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8화 (11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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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개를 상대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그것보다는 저 광견이 날려버린 수인족 여자를 찾아 죽여야 한다.

    그 여자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렸으니까. 여기서 살려두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직감이 알려왔다.

    “암살자한테, 등을 보여? 이 미친 새끼가.”

    브라일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커억.”

    살을 꿰뚫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죽음이 태연히도 찾아왔다.

    “늦으셨네요. 너무 늦으셔서 제가 다 정리했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전직 켈랑의 방패께서 상처 입은 광견을 못 막을 리가 없으니까.

    급히 달려왔는지, 아니면 전방에서 목도한 그 소름끼치는 현장 때문인지, 얼굴이 벌겋게 변해있는 미르차르드 후작을 바라본 라트는 그의 검에 가슴이 꿰뚫린 브라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암살자가 얼마나 흥분했으면 옆에서 누가 오는지도 모를 수가 있는지.”

    “후…작, 이게 무…슨 짓이냐.”

    뜻밖의 배신에 브라일은 새빨갛게 변해, 피눈물을 흘리며 미르차르드 후작을 노려본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더러운 쓰레기야.”

    “크어어억!”

    후작이 가슴에서 검을 빼내자, 브라일은 바닥에 쓰러져 입에서 피를 토한다.

    “아무리 태자님 아니 루만의 지시가 있었다지만, 이런 더러운 작전에 동의해? 아니지, 네 놈은 이런 작전도 괜찮았겠지! 출신부터가 더러웠으니까!”

    후작이 분노를 내뱉으며 검을 들어올린 순간 라트의 대검이 그의 행동을 막아세웠다.

    “설마 자네, 이런 쓰레기를 살려두겠다는 거냐?”

    “아니요. 마무리는 제가 하고 싶어서요.”

    ‘경험치를 남한테 줄 수는 없잖아.’

    “아. 과연.”

    눈앞에서 백성들이 괴물에 매달려 살라달라고 비명을 지르던 참혹한 현장을 목도한 후작은 이를 갈면서 브라일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이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원래 라트가 상대하던 걸 자신이 갑자기 나타나서 가로챈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리고 눈앞에서 이 쓰레기가 죽는 것만 볼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하게나.”

    미르차르드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브라일을 죽이는 걸 허락하자, 라트는 대검이 태양을 가렸다.

    “잠깐, 나를 살려주면!”

    “닥쳐.”

    브라일이 목숨을 구걸하기도 전에, 라트의 대검은 사신의 낫이 되어 그의 목을 베었다.

    [노르스 대륙의 전설적인 암살자, 그림자 까마귀의 단주 브라일 셸 로다크를 파티 없이 홀로 죽이셨습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의 업적을 칭송할 것입니다. 칭호 ‘죽음에게 죽음을.’을 획득 하셨습니다]

    [최단기간에 네임드 Npc를 죽이셨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이루신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랜덤 희귀 기능팩이 지급되었습니다]

    “엥?”

    “왜 그러나.”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알림창을 다시 살펴보면서도 라트는 후작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원래 레벨 업 표시는 안 뜨는 게임이니까, 레벨 업을 했다는 표시가 뜨지 않은 것에 놀란 건 아니었다.

    ‘랜덤 희귀 기능팩이라고?’

    그냥 랜덤 기능팩이라면 모를까, 컴퓨터로 월드 세리아를 했을 때는 희귀 기능팩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보상이 왜 바뀌었지?’

    잠시 고민을 하던 라트는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파티 없이 솔플로 브라일 같은 네임드 Npc를 처리하면 보너스를 받는다.

    미르차르드 후작은 어디까지나 중간에 난입했을 뿐이니, 라트와 파티가 아닌 걸로 판정된 모양이다.

    ‘거기에. 최단기간 보너스 때문인가.’

    정상적으로 게임을 했다면 지금 이 시기면 절대로 혼자서는 브라일을 이기지 못한다. 아니 브라일과 만난 순간 게임 오버라고 생각하고, 불러오기를 해야 했겠지.

    그런데 이 기간에 혼자서 브라일을 처리했으니,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고 이런 보상을 준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 이런 보상은 다시 없겠지.

    ‘아, 맞다. 옛날에 무색의 연금술을 배웠을 때 얻은 랜덤 기능팩도 안 깠지.’

