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4화 (12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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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당연하게도 눈앞의 여성이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철부지 공주님이라는 건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그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가 난동을 피우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지금도 그래, 도대체 어디 안전이라고 도주를 하려고 하는가.

    “그게…….”

    공주는 라트 질문에 당황의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으며, 눈빛을 아래쪽으로 깐다. 누가 보면 라트가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나.

    “하아, 도망치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곳까지 또 누가 오겠냐고 생각하며, 라트는 공주의 속내를 찔러보았다.

    “어, 어떻게! 앗!”

    ‘너무 솔직한 거 아닙니까.’

    당황하여 입을 가리는 시그나룬벨 공주의 모습에 라트는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렇게 엉성해서야, 과연 도주를 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어, 어떻게 아신 건가요.”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공주를 보고 라트는 머리가 뜨거워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평상 시 활동하기 어려운 드레스를 입고 있는 공주님이 그리도 활동하기 편한 복장에 배낭까지 매고 지하로 내려왔으니.

    도주 말고 다른 걸 계획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옷을 입고 배낭까지 매고 있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 그러니까. 제가 드레스를 입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건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주님을 바라보았다. 어딜 보더라도 활동복에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이다.

    “네.”

    “그, 그럴 수가.”

    왜 저런 침울한 표정을 짓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으나.

    “마법의 시간이 다 되다니.”

    이어지는 말에 라트는 대충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다.

    “누가 인식 장애 마법을 사용해줬나 보군요.”

    라트의 물음에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공주에게 과잉충성을 하는 귀족 놈이 공주를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다.

    ‘병신 새끼.’

    그 과잉 충성이 공주를 행복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못하는 건가. 바깥이 얼마나 위험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님을 혼자서 내보내려고 하다니.

    정신머리가 똑바로 있는 놈인지 심히 궁금하기까지 하다.

    “저에게 발각됐으니 도주극은 끝입니다, 공주님. 돌아가십시오. 지금 돌아가면 추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그럴 수는 없어요!”

    공주는 맹렬히 고개를 저으며, 라트의 말을 거부한다. 아니, 거부한다고 해봐야 들어줄 수 없는데. 라트는 현재 셀룬의 후작 대리이기도 하고, 후작 대리가 아니 셀룬의 병사였다.

    그러니 도망치는 적국의 공주를 본 이상 놔줄 수 없는 게 인지상정. 그렇다고 시그나룬벨 공주가 라트를 제압하고 도망칠 수 있느냐, 하면.

    ‘불가능하지.’

    진짜 극소수의 공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주들은 전투 능력 하나 없는 히로인 NPC에 불과하다.

    공략 난이도가 타 히로인 NPC에 비해 넘사벽으로 높고, 공주를 얻으면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희소할 뿐이지.

    다시 말해, 시그나룬벨 공주의 전투력은 0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이대로 도망치시겠다는 겁니까? 마법도 풀렸는데 어디로 도망가시려고요.”

    “이, 이곳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어요. 거기로 빠져나가면 들키지 않고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구나. 왕성에 있는 비밀 통로라, 비밀 창고와 더불어 로망을 자극하는 장치.

    그곳으로 빠져나간다면, 병사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도망은 칠 수 있을 터.

    “빠져나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바깥세상이 호락호락 하신 줄 아십니까?”

    그러나 성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아직 건너야할 강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당장 산적이라도 만나는 순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죽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꼴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공주가 산적이라도 만나는 순간, 그녀는 겁탈 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노예처럼 부려지겠지. 그런 꼴을 당할 걸 생각하자니, 차라리 말리는 게 훨씬 낫다.

    “셀룬으로 가서, 모르는 늙은 귀족에게 첩으로 시집을 가도 노예처럼 부려지는 건 똑같을 거예요!”

    그렇게 될 리가 있나.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 시그나룬벨 공주를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이 공주님은 자신이 셀룬의 귀족의 첩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야 뭐, 망국의 공주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긴 하지만. 오케만 국왕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셀틱 국왕의 딸을 그런 식으로 대접할 리가 없다.

    “그리고! 감히 누가 저에게 손을 대려고 한단 말인가요. 저는 일국의 왕족……!”

    “작금 이 상황에서 공주님이 공주님이라고 해서 산적이나 노예상 놈들이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예, 가 아니라. 공주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라트의 질문에 시그나룬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리따운 공주 그 자체다.

    그렇기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를 줄은 몰랐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이 아깝지가 않아.

    “왕족의 힘은 나라에서 나옵니다. 왕족을 건드리면 그 나라에서 가만히 두지 않기에 아무도 왕족을 건드리지 않는 겁니다.”

    “그, 그렇죠.”

    라트의 친절한 설명에 시그나룬벨 공주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허나, 지금 켈랑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공주님의 입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수도까지 점령 당해, 멸망 직전의 상황에 내몰린 나라.

    망국의 공주, 그녀를 구하기 위한 자들은 이미 모두 잡혔다.

    “과연 공주님이 납치된다고 해도, 누군가 공주님을 건드린다고 해도, 나설 수 있을까요.”

    장담하건데 아무도 없어. 게다가 망국의 공주를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전란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어, 질이 좋지 않은 인간들이 신나게 활동하고 있는 게 지금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도망치시겠다고요?”

    리오스를 만났을 때 목도했던 노예상의 모습을 기억한 라트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공주를, 철없는 여인을 바라본다.

    이것이 현실이다. 망국의 공주를 구해줄 이는 그 누구도 없어. 오직 그 몸에 탐욕을 느끼는 날파리만 달라붙을 뿐.

    “그리고 도망친다고 하면, 어디로 도망치시려고 합니까.”

