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6화 (1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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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석벽을 무너트리고 살아남은 인간을 덮쳐 먹어치우기 위해, 혹은 죽이기 위해 달려들던 몬스터들의 발밑에서부터.

수많은 꼬챙이가 대지로부터 솟아올라, 평평하던 대지 위에 가시지옥이 만들어졌다.

“꿰에엑.”

“어, 오옥.”

여기저기서 몬스터의 비명소리가 무더기로 들려온다. 몇몇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다. 또 몇몇은 온기가 사라져, 싸늘하게 식어간다.

“이게 되네?”

말로 이뤄 설명할 수 없는 참혹한 현장.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가시 꼬챙이에 매달려 지상 위로 올라가 피를 흘리며, 내장을 쏟으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라트는 웃었다. 현재 라트의 마나가 상당히 높기는 하지만, 이정도 대규모 연성을 하는 건 무리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이 연성의 1/3 정도나 할 수 있을까?

‘달라.’

오우거를 죽였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다.

자신의 근력 스탯이 높다고는 하지만,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오우거와 힘 싸움을 하는 건 어려운데 그런 오우거를 힘에서 압도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분노 때문에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머리가 조금 차가워진 지금은 이상함을 느낀다.

‘강해졌어. 아니, 강해진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인데.’

이렇게 순식간에 갑자기 강해질 이유는 없다. 그리고 지금 이 기분은 강해졌다기보다는.

‘힘이 강해진 게 아니라, 힘은 같은데 출력이 강해진 느낌인데.’

힘을 폭약이라고 치고, 라트를 대포라고 치면, 폭약은 그대로인데 대포를 최신식으로 바꾼 기분이었다.

‘설마 신성 때문인가?’

신성 스탯이 올랐다는 알림창이 뜬 걸 기억해낸 라트는 이 변화가 신성 때문이라는 걸 직감했다.

‘뭐, 이건 나중에 에스페한테 물어보기로 하고.’

숲의 현자라면 무언가 알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라트는 이런 상황임에도 그레이트 웜의 위에 도도히 서있는 몬스터 테이머를 바라보았다.

물론 도도히 서있기만 할 뿐, 로브에 가려진 그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어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시지옥 사이를 걸어간다. 상대가 충분히 절망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가시지옥을 넘어 그레이트 웜 앞에 당도하자 여자는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루만 태자의 작전은 나름대로 완벽했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젊은이지만, 머리만큼은 비상했다.

메아리치는 밀림에서 적의 전력을 확인하고 이번 작전을 세웠다.

여자는 이 작전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셀룬의 군세 중 하나를 격퇴할 수 있는 작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작전이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가. 고작 한 명, 그 한 명 때문에 비장의 한 수가 최소한의 피해조차 주지 못한 채 와해되었다.

루만 태자의 말에 따르면 이 남자는 겨우 오러 익스퍼드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건 오러 익스퍼드 정도가 아니라, 오러 마스터 정도잖아.’

“내가 누군지는 니가 알 거 없고.”

라트는 싸늘하게 웃으며, 그녀를 조금 더 비참하기 만들기 위해 말을 이었다.

“묘인족 년이 인간 밑에서 설설 기고 있다니, 니 조상님들이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하시겠다.”

“어, 어떻게!”

당황하는 묘인족 여인을 보고 라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당연히 알고 있지. 나는 이 게임의 거의 모든 걸 알고 있으니까.

단 한 가지, 진엔딩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제외하면 모든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름은 케스, 나이는 대략 150세. 루만 태자에게 묘인족이 살아갈 곳을 받는 대가로 봉사 중. 맞지?”

묘인족 여인, 케스는 입을 다물었다. 이 정보는 루만 태자와 그림자 까마귀 중에서도 간부들 밖에 모르는 정보다.

그런데 어떻게 적국의 남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설마 간부들 중에 첩자가.’

“니 생각과 달리, 첩자같은 건 없다.”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라트는 첩자가 없다고 단언했다. 첩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라트는 그저 아는 사실을 입에 담고 있을 뿐이니까.

“그럼 어떻게…….”

“그럼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넌 알 거 없어.”

웃음을 지우고,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한다.

“넌 여기서 죽을 거니까.”

“그건 조금 곤란해. 그녀는 소중한 자원이거든.”

“어?”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부터 일렁이는 투지를 느낄 수 있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자 라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내 옆에 있었던 거지?’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검을 들어 올려 세움과 동시에 남자의 주먹이 라트의 검을 때린다.

“큭.”

이 무슨 무지막지한 힘. 오우거를 넘어선 힘을 보였던 라트가 공중에 떠서 밀려날 정도라니.

“와, 씨발. 이걸 막았어?”

라트가 밀려난 건 전혀 놀랍지 않고, 막았다는 것에 관심을 둔 남자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너냐.’

보라색 눈동자, 검은색 머리. 근육으로 뒤덮인 거구의 몸. 저런 조합을 보고 연상할 수 있는 자는 이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이다.

‘단주가 왜 여기 있어?’

라트가 항상 괴물이라고 불렀던 그림자 까마귀의 단주였다. 전방에 있거나, 왕성에 숨어서 별동대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곳에 있을 줄이야.

절대로 여기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방심했다. 그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놓고 있었다.

‘돌겠네.’

그림자 까마귀의 현 단주, 브라일 셸 로다크. 그레이트 웜과 오우거보다 더 괴물 같다고 부를 수 있는 자.

노르스 대륙 최강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그리고 그 이명에 합당한 힘을 가진 자. 검을 내리고 상대를 응시한다.

“영감을 이겼다기에 조금 하겠거니 했는데, 이제 보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닌데? 와 존나 놀랍네?”

경박하게 말하며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손을 멈추고 브라일은 씨익 웃었다.

