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2화 (12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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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희귀 기능 ‘염동력’을 획득하셨습니다]

    [캐릭터의 희귀 기능이 초기화를 제외하고 다섯 개가 되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대륙 역사상 손꼽히는 희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상으로 희귀 기능 레벨 1up 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어, 네?”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펼쳐진 알림창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뜻밖의 결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우선 위에 떠있는 알림창보다, 아래 떠있는 알림창에 집중하자. 희귀 기능 레벨을 올려주는 카드.

    이 보상은 지금 당장 사용하기는 그렇지만, 굉장히 좋다. 나중에 희귀 기능의 레벨이 진짜로 오르지 않을 때 사용하면 된다.

    문제는.

    ‘하필 염동력이냐.’

    서양에서는 사이코키네시스, 동양에서는 허공섭물이라고 부르는 경지에 이르른 자들만이 사용하는 염동력이라니.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이 희귀 기능은 꽝 중 꽝이었다.

    염동력(Lv 1) - 필요 기능 : 무無

    * 물건을 들어 올린다거나, 대상을 밀어낼 수 있는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희귀 기능. 마력은 소모되지 않지만, 정신력은 소모 됩니다.

    염동력이라는 희귀 기능은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좋다. 필요 기능이 없는데 마력도 소모하지 않고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허나, 오러의 경지가 그랜드 마스터까지 오르거나, 9서클 마법사가 된다면 염동력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구현할 수 있다.

    8서클 마법사라도 주문을 외울 시간만 있다면 충분하다. 아니지, 염동력 레벨 1의 위력이라면 3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그 정도 위력은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이 지랄 같은 희귀 기능은 스탯 보너스를 안 받는단 말이야.”

    오늘 낮, 브라일에게 마르쿨의 검술이 통용됐던 이유는 마르쿨의 검술이 근력과 민첩의 스탯에 보너스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염동력은 보너스를 받는 스탯이 없다. 염동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정신력뿐이다.

    “하아.”

    그래서 커뮤니티 내에서도 염동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후반에 가면 그와 비슷한 힘을 손에 넣는데 뭐하러 스탯 포인트를 소모해서 염동력을 배우겠는가.

    아니 딱 한 사람, 염동력을 좋아하는 놈이 있기는 했다.

    “그 또라이가 뭐라고 했더라.”

    커뮤니티 내에서 염동력 기능을 찬양하며, 그 어떤 캐릭터를 플레이 하더라도 염동력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어떤 캐릭터를 하든, 염동력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좋다고 했었던가? 그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하아.”

    그 사람이 올린 글의 내용을 기억해낸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이나, 카사노바같은 비전투직 직업을 한다면 염동력은 상당히 좋은 희귀 기능일수도 있다.

    스탯 보너스를 받지 않으니, 언제나 같은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전투직이 아니더라도 호신용으로 사용하기 정말 적절하지 않은가.

    “하지만 전투직한테는 쓸모가 없다고.”

    지금은 배틀 알케미스트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하이 엘프를 만나서 오러 제한을 풀 수 있도록 할 작정인 라트에게 있어 염동력은 그다지 쓸모 있는 기능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야 유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무쓸모. 적어도 월드 세리아라는 게임을 할 때는 그랬다.

    “그래도. 현실이라면 또 다르겠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면 이이갸기가 또 다를 수도 있다. 염동력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방해한다던가, 몸을 이동시켜서 공격을 피하는 식으로 사용하면 또 모른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짜증이 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트롤 캐릭터로 시작해서, 같은 조건 아래에 시작했다는 전제 아래에 다른 전투직보다 성장이 느린 편인데 뽑기에서도 운이 따라주지 않을 줄이야.

    “어, 잠깐만.”

    ‘염동력이라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아?’

    혹시나 싶어, 염동력을 이용해 복도에 놓여있는 화분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짓하자, 화분은 라트의 손짓에 따라 허공을 날아다녔다.

    “오, 이거 쓸 만하겠는데.”

    역시 게임과 현실은 다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라트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화분을 원래 위치에 놔두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라트!”

