, 멀리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소유자에게로 돌아온다는 거다.

    투창으로써, 창술 캐릭터를 키우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보조무기였지만, 안타깝게도 생명의 연금술로 무기를 만들어내서 던질 생각인 라트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무기였다.

    ‘나중에 누구한테 줘야지.’

    그래도 전설 등급답게 공격력은 꽤 좋은 편이었으니 만족하도록 하자. 공평함의 검은 그 효과는 좋지만, 사용에 제약이 따른다.

    라트의 체력이 적어야하고, 게다가 겨우 하나 만드는데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소비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드락시나는 생명의 연금술로 만들어내기에 별로 부담이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래도 엘릭서가 있어서 망정이지.’

    아마도 이번 게임에서 켈랑의 비밀 창고에는 주로 엘릭서가 있게 설정된 모양이다. 아마 이것이 평범한 게임이었다면 공짜로 올 스탯 50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으리라.

    그러나 언제라도 엘릭서를 만들 수 있는 라트의 입장 상, 그렇게까지 기쁘지는 않았다.

    “누나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진짜 괜찮아? 그냥 파르스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았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라트의 물음에 케이네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 거리가 조금 멀어진 것 같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직까지 기운이 나지 않는 걸까.

    “언니, 아직도 힘들어요? 마차에 타실래요?”

    “괜찮아, 전혀 안 힘들어.”

    라트는 물론이오, 엘리까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케이네는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이 왜 이렇게 처량해 보이는 걸까.

    “힘들면 말해야 돼.”

    “응.”

    그러나 진군 중인 상황에 당장 케이네가 걱정스러워 계속 염려할 수 없었기에 라트는 그녀에게서 느낀 처량함을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이쪽 길로 가면 최단시간에 슬렌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파르스로 갔어야했지만, 길 안내를 자처해서 이곳에 남은 미르차르드는 길 안내를 겸해서 군단에 남기로 했다.

    길 안내 정도야 다른 사람도 할 수 있겠지만, 배신할 걱정이 없는 오러 마스터가 전력이 되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마지막 이 길의 마지막에 있는 토리나 산성을 점령하는데 시간을 뺏길 지도 모릅니다.”

    “산성을 돌아가는 길은 없소?”

    “있기는 하지만, 돌아서 가면 다른 길로 가는 것보다 시간을 더 잡아먹습니다.”

    루아타 공작의 물음에 미르차르드 후작은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토리나 산성을 일주일 내로 점령할 수만 있다면 다른 길보다 열흘은 일찍 슬렌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가, 그럼 이 길로 가는 게 옳겠군요.”

    예의를 지키며 말하는 미르차르드의 모습에 저 자가 정말로 한 때 한 왕국의 후작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루아타 공작도 미르차르드가 투항한 귀족이기 이전에 오러 마스터이기에 무례하게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토리나 산성도 쉽게 점령 가능 하겠지.’

    산성의 특성 상, 성 자체가 작은 편이라서 이 정도 대군이라면 쉽사리 점령할 수 있을 거다.

    토리나 산성보다 더 앞에 있는 두 채의 성보다야 점령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겨우 그 정도.

    하루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셀룬의 입장 상, 남쪽의 군단보다 먼저 도착해서 공성전을 준비해서 최대한 시간을 아끼는 게 옳았다.

    그리하여 깃발이 올라감과 동시에 슬렌베로 갈 길을 결정한 공작의 명령 아래, 군단은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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