“죽일 생각으로 때렸는데 그걸 막다니, 이런 깜찍한 새끼를 봤나.”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그 모습에 라트는 혀를 찼다. 그의 경박한 말투가 거슬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있으니까 진짜 어처구니없네.’

브라일에게서는 마나도, 오러도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질 리가 없다. 그는 마나가 없는 특이체질이니까.

월드 세리아의 설정 상 인간이라면 선천적으로 마나가 존재한다.

그 마나를 주문을 이용해 변화시켜 마법을 사용하는 게 마법사. 그리고 마나를 극한까지 단련시켜 오러로 승화시키는 게 오러 유저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나가 없는 특이체질이었다. 마나가 없으면 안 좋은 게 아니냐고?

그래 평범한 인간에게 마나가 없었더라면 안 좋았겠지. 그러나 브라일에게는 두 가지 재능이 있었다. 하나는 순수한 신체의 힘.

‘마나도 오러도 없이 순수하게 힘으로 오우거 로드를 압도할 수 있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거다.’

오우거는 물론이오, 통상적으로 일반 오우거보다 10배는 강하다고 평가받는 오우거 로드를 무기도 없이 때려잡은 인간.

월드 세리아에서 오우거보다 힘이 강한 몇 안 되는 인간이 바로 눈앞의 남자였다.

“응?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뭘 그리 빤히 쳐다봐. 설마 너 호모냐? 뭐 호모면 나를 바라봐도 이해할 수밖에. 내가 얼굴은 자신 있거든.”

경박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눈은 오랜만에 먹잇감을 만난마냥 번뜩이고 있다. 그럼에도 살기 한줌도 느껴지지 않는다.

브라일의 두 번째 재능이 바로 이것. 암살자의 재능이다.

‘이게 노르스 대륙 최강의 암살자라는 거지?’

눈앞에 실존함에도 그 기운을 잡아낼 수조차 없다. 설정 상 분명 경화수월의 경지라고 했던가.

“뭐야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새끼, 설마 나한테 반한 거냐?”

“좀 닥쳐.”

브라일이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자, 라트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브라일의 등장에 다시금 짜증이 치민다.

케이네를 죽이려고 했던 년을 죽이기 직전이었는데, 이렇게 방해를 받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상대는 몬스터보다도 괴물로 평가받는 남자다.

예전이라면 저 괴물을 마주했을 때 죽었으리라고 직감했을 터다. 아니, 저 괴물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질 거 같지 않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일말도 들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래야 재밌지.”

라트의 표정이 일변하고, 살을 에리는 살기가 느껴지자 브라일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단주님. 제가 지원을!”

“닥쳐라, 암묘. 저건 내 거다.”

‘누가 네 거야. 난 엄연히 임자 있는 몸이라고.’

엘리라는 연인이 있는데 저런 근육질 거한에게서 내 거라는 말을 들을 줄이야.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소리다.

“내 먹잇감에 눈독 들이지 말고. 넌 후방에 있는 새끼들이나 쓸어버리고 있어. 아직 지원이 오려면 멀었으니까 최대한 피해를 줘.”

“그, 그렇지만.”

“빨리 처 안 가? 나중에 태자 놈한테 딴소리 듣기 싫으니까. 빨리 가라고.”

눈앞에 적이 있는데도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그리고 어딜 가겠다는 건가? 저 가시지옥 너머에는 케이네가 있다.

‘이것들이 나를 무시해?’

라트가 그레이트 웜이 날뛰게 내버려둘 리가 없는 건 당연지사. 가시지옥을 만드느라 마나를 거의 소모했기에 인벤토리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마신다.

“아, 연금술사라고 했지? 마셔, 마셔. 그래야 더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브라일은 어서 마시라고 손짓하며 여유롭게 라트가 포션을 마시길 기다려주었다.

“너 그러다 후회한다.”

“후회? 내가? 그럴 리가 없잖, 아!”

포션을 전부 마시자마자, 저 멀리 있던 목소리의 근원지가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빠르다.’

심지어 기척까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 뿐. 라트의 눈에 확실히 브라일의 모습이 보인다.

보이는 것 뿐 아니다. 저 움직임, 따라갈 수 있어!

“옷!”

라트가 대포와도 같은 정권을 피하고 검을 휘두르자, 브라일을 요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됐어.’

저 괴물이 진지하게 싸운다면 결코 뒤로 물러날 리가 없지만, 저놈은 아직 진지하게 싸울 생각이 없다.

먹잇감, 그렇게 불렀지. 브라일은 아직 라트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즐겁게 해줄 장난감으로 보고 있을 뿐. 그렇기에 뒤로 물러났다.

취급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뒤로 물러났으니 충분하다.

“만연하라.”

무색의 연금술을 펼친다. 목표는 브라일이 아니다. 저 괴물에게는 이런 식으로 무색의 연금술을 써봐야 통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목표는 그보다 더 뒤에 있는 몬스터다.

-케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악!”

그레이트 웜이 굉음을 내질렀고, 고통스럽다는 듯 몸을 흔들자 그 위에 있던 케스의 몸이 자연스럽게 지상으로 추락한다.

저렇게 덩치가 커서야, 그냥 되는대로 가시를 만들어 쑤시면, 꿰뚫릴 수밖에 없지.

“내가 그레이트 웜을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어? 유감~ 그런 일은 없어.”

“이 새끼가.”

비꼬는 듯이 말하는 브라일의 말투를 그대로 돌려준 라트가 비웃음을 날리자 날카로운 눈으로 라트를 노려보던 브라일의 신영이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아스트라님 후원쿠폰 총 35장 감사합니다. 제가 확인이 느렸네요. 글 올리고 잠들어버리는 게 현재 일상인지라...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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