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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7화 (11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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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브라일이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라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여유로이 떨어지는 케츠를 바라본다.

고양이 수인이니까,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별 다른 상처는 입지 않을 거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거기까지 생각하고.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때 그 아래 촘촘한 가시밭을 만들어 두었다. 저 정도라면, 죽지는 않아도 몸은 성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브라일은 아직까지, 케츠를 살려두고 싶어하는 낌새였으니까.

“쯧.”

라트의 예상대로 사라진 브라일은 케츠의 곁에서 나타나더니 그녀를 품에 안고 가시밭으로 떨어졌다.

“얼른 좀 꺼지라니까, 방해되잖아. 이 쌍년아.”

가시밭으로 떨어졌음에도 몸에 상처 하나 없이 건재하다.

“죄송합니다.”

브라일의 품에서 떨어진 케츠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려고 했지만, 라트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브라일의 등장 때문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이었을 뿐이다.

라트는 케츠를, 케이네를 죽이려고 한 여자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만연하라.”

다시금 땅이 움직여 바위로 만들어진 거대한 주먹이 생겨나 케츠의 몸을 노리자 브라일은 눈을 부라리며, 라트에게 달려가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묵직한 바위 주먹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 일격에 바위 주먹이 부서진다.

“만연하라.”

상관없어, 이번 공격은 막힐 거라고 예상 했으니까. 다시 한 번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한다. 이번에는 부서진 바위의 파편을 연성해서 가시를 만들어 케츠를 노린다.

그러자 브라일은 자신의 몸을 날려 케츠를 보호했다.

“귀찮게 하네.”

“죄송합니다, 단주님. 저 때문에.”

“죄송한 거 알면 닥치고 있어!”

브라일이 이를 갈며 화를 내자, 케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어디 한 번 계속 지켜봐라.’

브라일에게 질 생각은 없지만, 귀찮게 계속 싸워줄 이유가 없다.

본대의 지원이 도착하면 이 상황은 어떻게든 정리가 될 테니까. 분노한 미르차르드 후작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만연하라.”

계속해서 쏟아지는 공격에 케츠를 보호하기 위해 정신없이 몸을 날리던 브라일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케츠를 노려보았다.

“이게 다 니가 여기 있어서 그런 거지? 내가 저 놈이랑 못 노는 것도, 너를 지켜야 되는 것도.”

“예?”

“니년만 없으면 되는 일이잖아. 그렇지?”

브라일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케츠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목덜미를 잡았다.

“꺼져!”

그러더니 저 멀리까지 그녀를 날려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라트가 어떻게 할 겨를도 없었다.

‘이런.’

무색의 연금술 범위도 상당히 늘어났다지만, 브라일이 그녀를 날린 곳까지는 닿지 않는다.

“저런 무식한 방법을.”

케츠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기에 너무 많은 걸 말했다. 그래서 브라일을 무시하고 그녀를 따라가려던 라트는 걸음을 멈추고 검을 들었다.

“어딜 가려고. 나랑 놀아야지.”

주먹으로 쇠를 쳐서는 결코 날 수 없는 소리가 요동친다.

‘조금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이번에는 대비를 하고 막았기에 아까처럼 밀려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몸이 밀려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아까 막은 주먹이 전력을 다한 주먹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놈의 힘은 똑같아. 그렇다면 몸의 변화가 서서히 풀리고 있는 건가.

“어딜 보냐.”

‘미친!’

“켁.”

이번에는 바로 뒤다. 검을 곧바로 회수해서 등을 막았지만, 충격을 온전히 흡수할 수가 없어 입 밖에서 조그마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것도 막을 수 있냐?”

일부러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듯, 공격하기 전에 목소리를 내는 브라일의 행동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고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들려오는 건, 허공을 가르는 소리일 뿐. 그리고 반대쪽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컥.”

이번에도 조그마한 비명, 그러나 바로 앞의 비명과는 전혀 다른 비명이었다. 조금 전의 공격은 그냥저냥 충격을 받았기에 신음을 삼켰을 뿐이지만, 이번 공격은.

제대로 비명을 지를 수 없을 정도의 음산한 고통이 머리를 흔들었다.

“병신이야? 암살자를 상대로 목소리에 의존해서 검을 휘둘러?”

고통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브라일의 모습을 볼 수조차도 없다.

겨우 한 방, 미스릴 갑옷으로 온 몸을 보호하고 있는데도 겨우 한 방에 이렇게 된 건가?

“만연하라.”

이대로 접근전을 계속하면, 놈에게 놀아날 뿐이다.

몸의 변화가 서서히 풀려감에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저 녀석을 상대하려면 접근전은 피해야했다.

“어이쿠!”

브라일은 장난처럼 솟아오르는 가시와 내뻗어지는 주먹을 피한다. 그렇지만 함부로 라트에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그의 앞까지 수많은 가시들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아니,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실례겠지. 마음만 먹으면 가시 따위 몸으로 부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괴물이 바로 이 사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라트와 놀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가?

“하아. 미르차르드 후작하고 싸울 때랑 왜 느낌이 다르지.”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마신다.

“마력석도 갈아놔야겠어.”

인벤토리에서 마력서을 꺼내, 오우거와 싸울 때 사용했기에 마나가 사라진 마력석을 갈아 넣는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라트는 한숨을 내쉬며 브라일을 바라보았다.

‘싸울 맛이 나지 않아.’

미르차르드 후작과 싸울 때는 온 전력을 다했다. 승리하고 싶다는 갈망 아래, 모든 것을 쥐어짜냈다. 그러나 브라일을 상대로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신성 스탯 때문에 몸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야.’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후작과 싸울 때는 이렇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 질 수도 있는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래서 몸을 떨었다. 전투의 환희에 전율했다. 그런데 어째서 브라일을 상대로는 그렇지 않은가.