    인벤토리를 열어 구석에 방치되어있는 랜덤 기능팩을 본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굉장히 바빴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중에 한 번에 까기로 하고.’

    지금 당장은 기능팩보다는 케스를 쫓는 게 먼저다. 살려두자니 거슬려, 그리고 케이네를 울린 대가도 받아야한다.

    “어디로 가려고?”

    라트가 런트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니, 미르차르드 후작이 의문을 표했다.

    “몬스터 테이머가 도망쳤습니다. 쫓아서 죽일 생각입니다.”

    “그 고양이가 도망쳤다고?”

    “예.”

    “그럼 쫓을 필요 없네.”

    “예. 아니 네?”

    케스를 쫓을 필요가 없다고 단언하는 후작의 말에 라트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니 그걸 왜 댁이 결정하는 건데?

    “이미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쫓으려고 그러나. 어디로 갈지야 대충 예상이 되네.”

    “어디로요?”

    켈랑의 수도인 런트가 점령됐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겠다고? 부족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그렇게 되면, 라트가 아무리 용을 써도 지금 당장은 찾을 수 없게 될 터다.

    부족으로 돌아가기 전에,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아직은 이 근처에 있을 그년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아마 호르토 공작에게 갔겠지.”

    “아.”

    후작의 말에 라트의 입에서 감탄이 흘렀다. 호르토 공작. 루아타 공작과 마찬가지로 켈랑 왕국의 유일한 공작이었다.

    셀룬과 달리 단합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그 국왕이 무능한 이유도 있겠지만, 호르토 공작을 필두로 한 귀족파가 국왕의 명령에 제대로 순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웃기게도, 루만 태자는 그 귀족파를 등에 업고 있었다. 말이 귀족파지, 정확하게 말하면 호르토 공작의 파벌은 국왕파가 아닌, 태자파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 년을 켈랑 왕국으로 데려온 게 호르토 공작이었지.’

    “국왕 폐하는 왕성에 계시겠지만, 아마 루만 태자는 벌써 왕성에 숨겨진 포탈을 타고 그쪽으로 도망쳤을 걸세.”

    과연 호르토 공작의 영지로 도망쳤다면, 지금 당장 쫓는 건 무리가 있다. 아니 사실은 지금 당장 케스를 쫓는다고 해도 그녀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희박했다.

    케스가 몬스터 테이머라고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 수인.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좋은 종족이다.

    브라일이 집어던진 거리도 거리거니와, 브라일 때문에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에 케스는 이미 저 멀리까지 도망쳤으리라.

    이성이 돌아오자, 라트는 상황을 파악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한 것 같군.

    “뭐, 당장은 포기할 수밖에요. 감사합니다, 붙잡아주셔서.”

    후작이 아니었더라면, 케스를 쫓는다고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부대를 이탈했을 거고.

    “저기,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뭡니까. 아니, 잠깐만! 고개는 들어주시고.”

    후작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자, 라트는 잠시 당황했다. 무슨 부탁을 하려고 오러 마스터가 고개까지 숙인단 말인가.

    “런트가 함락된 이상 켈랑은 이제 끝이다. 그리고 나는 자네와 한 맹세 때문에 이제부터 셀룬에 투항할 생각이다. 더욱이 저런 짓까지 벌인 태자 저하, 루만에게 충성하고 싶지도 않다.”

    루만 태자에게 태자 저하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싫다는 듯, 후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국왕 전하, 아니…….”

    이번에는 일그러졌던 표정이 조금 더 일그러진다.

    평생토록 충성을 맹세한 왕이나, 이제는 아니다. 그렇기에 일그러졌다. 국왕 전하라는 단어는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었으니까.

    “켈랑의 국왕은 다르다. 그분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셨을 뿐. 평화의 시대였다면 성군이라고 칭송받으셨을 분이다.”

    이제는 자신의 왕이 아니다. 그러나 충성했던 마음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 국왕의 입김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음을 알기에, 평생을 충성했던 마음이 남아있기에.

    “루아타 공작에게 부탁하여, 국왕의 목숨만은 살려다오. 부탁하겠다.”

