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0화 (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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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알았다. 세르먼트 후작.”

    “부르셨습니까.”

    공작의 부름에 세르먼트 후작이 급히 이쪽으로 왔다.

    “후작 대리와 기느투스 후작님의 제자가 피곤한 모양이니, 미리 잠자리를 담당 귀족에게 말해서 쉴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게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따라오시오, 후작 대리. 케이네양도 어서 따라오게나.”

    “제군, 오늘은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성과 도시에 있는 백성들에게 무례한 짓은 삼가도록.”

    라트와 케이네가 왕좌가 세워진 방에서 빠져나갈 때, 루아타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오늘. 전원, 잘 싸워줬다. 런트를 점령했음을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뺏기지 않았던 켈랑의 수도인 런트가 셀룬의 손에 떨어진 걸 증명하듯, 함성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오늘 죄송했습니다.”

    “아니네. 어찌 사과를 한단 말인가. 내가 자네를 칭찬해도 모자란데. 아니지, 이렇게 말할 게 아니라 칭찬을 해야지. 그 짧은 시간에 적의 작전을 파악하다니. 정말 대단했네.”

    라트가 오늘 낮, 왕성을 습격할 별동대로 함께 가자는 세르먼트 후작의 제안을 무시하고 후방으로 달려간 자신의 치태를 사과하자 세르먼트 후작은 고개를 저으며 라트를 칭찬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지나친 겸허는 굉장히 꼴배기 싫은 법일세, 후작 대리. 자네는 그것을 알아야 해.”

    세르머트 후작은 끌끌 웃었다. 라트를 제외한 전방에 있던 모두가 눈앞에 벌어진 참극에 정신을 빼앗겨 후방을 신경 쓰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 것은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허참, 젊은이가 이렇게 패기가 없어서야. 그리고 케이네양. 전쟁 중에는 목숨의 위기가 몇 번이나 찾아온다는 걸 명심하게. 전쟁은 참혹한 것이야.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게.”

    “명심하겠습니다.”

    세르먼트 후작의 충고에 케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잡담에 시간이 흘러, 어느 사이에 찾는 이를 발견했는지 세르먼트 후작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병사들을 통솔하고 있는 귀족에게 다가갔다.

    “벨크론 자작.”

    “아, 세르먼트 후작님. 그쪽은 정리됐습니까.”

    “그렇다네. 공작님께서 약탈 행위는 자제하라고 하시니 주의하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꼴을 봐서, 약탈할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정말이지,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 주신 홀리가 두렵지 않나? 어떻게 그런 짓을 벌일 수가 있는지. 쯧쯧. 신전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묶여 있었다고?”

    “예. 아무래도 그림자 까마귀의 짓 같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트는 혀를 찼다. 설마설마 했는데 신전의 사제들을 가둬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신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있었더라면 그 참극을 두고 보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신전에 손을 댈 줄이야.

    ‘루만이 이렇게 또라이였나.’

    적어도 신전은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신전 쪽에는 인명 피해가 없으니 공적 선포는 당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신전이 켈랑을 좋게 보지 않을 건 분명하다.

    “그러니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지. 정말이지, 미친놈들이라고 밖에 말을 못하겠군 그려. 아, 이쪽은 보급 담당인 벨크론 자작이네. 자네는 이쪽을 알고 있지?”

    “후작 대리님을 뵙습니다!”

    세르먼트 후작의 소개에 벨크론 자작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예를 갖추며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벨크론 자작의 목소리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병사들도 행동을 멈추고 라트를 바라본다.

    ‘뭐야, 다들 왜 이리 시선이 부담스러워.’

    “저분이 그 오우거 슬레이어님이신가.”

    “혼자서 몬스터 수 천 마리를 죽이셨다지?”

    “오우거도 열 마리가 넘었다며.”

    “저 분 덕분에 내가 살았다니까. 니들이 직접 봤으면 바지에 오줌 쌌을 거다.”