    “어? 엘리.”

    성 아래 펼쳐진 정원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을 엘리가 라트의 이름을 불렀다.

    “아래에서 즐기고 있는 중 아니었어?”

    “뿌뿌!”

    그 말에 엘리는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라트는 두 팔을 벌렸고, 엘리는 주저 없이 그의 품속으로 들어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차가워!”

    “아, 미안. 아까 누나가 울어서 좀 달래주느라.”

    “언니 울었어!?”

    라트의 품에서 애교를 부릴 생각이었던 엘리는 라트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똘망똘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굉장히 귀여워, 라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금빛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아, 좋아라. 아니 이게 아니라, 케이네 언니는!”

    그 손길에 저도 모르게 베시시 웃던 엘리는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고개를 붕붕 젓더니 케이네의 안부를 물었다.

    “울다 지쳐 잠들어버려서, 침대에 눕혀줬지.”

    “그렇구나.”

    슬픔, 그리고 안타까움이 절절 묻어나는 침울한 목소리가 드리운다.

    “잘 달래줬어? 언니는 처음 겪어본 일이라서 엄청 힘들었을 텐데.”

    엘리야 이미 2년 전쯤 라트와 광산 동굴을 같이 갔을 때 겪어본 일이다. 그런 자신도 공포에 무덤덤할 수 없는데, 케이네는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자 엘리는 한층 더 침울해졌다.

    “언니가 참가한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을까?”

    “니가 말렸어도 누나는 참전했을 걸. 누나가 고집 부리면 나는 물론이고, 스승님이라도 끝이라고, 끝.”

    공녀의 신분으로 태어난 엘리도 만만찮게 고집이 있겠지만, 그건 백작의 여식으로 태어난 케이네도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엘리보다 더 심할 수도 있지. 평소에는 착하디착하기 때문에 그녀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 순간, 아무도 말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침울한 표정 짓지 마. 나까지 기분 안 좋아지니까.”

    친한 언니가 울었다는 사실에 계속해서 우울해져가는 엘리의 모습에 라트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루만 태자와 케츠를 놓친 것과 케이네가 울어버린 일에 기분이 착잡한데 엘리까지 이 모양이면 치유받을 곳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네.”

    라트의 요청에 엘리는 피식 웃으며 다시금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마음껏 얼굴을 비빈다. 그 모습이 마치 새끼 고양이 같아 절로 웃음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았어?”

    “이거.”

    라트의 물음에 엘리는 라트에게 붉은 실이 보이게 만들었다. 라트와 마찬가지로 엘리도 붉은 실을 조종할 수 있다. 그래서 라트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찾아온 건가.

    “방에 들어간 건 아닌데, 한 자리에 머물고 있어서 또 담배 삑삑 피면서 궁상떨고 있을 줄 알고 왔지.”

    “아, 그러십니까?”

    부정을 할 수 없어, 라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엘리가 오기 전까지 담배를 태우고 있었고, 아마 깔 카드팩이 없었다면 지금도 담배를 태우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좀 더 나한테 감사하도록 해.”

    “네이, 네이.”

    라트에게 떨어져 당당하게 가슴을 피며 말하는 엘리의 모습에 조금씩 착잡했던 기분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 라트는 거세게 그녀를 껴안고 공중으로 들어 올려 한 바퀴 돌았다.

    “꺄아!”

    즐거운 비명 소리에 라트는 멈추지 않고 엘리를 한 바퀴 더 돌린 후 바닥에 내려놓고, 정중히 그녀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이걸로 만족하시는지?”

    “여기도 해주면 만족할지도.”

    엘리가 짓궂은 악마와 같이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가리키자, 라트는 그에 응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가볍지만, 달콤한 키스 후 얼굴을 때고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헤헤헤. 사랑이 느껴져서 좋아.”

    하나하나 애정이 담겨있는 라트의 행동에 엘리는 그의 얼굴을 껴안고 볼을 비비며 남자의 온기를 만끽했다.

    “그런데 공녀님이 이렇게 빠져나와도 괜찮아?”