그의 전력이 미르차르드 후작과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포션 다 마셨고, 담배도 피기 시작했으면 어서 날 즐겁게 해주라고, 이 새끼야!”

어느 새 앞으로 다가온 브라일 주먹을 몰아친다. 하나하나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정권.

인간임에도 인간 같지 않은 괴물.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상대와 싸우고 있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죽는 상황인데.

‘어째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거야?’

“요리조리 피하지만 말고, 놀아달란 말이야!”

“후우.”

놀아달라는 건가. 그 말에 라트는 인상을 쓰더니,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입 밖으로 뱉어 폭발을 일으켰다.

“시발, 존나 아프네! 그래,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그래야 재밌지!”

폭발에 일어나자마자, 뒤로 물러선 브라일은 폭발 때문에 살짝 부서진 팔찌를 바라보며 웃더니, 라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집중해도 그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몸이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간 건가. 아니야, 아직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암살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인 은신이다.

“만연하라.”

시력으로 그를 따라갈 수 없다면, 그의 공격을 막아야하는 입장이라면 라트가 불리하다.

그렇다면 어디서 튀어나와도 공격할 수 있게 자신의 사방에 돌로 만들어진 가시를 두른다.

‘이렇게 하면 날 공격하기 전에 가시가 부서지겠지.’

이런 가시로는 브라일의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음을 안다. 그저, 브라일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기 위한 덫일 뿐.

왼쪽에 있던 가시들이 부서지자, 라트는 곧바로 그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땡! 틀렸어, 병신아!”

마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검이 허공을 갈랐고 동시에 오른쪽에 있는 가시들이 부서지기 시작하며 브라일이 모습을 드러내며 웃으며 주먹을 휘둘렀고.

“후우.”

라트 역시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한 번 당한 패턴에 또 당할 리가 없잖아.’

쏟아지는 담배연기로 주먹 근처에 조그마한 폭발을 일으키자, 궤도가 틀어진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라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브라일의 당황한 표정이 시야에 비춰진다. 반격의 시간을 주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검을 들어올린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거칠게. 적에게 공격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맹렬이 퍼부어라.

“크윽!”

브라일은 라트의 공격을 팔찌를 이용해 막아내면서, 침음을 내뱉었다. 무식한 공격이다. 저렇게 무식하게 공격하면 빈틈이 노출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빈틈을 공격할 시간이 없다.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급급하다. 빈틈이 보이는 곳을 공격한 순간, 몸이 베인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이 무술의 기본. 그렇지만 지금 라트가 펼치고 있는 검술은 빈틈을 보이는 곳까지 고려한, 빈틈이 보임에도 빈틈을 공격할 수 없는 검술이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조금 더 흉포하게.

“조금 더!”

상대를 죽이겠다는 원념을 담아서!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이대로라면 뒤로 물러서지 않는 한, 라트의 공격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브라일은 짜증난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한손으로 라트의 대검을 잡아챘다.

손에서 조금씩 피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검을 잡은 이상 검술을 펼칠 수 없다. 그렇기에 브라일은 웃었다.

“이제 내 차례다, 십새끼야.”

브라일이 다른 한 손으로 회심의 정권을 내지르려고 할 때.

“아직 내 차례다.”

라트는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검신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대검이 타오르듯 붉게 달아올랐다.

폭발의 위력 덕분에 한 순간 브라일의 악력보다 검을 내리치는 힘이 더욱 강해져, 대검은 그대로 브라일의 손을 찢고 그의 가슴을 찢어 내렸다.

“으억.”

어마어마한 통증에 브라일은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검을 잡아챘던 왼손을, 대검에 당한 가슴을 내려다본다.

왼손은 신법으로 치료받지 않는 이상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가슴에 짙은 검상이 새겨져, 피가 흘러 나온다.

“이 개새끼가.”

애당초 브라일에게 있어, 라트와의 싸움은 잠깐의 유흥이었다. 이 유흥을 즐기고, 셀룬의 후방 병력을 모조리 척살하는 게 그의 진짜 목적이었지만.

“왕국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너만 죽이다.”

장난감, 얕잡아보고 있던 상대에게 일생동안 다시없을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분노했다.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해간다.

지금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던 살기가 내뿜어져, 라트의 피부를 찌른다.

거대한 살기 앞에 놓인 라트는 피부가 따끔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위급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을 고수한다.

알았다.

어째서 브라일을 상대로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지. 미르차르드 후작 때와 다르게 어째서 흥분이 되지 않는지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너는.”

몸의 변화 때문에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는 것보다 브라일을 상대하는데 수월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케이네가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는 바람에 분노에 의해 이성이 살짝 맛이 가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상대에게는 없고, 미르차르드 후작에게는 있었던 것이 라트를 전율시키게 했을 뿐.

“너는 아무것도 없어.”

그는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암살자이기에 명예가 없다.

저 남자에는 긍지도 없다. 켈랑 왕국을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긍지조차 없다. 그저 싸우고 싶어서 살아갈 뿐이다.

신념도, 신조도, 의무감도 없다. 그저 있는 것이라고는 조약한 자만과 오만. 그리고 재미에 의해 파생된 투쟁심 뿐.

에스페와 처음 만날 날 마주했던, 그 흑마법사 새끼들하고 똑같은 부류다.

아니 그보다 질이 나쁘다.

“뭐?”

“나에게 부딪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그 흑마법사 새끼들은, 그리고 광신도 놈들은 나름의 목적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어떤가.

그에게는 어떤 목적조차 없다. 그저 명령에 따르고 싸우고 싶을 뿐인 광견. 그래 광견일 뿐이다.

“개랑 인간의 싸움이니, 재미가 없지.”

조용히 읊조리며, 라트는 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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