    “켈랑의 오러 마스터를 포로로 잡은 분도 저 분이라잖아.”

    그제야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이리도 부담스러운지 깨달았다. 어째서인지 활약상이 굉장히 많이 부풀려지기는 했지만, 모두가 라트의 활약을 알고 있기에 선망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귀족들은 부풀어진 소문을 그대로 믿지는 않겠지만, 라트가 브라일을 처리한 사실이 알려졌을 테니, 병사들과 같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라트입니다. 반갑습니다.”

    라트가 먼저 손을 내밀자, 벨크론 자작은 영광이라고 말하며 양손으로 라트의 손을 붙잡았다.

    “흠흠. 벨크론 자작. 자네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 놔주게나.”

    벨크론 자작이 자신의 손을 놔주지 않아서 난처해하고 있을 때, 세르먼트 후작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후작 대리님.”

    “아니요. 뭐.”

    귀족들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싫은 소리를 내뱉지는 않는다.

    “그런데 후작님, 오늘의 영웅을 데리고 어째서 여기로 오셨습니까?”

    “후작 대리가 피곤하시다고 한다. 그리고 케이네양도. 쉴 곳을 배정해주겠는가?”

    “아, 두 분 모두 피곤하실 만도 합니다.”

    라트야 말할 것도 없고, 케이네의 사정 역시 들어서 알고 있기에 벨크론 자작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겐! 두 분을 응접실 근처에 있는 방 중에서 가장 좋은 방 두 개를 배정해드리게!”

    루아타 공작이 무례한 행동과 약탈은 삼가라고 했기에 왕족이 쓰는 방과 켈랑 측 귀족이 사용하는 방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왕성에 있는 방은 셀룬의 귀족들이 전부 한 방씩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았다.

    병사들은 왕성 바깥에서 천막을 치고 자겠지만, 귀족들은 왕성에 혹시나 남아있을 위협을 모두 제거하고, 비밀 포탈까지 처리한다면 오늘밤 편안하게 피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아, 저는 천막에서 자도…….”

    응접실 근처의 방이라면 타국의 귀족들이 머무르는 방으로 왕성에서도 굉장히 좋은 방이었다.

    한 것도 없는데, 그런 방에서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 케이네는 거절의 의사를 비치려 했지만, 말을 끝내기 전에 라트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냥 받아. 오늘 힘들었잖아.”

    “후작 대리의 말이 맞네. 케이네양의 컨디션은 굉장히 중요하다네.”

    세르먼트 후작이 라트의 말에 동조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케이네양이 없었더라면 파손된 화약 무기나, 부서진 병장기들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했겠는가. 케이네양은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않았지만, 기느투스 후작님과 함께 이 전쟁에 숨은 공신이라네. 그러니 오늘만큼은 편히 쉬게나.”

    오늘 힘들었으니까 편한 방에서 쉬라고, 감정에 의해 말한 라트와 달리 세르먼트 후작의 말은 논리정연하게 케이네가 좋은 방에서 머무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케이네의 성격을 고려하면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야 납득할 터.

    라트가 그냥 방을 받으라고 했을 때는 그럴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케이네가 후작의 설명을 듣자 아무런 말도 못하는 중이다.

    ‘후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알겠지?”

    “예…….”

    이리도 합당한 이유를 대니, 케이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에 케이네의 반발을 잠재운 세르먼트 후작에 언변에 감탄하던 중, 이내 안내를 맡게 된 병사가 다가왔다.

    “안내를 맡은 켄이라고 합니다! 따라와 주십시오!”

    거참 목소리 우렁차다. 그렇게 생각하며 라트는 병사를 따라 오늘 밤 머무를 곳에 도착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왕성을 정리하느라 바쁜 와중에 안내를 맡았으니, 오죽 급할까. 라트는 손짓으로 그에게 가보라고 한 후 케이네에게 다가갔다.