    또한 도망친다고 해도, 어디로 도망을 치려고 하는가. 이 대륙은 현재 전쟁의 불길로 활활 타고 있는 중이다. 전란의 불씨가 꺼지기 전까지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셰크티 제국으로 갈 거에요.”

    “예?”

    그러나 이번에는 라트의 예상과 달리, 공주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셰크티 제국이라, 지금 당장의 상황만 보자면 괜찮은 선택이다.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이니까. 그 누가 천년 제국을 건드리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시선일 뿐. 라트에게는 곧 반란이 일어날 셰크티 제국으로 도망친다는 공주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굳이 셰크티 제국으로…….”

    “세나릭에프토리아 프리그 델 셰크티 황녀께서 켈랑에 방문하셨을 때, 적적치 않게 말 상대를 해드렸더니 혹시 나중에 필요하거든 자신을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이런 설정이 있었던가. 라트는 눈을 크게 뜨고 시그나룬벨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 철부지 공주가 제 1황녀와 친분이 있었을 줄이야.

    제국의 1황녀가 가지는 명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황태자를 포함해 황자가 4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이 1황녀에게 줄을 설까.

    창으로 오러 마스터에 이르렀으며, 제국에서도 3명밖에 없는 공작 중 한 명인 세르테노스 공작이 황녀의 휘하로 들어갈 정도였다.

    ‘제국 아니, 세계 역사상 최연소 오러 마스터니까, 그럴 만도 하지.’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와 아리따운 외모가 합쳐져, 커뮤니티 내에서 1황녀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홀리의 성녀와 맞먹을 정도다.

    ‘황녀랑 친분이 있었을 줄이야. 아니, 이건 일단 넘어가고.’

    “셰크티 제국으로는 어떻게 가시려고요.”

    그것보다 나라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 이상, 포탈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셰크티 제국까지는 어떻게 가겠다는 건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있을 생각입니다.”

    들려오는 대답에 라트는 두통을 느끼고,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이런 세상에서 잘도 숨어있겠다. 그렇게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숨어있을 생각인가.

    ‘그렇지만.’

    눈앞의 공주님이 황녀와 친분이 있다는 건 굉장히,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황녀와 친분을 만들어두면 제국 반란 퀘스트 때 활동하기가 편해진다.

    “일단 돌아가십시오. 아니, 따라오세요. 그 꼴로 방까지 돌아가면 의심 받을 테니까.”

    “그, 그럴 수는 없어요.”

    “그렇게 하셔야합니다.”

    이대로 공주를 보내면 분명 개죽음을 당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서 노예로 부려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선 파르스로 가셨다가, 이번 전쟁이 끝나면 제가 어떻게든 제국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제국으로 보내드린다고요. 그것도 포탈을 사용해서. 그러니까 지금은 얌전히 계세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이쪽에서 공주를 제국을 보내주는 게 마음이 편했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겠지만, 라트가 직접 공주를 제국까지 안전하게 보내준다면.

    후에 황녀와 닿을 끈을 만들어놓는 셈이다.

    “저, 정말이신가요!?”

    라트의 뜻밖에 말에 공주는 그의 말이 진심인 것을 알기 위해 필사적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본다고 해도, 라트가 저런 풋내기 공주에게 마음을 들킬 리가 없지만.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따라오십시오.”

    공주에게 따라오라고 말한 라트는 비밀 창고 앞에 섰다. 비밀 창고의 문은 엄중하기 그지없다. 국왕이 직접 오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는다.

    공간 이동 마법 차단 및, 각종 마법을 디스펠하는 장치에, 물리적으로 절대 베이지 않을 방어 마법까지. 그 보안은 엄중하기 이를 때 없다.

    보통 비밀 창고를 열 때는 국왕을 죽인 후, 국왕의 시체에서 드랍되는 열쇠를 얻어서 열기 마련이다. 그것 말고는 열 방법이 없으니까.

    물리 공격에도, 마법으로도 철통 방어를 자랑하는 비밀 창고라고 하지만, 라트가 국왕에게 열쇠를 받지 않고 홀로 이곳에 온 이유는.

    뚫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어 드릴까요?”

    아무래도 비밀 창고에 들어가, 자신이 숨어지낼 때 사용할 자금을 융통할 생각이었던 시그나룬벨 공주가 국왕에게서 받아온 열쇠를 들어올렸지만,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지금 실험하려고 하는 게 실패하면, 그 때 열어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결론은 물리 공격이 아니면서, 마법이 아니면 되는 거잖아.’

    물리적인 공격도, 마법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서 사용할 건, 연금술이었으니까.

    “만연하라.”

    손을 벽에 짚고, 세상을 뒤틀었다. 비밀 창고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문이 괴이하게 움직여 그 안을 보인다.

    “에? 에!?”

    공주님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믿을 수 없어 입을 벌렸다. 이 장소는 왕성에서도 가장 엄중한 장치가 되어있는 곳이다.

    오라버니인 루만 조차도 아버님이 끝까지 열쇠를 주지 않자, 결국 비밀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그런데 이 남자는 도대체 어찌하여 이렇게도 손쉽게 문을 열 수 있는가. 그것도 열쇠 없이 강제로.

    ‘역시나.’

    온전히 열어진 게 아니라, 뒤틀려진 문을 보고 라트는 웃었다. 예상대로 물리적이지도 않고, 마법도 아닌 무색의 연금술로는 이 문을 열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화로 필요한 떡밥은 대충 다 뿌렸으니..다음화부터 진도 나갑니다.

    선작, 추천, 원고료 쿠폰 감사합니다.

    skgkanan 님 10장, 루이레아님 1장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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