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5화 (11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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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온 몸이 아프다. 특히 몸뚱이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떨려온다.

    ‘영문을 모르겠어.’

    오우거의 모습을 보고 병사들에게 후퇴하라고 말한 것까지는 기억한다. 문제는 그 다음. 그 이후 일어났던 일이 기억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런 꼴이다.

    ‘어두워.’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은 암흑의 도래.

    ‘설마 죽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니겠지. 스스로에게 던져본 농담에 피식 웃어버린 라트는 몸을 일으켰다. 아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지 않는다. 팔과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기도 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각났던 정신이 서서히 제자리를 되찾아가자, 격통이 찾아왔다. 배 쪽에서부터 울컥울컥, 무언가가 끓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퉤.”

    ‘피? 도대체 뭐에 당했기에 각혈을 해. 이 아픔은 또 뭔데? 잠깐만, 설마.’

    그제야 충격 때문에 잠시 잊혔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라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

    차가운 목소리, 그리고 살기가 잠식한다. 주변에 누가 있었더라면 만년설보다 차가운 살기에 몸이 얼어붙었으리라.

    “나 오우거한테 당한 건가?”

    짜증이 밀려온다. 자신이 오우거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확실히 오우거가 상당히 위험한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한 방에 이렇게 됐다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러 마스터를 이겼다고 자만하는 게 아니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전략의 차이였으니까.

    그러나 오우거는 달라. 지능이 있다지만, 겨우 어린 아이보다 지능이 못한 놈이다. 그런 몬스터에게 당했다니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단 한 방에 나가떨어져, 이렇게 꼴사납게 처박혀있다니.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하면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 나아가 지금까지 라트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굴욕이지 않은가.

    거대한 해안가에 밀물이 닥치는 것과 같이, 짜증이 머리에 잠식된다. 잠깐 뒤쪽에 신경을 쓴다고 한눈을 팔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꼴이라니.

    “죽여 버린다.”

    이 굴욕, 그 추악한 목으로 받겠다. 오우거 뿐만이 아니다. 오우거를 길들인 몬스터 테이머도 죽인다. 죽이지 않으면, 이 짜증이 가시지 않을 거 같아, 그렇기에.

    “만연하라.”

    욱신거리는 몸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성벽을 치우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도와줘!!”

    케이네의 비명이 귓가에 똑똑히 들려왔다. 오우거는 왜 저렇게 탐욕스러운 얼굴로 케이네에게 손을 뻗고 있다.

    거대한 주둥아리에 침을 흘리면서.

    그 모습을 본 순간, 라트의 이성은 완전히 끊어졌다.

    생각보다 몸이 앞선다.

    오우거의 손이 케이네에게 닿기 직전 그 손을 막아섰다.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케이네가 주절거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놓아버렸으니까.

    “야.”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현재 라트의 능력치로는 오우거와 힘대결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 세계에 오우거와 비등한 힘을 낼 수 있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청년은 오우거의 팔을 밀어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현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느낄 때 그들을 구했습니다. 평생토록 각인될 인생 깊은 행동입니다. 신성 스탯이 1 증가합니다]

    “니가 우리 누나 울렸냐?”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라, 트?”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뒷모습. 케이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라트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니가 우리 누나 울렸냐고, 이 새끼야!”

    “으어어어!”

    콰직!

    라트의 악력에 의해 오우거의 중지가 괴이한 모양으로 꺾였고, 이내 고통에 차오른 비명이 들린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거대하고, 심장을 소름끼치게 하는 소리에 많은 이들이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청년의 표정은 한결같이 차가웠다.

    “그래, 계속 소리질러봐, 아프다고 질질 짜보라고!”

    검지를 꺾자, 또다시 비명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오우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를 정도이것만, 라트는 싸늘히 웃으며 다른 손가락을 꺾었다.

    비명을 질러라, 추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너의 죄를 깨달아라.