    “괜찮은 거 맞아?”

    유난히도 말이 없는 케이네가 걱정되었다.

    “괜찮……아.”

    ‘괜찮기는.’

    이제야 몸을 떨기 시작하는 케이네를 바라본 라트는 눈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제야 체감되기 시작했으리라.

    그리고 되뇌겠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 장면을.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

    사과 말고는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왜 누나를 구해준 라트가 미안해하는 거야?”

    떨리는 몸이 애처롭게 보임에도, 케이네는 담담히 말한다.

    “용사님 같았어.”

    “용사는 무슨.”

    이어지는 말에 라트는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자신은 용사가 아니다. 용사는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웅이다. 그런 자와 자신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 용사에게 실례다.

    “그렇지만, 누나를 멋지게 구해줬잖니.”

    “그건 누나니까.”

    케이네는 모르겠지만, 라트에게 있어 케이네라는 존재는 목숨보다 큰 존재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구한다. 숨을 쉬듯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약속했잖아. 위급하면 도와주겠다고.”

    “그런 약속이 아니었잖아.”

    런트에 도착하기 전날 밤, 케이네가 위급하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길드의 일이 다급하면 도와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적어도 케이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누나가 위급하면 어떤 상황이든 도와주겠다고 생각하고 약속한 거였어.”

    진심으로 신께 맹세하건데.

    “누나는 나한테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줄게.”

    이 말은 진심이다.

    “그러면 안 돼. 라트는 엘리를 생각해야지.”

    라트의 말에 케이네는 웃으며 그리 말했다. 그 웃는 얼굴에 슬픔이 보이는 건 왜일까.

    “엘리는 엘리고, 누나는 누나야.”

    엘리가 위험하다면 엘리를 구한다. 케이네가 위험하다면 케이네를 구한다. 둘 다 위험에 빠졌다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두 명 모두 구한다.

    그것이 낯선 세계에 떨어졌음에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자신을 보듬어준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 라트의 신념이었다.

    “날 생각해서 태연한 척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이제 제발, 괜찮은 척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무서워. 누나가 거기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다리가 풀릴 거 같아.”

    무서워서, 뒤늦은 충격과 공포 때문에 가련히 몸을 떨고 있으면서 태연한 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 앞에서까지 숨기지 마.”

    표현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받아줄 수 있으니까. 그 날 밤, 케이네가 제스맹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울부짖었던 라트를 받아줬던 것처럼.

    “울어도 돼, 누나.”

    그 말이 끝나게 무섭게 케이네는 라트의 품에 안겨,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어댄다.

    조금씩 가슴 부근 젖어오는 것으로 케이네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안 라트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무서……웠어. 라트가 오우거한테 맞아서 날아……갔을 때부터 너무 무서웠어.”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다.

    “내 동생이 죽었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머릿속이 캄캄해졌어.”

    진실을 고백한다. 라트가 성벽에 처박혔을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그 상황을 떠올리면서 고한다.

    “그런데 오우거가 내 앞으로 다……가오니까.”

    거대한 몬스터가 자신을 먹으려고 했다. 그 순간, 살아 생전 처음으로 죽음을 직감한 순간을 회상하며.

    “정말, 정말 무서워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거짓을 고백한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은 아니면서, 라트가 생각난 주제에.

    라트가 자신을 밀어낼까봐, 그가 자신을 부담스러워 할까봐 거짓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마냥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의 손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케이네의 눈물이 더욱 굵어졌다.

    그래 이걸로 충분하다. 그의 품에 이렇게 안겨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리 생각하며, 케이네는 라트의 품에서 참아왔던 죽음의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마음을 차마 고백하지 못해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의 눈물은 알았겠지만, 그 안에 깃든 슬픔의 눈물은 라트가 알지 못하기를 바라며. 그의 따스한 온기에 온 몸을 맡기고 구슬피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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