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3화 (12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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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다음 날 아침, 라트는 전날 밤 편히 쉰 덕분에 가벼운 몸을 이끌고 루아타 공작의 소집령에 응해 왕성의 회의실로 들어섰다.

    “왔나. 이른 시간에 불러서 미안하군.”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도 전이니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전시다. 런트를 점령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으면 도태된다.

    “이른 시간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라트는 고개를 숙였다. 라트야 어젯밤 일찍 잠들었으니 괜찮다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귀족들은 늦은 밤까지 연회를 가장한 회의를 했었다.

    라트가 불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리로 오게, 후작 대리.”

    세르먼트 후작의 손짓에 라트는 고개를 들고 그곳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회의장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 귀족들은 새삼 감격에 젖었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그럴 만도 하지. 이곳은 어젯밤만 하더라도 우리의 적이 사용했을 회의장이니까.

    그런 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귀족들은 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벌인 덕분인지는 몰라도, 라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는 아니지.’

    딱 한 명, 피츠로이 백작의 아들인 프레만 피츠로이만이 라트에게 적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왠지 더 심한데.’

    메아리치는 밀림에서 벗어나 런트를 점령할 때까지 프레만과 단 둘이서 마주할 기회는 없었지만, 군사 회의 때문에 틈틈이 볼 수 있었다.

    항상 적의와 악의가 깃든 시선을 보내는 터라, 가뜩이나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은 그 시선에 살기마저 깃들어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만.’

    이렇게 보자니 능력도 없는 찌질이의 질투처럼 보이나, 그는 셀룬의 후기지수에서도 매우 뛰어난 편에 속했다.

    라트와 같은 나이에 베철러에 오른 자. 오러 베철러라면 평민이라고 해도 정식으로 기사라고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 위에 베너렛과 익스퍼드 그리고 오러 마스터가 있어서 빛이 바라기는 하지만, 20세에 베철러라면 오러 익스퍼드까지 바라볼 수도 있을 터.

    라트가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이는 프레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라트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다.

    세상은 2등까지 신경써줄 정도로 따뜻하지 않으니까.

    주목을 받기 위해 이번 전쟁에 참여했는데, 라트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다. 거기에 짝사랑하던 엘리도 빼앗겼다. 프레만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라트의 존재는 눈엣가시와 같겠지.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지 않았으니 서두르지 말게나.”

    회의장에 들어와야 할 마지막 귀족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등장하자, 루아타 공작은 괜찮다며 손짓을 했다.

    “모두 모였으니, 이야기를 시작하지. 이런 시간에 그대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어젯밤, 루만 태자가 귀족들의 동의하에 계승식을 치렀다는군. 이제는 루만 태자가 아니라, 루만 국왕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렇게 말하며 공작은 냉소했다. 한 나라의 국왕이 포로로 잡혔으니 독단으로 계승식을 치룬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 자리의 모든 귀족들은 루만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켈랑과 전쟁 중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쓰레기는 국왕으로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우렌 백작님의 말이 옳습니다. 어찌 그런 망사지죄를 저지르고, 국왕이라고 칭한단 말입니까!”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전날 벌어진 참극을 기억하며 치를 떤다. 그런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른 자가 어찌 만백성을 어우르는 국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신전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의문 하나, 그런 일을 벌인 자를 신전이 순순히 내버려둘까? 사제와 성기사들은 죽이지 않았기에 공적이 되는 거야 피했다지만, 이번 사태는 신전에서 나설 법한 일이다.

    “루만 태자는 그 일이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고, 그림자 까마귀와 몬스터 테이머가 독단으로 벌인 짓이라고 하더군. 증거가 없으니, 신전 측도 나서지 않을 모양이다.”

    ‘지랄하네.’

    들려오는 대답에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쉰다.

    저런 식으로 나오면 신전 쪽에서 할 말이 없겠지. 루만의 지능을 생각하면 이번 일과 자신이 관련됐다는 증거를 남겨놨을 리가 없다.

    신전의 세력이 강하다지만, 기본적으로 신전은 나라 간의 정세에는 참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니, 아마 신적 쪽에서는 가만히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림자 까마귀야 거의 전멸했다지만, 몬스터 테이머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쪽 말로는 신전에 넘겨졌다고 하더군.”