    소리 없이 웃는다. 눈앞의 죄인을 벌하는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저 자신이 다쳤을 뿐이라면, 그래서 자존심이 긁혔을 뿐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겠지.

    케이네가 울었다. 소중한 가족이 울었다. 내 누나가 울었다. 너 때문에, 바로 너 때문에! 죽음의 공포의 앞에서 처연히 눈물을 흘렸단 말이다.

    그 사실에 분노한다. 이놈을 곱게 죽이기에는 짜증이 치밀어서, 그래서.

    “인간, 죽인다!”

    검을 들어 올려 광풍과 함께 내리치는 거대한 주먹을 가볍게 막았다. 조금 전 오우거의 발길질 한 번에 날아가 버린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

    단신으로 오우거를 압도하는 남자의 모습에 오우거의 함성 때문에 몸에 힘이 풀려 도망치지 못한 채, 이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남자가 보이는 신위에 감탄한다.

    한낱 인간이 거대한 오우거의 힘에 맞서고 있다. 아니, 맞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압도한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이 현상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표현해야하는가.

    “기, 적.”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온 단어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저 모습은 그야말로, 기적의 편린과도 같았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행동을 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당신의 행동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평생토록 각인될 것입니다. 신성 스탯이 1 증가합니다]

    “죽이는 건, 니가 아니라 나야.”

    슬슬 끝내도록 하자. 화는 덜 풀렸지만, 아직까지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케이네가 걱정되어 오우거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라트는 검에 힘을 줘 오우거의 주먹을 밀어냈다.

    동시에 자신의 앞에 있던 손을 쳐내고 섬광과도 같이 질주한다. 손을 밟고, 팔뚝을 타고 올라가 머리를 향해 뛰어오른다.

    “끅!”

    찰나의 순간,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라트의 모습을 발견한 오우거는 닥쳐오는 죽음에 겁에 질려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대검이 무심히 오우거의 얼굴을 내리쳤다.

    “아야!”

    역시 무린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우거의 얼굴을 바라본 라트는 쓰게 웃었다. 오우거의 피부는 굉장히 질기다.

    오러 익스퍼드의 오러 소드 정도나 간신히 자를 수 있을 정도.

    그러니 미스릴로 만들었다지만, 평범한 대검으로는 그 피부에 생채기 밖에 내지 못한다.

    “나 아프다! 인간, 죽인다!”

    그래서 오우거도 방어를 하지 않은 거겠지. 평생 동안 원래부터 강한 그 육신을 믿고, 단 한 번도 적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았을 거다.

    적이라고 인식한 상대를 만나본 적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적이라는 개념을 모르고, 죽을 테니까.

    “죽어.”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폭발 소리와 함께 검신이 붉게 달아오른다.

    마력을 머금은 이 대검의 위력은 오러 소드와 비슷해. 거기에 라트의 근력과 폭발의 위력이 더해져.

    “크어어어!”

    정말 허무하게도, 대검은 너무나도 손쉽게 오우거의 머리를 갈라버렸다.

    [최단기간에 단신으로 오우거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칭호 ‘오우거 슬레이어’를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누나 괜찮아?”

    지상으로 착지한 라트는 뒤쪽으로 쓰러지는 오우거와 칭호를 습득했다는 알림창에 관심도 주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케이네에게 급히 다가갔다.

    “응, 누난 괜, 찮아.”

    ‘괜찮기는.’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말하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는 주제에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괜찮다고 말하는 케이네의 모습에 라트는 입술을 씹었다.

    ‘저 개년 때문에.’

    저 멀리, 그레이트 웜의 머리에 서있는 몬스터 테이머를 노려본다.

    “자 상태이상 회복 포션. 마시고 천천히 일어나. 곧 본대 쪽에서 지원이 올 거야.”

    슬슬 미르차르드 후작이 전방의 상황을 보고, 후방의 상황을 알려줬을 거다. 루아타 공작이라면 보고를 듣자마자 당장 후방으로 지원을 보낼 터.