    “괜찮아, 전혀 문제없어. 일반 병사들이나 즐기고 있지, 귀족들은 다음 목표를 어디로 잡아야할지 토론 중이야.”

    “헤에.”

    엘리의 대답에 라트는 감탄을 내뱉었다. 런트를 점령했다는 사실에 마냥 정신이 팔려서 즐기고 있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여기까지 오는데 피해도 별로 입지 않았다. 남부에서 진격 중인 다른 군단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켈랑의 모든 전력을 파훼한 게 아니다.

    ‘최소 50%.’

    브라일을 죽였고, 미르차르드가 이쪽으로 넘어왔으며, 마지막으로 수도인 런트를 점령했다고 하지만, 켈랑의 전력은 아직도 약 50% 정도가 남아있다고 봐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연회나 즐기고 있다면, 그건 지휘관 실격이지.

    “그래서 다음 목표는?”

    “듣기로는 남부의 군단과 합류해서 호르토 공작의 영지를 칠 건가봐. 다들 적의 중추를 잘라서 최대한 이 전쟁을 빠르게 끝내고 싶어 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이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주인 없는 산맥 때문이다.

    서로가 그 세력과 힘이 균등하기에 그 누구도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어. 그러니 최대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 덩치를 불려야 한다.

    강해져야만,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니까.

    ‘뭐,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최대한 다른 왕국을 먹어치우면 좋은 일이지.’

    이 전쟁에서 최대한 셀룬 왕국의 덩치를 불려놔야 카르세이나 대륙에 있는 셰크티 제국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반란군 메인 퀘스트 때문에 셰크티 제국이 붕괴할 수도 있지만.

    ‘그건 최소한 1년 후에 일어날 테니까.’

    반란을 일으키는 흑막 집단이 노르스 대륙으로 넘어오고 나서 포탈의 사용이 금지됐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돌아가고, 반란을 일으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다.

    ‘제국이 붕괴하는 건 막아야해.’

    셰크티 제국이 붕괴하고 마족의 침공이 일어나면 모든 마족을 노르스 대륙의 왕국들이 감당해야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곤란해.

    게다가 반란에 성공하면 당연히 셰크티 제국의 신전들도 모두 파괴되고 사제와 성기사들도 죽는다.

    ‘그건 진짜 곤란, 하지. 적어도 성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내 눈으로 직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인기 여자 NPC 중에서 항상 top5에 들어가는 홀리의 성녀를 생각하고 있던 라트는 엘리의 질문에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아, 도망친 태자를 생각하고 있었어.”

    엘리를 앞에두고 다른 여자를 생각하다니, 그건 실례다. 뭐, 딱히 성녀에게 음심이 있어서 그녀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순수한 호기심일 뿐이다.

    “흐음.”

    변명이 제대로 먹혔는지, 엘리는 눈을 찡그렸다.

    “그 개같은 새끼.”

    그리고 보기 드물게 욕설을 내뱉은 엘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도 아닌 새끼, 어떻게 그런 짓을. 홀리님은 그 새끼 그냥 내버려두고 뭐하시나 몰라.”

    아무래도 루만 태자가 벌인 짓 때문에 엘리도 상당히 화가났나보다.

    고위 계층이 가지는 특권 의식이 충만한 엘리였지만, 그렇다고 평민을 함부로 깔보지는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런 성향이 짙었더라면, 라트와 엘리는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걱정 마. 내가 대신해서 죽일 거니까.”

    엘리의 목숨을 노린 놈을 그대로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 라트의 단언에 엘리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줘.”

    정말로 화가 났는지, 평상시라면 그래도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엘리가 라트를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부추겼다.

    “대신 위험하면 도망치고. 다쳐서 돌아오면 안 돼. 넌 내거니까.”

    그래도 애인에 대한 사랑까지는 잊지 않았는지,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당부한다.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의 당부를 받아드린 라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키스에 열중했기 때문일까? 그저 사랑을 증명하기에 바빠, 두 시선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엘리도 라트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렇게 밤이 깊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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