    고개를 숙여 충성하는, 충성했던 왕의 목숨을 구걸했다. 얼마나 치욕스러운 부탁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굉장히 무리한 부탁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바이올런과의 약속에 의해, 충성의 서약이 깨지기는 했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있음에도 왕께서 죽는 상황을 감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뭐야, 그런 부탁이었어?’

    후작의 부탁에 라트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시나리오 상 셀룬이 켈랑을 이겨, 켈랑의 국왕을 포로로써 파르스로 이동시킨다고 해도 그는 죽지 않는다.

    셀룬의 국왕인 오케만 그라이틴 제르만 셀룬은 상당한 평화주의자이며 같은 성향을 띈 켈랑의 국왕, 셀틱 루크 판게르 켈랑과는 자주 서신을 주고받았던 사이다.

    그러니 켈랑의 국왕이 포로로 이송되도, 그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오케만은 셀틱을 성대하게 맞아주었고, 그가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같은 평화주의자임에도 오케만과 셀틱이 다른 점은 단 두 가지. 오케만은 전쟁의 시대에서도 노련하게 움직였고,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 자신의 편이었을 뿐.

    그러니 후작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잘 부탁드려보겠습니다.”

    허나, 이걸 그대로 말할 생각은 없다.

    대외적으로 셀룬과 켈랑의 사이가 나빴기에 두 국왕끼리 서신을 주고받고 있다는 건, 비밀리에 이뤄진 일이다. 루아타 공작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나야 좋지.’

    바이올런의 종속에게 기사의 맹세를 받아냈다지만, 지금 후작과의 관계는 말하자면 계약 관계다. 그러니 후작이 라트에게 감사를 느끼면 좋으면 좋지, 나쁜 일은 아니다.

    “감사하오.”

    한 때 후작이라고 불리던 오러 마스터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모자라, 무릎을 꿇고 라트에게 감사를 전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하오.”

    ‘아니 제가 말한다고 살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너무 감사해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는 눈물까지 흘리며, 바닥에 머리를 찍는 중인 후작의 모습에 부담을 느낀 라트는 후작의 팔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시죠.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하대해주십시오.”

    “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십니까.

    “저는 이제 셀룬에 투항할 자. 이제는 작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셀룬의 국왕 폐하와 라트님께 지금부터 충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 말에 라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라트와의 맹세로 인해 셀룬에 투항했다고 말하면 그 누구도 후작이 셀룬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바이올런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니까.

    배신할 걱정이 없는 오러 마스터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있나. 후작까지는 어려워도 백작 작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적이었다면 모를까, 아군인 어르신에게 하대를 하는 건 한국에서 살아, 유교사상에 배운 라트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으.”

    “당장 어려우시면, 차차 해나기시면 됩니다.”

    아니, 힘을 빌려달라고 한 건 어디까지나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 충성을 맹세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다.

    “일단 지금 당장 하대를 하는 건 무리니까 그냥 넘어가주세요. 전방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쯤이라면 정리되고 있을 겁니다.”

    라트의 몸이 조금씩 떨린다. 나이를 지극히 드신 어르신께서 자신에게 존대하는 것도 어색해 미칠 거 같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하대를 하라고 하면, 미르차르드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할 게 뻔했기 때문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며 이 어색함에 빨리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다.

    “후방에 있던 적은 전부 처리한 거 같으니까, 전방으로 가죠. 아, 그 전에 잠시만.”

    미르차르드와 함께 전방으로 가려던 라트는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는 듯,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위협이 될 것이 없기에 병사들의 혼란이 빠르게 잦아들고 있는 중이다.

    ‘누나를 데려가야겠어.’

    오늘 케이네가 라트의 눈앞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후방에 있는 게 당연히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두 번이나 전투에 휘말렸다.

    이럴 바에야 케이네를 전방에 있게 하고, 루아타 공작에게 케이네를 부탁하는 게 나을 거다.

    케이네는 제스맹의 첫 번째 제자이니 루아타 공작도 이 부탁은 들어줄 거다.

    ‘진작 그럴 걸.’

    엘리가 루아타 공작에게 보호를 받고 있다지만, 마냥 보호를 받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마법사이니만큼 엘리 역시 적군에게 마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후방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후방을 습격한다고 해도, 케이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달려갈 자신도 있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루만 태자가 얼마나 잔혹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은 라트는 케이네와 함께 전방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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