    “그런가요.”

    공작의 말에 라트는 혀를 찼다. 설마 자신의 종속을 쿨하게 넘겨버릴 줄이야. 케츠가 신전에서 고문을 당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고 자신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루만의 성격을 생각하면, 케츠같은 전력에 도움이 되는 패를 쉽게 놔주지는 않을 거다. 혹시나 다른 고양이 수인을 케츠 대신해서 넘겨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케츠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라트도 그녀가 고양이 수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볼만 했다.

    “증거가 없어 신전이 나서지 않는다고 하나,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케츠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라트는 공작의 말에 집중했다. 이제 케츠가 어떻게 됐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루만이 진짜로 케츠를 신전에 넘겼을 수도 있고, 아니면 루만의 옆에 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

    어찌됐든, 케츠는 나름대로 고생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국왕으로 부를 가치가 없는 그 쓰레기는 멀쩡히 호의호식을 하고 있을 터.

    “우리는 지금부터 호르토 공작과 루만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슬렌베 성으로 진격한다.”

    호르토 공작의 영지는 총 3개가 있지만, 그 중 슬렌베 성이 가장 적을 막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루크 성과 런트를 잃은 이상 적군을 막을 수 있는 건 슬렌베 성 뿐.

    “공작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가는 와중에 보이는 성은 어떻게 합니까?”

    문제는 켈랑의 수도인 런트에서 호르토 공작의 영지인 슬렌베까지는 어떤 길목으로 가더라도 최소 3개 이상의 성은 지나야한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

    “당연히, 전부 점령한다.”

    지금 런트에 있는 셀룬의 군단은 적국의 수도를 점령해 사기가 하늘을 뚫을 정도로 올랐다.

    이 정도 이 사기라면 이루크 성과 같은 천혜의 요새도 없는 이상, 성 3개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전 브로켄 후작 쪽 군단도 슬렌베로 진격하겠다고 응답이 왔다. 공작과 루만이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는다면, 아니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넓디넓은 탁상을 내리친 공작은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런트에 이어 슬렌데까지 점령하면 이 전쟁은 끝이다.”

    한 나라의 수도는 수도인 이유가 있다. 인구수와 생산량이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수도라고 불리는 거다.

    런트가 점령당한 시점에서 켈랑은 이미 셀룬에게 반 이상은 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그건 공작의 영지도 마찬가지다. 대대로 한 나라의 공작가였던 가문의 지배를 받은 영지가 척박할까?

    그럴 리가 없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슬렌베를 점령할 수 있다면, 이번 전쟁은 진정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말은 이상이다. 할 말이 있는 자는 말하도록.”

    “출발은 언제 합니까?”

    피츠로이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그동안 강행군이 이어졌기도 하고, 브로켄 후작의 군단과 시간을 맞춰야하니 오늘까지는 병사들을 푹 쉬게 하고 내일 출발할 생각이다.”

    백작의 질문을 필두로 꽤나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 질문은 모두 전쟁에 관련된 것이었지

    이 자라의 모두가 투지를 이글이글 불태운다. 그 누구도 겁을 먹지 않았다.

    ‘수도인 런트를 점령했으니까. 잠깐만, 수도?’

    수도라는 단어에 무언가 걸려, 라트는 귀족들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수도하면 일단 왕성이다. 왕성, 왕족. 왕족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왕성에 있는 보물 창고에 그 재산을 보관하고 있다. 아마 그곳은 어제부로 텅텅 비었을 것이다. 약탈은 금했지만, 이 왕성에 있는 재산은 셀룬으로 귀속되겠지.

    ‘보물이라.’

    보물이라는 단어에 라트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왜 잊고 있었지. 대부분 왕성에는 숨겨진 비밀 창고가 있다는 걸.

    그리고 이 숨겨진 비밀 창고는 일반적으로는 발견하지 못한다.

    왜냐면, 비밀 창고는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는 국가에 충성하라는 명목 아래 퀘스트로는 보상을 얻을 수 없는 플레이어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으니까.