    “누난 괜찮으니까. 어서 너부터 이거 먹어. 온 몸에서 피가 나잖아”

    가방 속에서 체력 포션을 꺼내, 라트에게 주는 케이네의 손이 조금씩 떨린다. 아직까지 무서워서 말을 더듬고 있으면서도 자신보다 남이 먼저라니.

    왜 울고 있는 거야? 저 눈물을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다. 설마 지금 내가 다쳐서 울고 있는 거야?

    “난 괜찮으니까 울지 마.”

    이유는 모르겠지만, 케이네의 눈물을 보자니 짜증이 치밀었다. 오우거를 죽여서, 조금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괜찮아지지가 않아.

    “이렇게 피가 나고 있으면서 뭐가 괜찮아!”

    “진짜로 괜찮아. 이거 봐.”

    라트는 머리를 쓸어 올려 이마를 보여주었다. 괜찮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조금 전 오우거의 일격에 의해 찢어졌던 피부가, 부서졌던 뼈들은 이미 회복된 지 오래다.

    체력 포션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이 회복된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궁금증도 들지 않는다.

    그저, 마치 벌레를 보는마냥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개년을 죽이고 싶었다.

    “포션 먹었구나? 다행이다. 피를 그렇게 흘려서, 엄청 걱정했어.”

    이런 상황인데도 자신을 걱정하는 바보 같은 착함 때문에, 그리고 포션을 먹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라트는 절로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거 확인했으면 어서 도망가. 그게 나 도와주는 거야.”

    “응.”

    고개를 끄덕이고 라트가 건넨 상태이상 치유 포션을 마신 케이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합류했다.

    ‘아씨, 도망가라니까.’

    그리고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포션을 먹이고 있는 중이다. 진짜 바보같이 착해서 탈이다.

    ‘뭐 어쩌겠어.’

    케이네의 심성이 곱지 않았다면 라트의 재능에 질투를 했지, 길드 마스터를 넘겨주겠다고 그런 연극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 알고 있었다. 케이네뤼카흐 폰 글란츠라는 여자는 절대로 혼자서 도망칠 여자가 아니라는 걸.

    케이네의 선택이 그렇다면야 라트가 할 일은 정해졌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레이트 웜 위에서 몬스터를 지휘하는 로브를 쓰고 있는 여성의 실루엣을 보고 라트는 이를 갈았다.

    케이네가 도망쳤다면, 여기 남아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판단하고 저 쌍년의 배때지에 검을 쑤시러 달려갔을 거다.

    다시 생각하지만, 나는 착한 놈이 아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에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러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있는 사람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죽는 시간이 좀 미뤄져서 좋겠어.”

    ‘본대에서 지원이 오기 전까지 저 몬스터 무리를 막는다.’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나?

    오우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사이 만들어놓은 석벽이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잠시 후 300마리의 몬스터가 물밀듯 밀려올 게 눈에 보인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다. 저 몬스터 무리는 라트에게 위협적이지 않지만, 모든 몬스터가 라트를 상대하려고 할 리가 없다.

    몇몇은 라트를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달려들 게 불 보듯 뻔하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하겠지. 여기 있는 몬스터들은 테이머에게 길들여져 있으니까.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케이네 또한 다시 위험에 처하리라. 무색의 연금술로 석벽을 다시 세우는 방법도 있지만.

    ‘무리다.’

    지휘관이라는 머리가 있는 몬스터 무리답게, 거대한 철구를 철퇴처럼 이용해 석벽을 부수고 있는 모습을 보아 석벽을 다시 세우고 있다고 한들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이런 상황임에도 라트는 웃었다.

    조금 전 막는다고 생각했나? 어째서 저것들을 막아야 하는가. 그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 굳이 저것들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저 개년의 죽음이 미뤄질 이유도 없다.

    ‘전부 죽이면 그만이잖아.’

    “만연하라.”

    울려 펴진 주문과 함께 대지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듯,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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