    라트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본인은 생명의 연금술로 지칭한 수명의 연금술을 보았다.

    수명의 연금술 - 담배(랭크 불명, Lv 9) - 초당 마나 100 소모 : 수명(담배를 피우는 행위)을 대가로 발현하는 연금술. 연금술의 기초인 이해, 분해, 합성을 무시하고 무엇이든 연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4. 최대 다섯 개의 물체(고체가 아닌 액체나 기체라도 서로 이어져 있다면 한 개의 물체로 취급)만 연성할 수 있다.

    5. 월드 세리아의 과학 기술을 넘어서는 것을 연성할 수는 없으며 희귀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정보를 직접 확인해야 연성할 수 있다. 또한 연금술로 만들어진 병기들은 그 구조를 알아야 연성이 가능하다.

    다른 정보는 볼 필요 없고, 가장 주목해야할 건 4, 5번 조건이다. 본래 한 개의 물체만 연성할 수 있던 것이 레벨이 올라 최대 다섯 개의 물체를 연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희귀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정보를 직접 확인해야 연성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생명의 연금술로 희귀 등급 무기를 만들어봐야 조금 있으면 사라지니, 그다지 필요는 없지만.

    ‘전설이나, 신화 등급 아이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희귀 위에 등급인 전설 혹은 신화 등급의 아이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설 등급 무기는 간간히 특수한 효과가 있고, 신화 등급은 무조건 특수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런 특수한 효과를 가진 무기의 정보를 확인해서, 공평함의 검처럼 생명의 연금술로 연성해서 사용한다면?

    “그럼 이상, 회의를 마치도록 하지. 오늘은 전원 편히 쉬도록.”

    회의의 끝을 알리는 공작의 말이 떨어지는 게 무섭게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가보겠다고 말하고 급히 회의장에서 빠져나갔다.

    누군가 그를 부른 것 같지만, 비밀 창고에 있을 아이템을 독식할 생각에 그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아.”

    막상 비밀 창고로 가려고 하던 라트는 자신에게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열쇠가 없으면 비밀 창고는 들어가지 못하는 게 커뮤니티 내 정론이다.

    ‘어떻게 한다.’

    셀틱 국왕을 보러가야 하는 건가. 그렇지만 내가 간다고 해서 국왕이 순순히 열쇠를 줄 리가 없다. 어쩌면 비밀 창고의 존재를 부정할지도 모른다.

    비밀 창고라는 건 오로지 왕족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장소였으니까.

    설령 위치를 알고 있다고 한들, 오러 마스터나 8서클 마법사가 와도 그 문은 열 수 없다. 그 정도로 엄중한 보안이 설치되어있는 곳이다.

    “열 수 있을 지도?”

    그러나 오러 유저도, 마법사도 아닌 연금술사인 라트는 어쩌면, 그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창고에 가서 실험을 해보고, 실패하면 그 때가서 국왕에게 어떻게 열쇠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 된다고 생각한 라트는 지체없이 걸음을 옮겼다.

    2d 게임에서는 익숙하지만, 현실에서는 굉장히 어색한 켈랑의 왕성의 지하로 깊숙한 곳으로 내려간다.

    지하로 내려간 후, 머리를 굴리고 굴려 어떻게든 기억과 맞아 떨어지는 장소를 찾아 왕성을 걸어 다니기를 10분 후.

    “저기다.”

    간신히 비밀 창고가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장소를 발견한 라트는 환희에 젖은 눈빛으로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잠시만요.”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영롱한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만류하였다. 이 목소리는 분명.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죠?”

    시그나룬벨 켈랑, 일국의 공주였던 이의 목소리였다. 형태가 없는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든 여성이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공주님은 왜 여기 계십니까?”

    뒤로 돌아 공주를 바라본 라트는 눈을 찌푸렸다. 공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공주님, 도망칠 생각이야.’

    아직은 미수에 그치고 있지만, 필시 시그나룬벨 공주는 오늘 안으로 도망칠 생각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고?

    그거야 당연히 도주 중 사용할 자금을 가져가기 위해서지.

    애송이 공주의 신파극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생각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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